마음이 뒤척이는 순간마다 위로가 되는 낱말이 있다면
나 자신이 무력하게 느껴질 때면 낯선 낱말을 외웠습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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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 때 단어를 외우는 사람. 시인이자 시간 강사. 편의점 알바생. 우울증과 사회불안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덕분에 비로소 ‘쓰는 삶’을 시작한 사람. 이 책을 쓴 작가 민바람은 고통에 휩싸일 때마다 주머니 속에 담은 조약돌을 쥐어보듯 낱말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감각하고자 했다. 이 책에는 가깝지만 낯선 순우리 낱말들이 주는 위안과 용기의 순간을 담았다. 새로운 낱말을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낱말을 통해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보게 한다. “휴가지에서 주머니에 가득 담아온 신기하고 예쁜 돌멩이들처럼”이 책에서 나만의 특별한 낱말을 만날 수 있기를, 새로 얻은 언어의 조각만큼 오늘을 조금은 다르게 살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우울하거나 무기력할 때 단어를 외우셨다는 작가님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외국 낱말을 외우기도 하고 순우리 낱말을 외우기도 하셨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20대에는 향상심이 강했고 늘 조바심이 났어요. 끊임없이 발전하는 느낌을 받고 싶은데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을 때가 많았어요. 그럴 때 외국어 단어를 외우면 미래를 위해 뭐라도 하는 것 같고, 단어 하나를 외우면 한 걸음은 나아간 것 같더라고요. 어려서부터 말맛에 관심이 많아서 말놀이를 하는 재미도 있었고, 이 단어가 왜 이런 뜻을 갖게 됐을까 추측하면서 여러 상상을 해보는 일이 여행 같은 기분도 들었고요. 이 나라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했겠구나, 우리랑 비슷하네, 이런 점은 다르네, 생각하다 보면 혼자 있는 방 안에서 안전하게 세상을 알아가며 발 디딜 공간을 넓히는 느낌을 받았어요.


『낱말의 장면들』이라는 제목을 두고, 많은 분이 우리 낱말에 대한 설명을 담았다고 예상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낱말에 대한 새로운 발견도 이 책의 큰 매력이지만, 작가님의 일상과 삶의 태도를 우리 낱말로 엮어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셨나요?

저는 지난 기억에 잘 붙들리고 주변 환경에도 쉽게 휘둘리는 편이에요. ‘이런 문제가 왜 생겼을까’ 생각해 보면 근본적으로 제가 자신을 믿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가닿곤 해요. 오랫동안 제 안으로 파고들면서 지난 감정에도 애도의 과정이 필요하다는걸, 그 과정을 거친 뒤에야 생각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마음의 결이 맞는 사람들과 나누는 시간에는 어떤 상처도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아마도 ‘다치고 다치게 하고 쓰다듬고 새살을 채우며 살아가기’라는 구절이 이 책에서 제가 건네고 싶었던 말인 것 같아요.


책 곳곳의 감성적인 사진들이 실려 있어, 낱말의 ‘장면들’이라는 제목의 의미가 더욱 선명히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신혜림 작가가 직접 원고를 읽고 영감을 받아 사진을 찍었다고 하는데요, 사진과 함께 글을 읽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협업 과정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에 편집자님께 사진을 싣자는 제안을 들었을 때는 염려도 있었어요. 제 경험과 순우리말이 얽혀 있는 책인데 사진까지 들어가면 복잡해 보이지 않을까, 순우리말과 글의 분위기가 한국적인 느낌이 많이 들 텐데 사진작가님께서 어울리는 사진을 찍기 힘드시진 않을까 하고요. 그런데 팀장님께서 추진하시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글과 사진이 함께 실린 PDF 파일을 받아보니 일단 사진이 너무 아름답고, 사진 덕분에 글로 담지 못한 감각까지 풍성하게 담긴 느낌이 들었어요. 아, 두 분 다 진짜 고수시구나, 생각했어요(웃음). 신혜림 작가님 사진은 ‘빛’과 ‘이야기’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글에 맞는 사진을 찍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글에 어울리면서도 풍부한 감성과 이야기를 담아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독자분들도 책에 실린 사진을 아주 좋아해주시는데 어떤 분은 ‘글과 사진이 찰떡이다’라는 표현을 해주셔서 기뻤어요. 두루 감사한 마음입니다.



책에는 낯설지만 소박하고 예쁜 우리 말이 가득합니다. ‘겨르로이’ ‘가을부채’ ‘바람만바람만’……. 작가님이 힘들 때 꺼낸 본 ‘조약돌’ 같은 단어가 있다면 소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편치 않을 때 ‘푸서리’를 자주 떠올렸어요. 휴식이 들어 있는 낱말이라고 생각해요. 입술을 밀어내며 소리 내는 ‘ㅍ’와 ‘ㅜ’가 만나 감정을 한숨처럼 뱉게 해주고, 이 사이로 바람을 내보내며 발음하는 ‘서’도 마음으로 바람이 지나가는 느낌을 줘요. “푸서리”하고 읊조리면서 ‘제멋대로’ 자라난 풀들을 떠올리면 강박과 불안에서 자유로워지는 기분이 들어요. 잠시 머리와 마음을 비우게 해주는 명상 같은 낱말이에요.


자신이 부족한 사람으로 느껴질 때는, 마지막 낱말로 실린 ‘빛접다’를 생각하면 완전해지는 기분이 들고 용기가 나요. 좋은 선택만 하며 살지는 못했지만 언제나 최선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했다는 점을 떠올리게 돼요. 내 안에 ‘빛’이 있는데 진정한 의미에서 그걸 알아봐 줄 사람은 나뿐이라는 사실을 ‘빛접다’라는 세 글자가 상징해 주는 것 같아요.


이 책에는 작가님의 여러 “난치병과 불치병”이 등장하는데, “내 몸이 세상에 적응하는 방식이라 생각하며 지낸다”라고 언급하셨습니다. 작가님의 질병이 글 쓰는 삶을 추동한 것일까요? 그 고통으로 삶으로 껴안으며 겪었던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어려서부터 작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원하는 걸 할 수 있게 된 20대에는 글쓰기를 일상의 중심에 두지 못했어요. 작가는 세상과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어야 하는데 저는 세상도 사람들도 싫었고 할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인 것 같았어요. 지금 보면 그건 ‘나에 대한 이해’ 부분에서 제가 멈춰 있어서였어요. 내가 겪는 문제들이 너무 힘들긴 한데, 그게 어떤 성질의 것인지 보이지 않으니까 나와 세상을 연결 지어 생각할 여력도 없었던 거죠.


제가 가진 ADHD에 대해 병식이 자리 잡고, 성 정체성 고민을 해결하고, 사회불안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을 하나씩 치료하는 과정에서 세상과 제가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보이기 시작했어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누구보다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글쓰기 자체에 대한 욕구는 원래 강했지만, 질병이 어떤 이야기를 먼저 할 것인지를 정해줬어요. ‘내 몸이 세상에 적응하는 방식’과 ‘고통을 삶으로 껴안으며 겪었던 과정’을 다룬 게 전작인 『우아한 또라이로 살겠습니다』가 되었습니다. 너무 홍보 같네요(웃음).



이 책에서 이 글만큼은 독자들이 꼭 집중해서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추천하는 부분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좀 무거운 꼭지에 속하지만 ‘미움을 버리고 싶은 순간’의 한 부분을 들려 드리고 싶어요.


“하나의 삶을 살아 나간다는 건 확률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일이다. 억울할 때는 억울해하고, 화가 날 때는 화를 내고, 증오도 하고, 경멸도 하고. 정당한 감정들을 충분히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만큼 표현하고, 나머지 삶을 위해서 감정을 떠나보내는 일. 내게 힘이 되는 사람들, 운이 좋았던 일들을 소중히 여기면서 그 다정함으로 다친 곳에 연고를 바르는 일.” 


우리가 예상치 못한 일을 겪을 때는 그 일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기 쉽고, 자신의 대처를 스스로 평가하는 일에 집중할수록 상처에 매몰되기 쉬운 것 같아요. 기쁜 일이 내가 잘해서만 일어나지 않듯이, 괴로운 일도 내 탓으로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치유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냥 삶의 속성이고, 우리에겐 그 속을 뚫고 나갈 힘이 있다는 사실을요. 삶은 우리에게 계속 짐을 지우지만 좀 더 가볍고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서로 도울 수 있다는 걸 계속 실감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작품활동 계획을 소개해 주신다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퀴어 소설을 계속 쓰는 거예요. 올해 한 편을 완성했는데, 이어서 구상하고 있는 단편들이 여럿 있어요. 6~7편 정도 완성되면 엮어서 소설집을 내고 싶습니다. 월요일마다 지인에게 시 배달을 하고 있는데, 시가 쌓이면 모아서 시집이나 시와 함께 쓴 에세이로 엮고 싶기도 해요. 소설로 쓸 때 제일 잘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에세이로, 시로 전달하기에 더 어울리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요즘 퀴어-장애-여성의 교차성에 관심이 많은데 그에 얽힌 얘기를 어떤 형식으로든 차근차근 풀어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내면의 부름을 충실히 따라가면 조금씩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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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