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모 레비 저/이현경 역 | 돌베개
한자(황정은) : 오늘 저희가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눌 책은, 단호박 님이 같이 읽자고 제안한 책이죠.
단호박 : 네, 프리모 레비가 짓고 이현경 역자가 옮기고 돌베개에서 출간한 『주기율표』인데요.그렇습니다. 저희 책장 털이 특집에서 한번 이야기가 나왔었죠?
한자(황정은) : 네, 제 책장에서 제가 고른 책이기도 하죠.
단호박 : 제가 몇 번 방송에서 수용소 문학을 좋아한다고 얘기를 했었는데,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잘 읽었다고 얘기를 하고 『주기율표』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잘 없어가지고, 이번 기회에 한 번 다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싶어서 제안을 드렸습니다.
한자(황정은) : 단호박 님이 내용을 본격적으로 소개해 주시기에 앞서서 이 책을 개괄적으로 소개를 좀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단호박 : 그럼요.
한자(황정은) : 첫 단편의 제목이 「아르곤」입니다. ‘움직임이 없는 것’이라는 뜻도 있고 ‘비활성 기체’를 이르는 말이라고 해요. 이 첫 단편에서 프리모 레비가 이탈리아 유대인 공동체의 은어를 소개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이야기예요. 말을 설명하고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면서 유럽에서 오랫동안 박해를 받아온 유대인들, 자기 선조들과 이웃들인 거죠, 이 사람들의 삶이 존재했음을 프리모 레비가 문학적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을 거라고 저는 생각을 했고요. 또 홀로코스트를 통해서 독일인들이 말 그대로 절멸시키려고 한 것이 성공하기도 했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이 은어 공동체, 언어 공동체의 역사일 테니까 「아르곤」이라는 챕터를 통해서 이 유대인 공동체에서 사용하는 은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이걸로 첫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었을 것 같더라고요.
단호박 님이 말씀하신 『이것이 인간인가』는 레비가 『주기율표』보다 먼저 썼죠. 『주기율표』는 그 이후에 출간된 책인데, 사실 『주기율표』에서는 절멸 수용소라는 장소가 전면에 등장하지는 않아요. 프리모 레비가 만난 사람들, 그리고 아는 사람들이 소개가 되는데요. 오히려 저는 절멸 수용소라는 공간이 이 책의 배경에 버티고 있다고 느꼈고, 이것은 제가 『이것이 인간인가』를 먼저 읽어서였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작가도 그것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독자들도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이겠죠.
저는 이 책을 10여 년 전에 읽었어요. 지금은 2023년 아닙니까? 지금 이 시점에 프리모 레비를 다시 읽는다는 게 예상보다 더 괴로운 일이기도 했어요. 두 분 혹시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그냥 : 그렇죠. 아무래도 최근의 상황이 떠오르면서 머리도 가슴도 복잡했죠.
한자(황정은) : 그렇죠. 사실 『주기율표』를 같이 읽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제가 그 걱정을 하기는 했습니다만, 이스라엘의 시오니스트들이 팔레스타인에서 지금 벌이고 있는 대량 학살 제노사이드 때문에 마음이 복잡할 수밖에 없었고, 읽으면서도 계속 생각이 나는 거죠. 그렇지만 우리가 프리모 레비의 책을 읽는다고 팔레스타인을 향한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를 옹호한다는 것은 아니잖아요. 더군다나 프리모 레비는 팔레스타인을 향한 이스라엘의 폭력에 반대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읽어갈수록 그런 괴로운 심정이 약간 심화되는 면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 걱정을 덜 수는 있었어요.
그러면 이제 단호박 님의 안내로 자세한 내용 소개를 받아볼까요?
단호박 : 『주기율표』는 제목 그대로 화학 주기율표대로 소제목이 되어 있고요. 중간중간 에세이와 소설이 섞여 있습니다. 처음에 「아르곤」으로 시작된 것들은 「수소」 「아연」 「철」 「칼륨」 「니켈」 「납」 「수은」처럼 저희가 한 번쯤 들어봤거나 아니면 좀 생소한 것들, 「바나듐」 이런 것들은 저희가 잘 들어본 적이 없죠, 그런 화학 원소들을 제목으로 달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와 (나치에게) 잡혀 들어가서 공장에서 일한 이야기, 이후에서 연구소에서의 이야기들이 쭉 나오다가 「바나듐」 이야기가 나옴으로써 책 전체의 이야기가 휙 뒤바뀌는 느낌이 들잖아요.
한자(황정은) : 배후가 전면으로 나서는 그런 느낌이죠.
단호박 : 네, 그 부분도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바나듐」 이야기가 뭐냐 하면, 공장 연구소 같은 곳에서 프리모 레비가 일하고 있었는데 니스의 문제점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를 하다가 독일의 공장에 항의 편지를 쓴 거죠. 그래서 답장으로 ‘미안하다, 우리가 연구를 하고 있는데 바나듐을 조금 넣었더니 괜찮아지더라’ 이런 편지를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답장을 보낸 사람의 이름이 뮐러였는데, 프리모 레비의 과거 속에 뮐러라는 이름이 있었던 거예요. 독일에서는 굉장히 흔한 이름이라 ‘그 뮐러가 아니겠지’ 했는데, 그러다가 철자를 틀리게 쓴 걸 발견했는데 레비가 알고 있는 과거의 뮐러도 그 철자를 틀리게 쓰는 버릇이 있었던 거죠. (과거의) 그 사람은 프리모 레비가 수용소에 있을 때 만났던 사람이고, 실험실을 관리하는 사람이었죠. 그리고 프리모 레비에게 면도를 할 수 있게 해주고 신발 한 켤레를 준, 어떻게 보면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그 사람은 아주 해맑게 물어보죠. ‘왜 이렇게 불안해하는 거예요?’ 하고 물어보는데 당시 프리모 레비는 그렇게 생각을 하죠.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 이 사람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왜 내가 불안해하는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라고 생각을 하던 순간을 회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뮐러한테 용기를 내서 편지를 쓰게 되죠. ‘내가 그때 그 유대인이다, 혹시 기억하느냐, 당시에 다른 사람 둘과 같이 있었는데 기억하느냐’라고 했을 때 뮐러는 장문의 편지를 보내줍니다.
한자(황정은) : 이 뮐러라는 사람이 레비가 부나 모노비츠 수용소에서 만난 사람인데, 거기가 부나라는 합성 고무를 생산하는 공장이라서 본래는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거든요. 이게파르벤이라고 하는 독일의 회사들의 연합체가 있는데, 거기에서 운영하는 합성 고무 생산 공장이 모노비츠에 있었고, 그 공장 이름이 부나 공장이에요. 그래서 제3수용소를 부나 모노비츠 수용소 혹은 부나 수용소라고 부릅니다. 프리모 레비가 1943년에 거기로 들어가서 해방될 때까지 머물렀어요.
프리모 레비가 ‘이 뮐러가 정말 자기가 아는 그 뮐러인지’를 알아내기까지의 과정이 또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가슴이 뛰지 않았습니까? 내가 마치 당시의 프리모 레비인 것처럼 가슴이 너무 두근두근하고. 그런데 사람이 철자를 잘못 쓰는 습관이라는 건 흔하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레비가 뮐러한테 그냥 편지를 보낸 게 아니라 자신이 쓴 『이것이 인간인가』를 동봉해서 보내요. 그러면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 실험실의 세 사람을 혹시 기억하고 있는지. 유대인이었겠죠. ‘차출된 세 사람 중의 한 명이 난데, 당신이 내가 아는 뮐러가 맞냐’라는 질문을 보내고 (뮐러가) ‘맞다’라고 대답을 한 거죠.
단호박 : 그 이후에 8페이지짜리의 편지를 뮐러 씨가 보내게 되는데, 프리모 레비의 해석에 따르면 혹은 이 편지에 대한 묘사에 따르면 그것은 글을 써본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이 쓴 편지였다고 이야기를 하고 미사여구와 진짜 이야기가 반반이고 과장된 찬사로 가득 차 있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마지막 문장이 ‘그것은 간결하고 총체적인 판단을 모두 거부하고 있었다’였죠. 정확한 편지의 내용은 나와 있지 않지만 어쨌든 뮐러는 아우슈비츠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정확하게 말하기보다는 두루뭉술하게 ‘전 인류가 이것에 책임이 있다’라고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한자(황정은) : 맞아요, 정말 최악의 태도죠. ‘나는 몰랐다. 명령대로 했을 뿐이다.’ 당시에 수용소에서 부역한 많은 독일인들이 그런 태도를 보이기도 했고요.
단호박 : 그리고 뮐러는 그때 그 회사를 이어받은 또 다른 회사에 아직도 재직하고 있었던 거죠. 그러면서 유대인 학살을 목적으로 하는 그 어떤 행동에 대해서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한자(황정은) : 이게 대단히 비윤리적인 태도인 게, 이 사람이 당시에 일했던 부나 공장이 이게파르벤 소속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 회사가 가스실에서 사용되는 치클론B 가스를 생산한 회사였거든요. 그런데 ‘나는 몰랐다’는 이유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그런 일이 벌어졌다니 유감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전 인류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태도를 보이는 인물이 바로 뮐러라는 사람인 거예요.
수용소 문학 혹은 증언 문학에서 프리모 레비가 가지는 특이한 독특함이 있어요. 저는 굉장히 탁월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전체적으로 과학자다운 관찰자적인 시선으로 사람이든 상황이든 묘사를 한단 말이죠. 그런데 이 「바나듐」만은 꼭꼭 억누른 원한과 분노와 이런 것들이 아주 많이 담겨 있는 글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서술이 있어요.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일은 그를 심판하는 것이지 용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 뮐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당신이 했다고 주장하는 일보다 훨씬 더 용감한 것들을 하는 인간들이 있었다’라는 이야기도 하고 ‘모든 인간이 영웅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처럼 솔직하고 무방비 상태인 세상이라도 그럭저럭 살아갈 만하다. 이 사실은 내가 인정을 한다. 하지만 그런 세상은 비현실적이다. 현실 세계에는 무장한 이들이 존재했고 그들이 아우슈비츠를 만들었으며 솔직하고 무방비 상태인 바로 사람들이 무장한 이들의 길을 닦아야 했다. 그러니까 아우슈비츠에 대해서는 모든 독일인 아니 모든 인간이 대답해야만 한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무방비로 있다는 게 더 이상 허용되지 않았다는 입장인 거예요. 타협이 안 된다는 입장인 거죠.
단호박 : 그런데 「바나듐」에서 가장 마지막 부분이 있죠. (뮐러에게) 전화가 와서 만나자고 해서 약속을 잡았는데, 그리고 답신의 초고도 써놨는데, 갑자기 이 뮐러라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한자(황정은) : 그렇습니다. 뮐러라는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그의 부인이) 전했다는 데서 「바나듐」 이야기가 끝이 나거든요. 프리모 레비 입장에서는 해소되지 않는 게 있는 거예요.
단호박 : 그렇죠. 기시감 드는 사건들이 몇 개 있잖아요. 피해를 받은 사람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사람이 다 죽어버리거나 이제는 묻게 될 수 없는 사건들이 되게 많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한자(황정은) : 맞아요. 그러면 질문을 가진 사람은 대단히 고통스럽고 회복될 길이 없습니다.
단호박 : 뮐러라는 사람을 처음에 발견했을 때 묻고 싶은 게 많았다고 프리모 레비가 적잖아요. 아우슈비츠는 왜? 판비츠는 왜? 어린아이들은 왜 가스실로 가야 했을까? 하고 ‘왜’라는 질문을 계속하게 되는데, 결국에는 그 질문에 대해서 누구도 답을 해주지 못했죠. 물론 뮐러라는 사람이 이 모든 사건의 주동자도 아니었고 모든 질문을 그 사람이 답할 것은 아니었으나...
한자(황정은) : 자기 몫의 대답을 하지 않은 사람인 거죠. 나는 몰랐다는 이유로. 그리고 사실은 프리모 레비가 뮐러라는 이름을 봤을 때부터 자기 안에서 발생한 그 수많은 질문들을 ‘한 사람에게 퍼붓기에는 부당하다, 이것이 과연 한 개인에게 가능한 질문인가’를 의심해요. 저는 프리모 레비에게 그런 태도가 있어서 더 특별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단호박 : 저희가 모든 책에 관해서 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프리모 레비는 정말 한 번쯤은 꼭 읽어볼 만한 작가죠.
한자(황정은) : 또 지금 읽으면 특별한 책이기도 해요. 제가 10여 년 전에 이 책을 읽을 때도 사실은 팔레스타인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또 다르게 읽었거든요. 이스라엘의 시오니스트들이 가자지구의 사람들을 가두고 공포를 겪게 만들고 있는 거잖아요. 10여 년 전에 제가 품은 질문이 있었어요.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생각할 때 지금도 많은 분들이 갖고 있는 질문일 텐데 ‘절멸 수용소와 게토를 겪은 이들이 어떻게 남에게 같은 짓을 저지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는 지금 와서는 이 질문을 하고 싶지가 않아요. 이 질문은 많은 이들이 품어 왔겠지만 대단히 오랜 질문 아닙니까? 그런데 사태를 해결하는데 조금도 키잡이가 되질 못했어요.
관련한 일화가 있는데, 저 역시 10여 년 전만 해도 이 질문을 가지고 있었고 오래 가지고 있던 질문이었거든요. 그래서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와 2 수용소를 방문했을 때 유대계 도슨트를 만나서 그 사람에게 제가 질문을 했어요. 거의 다 돌아보고 나서 공동화장실이 배변을 해결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오로지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끼기 위해서 아주 기술적이고 정교하게 구현된 구조물이라는 설명을 듣고 제가 ‘그런데 왜 이걸 겪은 그들이 팔레스타인에게 그런 일을 벌이는가?’라는 질문을 했더니 그가 대답을 이렇게 했습니다. ‘we cannot judge them.’ 대단히 명확하게 단호하게 그런 대답을 하더라고요. 시오니스트들에게는 이미 대답이 마련이 되어 있는 거예요. ‘we cannot judge them’
저는 그 대답이 주어와 목적어가 바뀌었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we cannot judge them’이 아니라 ‘they cannot judge us’인 거예요.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리고 사실은 지금껏 그 말 그대로 되어 왔습니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원조를 하기도 하고요. 영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가 이스라엘 시오니스트 극우 세력의 팔레스타인을 향한 박해에 오랫동안 침묵을 해 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일단은 서구사회가 ‘we cannot judge them’이라는 말에 다시 대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본질적으로는 뭐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유럽 땅에서 벌어진 홀로코스트의 대가를 팔레스타인 땅의 무슬림이 치르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 생각이 들었고요.
이번에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를 다시 읽으면서 제가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그리고 『휴전』까지 훑어봤거든요. 그러면서 참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주기율표』에 실린 글들도 한 편 한 편의 글로써 정말 좋고, 그리고 홀로코스트 직전과 직후에 사람을 관찰하는 레비의 과학자로서의 시선이 대단히 특별하고, 그럼에도 인간적인 유머가 있고 그래서 대단히 친밀해요. 글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 아마도 실존했을 이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대단히 친밀하고 생생하게 다가왔고 그들의 죽음이라든지 저항에 대해서는 여전히 슬프고 인간으로서 생각해야 될 점이 분명히 많다고 생각을 하지만, 이번에 『주기율표』를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2023년에 저에게 남은 생각은 그냥 이거 하나뿐이었어요. 팔레스타인으로부터도 이런 기록이 곧 도착할 것이다. 이유는 많겠죠.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유대교인들 중에서도 이 제노사이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어느 곳에서든 이유가 무엇이든 이 제노사이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 점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이 제노사이드에 가담한 긴 명단이 있는데 그 명단에 본인 이름이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프리모 레비는 유대 공동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걸 통해서 우리가 지금 팔레스타인을 생각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팔레스타인의 이야기가 아직 한국 사회에 많이 당도하질 않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우회해서라도 우리가 그 장소를 같이 생각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호박 : 오늘 저희가 같이 읽은 책은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였고요. 다음에 같이 읽은 책은 무엇이죠?
그냥 : 이번에 단호박 님이 소개하신 『주기율표』는 지난번 한자 님의 책장에서 뽑아오신 거잖아요. 저는 단호박 님의 책장에서 하나 뽑아오기로 했습니다. 다음에 셋이 같이 읽을 책은, <삼자대책> 최초로 같이 읽는 만화책이죠!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를 읽겠습니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