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박수 받는 게 되게 오랜만이에요" (G. 김초롱 저자)
이 그리움에 끝이 있을까 싶어요. 사실 끝이 있기를 바란 적도 있지만, 이제 없다는 걸 알아버린 것 같아요. 요즘에는 그리움을 품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글ㆍ사진 임나리
2023.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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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보통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나라가 따로 존재한다. 이를테면 ‘이해받지 못한 자들의 나라’가 있다. 이해받지 못한 자들의 나라 주민은 서로를 100미터 밖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얼마 전 그 이해받지 못한 자들의 나라에 ‘이태원 참사 생존자’,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라는 이름의 새 식구가 들어왔다. 이해받지 못해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두문불출하고, 누군가는 투사가 되어간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보통사람의 나라를 피해 이해받지 못한 자들의 나라에서 살아간다. 나는 여전히 그들이 아프다. 


김초롱 저자가 쓴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에서 읽었습니다.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합니다.



<인터뷰 – 김초롱 저자 편>


‘삶의 고통에서 헤엄치는 순간에도 스스로 명랑함을 잃지 않고 결국 행복해지고야 마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말하는 저자를 모셨습니다.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를 쓴 김초롱 작가입니다.

황정은 : 10.29 참사 이후로 반년 동안 인터넷 매체에 상담기를 연재하셨고요. 이번에 그 내용을 묶어서 책으로 내셨습니다. 그 책이 바로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라는 책이고요. 아몬드에서 출간이 됐습니다. 참사 이후로 글을 ‘읽기’가 어려웠다고 쓰셨는데 ‘쓰기’는 어땠습니까?

김초롱 : 저는 사실 쓰는 것보다 읽는 걸 더 재밌어하던 사람이었더라고요, 몰랐는데. 다른 사람들 생각을 들여다보는 게 재밌지, 내 이야기를 신나서 풀지는 않았는데, 참사 이후에는 일단 집중력이 떨어져서 책뿐만 아니라 집중을 요하는 건 아무것도 못 하던 시기였어요. 그런데 쓰기는 집중하는 게 아니라 약간 토해내고 발설하는 느낌이어서, 그때 쌓였던 감정들도 많았고요, 그래서 쓰지 않으면 안 됐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거 같아요. 

황정은 : 읽기는 요즘 어떠세요? 이제 괜찮아졌어요? 

김초롱 : 괜찮아졌어요. 읽기가 수월해지기 시작한 건 몇 개월 전이긴 한데, 참사 이전만큼 완전한 집중력으로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건 진짜 얼마 안 됐어요. 한 2~3주 전? 요즘에 가을이기도 해서 여러 가지 책도 많이 읽고 있습니다.

황정은 : 제가 오래 전에 작가들이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는 자리에 템플릿을 들고 간 적이 있어요. 그때 304개가 조금 넘는 문장을 모은 템플릿이었는데 한 사람당 한 문장씩을 썼거든요. 이게 모이니까 종이 사이즈가 좀 거대했습니다. 그때 유가족분들이 청운동 동사무소에 계실 때였는데, 그거를 펼친 어머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사람들 참 잔혹하다.’ 이렇게 긴 거를 어떻게 읽느냐고, 웃으시면서 탓을 하신 거죠. 그렇지만 진심인. 그러면서 ‘우리는 참사 이후에 글을 읽을 수가 없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집중력이 잠시도 유지가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그런데 김초롱 작가의 책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실려 있더라고요. 글을 읽을 수가 없다는 고백이었고, 그럼에도 글을 쓰셔서 이렇게 책 한 권 분량으로 모았단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쓰는 과정이 어땠을까’라는 짐작했던 것 같습니다.

김초롱 : 네.

황정은 : 책 속에서 그날 현장에서 우연히 만났거나 목격한 사람들이 그립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어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말씀하셨는데, 어떤 마음인지 듣고 싶습니다.

김초롱 : 음... 어떤 마음이냐 하면, 그냥 계속 궁금한 마음인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지금 잘 지내고 있는지. 사실 참사 초반에는 ‘살아있을까?’ (그때 제가) 뉴스에 집착하면서 봤던 것도 제가 그날 보았던 사람들은 시각적으로 굉장히 잘 기억을 하고 있던 상태였어요. 특히 어린아이들에 대한 생사 여부가 올라올까 봐 계속 뉴스를 보고 있었고, 그것도 그리움의 일종이었어요. ‘제발 아니었으면 좋겠고, 살아있었으면 좋겠고, 살아있다면 잘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이 감정이 쭉 연결되면서 그리움이 된 것 같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계속 궁금하고 ‘일상적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지면서 지내고 계실까’ 이런 것도 궁금하고, 어떤 마음으로는 ‘차라리 잘 잊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잘 사셨으면 좋겠다’라는 마음도 들고 계속 기도하게 되고, 계속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요, 그 마음을. 이 그리움에 끝이 있을까 싶어요. 사실 끝이 있기를 바란 적도 있지만, 이제 없다는 걸 알아버린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마음에 끝은 없구나, 계속 그냥 이렇게 품고 있어야겠다’라는 생각도 들고요. 요즘에는 그리움을 품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계속 기도하게 되고. 제가 종교가 없거든요, 그런데도 자꾸 뭔가에 대해서 기도를 한다는 건 좋은 행위인 것 같다는 그런 마음인 것 같아요.

황정은 : 작년 이맘때쯤에 내년에도 이태원에 갈 거라고 하셨어요. 올해 어떠셨나요?

김초롱 : 사실은 제가 연재 글에서도 그렇고 공청회나 국회 추모제에서도 ‘이태원과 핼러윈 파티는 잘못한 게 없기 때문에 나는 꼭 이태원에 당당하게 갈 거다’라는 말을 정말 오랫동안 해왔거든요. 그 말이 어떤 방식으로든 좋은 영향을 끼쳐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래 놓고 정작 저는 올해 (이태원에) 가지 못했습니다. 

황정은 : 근처까지는 갔는데 철제 펜스를 보고 돌아 나오셨다고...

김초롱 : 사실 아직도 스스로가 원망스럽기도 해요. 마지막에 힘을 내지 못해서. 그런데 철제 펜스를 보고서 약간 ‘헉’하는 느낌이 들었고, 이전과는 너무 다른 현장의 분위기에 도저히 갈 수가 없었어요. 약간 무서웠고, 다시 한번 공포심이 물밀듯이 들어오더라고요. 그리고 세계문화거리에 원래는 그렇게까지 보이지 않았던 경찰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약간 ‘가면 안 되는 곳이다’라는 이미지를 더 세게 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정말 못 가겠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뭔가 잘못됐다, 단단히 잘못됐다.’ 싶어서 그냥 저는 돌아 나왔고. 1년 전으로 다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날 저녁에 (집에) 들어가서 똑같이 참사 날이랑 똑같이 뉴스를 계속 봤거든요. 제가 직접 가지 못했으니까, 카메라가 비치는 현장을 보고 싶어서. 울지는 않았지만 공허함 같은 것도 찾아오고, 그랬던 것 같아요.

황정은 : 그러게 말입니다. 저는 그 펜스가 생존자나 희생자들을 향한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가서는 안 될 장소’라고 시각적으로 너무나 강한 이미지를 준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거기서 그런 일을 겪은 사람들이 ‘가서는 안 될 장소에 간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남기는 거 아닙니까? 가해라고 생각합니다.

황정은 : 여러 인터뷰에서 생존자라는 호명이 부담스럽다고 하셨어요.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김초롱 : 음... 일단 ‘내가 원해서 그 일을 겪은 게 아니다’가 가장 큰 것 같아요. ‘내가 원해서 생존을 쟁취해 냈다’ 약간 이런 느낌이 아니니까, 생존자라고 불리는 게 굉장히 부담스럽고 때로는 압박감이 느껴지기도 해요. 

황정은 : 무게가 굉장한 말이기도 하죠.

김초롱 : 네. 저만 이런 줄 알았는데, 최근에 부산 돌려차기 피해자분이랑 연결이 되었는데 그분도 똑같은 마음을 가지셨다고 하시더라고요. 내가 원해서 그 사건의 피해자가 된 게 아니기 때문에 자신도 피해자나 생존자 이런 단어로 불리는 게 싫어서 몇몇 인터뷰에서 ‘나는 경험자다’라는 말을 하셨다고요. 역시 내가 원해서 겪은 게 아니라면 이런 감정이 드는 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저도 ‘생존자가 아니라 그냥 당사자라고 불리고 싶다’라는 말이 되게 자연스럽게 나왔던 것 같아요.

황정은 : 혹시 유가족하고는 가끔 연락하십니까?

김초롱 : 네, 아주 긴밀히 연결되어서 연락하는 유가족분이 한 분 계시고, 나머지 분들은 추모제나 방송 인터뷰나 이런 것들을 통해서 한 번씩 계속 이렇게 연락이 닿고요.

황정은 : 어떤 이야기를 나누시는지 혹시 조금 들을 수 있습니까? 

김초롱 : 안부 묻고 그러는 거죠. 자주 연락을 하는 (유가족 중에) 이현 씨라고 있어요.

황정은 : 네, 책에도 쓰셨죠.

김초롱 : 네, 이현 언니랑은 정말 속에 있는 이야기나 때때로 일상에서 무너지는 슬픔 같은 것들을 서로 공유하고 있고. 나머지 유가족분들은 만나면 이야기를 잘 못해요. 왜냐하면 인사와 동시에 너무... 저는 유가족분들의 어깨만 바라봐도 눈물이 나거든요. 모르겠어요, 왜 이렇게 뒷모습만 보면 눈물이 나는지. 인사를 드리러 가면 뒷모습을 보고 제가 약간 (어깨를) 톡톡 두드리고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인사를 드려야 되는데, 왜 이렇게 그분들의 뒷모습과 어깨를 보면 슬퍼지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인사만 드리고, 그리고 겨우 한마디 건네면 ‘더 먼저 연락드리고 싶었는데요...’까지밖에 말을 못해요. 그러고 그냥 울다가... 최근에 갔던 1주기 공적 추모제에서는 저보고 그러시더라고요. ‘자꾸 이런 데 불려 다니지 마. 자꾸 이런 데 불려 다니면 슬픈 일밖에 더 있어’ 하시면서 ‘초롱 씨 우리 자식이지, 내 새끼지 뭐. 그래서 하는 말인데 자꾸 오지 마’라고 말씀하시는데, 메시지와 다르게 ‘와줘서 정말 고맙다’는 마음이 또 표현되고 그러니까, 되게 복잡해서 말을 많이 못해요. 그래서 그냥 인사만 하고 ‘또 뵐게요’ 하는 게 최선인 것 같은... 약간 그렇습니다.

황정은 : 우리 사회가 유가족을 자꾸 만들어 내고 있어서, 그게 너무 마음이 아프고 화도 나고 부끄럽고 그렇습니다. 이현 씨 같은 경우는 동생을 잃은 분인 거죠. 책에서도 그 사연을 소개하셨는데, 그 사연을 소개하시면서 타인의 애도를 놓고 싶은 마음을 말씀하셨어요. ‘말하도록 돕고 싶다’라고 쓰셨는데요. 김초롱 작가님은 당사자들에게 말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신 것 같더라고요. 왜 그렇습니까?

김초롱 : 누가 자꾸 그리우면 말하고 싶어지잖아요. 제가 예전에 그냥 이해하기 쉽게 생각을 해봤는데, 우리가 남녀 간에 이별해도 이별하고 나서 친구들 붙잡고 계속 그 얘기 하잖아요. 내가 헤어졌는데, 마음이 아픈데, 어쩌고저쩌고, 막 친구들 붙잡고 얘기하잖아요. 그러면서 이별하는 과정을 스스로 겪고 애도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예전에도. 그런데 사회적 참사도 똑같은 것 같아요. 내가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고, 그들이 너무너무 그립고, 내 머릿속으로는 이해가 도대체가 안 되는 이 죽음을 계속해서 말하고 싶은 거죠. 그리우니까. 그게 그들의 애도하는 과정인 거고요. 그런데 그것을 계속 잘할 수 있게끔 사회적으로 우리가 돕고 있느냐, 그건 전혀 아닌 것 같아요. 그런 걸 듣는 게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애도나 입을 막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고. 실제로 곁에서 유가족분들의 사연을 지켜보면 ‘이건 세상에 밝혀져야 되는 사연이 맞다.’ 싶은 것들이 정말 많거든요. ‘(이런 사연을) 알고도 그 사람들을 그렇게 매도하거나 애도하지 못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들이 정말 많았어요. 그래서 ‘애도를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이분들에게는 굉장히 도움이 되겠다’라는 마음이 진심으로 저절로 들어서, 계속 그분들의 생각이나 요즘에 어떻게 지내시는지 어떤 마음인지 듣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책에도 일부분 실리게 된 것 같아요.

황정은 : 당사자가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고통이 있다는 거죠. 그리고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더 많이 이 고통과 참사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고 쓰셨고요. 책에서 또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그날의 이야기를 묻는 것이 실례일 거라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그날 일을 설명하는 것은 도움을 준다’라고 하셨어요. 정말 그렇습니까?

김초롱 : 네, 저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도움이 되었고요. 그리고 유가족분들이 10.29 참사에 대해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면 굉장히 적극적으로 임하세요. 그날 있었던 일, 일련의 과정, 본인들이 겪었던 심정, 이런 것들을 계속해서 말하고 싶어 하시거든요. 그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자꾸자꾸 말해도 그게 이 세상 모두에게 퍼지지 않기 때문에 기회가 닿으면 자꾸자꾸 말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알고 계시는 것 같고, 그리고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말하면서 자신의 기분이 풀어진다거나 억울함이 풀어진다거나 이런 것도 한몫한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그날 일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해주시겠어요?’는 전혀 힘들지 않아요. 상처가 되거나 그런 건 없고요. 다만 그 상처를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이 덮어두려고 하는 언행들에 상처받죠. 예를 들면 ‘산 사람은 살아야지 어떡해. 너라도 살아’ 이런 말들이 ‘현재의 참사나 이런 것들을 지워야 한다, 덮어야 한다. 없었던 것처럼 하고 살아야 너라도 산다.’ 약간 이런 식인 거라서, 그런 게 오히려 더 분노하게 하고 억울하게 하고 입을 막는 것 같은 느낌을 자꾸 받게 되고 더 상처였던 것 같아요.

황정은 : 참사 이후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셨잖아요. 어떤 안부 인사가 반가웠고 또 힘들었는지도 듣고 싶어요.

김초롱 : 최근에 1주기 공적 추모제를 갔는데 이탄희 의원님께서 그날 추모제의 사회를 보셨어요. 제가 그날 너무 긴장을 하고 있어서 앞에 서 계신 줄 인식을 못하고 무대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누가 오시더니 제 앞에서 바로 무릎을 꿇고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시면서 ‘별말 안 하셔도 된다’라고 하시면서 ‘책 너무 잘 읽었고 뭐라도 주고 싶은데 지금 갖고 있는 게 없어서 다만 초콜릿이라도 주고 싶다.’ 이렇게만 말씀하셨는데, 뭐라도 주고 싶다는 게 물건이 아니라 마음을 주고 싶은데 그걸 표현할 길이 없어서 ‘어떡하지?’ (라고 생각하는) 약간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한 어른이 진심으로 그렇게 표현하면서 무릎을 꿇고 다가오는 경험이 굉장히 위로가 되었고, 반대로 배웠었던 것 같아요. ‘내가 나중에 어떤 사람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싶을 때 무릎 꿇는 걸 절대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자존심 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이런 생각도 들고, 굉장히 경건한 위로의 마음을 진짜 온전히 받은 느낌이었고요. 두 번째는 북토크 같은 곳에서 독자분들을 만나거나 우연히 만나 뵌 분들이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안아드려도 될까요?’ 이런 요청을 하실 때가 있어요. 정말... 너무 감동받아서 소름이 올라올 정도로 위로가 돼요. 위로가 말이 필요한가? 싶어요. 악수, 포옹, 그런 것들... 진심의 마음이 있으면 행동으로 이렇게 나오는구나, 그렇게도 느꼈던 것 같고요. 그런 위로가 최근에는 진짜로 많이 와 닿았습니다.

황정은 : 참사 이후로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어른들을 보면서 외로웠다고 하셨어요. 어떤 생각을 하셨고 또 어떤 마음이었는지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김초롱 : 사과에 대한 부분은 참사 초반과 지금의 마음이 살짝 다른데요. 참사 초반에는 정말 그냥 의아했어요. 왜 아무도 사과를 하지 않지? 단순히 ‘책임자 나와’ 이런 개념은 아니었고요. 결과에 상관없이 책임자가 나와서 고개를 제대로 숙여야 하는 거 아닌가? 왜 고개를 숙이지 않지? 사과를 하지 않지? 이런 반응이었어요. 제 생각에는. 그리고 참사 중반에는 ‘우리 사회가 지금 사과를 하는 방법이나 사과에 대한 개념이 없다. 없어서 이런 결과까지 나온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사과를 어떤 경쟁에서 지는 것이나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구나. 사과를 함과 동시에 자신이 살아온 인생 전체가 부정당하는 것으로 여기는구나. 이런 사회구나’라는 걸 중반에는 깨달았고요. 지금은 ‘그렇다면 기성세대보다는 또래나 지금 한창 커가는 친구들한테 사과하는 것은 창피한 게 아니고 정말 멋있는 행위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줘야겠다’라는 생각입니다. 지난 시간 동안에는 기성세대에 대한 희망이 그래도 있었던 것 같아요. ‘시간이 좀 지나면 사과나 본격적인 책임 이야기 같은 게 더 나오겠지’ 했는데 ‘역시 이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구나’라는 걸 너무 알아버려서, 이제는 ‘사과를 꼭 하셔야죠’ 이런 생각은 아예 없어졌어요.

황정은 : 그렇습니까?

김초롱 : (사과) 안 할 걸 알기 때문에 없어졌고, 다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계속 전할 건데 그 메시지는 기성세대에게 내는 게 아니고요. 또래나 앞으로 자라는 친구들에게. 그런 방향으로 약간 변한 것 같아요.

황정은 : 사과하는 어른을 만나기가 정말 어려운 사회인데요. 절박한 질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유가족이라든지 생존자, 구조자, 목격자, 즉 당사자들인 거죠. 이 당사자들이 너무나 애를 써서 살아야 합니다. 그 와중에 또 김초롱 작가님은 10.29 참사를 말하는 글쓰기와 말하기를 계속 해오셨어요. 어디에서 가장 큰 힘을 얻으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김초롱 :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는데,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결국 ‘분노는 나의 힘’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황정은 : 그건 정말 큰 힘이 될 수 있죠.

김초롱 : 저는 진짜로 이해가 안 됐어요. 세상도 이해가 안 되고 사람들도 이해가 잘 안되고. 부끄러운 얘기지만 제가 참사의 당사자가 아니었으면 그냥 넘어갔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세상이 잘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 이 참사를 겪고 나니까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너무너무 화가 나서 처음에는 분노의 힘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요. 글을 써놓고 모아보다 보니까 이게 누군가한테 도움이 되는구나 싶더라고요. 사실 분노로 글을 썼을 때는 저 위로하려고 썼던 거거든요. 쌓인 게 많아서 어떻게든 풀어야 하니까. 그런데 그게 타인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반응을 보고서는 ‘글쓰기는 여러모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그게 누군가한테 진짜 힘으로 작용하는구나’ 하고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분노로 시작했지만 결국엔 타인과 연결되는 게 힘이 되어서 완성을 했던 것 같습니다.

황정은 : 맞습니다. 이번 책이 김초롱 작가님의 개인적인 경험을 솔직하게 쓴 이야기지만 이것이 김초롱이라는 한 개인 안에서 끝나는 얘기가 아니잖아요. 너무나 넓게 확장이 되고, 이 참사를 아프게 겪고 혹은 정말 너무 고통스러워서 되새기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도 이 이야기가 자신과 너무나 강력하게 연결된 이야기로 경험이 되는 것 같아요. 제게도 그랬고요. 저도 이 책을 읽는 동안에 사실은 고통스러웠습니다. 1년 전에 제가 비틀비틀 걸었던 발자국이 있는데 그 발자국에 다시 발을 담그는 것 같은 그런 경험이었지만, 동시에 김초롱 작가님의 이 글을 읽으면서 도움이 되게 많이 됐어요. 뜻밖에도 정말 많은 위안이 돼서 고맙다는 이야기 꼭 드리고 싶어요. 제가 감히 추측해 보건대 이건 저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이 느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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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