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을 뛰어다닐게 소리도 없이
재채기를 유발하는 내 털끝의 벼랑으로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주소로 가서
유기한 꿈을 마음껏 파헤치며 쓸게 그러니까
자 이것을 소리 내어 읽어보렴
우는 것은 다 똑같은 얼굴인데
쉽게 웃어주지는 않아 공짜라도
제목은 맨 나중에 짓게 되겠지 처음으로 돌아가면서
우리가 마음껏 뒷모습을 꿈꿀 수 있을 때
서로 물든 만큼 흉터가 생기겠지만
내가 나오지 않는 서랍이 없을 거야
네가 읽은 갈피마다 모두 우리 이야기가 되고
시는 나를 간추릴 수 없으니
그러니까 나는 시를 닮지 않았지만
받고 싶지 않은 선물이었더라도 좋아
나는 조그마한 너는 자그마치
호주머니가 많은 이 시를 읽어보렴
영원히 찾지 못하는 숨바꼭질이겠지만
우리는 술래에 익숙하니까
나는 다시 행간을 뛰어넘어
네가 잠드는 동안 젤리로 꾹꾹 눌러쓴
이 편지를 두고 갈 거야
재채기 소리에도 놀라지 않을게
네가 뒤로 숨긴 공을 모르는 척해볼게
귀찮은 건 좀처럼 참을 수 없더라도
화면엔 집사가 쓰다만 시가 켜져 있구나
소리도 없이 실컷 울다가 잠든 네 깜빡임이
나의 긴 낮잠을 배웅하기도 했으니까
이것 보렴,
키보드 위에 웅크리고 앉아 쓴 나의 시를
우리가 헤매고 있는
꿈의 주소록을
- 「집사야, 내가 쓴 시를 읽어보렴」 (『고양이와 시』, 서윤후 )
고양이의 매력에 혹한 사람들을 알고 있어요. 사실 아주 많이요. 고양이 이야기가 나오면 헐레벌떡 달려와 고양이 예찬을 하는 사람들이죠. 저도 고양이를 싫어하지 않아요. 털결은 부드럽고, 털이 날리고, 몸은 날렵하고, 가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뭐라도 아는 것처럼 키보드를 쳐대고,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고, 때로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서랍에 들어가 있고, 서랍에서 튀어나오고, ‘귀찮은 건 좀처럼 참’지 않고, 귀찮아도 필요해 보이면 옆에 있어 주고, 피가 날 만큼 세게 할퀴기도 하고, 부드러운 발바닥으로 제 피부를 누르기도 하죠. 아, 나 고양이 좋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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