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생』
듀나 저 | 폴라북스
신일숙 선생이라고 하면 옛날 만화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혹시 이름이 덜 익숙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리니지’를 아는 사람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리니지 게임이 처음 탄생할 때, 그 게임에 원작 역할을 했던 만화를 그린 분이 바로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특히 활발히 활동했던 신일숙 선생이다. 이렇게만 보면 어쩌면 한국 만화가 중에 가장 수입이 많은 최상위권에 드실 만한 분이 신일숙 선생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신일숙 선생이 그린 만화 중 SF 만화의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1999년생』이다. 1980년대에 나온 이 만화에서는 1999년부터 서서히 외계인들이 지구 침략을 시작하는데, 이 외계인들을 물리치기 위해 지구인들은 막 새로 발견된 현상인 초능력을 이용해서 초능력자 부대를 만들어 대항한다. 이때 1999년생 중에 유독 초능력자들이 많이 탄생했기에 청소년 정도의 나이가 된 주인공들이 전쟁의 복판에 뛰어들어 목숨을 걸고 전투를 한다는 이야기가 『1999년생』의 출발이다.
『1999년생』
신일숙 저 | 거북이북스
1980년대 말 만화 『1999년생』에서 1999년생들은 초능력을 갖고 태어나 지구를 지키는 미래의 희망이다. 그런데 『90년대생이 온다』와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실제 1999년생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에 나오기 시작한 지금, 인터넷에서 1990년대 생에 대해 도는 이야기들을 찾아 보면 어떤가? 지식이 부족하고, 사회성도 부족하고, 이기적이고, 그러면서도 종잡을 수 없이 무례하다는 식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나는 이런 변화가 지금 기성세대로 자리 잡은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시선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를 나타내는 증표라고 생각한다.
듀나 작가의 소설 『2023년생』은 『1999년생』의 속편 격으로 쓴 소설이다. 『1999년생』에서 벌어진 사건 이후 대략 20년 즈음이 흐른 후에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외계인과의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풀어 나간다. 소설 앞뒤의 설명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꼭 『1999년생』 만화를 읽지 않고 『2023년생』만 보아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1편이라고 할 수 있는 『1999년생』은 사실 순정만화의 범주 속에서 연재된 만화였다. 그러므로 여성 주인공이 주변의 잘생긴 남자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 가고 그 중에 누구와 사랑에 빠지고 어떻게 사랑의 배신에 괴로워하는가 하는 이야기도 상당히 많이 다루었다.
그러나 듀나 작가의 소설은 그런 틀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기에 외계인들의 정체에 대한 이야기, 우주 전쟁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다루었다. 자연히 전쟁 범죄와 전쟁 상황 속에서 피폐해진 사람들의 추악한 이야기를 좀 더 노골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이런 내용은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우리의 현실과 전쟁 못지않게 사악한 범죄가 일어나는 실제 사회를 통렬하게 지적한다. 나는 이런 지적이 『2023년생』을 『1999년생』 보다 더 무거운 이야기로 만드는 무게를 실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2023년생』은 빠르게 읽을 수 있고 박진감 있는 이야기가 넘쳐 나는 소설이다. 나는 기차를 타고 여수에서 서울로 오는 동안 이 책을 전부 다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원래 분량이 그렇게까지 많지 않은 얇은 책이기도 하다. 그렇거니와 듀나 작가가 즐겨 쓰는대로 빠르게 펼치면서 재미있을만한 이야기라면 과감하게 훅훅 줄거리 요약처럼 설명하는 부분이 많아 순식간에 빠져들어 읽기가 좋다. 외계인이 동네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상황이 펼쳐지는 이야기를 하기 전에, 주인공이 그 동네에서 깨어나는 장면에서 마침 화단에 피어 있는 라일락 내음이 풍겨 오고 주인공이 아침에 마시는 커피의 색이 레브라도 강아지의 활기찬 털 색깔 같다는 등등의 묘사를 길게 하면서 시간을 끌지 않는다. 가뜩이나 얇은 책이니만큼 많은 이야기 거리를 풍성하게 풀어 놓는데 더 집중했다.
그러면서도 처절한 전투가 벌어지는 장면을 상세히 집중해 설명하는 대목은 풍부하게 분량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이 책에는 중간에 슬쩍 서술 시점이 바뀌는 것 같은 대목이 반전 비슷하게 멋지게 나오는데, 효과가 아주 좋았다. 나도 이 비슷한 아이디어를 소설을 쓰면서 한 두 번 써 본 적 있는데, 역시 듀나 작가의 솜씨가 확실히 훨씬 좋다고 감탄했다.
나는 이 책에서 SF스러운 과학 이야기의 맛이 사는 점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 SF의 과학 이야기란 SF가 과학적으로 현실성이 높아야 좋다는 말이 아니다. 간혹 SF를 처음 써 보려는 사람들에게 나는 “SF가 과학적으로 얼마나 정확해야 되느냐”라는 질문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소설을 쓰면 SF의 신이 거기에 있는 과학 내용을 시험지 채점하듯 평가해서 과학적 정확성이 낮으면 과락을 매기는데, 그러면 SF로서는 실격이다 - 이런 것은 없으니 안심하라.”라고 대답한다.
나는 SF에서 과학이란, 그럴싸하고 재미난 이야기 거리를 찾아내는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 있는 것이지, 별 재미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억지로 무슨 과학 전공자들에게 점수 받으려고 의무적으로 끼워 넣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할리우드 SF에서는 흔히 외계인 종족이지만 사람과 굉장히 비슷한 모습을 한 생물들이 많이 나온다. <스타 트렉>의 벌컨 종족은 귀만 좀 뾰족할 뿐이지 거의 사람과 동일하다. 어떻게 머나먼 외계 행성에서 진화한 동물이 사람과 그렇게 비슷할 수 있는가?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진짜 답은 사람과 비슷한 외계인이 등장해야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를 기용해 얼굴을 보여주는 역할을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SF에서는 이렇게 수수께끼 같은 현상이 있다면 거기에 무엇인가 과학적인 이유를 달아서 설명하면 더 좋다. 예를 들면, 그 외계인 종족은 사실 사람의 조상 뻘 종족이기 때문에 사람과 그렇게 비슷한 모양이라는 식의 사연을 보여 준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의 조상 종족인 그 외계인이 머나먼 지구까지 굳이 와서 사람이라는 후손을 남겼을까? 그리고 후손을 남겨 놓고는 왜 한 동안 찾아 오지 않았을까? 질문은 계속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내용은 이야기의 새로운 소재로 계속 재미나게 연결된다. 발상의 출발이 과학적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이어지는 내용은 상당히 자연스럽고 그럴싸하게 보일 수 있다. 나는 이런 것이 SF의 즐거움이자 신기함이라고 생각한다.
『2023년생』에서 가장 재미난 내용도 바로 그와 같은 대목들이었다. 도대체 외계인들은 애초에 왜 지구에 쳐들어 왔을까? 외계인들은 왜 지구인과 비슷하게 생겼을까? 외계인들이 지구에 쳐들어 왔다면 지구인들이 역으로 외계인의 행성으로 찾아갈 수도 있을까? 왜 외계인의 우주선은 비행접시 모양일까? 처음에는 비참하게 외계인들에게 당하던 지구인들은 꾸준히 반격을 해 나가다가, 얼마 후 전쟁의 흐름이 차차 바뀐다. 그러다 소설 중반 무렵에 “이제 외계인들의 고향 행성으로 우리가 역으로 쳐들어가는 겁니다”는 내용이 나온다. 지구인 편에서 소설을 읽기 마련인 독자 입장에서 이 다음 이야기는 얼마나 궁금하겠는가? 과연 외계인의 고향 행성은 어떻게 생겼을까? 역습이 성공할까?
굳이 아쉬운 점 하나를 찾는다면 모든 문제가 풀리는 결말이 1950년대 SF 황금기에 탄생한 정통파 SF의 정통 해답을 그대로 따르는 느낌이어서 짜릿함이 좀 부족했다는 정도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SF 만화의 속편으로 나온 소설이라면 이 정도의 예스러운 맛도 어울리지 않나 싶다. 간만에 한국 SF에서 찾아 본 외계인과의 전쟁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아주 재미난 소설이었다.
*필자 | 곽재식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 KAIST에서 원자력 및 양자 공학 학사 학위와 화학 석사 학위를, 연세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각종 대중매체에서 과학 지식으로 사회 현상을 해석하는 패널로 활동하고 있다.
곽재식(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