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예술품이 단지 아름답기만 하지 않듯이, 미술 세계에도 명과 암이 존재합니다. 어떤 예술품은 현실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삶을 이상화해 보여주기도 하고 어떤 예술품은 현실보다 더 현실을 그리기도 하니까요.
2시간의 시놉시스 안에 짧지만 강렬한 인생들이 담긴 영화를 통해 예술과 작가 주위를 둘러싼 배경을 소재로 갤러리스트들의 일하는 방식, 예술가들의 창작에 대한 고뇌를 간접 경험해 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지금부터 어렵기만 한 미술시장에 한발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미술 관련 영화를 소개해 드릴게요. 고루한 미술관, 갤러리에서의 작품 감상을 넘어서 지금부터 미술 세계의 속살을 들여다보며 흥미롭게 풀어낸 영화들을 함께 살펴볼까요?
<빅 아이즈 (Big eyes)>
팝아트, 갤러리, 미술 사기극과 같이 키워드만으로도 궁금증을 자극하는 영화가 있죠. 환상적인 영화를 만들어내는 팀 버튼(Tim Burton) 감독이 제작한 영화 <빅 아이즈>는 화가 마거릿 킨(Margaret Keane)의 사기극 실화를 다뤘는데요.
1950-60년대 크고 슬픈 눈을 가진 아이와 동물의 작품으로 미국 미술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여성 화가인 마거릿은 화려한 언변술을 가진 윌터와 재혼해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월터의 사업 수완으로 부인을 영리하게 이용한 그는 전시, 굿즈 등 미술의 상업화를 통해 파격적인 행보를 선보이며 수많은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낸 것이죠.
이로 인해 결국 부인의 작품을 자신의 작품인 것처럼 거짓 작가 행세를 하며 그녀를 고스트 화가로 지내게 합니다. 거짓으로 부와 명성을 얻게 되지만, 마거릿은 10년이 지난 후에야 결국 숨겨진 진실을 밝혀내고 마침내 본인의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죠.
미술시장에서 상업적 감각은 마케팅과 사기극 그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요?
그녀의 남편은 사기꾼으로 그려졌지만, 미술에 대한 왜곡된 동경과 위선을 빼면, 어쩌면 훌륭한 갤러리스트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갤러리스트의 시점에서는 오히려 그의 행각이 능력으로 보였으니까요.
특유의 심미안과 타고난 감각으로 그림 한 점에 평론과 해설의 포장을 입혀 상품성을 더해 세상에 내놓고 시장논리에 따른 적절한 숫자를 달아 주인을 찾아주고, 각종 매체를 활용하여 상품(작품) 가치를 높여 보다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 사실 윌터가 했던 행동은 갤러리스트의 역할이기도 하니까요. 만약 윌터의 삐뚤어진 행동 대신, 기획자의 능력으로서 마거릿을 서포트해 줬다면 둘은 건강한 부와 성공을 함께 누렸을지도 모르겠죠?
영화에 나오는 큰 눈을 가진 마거릿의 작품은 현재에도 컬렉터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할 만큼 매력적입니다. 긴장감 있는 내용과는 별개로, 따뜻하면서도 신비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다채로운 색채로 가득 찬 스크린에 매료되기에 충분할 것이니, 시간내서 영화 <빅 아이즈>를 꼭 한번 감상해 보시길!
<작가 미상 (Never Look Away)>
2차 세계대전 전후의 독일, 모든 기준이 흐릿해진 세상에서 아름답고 선명한 진실을 그린 화가, 쿠르트의 이야기를 그려낸 영화입니다.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회화의 새로운 획을 그은 현대미술의 거장인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b.1932)의 실화를 극화한 작품이죠.
개인의 삶에 대한 고찰뿐 아니라 시대적 상황을 잘 녹여내, 굉장한 호평을 받았는데요. 작품에 대해 뉴욕타임스에서는 “사랑, 정치, 예술에 관한 매혹적인 어드벤처”라는 극찬을 하기도 했답니다.
<타인의 삶>으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거장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 마르크(Florian Henckel von Donnersmarck) 감독의 작품인 점도 이 영화를 놓치지 말아야 할 이유 중 하나입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미술 작품이 만들어지는 치열한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요. 예술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창작의 원천과 과정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중요한 소재인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Tante Marianne(1965)’ 작품은 2006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약 390만 달러에 낙찰되었고, 본래 ‘어머니와 아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죠. 당시 리히터가 개인사로 작품에 접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진이 본인과 이모를 찍은 사진이라는 것도 밝히지 않았는데요.
이 덕에 ‘작가 미상’이라는 평을 받았고, 영화의 제목도 <작가 미상>이 되었죠. 이런 리히터의 의견을 반영하여, 감독은 그의 조수를 섭외해 비슷한 느낌의 대체 작품을 제작했는데요. 실제 리히터의 작품과 영화 속 작품을 비교해 봐도 좋겠죠?
꼭 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더라도 아름다운 영상미와 음악은 물론, ‘게르하르트 리히터’를 대변한 인물 쿠르트를 연기한 배우 톰 실링(Tom Schilling)의 흡입력 있는 연기 덕에 3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이 지루하게 느껴질 틈이 없으니 걱정 마세요!
임규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