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라는 달콤하고 허망한, 무한한 형식
글을 쓰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준비할 필요가 없고,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4.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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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가 대개 달콤한 이유는 우리가 실제로는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하고 있다는 어떤 환상을 선취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준비는 시작의 무한한 지연이다.”


『에세이의 준비』는 ‘준비’라는 무한한 지연의 형식 속에서 쓰였습니다. 예컨대 본격적으로 과제에 임하기 전, 과제에 대한 준비 과정 중에는 이런 것들이 가능합니다. 책상 정리나 레퍼런스 콘텐츠 시청, 집 안 청소나 산책하기 등. “다시 말해 세계 전체가 준비의 영역에 속해” 있는 것이죠.

준비라는 달콤하고도 허망하며 무한한 형식 안에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강보원이 담아 낸 것은 무엇일까요?



안녕하세요, 작가님! 『에세이의 준비』를 통해 무사히 에세이를 준비하시고 출간하셨습니다. 출간 소감과 함께 이번 도서를 출간하며 느끼신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 책이 계약한 지는 굉장히 오래되었고 또 작년에 연재를 하기도 했었는데요. 조금 일찍 쓸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글을 미루는 데에는 정말 여러 이유가 있을 텐데 그중 하나는 조금 더 여유가 있을 때 조금 더 공을 들여 잘 쓰고 싶은 마음이잖아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여유라는 것은 항상 없고 결국 급한 대로 당시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마감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보면 미룰 이유가 처음부터 없었구나, 이런 생각이 글을 마치고 나면 늘 들거든요. 글을 미룰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할 때는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이 떠오르지가 않지만요……. 다만 미루는 동안 어쨌든 제가 더 읽은 책도 있고 바뀐 생각도 있고 또 그런 게 아니더라도 어쨌든 삶을 더 지속했으니까…… 더 일찍 썼다면 담기지 못했을 내용들도 있고, 그런 부분을 생각하면 늦게 나온 것이 마냥 아쉬워할 일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해요. 또 저는 책은 제가 쓴 것이지만 책의 팔자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을 해서, 늦게 나오게 된 것이 내 탓만은 아니다……? 『에세이의 준비』라는 책이 이 시기에 나올 팔자여서 그렇게 된 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조금 합니다……


팔자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책이라는 건 정말 나오고 나면 작가가 그 책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부분이 굉장히 적은 것 같아요. 그냥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고 나머지는 책이 알아서 잘 해 가야 한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에세이의 준비』는 보면 아주 좋은 팔자를 타고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 부분은 작가로서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렇다고 이 책이 아주 험한 팔자까지는 아니란 생각도 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이 책이 어찌저찌 잘 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니까 책으로서의 험난하다면 험난한 삶을…… 왜냐면 표지의 까마귀를 보면 어딘가 조금 바보 같은 면이 귀엽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런 인상의 친구들이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뭔가 씩씩하게 잘 해내기도 하잖아요. 조그만 골목길이나 오솔길 같은 곳도 재밌게 잘 걸어갈 것 같은 이미지가 있고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문학 평론가, 시인, 그리고 산문가로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작가님께서 느끼는 각 장르의 매력과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이들 장르가 서로 영향을 주거나, 생각의 확장을 이끌어 낸 경험이 있으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찰스 부코스키의 작품을 읽다 보면 소설에 나온 모티프가 시에서도 나오고 에세이 같은 글에도 등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그런 걸 발견했을 때 재밌더라고요. 같은 사건이지만 글의 형식에 따라 그 사건의 맥락이 달라지기도 하고, 시각이 달라지기도 하고, 표현되는 양상이 달라지기도 하는 것이요. 그래서 저도 다른 장르의 글을 쓰면서 그런 효과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해요. 글로 쓸 만한 이야기가 많은 것도 아니니 절약이라는 측면에서도 좋은 것 같고요. 그 외에 가령 시와 비평 같은 경우에 시를 쓰며 배우고 느낀 것을 비평적으로 풀어내려 하고, 비평을 쓰며 형성된 지향성이 시에 반영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꼭 명시적으로 평론을 발표하지 않는 시인이라 해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장르들 간의 특정한 영향이 있다기보다는 어쨌든 그것들이 다 글쓰기의 경험이니 다른 경험들처럼 상호 간의 영향을 자연스럽게 주고받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책을 통해 작가님께서 무언가를 쓰게 되는 것, 그 다음 목표가 독자들이 무언가를 쓰기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글쓰기의 동료로서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가장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며 쓰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다만 독자들이 이 책을 재밌게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혹은 유익한 책이라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죠. 유익함에는 여러 측면이 있을 텐데 저 같은 경우에는 인용할 거리가 많아 보인다든가, 아니면 읽어보고 싶은 새로운 책을 만나게 해준다든가, 잘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다든가 할 때 그 책이 유익했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그런 경험을 줄 수 있는 책이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책 곳곳에 다양한 문학 작품들을 인용하셨습니다. 인용하신 작품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거나, 잘 인용했다 싶은 작품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작가의 말’에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도 같은데 사실 이 책에 인용된 글들이 대개는 저에게 아주 큰 의미를 가지고 있거나 적어도 가졌었던 글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그 자체로 무엇이 더 기억에 남는 것을 꼽기는 어렵지만 아무래도 한 권의 책이라는 형식 속에서 생각하다 보니 처음과 끝이 기억에 남네요. 특히 이 책의 끝 부분에 「장송의 프리렌」의 에피소드를 인용했는데 워낙에 재미있게 봤던 작품이어서 인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 기분 좋은 일이었고, 또 그 에피소드 자체도 한 권의 책을 마무리하고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힘을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해서요. 그 이야기로 책을 맺을 수 있었다는 게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 같아요.


글쓰기에는 이유도, 소재도, 재능도 특별히 필요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글쓰기에 앞서서 해야 할 준비, 준비물은 무엇일까요?


이제 바로 그게 무엇일까에 대해서 한 권의 책을 쓴 것이긴 한데요…… 그런데 정말 어떻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준비할 필요가 없고,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드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상태에 따라 이 두 생각 사이를 적절히 오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내가 지금 생각이 너무 많고 무엇인가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느껴질 때는 ‘글쓰기에 준비 같은 것은 필요없다!’라고 생각하며 글을 쓰기 시작하고, 또 그렇게 글을 쓰다가 뭔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글을 써보고 싶다든지, 변화와 쇄신이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는 잠깐 멈춰서 ‘글쓰기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라고 생각하며 다른 길을 모색해 보는 거죠. 말이야 둘 다 맞는 말이니까 저희는 둘 중 무엇이 맞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고 그때그때 필요한 쪽을 선택하면 되는 것 같아요.


좋은 작가는 ‘꼰대’이자 ‘호구’ 다시 말해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을 말하되, 그 진실이 부서지도록 내버려둘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작가님은 작가님의 진실이 부서지도록 내버려두신 경험이 있으실까요? ‘꼰대’와 ‘호구’의 비율을 어떻게 맞추고 계실지 궁금합니다.

 

어떤 특별한 경험이 있다기보다 제 진실은 그냥 항상 부서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건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늘 동의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때마다 내 의견을 관철시킬 도리도 없고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단순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어서 굉장히 어려운 주제이긴 해요. 왜냐하면 조금만 깊이 들어가도 이게 말 자체, 혹은 말을 한다는 행위가 도대체 무엇이며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라는 것이 금방 드러나거든요. 가령 이런 주제를 다뤘던 사람 중에서, 아주 거칠게 요약하면, 푸코는 뭔가를 하면 하는 거지 그에 대한 말이 대체 무슨 소용이냐는 태도고, 비트겐슈타인은 말이란 건 어차피 알아먹을 사람만 알아먹기 때문에 나는 알아먹을 사람을 대상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이고, 또 무슨 말을 알아먹는다는 건 그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도 되기 때문에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것 자체가 그렇게 큰 의미가 있지는 않다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전공자들이 들으면 기함할 수도 있겠지만 대강 제가 이해한 바로는 그래요.


어쨌든 그런 이야기에 공감하는 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성향상으로도 그렇고요. 예를 들어서 저는 어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시면 네, 네, 이렇게 대답을 잘 하는 편인데 그러고 집에 돌아와서는 ‘음……’ 한 번 하고 그냥 제가 하려던 대로 하거든요. 그리고 말씀하신 어른들도 사실 제가 어떻게 하든 별로 신경 안 쓰신단 말이에요. 그러면 그 자리에서 ‘그건 그렇지가 않습니다!’라고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거죠.


다만 진실에 대해서라면 그것을 부서지도록 내버려두자는 말이 자신의 진실을 마냥 가볍게 생각하고 그에 대해 아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사실 대부분의 세상사가 나의 생각과 무관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한 말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물론 어떤 경우에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 너무 싫거나,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 혹은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경우도 있죠. 그런데 저는 그 받아들일 수 없음이 누군가의 진실을 더 진실인 것으로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것도 부서지도록 내버려 둔 진실과 똑같은 정도로 진실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진실이라는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소중하거나 중요한 무엇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아무튼 이 주제와 관련해 생각해 볼 지점이 많고, 앞으로 제가 더 공부하고 싶은 영역이기도 해요.


지금은 어떤 새로운 준비의 시간을 보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으신 주제나 하고 싶으신 새로운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우선 내년에는 비평집 출간을 계획하고 있어요. 그다음에는 마찬가지로 오래전부터 계약되어 있던 시집을 묶어내고 싶은데 그건 아무래도 내후년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주제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말하기의 문제에 대해 조금 더 탐구해 보고 싶고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뭔가 잘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해보려고 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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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