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파 추리’와 ‘마술적 리얼리즘’의 절묘한 만남, 『올드 타운』
무동은 우리의 행위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다른 행위와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우리는 업의 고리와 연기(緣起)의 사슬에, 중력과 유전과 인과법칙에 묶여 있다는 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글 : 출판사 제공 사진 : 출판사 제공
202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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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우흠 작가. 사진 : ⓒ박민주 


엄우흠 작가의 신작 『올드 타운』은 아주 익숙하지만 낯선, 또 무척 현실적이지만 미묘하게 환상적이기도 한 ‘무동’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서로 얽히고설키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의 이야기이다. 무동의 사람들은 무동과 함께 변해가고, 또 무동을 변화시키기도 하면서 각자의 삶을 살아내는데, 그들의 삶은 결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마치 ‘무동’이라는 사슬에 모조리 묶여 있는 사람들처럼 누군가의 욕망은 누군가의 상처로, 또 누군가의 선의는 누군가의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세계를 오랫동안 만들어온 작가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올드 타운』은 최근 소설들에서 찾기 어려운 힘 있는 장편 서사라고 생각됩니다. 처음 작품 일부 연재를 시작하고 책이 나오기까지 8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올드 타운』을 쓰시는 동안 흔들리 않았던 중심이나 가장 주안점으로 생각하셨던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굳이 한 가지만 들자면 황당한 발상과 정교한 구성의 조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꿔 말하면 ‘사회파 추리’와 ‘마술적 리얼리즘’의 결합이라고나 할까. 뒤에서 제가 쓴 표현인 ‘치밀한 설계도 위에서 펼쳐지는 자유’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경수네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시공간적으로 아주 가까운 현실을 다루고 있는데 다분히 어둡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낯설게 하기’ 차원에서, 그리고 약간의 숨통을 트여주기 위해서 환상적 요소를 도입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환상적 요소와 정교한 플롯의 어울림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아귀 맞추기에 아주 많은 신경을 쓰면서 한편으로는 환상적 요소의 비중을 최소한으로 제한했습니다. 실제로 과장과 유머와 이국적인 분위기 같은 것을 제외한다면 현실에서 절대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은 이 소설에 아주 드물게 나옵니다. 나무가 정상보다 빠른 속도로 자라날 수도 있는 일이고, 아이를 열둘이나 낳을 수도 있는 일이며, 콘돔을 빨아 널어 재활용을 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유전의 굴레를 벗어난 낙타는 경수의 이상증세 경과에 대한 복선이나 은유쯤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무동’이라는 공간에 대해 말씀을 듣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한국소설에서 한 공간을 설정해 연대기적으로, 또는 여러 인물을 연작으로 이어 구성하는 방식은 일 종의 ‘전통’으로 자리 잡은 듯도 합니다. 저 멀리 박태원의 『천변풍경』이나 이청준의 『남도 사람』, 이문구의 『관촌수필』,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비롯해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그 계보가 꽤 뚜렷한 편인데요. 언급된 작품 속 공간들도 매력적이지만, 『올드 타운』의 ‘무동’은 굉장히 복잡다단한 모습을 보입니다. ‘무동’이라는 공간에서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가장 핵심적인 속성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무동은 우리의 행위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다른 행위와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우리는 업의 고리와 연기(緣起)의 사슬에, 중력과 유전과 인과법칙에 묶여 있다는 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무동은 이 오래된 고리를 끊고 새로운 업의 고리와 연기의 사슬을 작동시키는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낙타와 피아노, 엄마의 김치볶음은 이 새로운 고리의 시작이 되거나 새로운 고리를 잉태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후반부가 조금이라도 밝아 보인다면 그건 자식 세대에게서 드러나는 무동의 이런 측면 때문일 겁니다. 

 

‘작가의 말’에서 ‘무동’의 구상을 위해 서울 곳곳의 비닐하우스촌을 찾아다녔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까요?

과거 몇 년치의 기사를 읽으며 후보지를 물색하고 지도와 버스와 지하철 노선도를 살피면서 그 가운데 몇 곳을 답사했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는 없습니다. 그저 걸었습니다. 취재 같은 건 하지 않았습니다. 주민들과 가벼운 인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두리번거리며 구경도 하지 않았습니다. 더위 때문에 현관문 겸 방문이 활짝 열려 있었지만 안을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시선을 아래로 살짝 깔고 앞만 보며 마치 주민인 양 골목길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렇게 한 마을을 두세 시간씩 산책했습니다. 그러면서 상상했습니다. 그곳에서의 삶을, 그 과거를. 그게 다입니다. 

 

『올드 타운』에는 다양한 가족이 등장합니다. 여러 사업에 모두 실패하고 무동으로 흘러든 ‘경수네’, 무동 최초의 주민인 ‘로큰롤 고’와 ‘토마토 문’ 부부(그리고 열두 아들도), 낙타를 낳은 돼지를 키우는 ‘마리’와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돌아다니는 ‘민구’ 남매, 개발 이익을 노리고 무동에 들어온 ‘인호네’까지. 각각의 가족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장면이나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개별 가족을 통해 무언가를 전달하려고 했다면 단편 연작으로 썼을 겁니다. 이 소설에서는 주로 한 가족과 다른 가족의 관계에서 메시지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경수 엄마와 인호 아버지 사이에서는 아파트에 대한 욕망이, 경수 아버지와 마리 사이에서는 선의와 오해와 누명이, 경수와 수지 가족 사이에서는 ‘복수인지 모르고 하는 복수’,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 ‘원수를 은혜로 갚기’ 등의 키워드가 떠오릅니다. 스토리 자체는 열린 결말이 아니지만 해석은 다양하게 열려 있습니다. 

 

소설을 모두 읽고 나면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경수’의 부모인 ‘동환’과 ‘선화’의 만남으로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소설의 마지막 장에 배치된 그들의 사연이 앞선 여러 사건을 해명해 주기도 하는데요. 이렇게 촘촘한 설계가 필요한 작품을 쓰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즐거움도 있을까요?

이 소설은 서사의 특성상 아주 자세한 설계도가 필요했습니다. 큰 조각의 퍼즐들뿐만이 아니라 그 아래 단계의 작은 조각들, 많은 디테일까지 철저한 계산에 따라 집필 전에 미리 준비했습니다. 관점에 따라 얼핏 의식의 흐름대로, 즉흥적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이야기의 외형 이면에는 사실 철저한 계산이 깔려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엄격하고 촘촘하게 짜여진 설계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인물과 말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허락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그러니까 ‘치밀한 설계도 위에서 펼쳐지는 자유’가 바로 재즈의 자유이자 즉흥성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대여섯 개의 미스터리 플롯을 한 작품 속에 풀어내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해결하는 데 몇 년이 걸린 플롯도 있습니다. 퍼즐 하나만 어긋나면 전체가 다 무너지는 구조. 수많은 파지를 냈습니다. 물론 어려운 만큼 기쁨도 컸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이과였는데 『수학의 정석』 난제 풀이의 기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 소설 작업에서도 그때와 비슷한 종류의 기쁨을, 하지만 강도가 수백 배는 더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 가운데 작가님께서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누구인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경수 엄마입니다.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 전체를 통틀어 단 한 사람의 주인공을 꼽자면 그건 경수 엄마일 겁니다. 소설 속에서 차지하는 분량도 많습니다. 제가 감정이입을 가장 많이 한 인물입니다. 비호감이면서도 애착이 가는 인물로는 인호 아버지가 있습니다. ‘오호, 아껴 모아 누는 기쁨이란.’ 인호 아버지의 캐릭터를 이루는 이런 디테일들을 만들어내는 데 저는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차기작까지는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 등 독자분들께 인사 말씀 부탁드려요.

당분간 이렇게 긴 장편은 쓰기 힘들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요즘 보통 장편 분량인 원고지 700매가량의 작품들을 주로 쓰겠습니다. 그 정도 분량이라면 2년에 한 권씩은 출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당장 내년에 새로운 장편소설을 출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그럼 다음 작품도 기대해주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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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