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희주는 한국 문학을 애정하는 독자들에게 최근 부쩍 자주 들린 이름일 겁니다. 등단 10년 차를 앞둔 그는 그동안 장편소설, 연작소설 등 긴 호흡의 작품들로 독자들을 만나왔는데요. 최근 3년 여의 시간 동안 여러 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해 온 그가 드디어 첫 소설집 『크리미(널) 러브』로 반가운 인사를 전합니다. 그의 성실한 작품 활동을 따라온 독자들도 그가 소설집을 처음 출간한다는 사실에 흠칫 놀랐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뿔뿔이 흩어져 발표된 그의 단편소설들은 너무도 선명해 뇌리에 박히고, 얼얼한 결말로 주목을 받으며 잊힐 만하면 자꾸만 소환돼 귓가에 맴도는 작품들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소설집에 실린 여덟 편의 작품 중 「최애의 아이」가 제16회 젊은작가상, 「사과와 링고」가 제26회 이효석문학상 대상을 받기도 했고요. 그는 비교적 늦게 첫 소설집을 출간하게 된 일과 수상에 대해 “작가 생활의 한 챕터를 정리하는 기분”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세계를 쌓아 올릴 준비를 모두 마친 사람처럼 담담한 어조로요.
문단과 항간에서는 그의 소설 속 인물을 두고 ‘미친 여자’라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읽어보면 정말로 그렇습니다. 아름다움에 미쳐 있거나 사랑에 미쳐 있거나 둘 다에 미쳐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이지요. 그런데 그런 외피를 걷어내고 찬찬히 들여다보면, 처음엔 당장 징그러운 “벌레 같은 것”들을 마주하겠지만 결국 끓어 넘치는 온기로 무장 해제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요. 그러니까 작가 이희주는 미친 사랑을 통해 “서로를 받아들이는 세상”를 그려내며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사랑한다”라는 메시지를 에둘러 전하는 다정한 사람인 것이죠. 이토록 부드럽고, 말캉하고, 위험하고, 흉측한 사랑으로 위안을 받는 경험은 지난 10년간 ‘이희주 월드'에 들어가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누리고 있는 복지였을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이희주 월드 안으로 성큼 들어가보지 않으시겠어요?
이희주의 첫 소설집이자 총집편 『크리미(널) 러브』
첫 소설집 『크리미(널) 러브』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소설집 출간이 처음이라는 사실이 정말 의외이고, 그래서 더 반갑습니다. 그만큼 독자분들께서 이 책을 무척 기다리셨을 것 같고요. 출간 소감을 전해주셔요.
아시다시피 제가 거의 장편소설 위주로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독자분들께서 어떻게 읽어주실지 궁금합니다. 그동안 문예지나 웹진에 발표한 단편소설들을 따라 읽어주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대부분의 독자분들은 한 권으로 엮었을 때 읽어주신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처음이다 보니 반응이 궁금해요. 저로서는 새롭고 재밌는 작업이었거든요.
이 소설집은 2022년 가을에 발표한 작품부터 올해 7월에 발표한 작품을 망라해요. 제 경우 장편소설 작업은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쓰는 것으로 출발해 교정하는 작업까지를 한 덩어리로 묶어 생각하는데요. 단편소설들을 모은 소설집의 경우에는, 쓴 지 오래된 글을 다시 마주하고 수정하는 과정이 수반되더라고요. 덕분에 저 자신에 대해 새삼스레 알게 되는 부분이 있었고, ‘내가 이때에도 이런 작품을 쓰고 싶었구나.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구나’ 하는 마음을 돌아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감각이었던 것 같아요. 저희 편집자 선생님께서 ‘총집편’이라는 표현을 써주셨는데, 저로서도 회고하는 느낌이었고, 덕분에 작가 생활의 한 챕터를 정리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첫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 두 편에 경사가 있었습니다. 「최애의 아이」가 제16회 젊은작가상, 「사과와 링고」가 제26회 이효석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지요. 동시다발적으로 펑펑 터지는 좋은 일을 맞는 마음은 어떠하셨는지 여쭈어요.
감사함이 정말 컸어요. 앞으로 열심히 해야지, 또 어깨에 힘주지 말고 하던 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아직은 이런 일을 다루는 방법을 잘 알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때때로 전혀 예상치 못한 어딘가에서 “소설 잘 봤어요”라는 이야기를 듣는 빈도가 늘어났고, 이런 일은 참 기뻤지만요.(웃음)
말씀하신 것처럼 2016년 『환상통』으로 데뷔하신 후 긴 호흡의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하셨는데요. 단편소설을 작업하는 과정은 장편소설이나 연작소설과 어떻게 다르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에 대해 자주 하는 농담이 있어요. “장편소설은 한글 창 스크롤을 내리기가 힘들다. 단편소설은 스크롤을 짧게 내릴 수 있어 좋다.”(웃음) 무엇보다 이 둘은 미학적으로 크게 다르다고 생각해요. 단편소설은 날카롭고 간결해요. 얼만큼 버리느냐가 관건이죠. 장편소설은 분량 덕분에 비교적 욕심껏 쓸 수 있고요. 둘의 미학적 장점이 명확한데, 제가 느끼기에는 제가 아직 단편소설의 미학을 능숙하게 다루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소설집도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출간되었고… 단편소설이라기에는 중편소설 분량이라고 할 만하거든요. 제일 긴 작품은 200자 원고지 200매가 넘고, 평균적으로 100매가 넘어요. 보통은 80매에서 짧게는 50매까지도 작업하시던데, 제가 말이 좀 많나 봐요.(웃음)
등단작도 장편소설이었는데, 습작하실 때도 주로 장편의 호흡으로 작업해 오셨던 걸까요?
사실 『환상통』이 처음 쓴 소설인데 그걸로 등단을 한 거예요.
작가님, 이거 약간 천재 모멘트…
그렇진 않고요.(웃음) 학부 시절에 두 번, 당시 속해 있던 학회에서 단편소설을 쓴 적은 있어요. 그땐 소설을 쓴다는 자각이 있었다기보단 '시키는 거 한다'는 인식이었고요. 1학년은 필수적으로 작품 하나는 써서 제출해야 했거든요. 어쨌든 그때 쓴 작품이 눈에 띄어 교수님의 소개로 시 합평팀에 들어갔어요. 그렇게 학부 4학년 때 『문학과사회』 최종심에 올랐고요. 그땐 뭘 잘 몰라서 '어? 나 시인 되나? 근데 소설 쓰고 싶은데?' 해서 휴학하고 쓴 『환상통』으로 등단한 거예요. 그래서 지금도 뭘 알면서 쓴다는 생각은 없어요. 종종 글쓰기 강의 요청이나 문의가 들어오는데요. 무척 감사하지만 아직은 제가 더 배워야 할 때라고 봅니다.
학회에 가입한 건 결과적으로 아주 잘한 선택이 되었네요.
맞아요. 늘 소설 쓰고 싶은 마음은 있었는데, 결국 쓰는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나의 적이자 공범자 독자 여러분께” 바치는 사랑 그 이상의 이야기
『크리미(널) 러브』라는 제목은 수록작과는 무관합니다. 어떻게 지어지게 된 이름인가요?
편집자 선생님의 의견이었습니다.(웃음) 이번 소설집을 작업하면서 저희 둘 다 동의했던 것은 이 책만을 위한 새로운 타이틀을 짓자는 것이었어요. 대개 소설집이 표제작 타이틀을 가지고 가는 데 반해서요. 이런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머릿속으론 제목 안이 잘 떠오르지 않았는데요. 편집자 선생님께서 “크리미(널) 러브”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 이상의 제목이 없겠다 싶었어요. 출간된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 봐도 ‘이 제목 참 괜찮네’ 해요.
작가님은 이 책을 어떻게 부르세요?
“크리미, 널, 러브”라고 불러요. 괄호까지 다 살려 부르기엔 길어서.(웃음)
그동안 응해오신 인터뷰를 보면, 작가님께서 책을 만드는 기획력이 있으시더라고요. 제목에 대한 확고한 생각도 있으시고, 표지 이미지에 대한 아이디어도 많으시고요. 그래서 직접 지으셨으려나 싶었어요.
제가 의견을 낼 때도 많이 있는데, 이번 작업에서는 정말 편집자 선생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좀 더 많은 주목을 받게 된 시점에, 수많은 스테디셀러를 만들어낸 편집자 선생님의 안목을 믿기로 한 거죠. 제 고집을 부린 순간도 더러 있었지만(웃음) 둘 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지금의 대화에서도 그렇고, 이번 소설집은 두 분의 신뢰나 합이 단단하다고 느껴지는 결과물 같아요. 그 증표가 바로 이 코멘터리 북이에요. 이 부록을 읽으면서 두 분의 우정이 엿보이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편집자님께서 작가님을 아이돌로 대하신다는 느낌도 들었답니다. 마치 아이돌 팬의 마음으로 소설을 쓰는 작가님께 빙의해서 쓴 글 같았어요. 최애를 숭배하는 글 같았달까요.
그래서 살짝 쑥스러워하면서 이 부록을 읽었답니다. 제가 빠순이 출신이라서 남을 좋아하는 게 마음이 편한데 말이죠.
나를 숭앙하는 마음을 받는 기분은 어떠셨어요?
‘그거 좀 민망하다. 고마운 마음과는 별개로 살짝 민망하다?’(웃음) 하지만 의외로(?) 편집자 선생님께서는 아이돌 세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는 분이고, 덕분에 이 책의 밸런스를 잘 맞출 수 있었어요. 만일 둘 다 이 세계를 향하고 있다면, 너무 좁은 범위의 독자분들에게만 어필할 수 있을 것이었기에 작업하는 내내 편집자 선생님과 이와 관련한 대화를 많이 나누기도 했어요.
종종 제 소설에 대해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얘기를 듣곤 하거든요. 저 역시 제 작품이 한국 문단 안에서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왜 그런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어요. 그렇기에 이번 작품집으로 제 작품을 처음 접하실 분들께 어떤 식으로 소개하면 좋을까 고민이 깊었고요. 띠지에 "새로운 낙원"이라는 표현이 있는데요. 이런 소개가 대개는 긍정적으로 활용되지만, 그 반대가 될 때도 있어요. 너무 많은 새로움에 노출되어 피곤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새롭다’는 단어에 호기심을 느낄 독자 분들이 분명히 계시기에 그분들께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더불어 이 작품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는 선에서 잘 엮고 소개하려고 했어요. 그 일이 저희 두 사람의 미션이었던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작가님께서 장소로 도착하시기 전에 담당 편집자님께서 “이 책으로 작가님의 작품 세계가 그 외연을 좀 넓힐 수 있게 된 것 같다”라고 하셨거든요.
자기 작업하는 사람들이 제일 하고 싶은 일은 아마도 나 자신을 잃지 않은 채로 내 작품을 설득력 있게 알리는 데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첫 소설집 작업이 제게 참 중요했던 것 같고요. 아무래도 독자분들께서 읽기 편해하시는 것은 장편소설보다는 단편집이거든요.
작가님의 대표작이라면, 좋은 반응으로 해외에 판권이 팔려 나간 『성소년』과 논란의 작품 「최애의 아이」를 꼽을 수 있을 텐데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되었습니다. 표제작을 「최애의 아이」로 삼았다면, 더 잘 팔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
우선 「최애의 아이」라는 동명의 만화가 있고요. 이 소설집에서 제가 따로 생각한 표제작이 없기도 했어요. 물론 말씀해 주신 것처럼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가장 잘 알려졌고, 많이 좋아해 주셨던 작품이니까요. 다만 그 기로에서도 저는 다시 『크리미(널) 러브』이라는 제목을 골랐을 것 같아요. (눈앞의 성과를 생각해 한 선택에) 다 잡아먹히는 책이 되어버릴 수도 있었을 것 같거든요.
표지의 일러스트가 무척 인상적입니다. 아름답고 관능적인 여성의 옆모습이에요. 찾아보니 일본 작가 라수쿠(RASUKU)님의 「떨어지는 국화」라는 작품이더라고요. 이 작품은 누구의 발견이었나요?
표지 이미지는 디자이너분께서 찾아주셨어요. 세 가지 후보가 있었는데, 지금의 표지를 고른 건 저이고요. 표지 속 여성의 귀걸이가 선향 불꽃놀이처럼 보이는 게 좋았거든요. 선향 불꽃놀이는 일본식 불꽃놀이로 알려져 있는데, 실처럼 생긴 폭죽 끝에 불을 붙이면 불꽃이 거꾸로 타올라오는 모습을 띠어요. 꼭 그 모습 같아서 좋았고, 한편으로는 눈물 방울 같아서 또 맘에 들었어요. 소설의 내용들이 강한 편이니 이를 상쇄할 수 있는 차분한 톤이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는데, 창백한 그림 톤이 그에 부합했어요.
또 제목 디자인이 얹어지면서 작품의 전체 이미지가 절묘하게 분절돼요. 표지에는 이미지가 1:1 비율에 가깝게 담겨 있는데, 4:5 비율의 풀 컷을 보면 그 그림의 느낌이 아주 다르더라고요.
그렇죠. 훨씬 에로틱한 그림이에요. 디자인팀에서 알아서 잘 만들어주신 것 같아요.
띠지 문구도 정말 강렬하고요. “새로운 낙원으로 데려다줄게.” 이 박력 터지는 문장은 소설가 이희주의 말인가요? 작품 속 주인공들의 말인가요?
이 역시도 편집자 선생님의 말이에요. 저의 박력은 책 안에 다 있기 때문에.(웃음)
아름다움에 눈이 먼 어리석음과 벌레 같은 사랑의 이면 속으로
「0302♡」에 대해 “좀 안 써보던 방향으로 써보았는데”라고 말씀하셨어요. 더불어 “귀여운(?) 이야기”라는 설명도 덧붙여주셨고요. 어떤 면에서 이렇게 언급하셨는지 여쭤보고 싶었어요.
그동안의 제 소설들과는 달리 파괴적으로 끝내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고등학생들이 나오는 소설이다 보니, 제가 나이 어린 친구들에게는 마음이 무너지는 면이 있어서…
읽는 내내 사랑스러웠고 다 읽고 나서는 좀 슬펐어요. 유리의 짝으로 우미가 아닌 희주가 등장하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작가님 성함이어서 더욱 그러했고요. 이희주의 소설을 안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작품 덕분에 쉽게 이 세계로 진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리’라는 친구는 제가 반복해서 특정 유형의 캐릭터를 쓸 때 불러들이는 인물이에요. 그의 짝으로는 ‘우미’가 있고요. 읽어보시면 아실 텐데, 이 작품에 우미가 아니라 ‘희주'가 등장하는 이유가 있어요. 여기서 희주가 유리를 자기만의 아름다움의 전당에 올리기 위해 어떤 일을 한 것처럼, 저도 그런 마음으로 제 소설 속 인물들을 대하거든요. 툭하면 죽이면서 무슨 소리냐 싶으실 수도 있겠지만.(웃음) 인물들이 세상이 정해놓은 한계선을 넘어 자기 자신과 가장 사랑하는 것까지 부숴버리는 걸 그림으로써 그들을 평범한 인간 이상으로 만드는 게 제 작업이거든요. 인물들을 영생의 전당에 올린다는 마음으로 임합니다.
역시 실제 작가님이 반영된 인물이었군요.
처음엔 우미로 시작한 이야기였어요.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쓰고 있는데, 쓸수록 결말의 방향성이 정해지면서 이 인물은 희주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개 이런 식으로 작가 이름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을 때면 금방 자연스레 작가와 인물이 분리가 되거든요? 이름이 같더라도 캐릭터로 받아들이게 되는 거죠. 그런데 마지막에 “너를 알아주지 않는 세계 따위는 버리고 새것을 만들어 너에게 주기 위해서 밖으로 나와 소설을 쓰게 되었거든. 영원히 너의 바깥에.”(62쪽)라는 대목을 읽으시면 독자분들께서 약간 반전처럼 인물과 작가를 합치시키며 재미를 느껴주실 것 같았어요.
‘유리’라는 그 이름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어요. 중성적이라기에는 보다 여성적 이름에 가까운 이름인데요. 인물의 성별을 모호하게 읽도록 고안하신 이름처럼 느껴졌어요.
작품 안에서 남성 일반의 리얼리즘을 부각해 그 남성성과 대면하려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그쪽은 아니에요. 제 작품에서 중요한 인물은 사실 여자거든요. 이 경우는 우미라는 여자애가 너무 사랑하는 유리라는 남자애가 있다. ‘이 아름다운 남자애를 여자애는 어떻게 사랑하는가.’ ‘그를 사랑할 때 우미라는 여자애의 내면에는 어떤 파동이 일어나나.’ 그게 중요한 거고요. 그래서 제 버전의 ‘백마 탄 왕자님’ 같은 캐릭터를 만든 거예요. 그런 남자애의 이름이 투박해선 맛이 안 살겠죠.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사실 러시아에서 유리라는 이름은 되게 보편적인 남자 이름이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작중 인물은 시공간에 따라 그 맥락이 다르게 읽힐 것이고, 어쨌든 제 세계에서 유리는 충분히 남자 이름이 됩니다.
아주 특별하고, 제 눈에도 콩깍지가 씐 건지 이름만 들어도 아름다운 남자가 연상돼요.
웬만하면 잘 쓰이는 이름 말고 안 쓰이는 이름을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최애의 아이」는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으로, ‘올해의 문제 소설’로 선정되었고, 제26회 이효석문학상 본선에도 올랐습니다. 앞서 언급하긴 했지만, 읽는 입장에서는 ‘이 작품이 표제작이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작품이었어요.
주목도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표제작이라는 의견에 공감해요. 만일 신인이었다면, 아마도 이 작품을 표제작으로 삼았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제가 만들어온 시간이라는 게 있으니 그런 결정을 하고 싶진 않았어요. 「최애의 아이」로 저를 알게 된 독자분들이 많으신 것도 알지만, 그동안 저를 따라와 주신 독자분들이 계시거든요. 제 작품 세계를 지지해 온 분들이고, 저는 그분들에게 어떤 의미로는 의지를 하면서 작업을 해온 것이기도 해요. 그러니 이 작품으로 주목받았다고 해도 ‘난 다른 걸로도 승부를 볼 수 있는 작가다. 다른 작품들도 자신 있다’라는 의지 표명을 하고 싶었어요.
『크리미(널) 러브』를 읽기 전에 개정판으로 출간된 『사랑의 세계』를 재밌게 읽었습니다. 제가 여전히 기억하는 문장은 「탐정 이야기」의 ‘나’가 전하는 자기소개였는데요. “한 번의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질까 봐 무서워했죠.”(9쪽) 아이돌과 팬의 이야기를 그려오신 작가님께 이 말의 감정은 좀 더 구체적일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아이돌에 더 가까운 말이 아닐까 싶기도 했고, 그렇기에 이런 생각을 하는 인물은 어떤 자기 인식을 지녔을지 궁금해졌고요.
수용자 해석의 힘이 있는 질문이네요. 이 작품은 아이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기도 하고, 심지어 최애가 없던 공백의 시기에 썼거든요.(웃음) 그때 저는 20대였는데, 실제로 제가 자주 하던 생각이었어요. 겁이 나서 쉽사리 무언가 시도하지 못했던 시기였고요. 말씀하신 문제의식에 대해 동의하기도 해요. 대중에 노출된 누군가를 쥐 잡듯 하는 문화를 보며 ‘도가 지나치잖아’ 하는 말이 절로 나오고요.
아이돌 산업에서 특히 그런 문제들이 자주 있기도 하고, 「0302♡」에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와 지레짐작하게 되었습니다.
시대 분위기가 자연히 반영된 것 같아요. 인간 사회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소중한 감정 중 하나가 관대함인데, 그걸 잊고 산다는 생각을 부쩍 많이 하거든요. 물론 웹 환경의 특징 같은 것도 있지만, 연예인이나 아이돌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그러잖아요. 어떤 문제가 있다고 하면 우르르 달려들어서 물어뜯고요. 이런 분노의 방향성은 무엇일까 싶어요. 우리 모두 인간이기에 살면서 실수를 저지르고, 어떻게 보면 폐를 끼치면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라고도 할 수 있잖아요.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됐지. 어쩌다 소중한 삶의 진리를 잃어버렸지’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작가님 소설의 세계에는 아름다움과 그렇지 않은 세계가 이분법적으로 명확하게 나뉘어 등장합니다. 아름답지 못한 인물은 아름다움을 추앙하고 쪽쪽 빨아먹고 싶어하지만, 정작 스스로 아름다워지려는 욕망은 없고요. 작가님께서 열망하시는 사랑의 실체가 아름다움 그 자체인지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아름다움과 사랑은 가깝게 붙어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떨어져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느끼기에 아름다움과 사랑이라는 것은, 너무 예쁜 바위가 있는데 바위의 뒷면을 들추면 그 밑에 벌레들 같은 것이 있잖아요. 예쁜 바위 자체가 아름다움이라면, 바위에 붙어 있는 벌레 같은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아름다움과 붙어 있으면서 아름답지만은 않죠. 동시에 사랑하게 되면 아름다움을 발명하게 되는 것도 같아요.
사랑의 계기가 아름다움이 아니라요?
어느 순간을 넘어서면 무엇이 앞서고 뒤서는지는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자주 쓰는 인물의 이름이 유리잖아요. 너무도 아름다운 유리로부터 사랑이 시작되는데, 그 사랑은 사실 유리를 깨는 과정이기도 해요. 유리를 박살 내고 금을 내고 싶어 하는 마음에 혼돈을 느끼면서 사랑의 무서운 얼굴과도 조우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그 파괴의 과정에서 또 아름다움을 느끼게도 되고요. 전부 엉망진창으로 붙어 있어요.
그러고 보면 「사과와 링고」의 사라도 그래요. 사라는 동생 사야에게 갉아 먹히는 삶을 살고 있고, 이에 대해 늘 분통을 터뜨리고 있지만 아름다운 사야를 바라보는 그 마음은 사랑 같거든요. 작가님께서 설명하시는 그 사랑이요.
동생에 대한 그 마음과 감정은 너무 복잡한 거예요. 이번 소설집을 작업하면서 지난 작가 생활의 한 챕터를 정리하는 느낌이 든다고 했는데, 이다음 챕터에서는 한 사람의 초점화자가 아닌, 작품 내 등장하는 모두의 복잡한 마음을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속 우미가 “읽는 작업은 쓰는 작업과는 달라서 읽을 땐 무조건 행복한 게 좋지만 쓸 땐 다 죽이고 싶었다”(350쪽)라는 말을 하는 대목을 읽으며, 「최애의 아이」 우미와 「사과와 링고」 사라의 마지막 행동이 다시금 떠올랐어요. 이 소설집의 제목이 이렇게 탄생했으리라 싶기도 했고요. 동시에 절묘하게 우미와 사라의 행동이 그들 각자의 해피엔딩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마지막 장면이 있기 때문에 두 작품이 소설로서 기능한다고 믿어요. 「최애의 아이」를 예로 들면, ‘우미가 당한 그 일이 곧 국가적인 대규모 사기였다’라고 끝난다면, 그건 전혀 작품으로서 성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우미가 단순히 피해자 자리에 머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논쟁적인 지점까지 나아가는 이유가 있죠. 「사과와 링고」도 마찬가지고요. 맨날 돈만 빌려가는 철없는 동생에게 등골이 휘는 사라의 이야기로만 그친다면, 그저 그런 커뮤니티 에피소드가 될 거예요. 그렇기에 작품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라의 분출이나 파괴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두 작품 모두 엔딩을 먼저 생각하고 집필하셨나요?
네. 두 작품 모두 인물들을 보호한다는 측면보다는 그 안전한 선 밖으로 나아간 한 발짝, 그 의미에 집중하며 써 나갔어요.
다른 차원의 문이 열리는 ‘이희주 월드’
최근 개정판으로 새롭게 출간된 『성소년』이 미국 하퍼 콜린스, 영국 팬 맥밀런에 각각 억 대 이상의 선인세를 받고 판매되었다는 소식이 더 널리 알려져야 한다고 믿으며, 이 자리에서 한 번 더 언급해 봅니다. 그리고 정말 축하드려요. 차기작 『성소녀』의 우선 검토권 요청 소식도 더불어 알려져 있는데요. 현재 어떻게 진행 중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성소년』의 경우, 영국에는 내년 2월, 미국에는 4월에 간행된다고 해요. 거기는 우리와는 시스템이 달라서 아마존에 데이터가 조금 빨리 올라간대요. 그래서 검색하면 벌써 정보를 찾을 수 있어요. 아마 올해 연말부터 언론에 증정본이나 가제본을 배포해 홍보하는 과정을 가질 것 같고요. 『성소녀』의 경우는 완고하면 교정하는 과정에서 검토가 진행될 것 같아요.
『성소녀』가 올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어요.
올해 출간이 목표였는데, 『크리미(널) 러브』 작업을 했어요.(웃음) 내년 출간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더불어 『성소년』의 시간과 장소는 공유하지만,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이야기도 함께요. 『성소녀』에 대한 간략한 예고도 부탁드려 봅니다.
장소만 공유합니다. 언급은 여기까지!(웃음)
작가님께서 다수의 인터뷰를 통해 “마흔에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녀의 연애소설을 쓰겠다”라고 밝히곤 하셨어요. 이와 관련해 떠올랐던 이야기가 있었는데, 『릿터』 48호의 인터뷰예요. 여기서 재밌게 읽었던 대목은 작가님께서 한 블로거에게 마음을 들켰다고 하신 부분이었는데요.(“이희주 작가는 연애에는 관심이 없고, 사랑만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작가님께서 어떤 연애소설을 쓰실지 막연한 상상도,가늠도 되지 않아요.
‘무조건 쓰겠다’라고만 정해둔 다짐이고요. 제 소설이기 때문에 남자가 어립니다.
비교적 동등한 권력을 쥐게 될 남녀 관계 이야기를 어떻게 그려가실지 정말 궁금해요.
그러게요. 저도 궁금한데요... (웃음) 아마 지지고 볶는 내용을 쓰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연애 얘기는 그래야만 성립되는 지점이 있어서요
이제 진짜로 ‘이희주 월드’의 두 번째 챕터로 향해갑니다. 두 번째 챕터는 어떻게 보면 전성기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 자리에서 작가님께서 그려나가고 싶으신 것은 어떤 것일까요?
그때그때 제게 닥쳐온 문제들에 대해서 쓸 것 같아요. 기존에 했던 작업들은 훨씬 통제하려는 욕심과 또 완벽한 세계를 세우려는 의지가 컸는데요. 최근 협업할 기회가 늘어나며 나의 통제를 벗어나는 일을 맞닥뜨리는 일이 종종 있었거든요. 그게 나쁠 때도, 좋을 때도 있었는데요. 어쨌든 새롭고 재밌던 것만은 사실이라, 여기서 얻은 어떤 감각 같은 게 작품에도 반영될 것 같아요. 쓰는 사람은 한 사람이니.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이희주 월드를 맞이할 기존 독자분들께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꼭 전하고 싶은 말은, 제가 여러분들을 사랑한다는 거예요.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그런 맥락이 아니라요, 물론 안 감사한 건 아닌데(웃음) 뭐랄까, 설명할 필요 없이 다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곧 여러분이고, 여러분이 곧 저라는 걸요. 우리의 수치가 우리를 초과하는 순간이 있더라도 우리 자신으로서 살자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어영부영 끌어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엉엉 울지도, 웃지 못해도, 그래도 살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곁에 있다는 걸 기억해 주셨으면 해요.
소설을 쓸 때 가장 우선하는 건 작품 그 자체예요. 그럼에도 굳이 제 소설에서 메시지 같은 걸 읽어내자면 ‘누군가 어떤 모습이든 그걸 서로 받아들이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인데요. 갑자기 사회 운동가 같은 말을 해서 너무 뜬금없죠?(웃음) 그런데 저는 소설 속에서 항상 그런 세계를 만들고 싶어요. 그러니 이상한 당신들이 와서 쉴 수 있는 세계에 언제든 편하게 방문해 주세요. 저는 늘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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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은영
쓰고 엮고 매만집니다. 더불어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