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민정 시인 “오롯이 시인으로만 한 권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꿈”
김혜순 시인의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로 문을 연 ‘난다시편’.
글: 신연선 사진: 표기식
2025.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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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중앙시선, 문학동네시인선은 모두 김민정 시인의 손을 거친 시집 시리즈입니다. “시에 미친” 김민정 시인은 출판사 난다를 운영하며 막연하게 ‘내가 시집을 한다면’ 상상하곤 했다고 해요. 그리고 2025년, 김혜순 시인의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를 1번으로 한 ‘난다시편’을 선보였습니다. 첫 번째 시집을 손에 쥔 기분을 묻자 시인은 “여한이 없다”고 답했는데요. 종이의 종류, 글꼴 등을 선택하는 것부터 검은 칠판 위에 흰 글자로 제목을 눈에 띄게 표현한 디자인, 시인의 시와 인사와 편지만으로 시집 한 권을 채운 구성까지 어느 하나 깊이 고민하지 않은 것이 없었던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저는 친구들의 귀를 제법 잘 파주는 친구였어요. 진짜로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 교과서 쌓아 머리 대고는 제게 귀를 대고 자곤 했어요. 제가 앞으로 어떤 편집자로 남고 싶은가 하면 그거요. 귀 잘 파주는 에디터요!”라는 김민정 시인인데요. 덕분에 독자는 다양한 시인의 세계에 열린 귀로 접속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시인선을 20년 만에 새로 만들면서 무엇을 바라는지 생각해 보면요. 한국 시인들처럼 다양한 세계를 갖고 있는 나라가 없으니까요. 이 지극히 다른 사람들을 많이 소개하고 싶었던 욕심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난다시편의 아름다움은 ‘조화롭지 않은’이에요. 조각보 같은 건데요. 조화롭지 않고, 울퉁불퉁해서 어울릴까 싶지만 모이면 조화로운 것이죠. 자주 하는 표현이지만 난다시편 방향성의 가장 어울리는 예는 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파트나 빌딩이 아니라 다보탑, 석가탑 같은 것이라고요. 어느 한쪽이 조금 기울기도 하고, 마모된 부분이 저마다 다르잖아요. 난다시편이 그런 탑이 되길 바라요. 물론 시집의 탑(top)이 되고 싶고요.(웃음)” 

 



겸손하지만 고집을 키우자

 

난다시편’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시인선을 잘 만들 분이 김민정 시인님 아닌가 생각했어요. 오랫동안 시집 시리즈를 마음속에 품어왔을 것 같은데요. 어떤가요? 

이별을 잘 못하는 사람이에요. 문학동네시인선과의 끈을 놓는 것도 잘 안 됐었어요. 사실은 지금도 그곳에서 책을 낸 사람들과 인연이 있어서 다 내 일이고, 내 걱정이고, 내 숙제예요. 하지만 현실적인 이유들로 2023년 여름에 선언을 했던 거죠. 임유영 시집 『오믈렛』까지 하고 안 하겠다고요. 그래야 새로운 걸 하겠더라고요. 모두에게 공표한 다음에야 죄책감이 없이 내 것을 해도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죄책감이요? 

아무도 그러라는 사람이 없는데 그냥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그런데 내가 있을 자리와 빠져야 될 자리가 반드시 있잖아요. 후배들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고요. 그 모든 상황이 마련되었던 시기가 그때였어요. 후배들이 아주 든든하고, 이제는 이 친구들이 잘 이끌어갈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요. 임유영 시인이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데뷔했기 때문에, 한여진 시인과 임유영 시인의 시집까지 하면 내 일은 다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2023년 <문화일보>에 큰 인터뷰를 하면서 일종의 선언을 한 것이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난다의 시집 시리즈를 생각하셨던 거군요. 

그렇지 않아요, 그냥 막연했어요. 언젠가 시집을 하게 되면 이런 것을 해봐야지, 하면서 수집 정도만 했어요. 수집이라는 것은 책을 많이 샀다는 건데요. 디자인책, 패션 잡지, 디자이너의 회고록처럼 가장 먼 듯 보이는 책들을 많이 사봤어요. 그럼에도 구체적으로 어떤 시집을 하겠다는 고민이 있지는 않았어요. 

 

다만 난다시편에 대한 큰 그림을 오래오래 전부터 머릿속으로는 막연하게나마 계속 생각해왔어요. 벽에 써놨던 건 ‘문방사우’ 네 글자, 벽에 붙여놨던 사진은 큰 벼루였어요. 어릴 때 서예학원 다닐 때 글씨 쓰는 건 재미없어도 도구 챙기는 데는 엄청 탐이 있었거든요. 오래 그걸 보니까 검정색과 흰색, 겸손하지만 고집을 키우자 했고 끝인가 하는데 계속 시작인 거니 용기를 가지자 했어요. 그 뼈와 살을 기본으로 하나의 시집마다 시인의 스토리를 독자들에게 각인시키고 싶었어요. 편집자가 시인의 시집 디테일을 챙길 때 독자들은 시인의 시 제각각의 스토리를 가질 수 있다 싶었지요. 어차피 ‘완전한’ ‘완벽한’은 없잖아요. 거기가 어딘지 모르지만 함께 가보는 거, 그 동행으로서의 과정의 귀함이죠. 

 

아주 서서히 준비를 하셨네요. 얼마나 고민이 많았는지 짐작하게 되는 말씀이에요.  

시인선을 꾸준히 하면서 배웠던 것 중 하나는 충분히 살을 붙여봤다는 거예요. 내 욕심껏, 누가 알아보지 못할까봐 했던 것을 다 해봤으니 이제 지우겠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문학동네시인선을 할 때 정말 미쳐서 했거든요. 온몸을 다 던져서 했죠. 잠도 안 자고요. 그 경험이 없었으면 난다시편도 못했을 텐데요. 본격적으로 해야겠다 생각했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기본기였어요. 시집 시리즈를 세 번이나 런칭해봤다, 그렇다면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을 네 번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생각하니 뼈와 살만 남더라고요. 뒤로 걸었던 거예요. 앞을 보면서 뒤로 걷는 일이 진짜 무섭잖아요. 엄청 조심하게 되고요. 그러니까 거듭 시란 무엇이냐, 시집이란 무엇이냐, 시인은 어때야 하느냐 등 기본을 생각했고요. 가다 보니까 뼈와 살만 남았어요. 시를 써보라고 할 때 주어졌던 것이 백지와 까만색 연필이니까 딱 그 두 개에서 시작하자고요. 

 

기본의 기본으로 돌아가기, 그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과제잖아요. 

그러면서도 디자이너도 없었고, 시인도 없었어요. 저 혼자밖에 없었거든요. 어쨌든 누구나 하는 일이다, 나만 요란스럽게 잘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런데 내가 미쳐서 할 수 있는 일이고 종국에 많은 사람들과 새로운 역사를 또 만들 수 있는 일이다,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근원적으로, 원형으로 가자는 생각이었죠. 그래서 많은 디자이너 분을 고민했어요. 제가 김마리 디자이너나 수류산방 방장님 할 것 없이 만나는 디자이너 분들께 나중에 시집 하게 되면 블랙과 화이트로만 하고 싶다고 말했거든요. 다들 어려운 일이라고 하셨어요. 거기가 가장 닿기 어려운 지점이니까요. 근데 그게 꿈이었어요. 정면 승부인 셈이죠. 

 


 


시가 그렇게 좋았어요 

 

시만큼이나 시를 담는 그릇도 아주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그렇다면 최종적으로 완성된 지금 모습에서 독자가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요소가 많을 것 같아요. 

일단 출판사의 이름이 중요하지 않았어요. 문예중앙에서 시인선을 런칭했을 때는 시인 개개인의 개성을 배웠고요. 문학동네에서 시인선 런칭할 때는 새로운 시의 세상이 열려야 되기 때문에 ‘시인선’이라는 이름이 너무나 중요했는데요. 이번에는 난다라는 이름이 중요하지 않았죠. 시인과 제목으로 승부를 보고 싶었어요. 검은 칠판 위에 제목을 보여주는 것이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고민했을 때, 저는 제목 짓는 거라고 생각했고요. 어떤 것이 오든 읽게 만들고 싶었거든요. 가독이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난다시편이라는 시리즈 이름은 아주 작게 넣었어요. 그 이름은 시인과 제목 다음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시인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대해 들으니 자연스럽게 난다의 ‘시의적절’ 시리즈를 함께 생각하게도 돼요. 어쩌면 이미 난다시편을 위한 밭은 꾸준히 가꾸고 계셨던 듯도 해요. 

문학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시집도 하고 싶고, 소설도 하고 싶고, 에세이도 당연히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죠. 그러나 기본적으로 문학동네시인선에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애초에 시집을 하려는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어요. 또 문학동네가 워낙 소설 강국이기 때문에 내고 싶은 소설이 있어도 안 하려고 했죠. 그렇지만 시집을 만들면서 에세이를 내면 좋겠다 싶은 시인들이 있었어요. 예를 들면 박준 시인과 고명재 시인 같은 경우 시집을 만들면서 약간의 참고서가 되는 산문이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다음 시집을 낼 때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던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시 에세이가 쌓였고요. 

 

한편으로는 시집에 대한 꿈이 있는데 몸풀기를 안 하고 바로 시집으로 진입하기에는 내가 나를 못 믿었어요. 내 몸의 근육이라든지 내 회사의 분위기 안에서 어떤 시들이 어떻게 자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요. 난다의 독자들께 메아리처럼 울리도록, ‘얘 자꾸 무슨 소리야’ 생각하게 하도록 잔상처럼 남겨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사실 다들 시 읽기 어려워하잖아요. 그런 와중에 ‘시의적절’은 저만의 전초 기지가 된 것 같긴 해요. 어떤 페이지에는 완성된 시가 있고, 어떤 건 메모이고, 어떤 건 인터뷰인데 자세히 보면 한 줄, 두 줄씩 들어앉아 있는 것들이 있잖아요. 일단 호두알은 갖다 놓는 거죠. 저걸 깨면 호두가 있는데, 싶도록 말이에요. 

 

독자는 물론이고요. 시인들에게도 자리를 마련해 주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시에 다가갈 수 있게 사람들을 모으고, 시인들한테도 계속 시를 쓸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주는 작업을 하신 건데요. 시인님은 왜 이렇게나 시를 아끼는 걸까, 궁금해져요.  

시를 통해서 세상을 사랑하게 되는 법을 배웠어요. 시를 읽기 전까지는 비관적이고, 불신이 컸고, 개인적 성향도 있겠지만 살고 싶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너무 삶이 뻔했기 때문에요. 스물다섯이면 남자 만나고, 서른 안에 결혼해야 되고, 직업이 있어야 되고, 하는 식으로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했고 다른 구멍을 엿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너무나 죽고 싶어 했어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 안경이 깨지면 내 세상이 그냥 깨지는 거였는데요. 스무 살부터 만나게 된 시집이 나한테 너무나 많은 안경을 줬어요. 그래서 어떤 안경이 깨져도 다른 것으로 볼 수 있고, 모색이 됐어요. 모색이 될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이 내일 눈을 뜨고 싶게 만들었어요. 더구나 목소리가 이렇게나 다양하다는 것이 좋았죠. 

 

최소한 거기는 나쁘게 살라는 법은 없잖아요. 그리고 뭔가 하나씩 세상을 관찰하는 법, 발견하는 법을 보여줘요. 과학만 관찰이라는 단어를 써야 하는 줄 알았는데 시를 통해서도 관찰이 가능했던 거예요. 시인은 이런 것도 발견을 하네, 하면서요. 그러니까 바빴어요. 나도 저런 걸 찾고 싶어서요. 그래서 저는 시가 그렇게 좋았어요. 


 


시는 발이 없잖아요 

 

요즘 시가 많이 읽히고 있는 것도 어쩌면 지금의 시 독자들이 시인님께서 처음에 느꼈던 발견들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오랜 시간 시를 만들고, 다양한 시 세계를 봐오신 입장에서 어떤 인상을 갖고 계세요? 

제가 처음 시에 미쳐서 읽기 시작했던 것이 1995년쯤이니까 삼십 년이 됐는데요. 그때도 사람들이 시를 엄청 봤어요. 당시 시집들의 쇄를 보면 놀라워요. 그런데 그때는 비교적 편협한 독서를 했을 수 있어요. 창비는 이런 시, 문지는 저런 시, 민음사는 이런 시, 세계사는 저런 시, 하는 게 있었거든요. 그때 저는 운동권 동아리에 선배들이 읽으라는 것만 읽어야 했어요. 

 

지금은 그런 시절이 아니죠. 출판사도 많고, 시인들이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거나 메시지를 강요하지도 않잖아요. 다양해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옛날에는 소금과 설탕만 있었다면 지금은 깨소금도 있고 후추도 있는 식으로 디테일해졌어요. 저는 이 개성의 시대가 더 재미있고 흥미로워요. 나의 성향은 저기 있는데 시대가 원하는 시들이 이쪽에 있다고 나를 자꾸 이쪽으로 끌고 가는 게 너무나 싫었거든요. 중요한 건 나한테 맞는 시인을 내가 찾는 거고요. 지금 독자분들이 그걸 되게 잘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어요. 

 

새로운 시집 시리즈가 여러 출판사에서 나오고, 나올 예정인데요. 말씀하신 다양성이라는 차원에서 이러한 시도들이 긍정적인 신호처럼 보여요. 동시에 독자가 믿고 읽을 수 있는 시집에 대한 욕구가 더 커질 것도 같고요. 시인님은 어떤 생각을 갖고 계세요? 

그 책임감 때문에 오래 고민했을 거예요. 시집 편집자로서 그리는 지도가 없었다면 판을 안 벌렸을 텐데요. 한편 제게는 뭔가 열고 싶은 부분도 있던 것 같아요. 보통 시집에 해설이나 발문이 붙잖아요. 제 꿈 중 하나는 오롯이 시인으로만 한 권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었고요. 당연히 해설이나 발문이 길잡이가 되어주고, 그건 너무나 중요하지만 독자 스스로 시집을 개척해서 갖게 될 다양한 해석의 건강함을 더 믿고 싶었던 마음도 있어요. 그러니까 시집이라는 바다에 던져졌을 때 오징어도 뜯어 먹고, 문어도 참치도 뜯어 먹으면서 ‘와, 맛이 다 달라’ 하고 느끼면 좋겠는데 해설에서 이것은 이렇다고 말하면 그 안에서 읽게 되는, 약간의 좁음도 없지 않아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책임을 갖고 있는 시집 편집자로서 독자에게 이것까지 주고 싶었던 마음이었어요. 

 

또 하나 중요했던 것 중 하나가 영어로 된 하나의 시였어요. 사실 영어로 번역된 시에 대한 갈증을 몰랐는데요. 외국에 있는 에디터들을 한국에서 만나면 꼭 물어보더라고요. 시집 추천해달라고요. 한국 시인들을 너무 궁금해하는 거죠. 그럴 때마다 답답했어요. 추천할 시인이 너무 많은데 보여줄 수가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시인과 이야기해서 시 한 편으로 시집의 뉘앙스를 느끼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가이드가 되겠다 생각했어요. 갑자기 어떤 시인을 다 알기는 어려우니까 시 하나로도 느낌을 빨리 알았으면 좋겠고, 그렇게 메신저가 되어줄 수 있겠다고요. 

 

난다시편의 캐치 프라이즈가 ‘시가 난다’잖아요. 영어 번역시가 수록된 것을 보자마자 시가 더 멀리 날아가도록 날개를 만들어주었다는 생각을 했어요. 

재미있는 것이 캐치 프레이즈는 책이 나오기 직전에 지었다는 거예요. 그걸 안 하고 있었어요. 무서워서요. 보통은 먼저 정해놓고 하는데 너무 무거운 숙제라 미뤘어요. 그러다 내가 하는 짓거리를 가만히 보고 손으로 시가 난다, 이렇게 쓴 거예요. 그 순간 회사 이름을 ‘난다’로 지은 이유가 이거 하기 위해서였나보다 싶으면서 되게 눈물이 났어요. 시는 발이 없잖아요. 동시에 날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비워내고 비워내 여기에 왔겠어요. 그래서 캐치 프레이즈를 정하고 끝났다, 했어요.(웃음) 

 

해설을 빼고, 번역시를 넣고, 시인의 편지를 담은 이 모든 과정에 무엇보다 독자에 대한 단단한 신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그랬어요. 시리즈 이름을 ‘시편’으로 정한 것부터 그랬는데요. 문예중앙 때는 ‘시선’이었고요. 문학동네 때는 ‘시인선’이었는데요. 말맛이라는 것도 있어서, 워낙 했던 걸 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라 고민을 엄청 했어요. 일단 나는 편편이 너무 소중했어요. 편편이 긴장감 있고 좋은 시들이거든요. 그러다 ‘난다시편’이라고 했는데요. 편집위원이기도 한 오은 시인이 편지를 받으면 어떻겠느냐고 하더라고요. 너무 좋았어요. 편지는 내밀하고, 진심을 전할 때 하잖아요. 

 

한편으로 진짜 긴장했어요. 김혜순 선생님이 해설보다는 발문을 받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편지라는 취지를 말씀드려야 했거든요. 그런데 바로 “알았어” 하시더니 편지를 보내주셨어요. 선생님의 편지를 받는 순간 의도를 너무 잘 아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시에 독자들이 다 알아볼 거라는 생각을 했죠. ‘나 이런 시집을 썼어요’라는 정도만 있어도 다른 길로 가지 않겠다는 믿음이 있고요. 그래서 기획한 것도 맞아요. 

 



이 명랑한 귀신은 

 

그리고 김혜순 시인님이 첫 자리예요. 김혜순 시인님과의 작업은 어떻게 진행된 것이었나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흑과 백, 백과 흑만 쳐다보고 있었어요. 너무 무서웠죠.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요. 그러다 작년에 어떤 자리에서 김혜순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는데요. 선생님께서 기존에 써왔던 시들과 너무 다른 시들을 쓰고 있다고 하시면서 저를 딱 바라보셨어요. 그때 이 신호는 뭘까, 생각했지만 선생님 앞에서는 한마디도 말을 못 했죠. 욕심을 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다가 올해 초에 용기를 내서 도와달라고 요청을 드렸는데요. 선생님이 원고를 주신 거예요. 그렇게 김혜순 선생님이 딱 서니까 기차를 어떻게 이어 나갈지 너무나 선명해졌어요. 힘이 났고, 자신감이 생겼죠. 제가 저희 편집자 유성원 부장님한테 “선생님이 나 살려주는 거다. 평생의 은인이다.” 그랬어요. 난다에서 선생님 시집 하나만 갖고 있어도 나는 죽어도 여한 없다고요. 

 

원고를 받고도 많이 놀라셨을 것 같아요. 시가 또 너무 좋잖아요. 

선생님께서 “민정만 봐” 하시면서 원고가 왔는데, 뒤집어졌어요. 그러면서 느꼈죠. 선생님이 저한테 왜 얘기하셨는지 알 것 같다고요. 이 명랑한 귀신은 새 그릇이어야 했던 거예요. 원고를 보고 김혜순 선생님께 말씀드렸어요. “선생님 날라다니세요.”(웃음) 모든 아픔을 갖고, 모든 상처가 있는, 생태적인 우주를 껴안고 있는 아픔을 아는 사람이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다니 놀랍죠. 발 없는 귀신이 이생, 전생, 후생을 막 날아다니더라고요. 경지를 넘어선 어떤 사람을 본 느낌이었어요. 어쩌면 선생님도 당신이 써놓고 이 새로움은 무엇인지 고민하셨을 거예요. 그래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잘 담아야 하니까요. 

 

김혜순 시인님은 죽음이 끝이 아니고 삶이 시작이 아니라는 말씀도 하시잖아요. 그것이 시집 디자인의 요소인 흑과 백과 연결이 되더라고요. 흑이 다만 어둠이 아니고, 백도 그저 환함이 아니듯이요. 

맞아요. 흰색을 아기가 태어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죽을 때도 흰색이 있죠. 그러니까 이것은 끝에서 끝을 쥐고 있는 거예요. 그 안에서 우리 모두가 놀 수 있잖아요. 그런데 만약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가 아니었다면 저의 이런 의미가 그렇게까지 전달되지 않았을 수 있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나를 살려줬다고 말한 거죠. 제가 생각했던 그림에 정확히 부합되는 시였으니까요. 저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멀리서 들려도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고, 그가 전하려고 하는 음악도 내 귀에 곧장 들리니까 다른 게 필요가 없는 거예요. 덕분에 저도 나태해지지 않았어요. 중견이나 신인이나 어르신들이나 오직 그 시집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고요. 끝없이 자기 수련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요. 김혜순 선생님의 시집이 큰 공부가 됐던 것 같아요.

 

더 쏙’ 기획도 궁금해요. 초판 한정으로 작은 판형의 책을 함께 내셨잖아요. 

2016년에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의 미니북을 만들었어요. 초등학생 조카가 자기 필통에 그 미니북을 넣고 다니는 거예요. 이유를 물었더니 재미있다고 해요. 아무 데나 펼쳐서 단어를 본다고요. 어린이나 성인이나 단어를 많이 잃어버리고 살잖아요. 잊어버리니까 잃어버리는 건데요. 사전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시라는 맥락 속에서 단어를 보는 것과는 다르죠. 사람들이 책을 많이 안 보는 이유 중 하나도 휴대하는 문제라고 생각했고요. 유일하게 책이 작아졌을 때 더 강한 각인을 주는 것이 시집이란 생각이 있었어요. 언제 어디서나 휴대폰처럼 꺼내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펼쳐볼 때마다 다르니까요. 그래서 작은 책을 만들었고요. 이름이 있어야겠다, 해서 주머니에 쏙 들어가니까 ‘더 쏙’이라고 정한 거예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어요. 이렇게 두 책을 계속 낼 건데요. 시인이 한 권의 시집을 써서 받을 수 있는 인세라는 게 있잖아요. 어떤 시집은 잘 팔려서 돈을 많이 벌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비록 초판 한정이긴 하지만 적게나마 시인들한테 인세를 조금이라도 더 주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사실 김민정 시인님의 시를 많은 독자들이 기다려요. 

이번에 시집을 만들면서 너무 쓰고 싶어졌어요. 그동안 계간지 청탁을 받고도 펑크를 계속 냈어요. 시가 안 와서요. 하지만 억지로 할 수는 없었는데요. 김혜순 선생님 시집을 만들 때 노트에다가 연필로 시를 썼어요. 두 편을. 몇 년 만에 썼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시가 쓰고 싶더라고요. 그러면서 시집도 내고 싶어졌고요. 산문도 정리하던 것이 있는데 올해는 내려고 해요. 

 

난다시편 시리즈로도 시집이 나오게 될까요? 

언젠간 나오겠죠?(웃음) 일단 저는 갖고 싶어졌어요.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을 냈던 이유가 갖고 싶어서였거든요. 사실 처음에는 내가 만드는 시리즈라 생각이 없었는데요. 책이 딱 나왔는데 너무 갖고 싶었어요. 저는 물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속도도 나고, 다짐도 생기니까요. 그래서 더 노력하려고요. 

 

난다시편에, 그리고 시집에 관심을 갖게 된 독자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저는 좋아하는 것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일했어요. 그래서 책을 좋아하고, 시집 좋아하는 분들께 말해야 할 것이 있다면 좋아하는 것을 많이 샀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예요. 소비라는 것이 결국 나를 개성 있게 만들어주는 거잖아요. 때로는 나를 살고 싶게 해주고요. 책 좋아하는 분들 역시 무언가를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요. 부디 나를 위한 소비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또 비우려는 때도 오거든요. 사는 것도 배우지만 비우는 것도 배우는 거예요.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못 배우더라고요. 저는 배우려면 나가야 되고, 써야 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시집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시를 읽어야 될지 모르겠다, 하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아요. 실패하기 위해서 나가야죠. 무엇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깊이 갖고 있어요. 모든 책이 실패해요. 저는 그 자유로움 속에서 나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갖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에서 나만의 취향이 생기는데 그걸 안다는 건 너무나 큰 선물이에요. 그러면 사는데 너무 자신감이 생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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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 장편소설 『구름이 겹치면』, 에세이 『하필 책이 좋아서』(공저)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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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대상을 주관적으로 비틀어 만든 기괴한 이미지들과 속도감 있는 언어 감각으로 자신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온 김혜순이 시를 통해 끈질기게 말하는 것은 죽음에 둘러싸인 우리 삶의 뜻없음, 지옥에 갇힌 느낌이다. 그 죽음은 생물학적 개체의 종말로서의 현상적,실재적 죽음이 아니라, 삶의 내면에 커다란 구멍으로 들어앉은 관념적,선험적 죽음이다. 그의 세 번째 시집 제목이 『어느 별의 지옥』인 것도 우연은 아니다. 『어느 별의 죽음』은 세계의 무목적성에 대한 오랜 응시로 삶에 예정되어 있는 불행을 눈치채버린 이의, 삶의 텅 빔과 헛됨, 견딜 수 없는 지옥의 느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비관주의적 상상력이 빚어낸 시집이다. 그의 시 세계는 일상적이고 자명한 것의 평화와 질서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의 의식을 난폭하게 찌르고 괴롭힌다. 김혜순 시인은 시집 『날개 환상통』으로 미국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한국 최초로 수상하였다. 김혜순은 1955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초등 학교에 입학할 무렵 강원도 원주에 이사해 거기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원주여고를 거쳐 1973년 건국대학교 국문과에 들어가 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78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처음 써 본 평론 「시와 회화의 미학적 교류」가 입선하고, 이어 1979년 「문학과 지성」에 「담배를 피우는 시인」,「도솔가」등의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나온다. 대학 졸업 뒤 「평민사」와 「문장」의 편집부에서 일하던 그는 1993년 「김수영 시 연구」라는 논문으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는 1998년 '김수영 문학상'을 받음으로써, 낯설고 이색적이어서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던 그의 시세계는 비로소 문단의 공인을 받는다. 2019년 캐나다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그리핀 시 문학상(Griffin Poetry Prize)를 수상했다. 김혜순 시의 착지점은 '몸', 그것도 해탈이 불가능한 '여성의 몸'이다. 해탈이 불가능한 몸에서 출발한 그의 시적 상상력은 때때로 그로테스크한 식육적 상상력으로까지 뻗친다. 이런 점에서 김혜순의 시를 "블랙유머에 바탕을 둔 경쾌한 악마주의"의 시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는 자기 시의 발생론적 근거를 '여성'과 '여성의 몸'에서 찾는다. 이에 대해 그는 "식민지에 사는 사람은 절대 해탈이 불가능하다. 여성은 식민지 상황에서 살고 있다. 사회학적 요인이 아니라 유전자에 새겨진 식민지성이 있다. 이때의 여성은 인식론적 여성이 아니라 존재론적 여성이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