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ir de lune> | 음반
메나헴 프레슬러
노인이 연주하는 음악을 좋아한다. 새 책 작업을 하며 팽팽한 긴장감을 견뎌야 하는 날을 보낼 때 나는 거의 매일 메나헴 프레슬러(Menahem Pressler)의 2018년 앨범 <Clair de Lune>을 듣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드뷔시로 시작해 포레와 라벨로 이어지는, 94세의 노인이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은 긴장되어 있던 몸을 풀어주며 연한 선홍빛 기운으로 나를 감싸주는 듯했다. 50년 이상 보자르 트리오의 피아니스트로서 팀을 지키고, 80세가 넘어서야 독주자로서 커리어를 시작했다는 그는 90세 나이에도 두 뺨이 발그레하다. 자신의 삶을 완벽히 수긍한 사람이 주는 경이로운 편안함과 조용한 기쁨을 그의 음악에서 전달받는다.

<화산만큼 사랑해(Fire of Love)> 사운드트랙 | 음반
니콜라스 고댕
니콜라스 고댕(Nicolas Godin)이 다큐멘터리 영화 <화산만큼 사랑해(Fire of Love)>를 위해 만든 사운드트랙 앨범이다. 영화는 화산을 향한 열정을 공유하며 활화산에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았던 두 화산학자 부부의 이야기다. 나는 음악을 먼저 들으며 영화를 상상했고 영화를 본 뒤에는 다시 음악을 반복해서 들으며 아이슬란드, 필리핀, 일본의 활화산으로 다가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수록곡 중 'Approaching the Beast'를 가장 좋아한다. 거대한 지구의 짐승 곁으로 다가가는 두 사람의 조심스러운 발걸음과 짐승의 포효 소리가 들린다.
어떤 한 작가의 내면세계가 너무나 광활하고 재기 넘치며 좋은 느낌을 줄 때, 나는 반복해서 그의 저작을 찾아 읽으며 그곳에 머물곤 한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그 안에 존재하고 싶어서. 그런 독서는 이제 무엇을 위한 일이 아니라 그 시간 자체를 위한 일이 된다. 페르난도 페소아의 작품들이 그렇다. 자기 정체성을 일관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이 전혀 없고 제멋대로 변화하며 타자를 마음껏 흡수하는 상태를 자기 작업의 동력으로 삼는다. 숱한 지적 탐구 끝에 도착하는 장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안에 잠재된 뿌리 깊은 낙천성과 장난기가 정말 좋다.
안 에르보 글그림 / 윤경희 역 | 봄날의 책
사랑에 빠진 상태가 주는 격렬한 환희와 꼭 그만큼의 두려움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그림책이다. 이 책의 원서를 읽어보진 못했지만, 내게는 한국어 번역본 책의 모든 것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윤경희 선생님의 아름다운 번역과 번역가의 말이 책을 다 읽기도 전에 가슴을 쳤고, 김리윤 디자이너의 꼼꼼하고 섬세한 손길이 책의 정신적 측면을 시각적·물리적으로 전달해 주는 듯했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대답을 바라지 않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법을 배웠다.
불어에서 한국어로, 한국어에서 불어로 글을 옮기고, 불어와 한국어로 시와 소설을 쓰는 한국화 작가이자 번역가의 작업을 쭉 따라 읽고 있다. 그가 소개해 주는 세계가 매번 새롭고 낯설면서도 어딘가 내가 늘 찾고 있던 것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가 선택한 책과 작가들은 판에 박혀있지 않고 유행도 위대함도 쫓지 않는다. 중심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한쪽의 세계를 다른 쪽으로 옮겨주는 한국화의 노고를 이렇게 손쉽게 누려도 되는지 매번 의아할 정도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해
출판사 | 봄날의책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출판사 | 민음사
자살
출판사 | workroom
야수를 믿다
출판사 | 비채
오포포낙스
출판사 | 봄알람
적대적 상황에서의 생존 메커니즘
출판사 | 알마
하미나
서울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저서로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2021), 『상처 퍼즐 맞추기』(공저, 2022), 『아무튼, 잠수』(202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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