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책 人터뷰]성공하는 영어는 S라인이다! - 외화 번역가 이미도와 독자의 만남
2007.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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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 번역가 이미도에 대한 오해 몇 가지.
우리나라에서 개봉하는 외국영화 번역은 이미도가 싹쓸이한다?
‘이미도’라는 이름은 번역 회사에서 내세우는 유령 인물이다?
혹은 실제 번역은 아르바이트생이 다 하고, 자신은 이름만 빌려준다?
심지어 이미도는 여자다!
당신은 ‘이미도’에 대해 얼마나 아시나요?
많은 사람의 막연한 오해와 달리 실상은 이렇다. 한 해 수입되는 150여 편의 영어권 영화 중 실제 그가 번역하는 영화는 10% 정도에 불과하다. 다만, 그 10%에 해당하는 영화가 대부분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니, 상영되는 거의 모든 영화에 그의 이름이 오른다는 오해를 살 만도 하다. 한 달에 한 편 남짓 번역하는 수준이니, 지나친 다작은 아닌 셈.
대역(代譯)에 대한 오해 또한 싱거워진다. ‘미도(美道)’는 미군 통역관이었던 부친이 ‘미(美)국에 가라(道)’는 의미에서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지어놓은 이름이다. 여성스러운 이름과 달리 희끗희끗한 은발이 은근한 매력을 발산하는 그는 불혹을 훨씬 넘긴 나이에도 취미생활과 일에 빠져 사느라 결혼할 틈도 없이 사는 미혼 남성(!)이다.
우리나라에서 흥행에 성공한 각양각색의 할리우드 영화 중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영화를 꼽는 일은 쉽지 않다. 14년여 동안 외화 번역에 독보적인 일인자였던 그는 영화관을 찾는 관객에게 시대를 주름잡는 유명 영화감독이나 배우보다 더 두터운 존재감을 지닌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는 표현대로라면 보통의 관객은 그의 재기 발랄한 언어감각으로 재탄생한 영화 속 대사를 통해 울고 웃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스크린 뒤에 가려질 수밖에 없는 번역가라는 직업 특성상 그의 실체를 두고 피어오르는 엉뚱한 오해는 스타 번역가가 감수해야 할 유명세인지도 모른다.
오랜 루머와 오해의 베일에 싸였던 그가 관객 혹은 독자에게 다가가기 시작한 건 2년 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번째 책 『이미도의 등 푸른 활어영어』가 세상에 나오면서부터다. ‘시대를 대표하는 번역가’라는 타이틀답게 할리우드 영화를 활용한 재미있는 영어 공부법을 소개한 이 책으로 그는 단박에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 올랐다.
최근에는 대표이사 겸 유일한 직원인 1인 출판사 ‘물고기도서관’의 간판을 내걸고 『영화백개사전 영어백과사전』을 직접 쓰고 펴냈다. 올여름엔 창작에 대한 오랜 갈증을 비로소 풀어낼 에세이집도 출판할 예정이라고 한다.
『영화백개사전 영어백과사전』은 인생을 표현하고 설명할 수 있는 100개의 키워드를 뽑아 각 키워드를 대표하는 영화 100편을 선정, 영화 속 대사를 예로 들어가며 영화와 영어 이야기를 녹여낸 책이다. 그동안 너무 오래 참았다는 듯 줄줄이 쏟아내는 그의 언어유희는 재기발랄하고 재치가 넘친다.
성공하는 영어는 S라인이다
스타 번역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출판인으로 물고기가 유영하듯 여러 영역을 넘나드는 그가 롯데시네마에서 예스24 독자들과 만났다. 그의 책이 영화를 키워드로 한 데다 영화관이야말로 그의 삶의 터전이나 다름없는 곳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강연장인 셈이다.
‘성공하는 영어는 S라인이다’라는 알쏭달쏭한 제목으로 약 한 시간에 걸쳐 진행된 강연은 200여 명의 독자들이 뿜어내는 열기와 웃음으로 화기애애했다. 시종일관 재치 있는 화술로 객석의 긴장감마저 풀어지게 하는 그는 역시나 스크린의 언어술사답다.
현재 번역 중인 <슈렉 3>의 예고편 이야기로 뚜껑을 연 강연은 영화 번역과 영어 공부법에 대한 그의 철학과 고민으로 진행됐다.
“여러분과 저의 공통점이 뭐가 있을까요? 먼저,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미 영어를 잘할 가능성이 50%나 된다는 의미예요. 또 한 가지 공통점은 지금보다 영어를 좀 더 잘하고 싶다는 거겠죠?”
14년 동안 외화 번역을 해온 그에게,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의 열쇠는 영어와 영화에 대한 관심이 만나는 지점에 숨어 있다. 영화를 좋아하면서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덜고, 어렵지 않게 공부하는 비법은 무엇일까? 그는 먼저 영어에 대한 조급증을 지적했다.
“일요일 빼고 엿새 동안 하루 한 시간씩 영어 공부를 한다고 치면 일주일에 여섯 시간, 한 달에 스물네 시간 공부하는 셈입니다. 그럼, 영미권에서 하루를 사는 거나 마찬가지가 되나요? 1년이면 12일을 공부한다는 얘기네요.
이런 예를 드는 이유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외국어 공부하면서 생기는 조급증을 경계해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hurry병’이라고 표현하는데, 어려서 우리말을 배울 때는 조급해하거나 서두르지 않는데, 나이 들어서는 어떻게 하면 좀 더 빨리 영어(외국어)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욕심 때문에 단기간에 완성할 수 있는 공부 방법에 집착하게 되죠.
우리가 하루에 한 시간씩 1년을 독학하는 것과 영미권에서 12일 생활하는 게 양적으로는 같은 시간을 투자하는 셈입니다. 영미권에서 생활하면서 영어를 공부한다면 짧은 시간에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럴 수 없는 환경에서 어떻게 하면 조급해하지 않고 효과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을까, 라고 할 때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는 게 바로 ‘영화’입니다.”
요즘은 중?고등학생뿐 아니라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토익 시험을 보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영어 환경에 빨리 노출돼 있다. 더구나 초등학생이 토익에서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받았다는 뉴스도 종종 접하는 마당이다. 토익에 ‘올인’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어린 나이일수록 시험을 위한 시험보다는 시험의 출제 유형 정도만 파악할 뿐, 실생활에서 영화를 비롯한 영상매체를 많이 접하고, 독서를 폭넓게 많이 하는 데서 영어 공부의 비결을 찾을 수 있다.
“며칠 전에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작은 소도시 아파트 단지의 경비 아저씨가 영어로 안내방송 하는 모습이 소개됐어요. 영어로 미리 정리된 대본을 보고 읽으시는 것도 아니고 한글로 된 안내문을 들고 영어로 말하는 거예요. 분명히 과거에 통역 계통이나 영어를 많이 사용하는 분야에 계셨던 분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초등학교가 학력의 전부라고 하더군요.
서른이 넘어서야 영어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시고는 40년 동안 독학을 하신 거예요. 그분의 비결이, 일할 때는 사전을 펼쳐놓고 발음하고 써가면서 공부하고, 집에서는 영화를 즐겨 본 겁니다. 영화 볼 때는 자막을 가리고, 배우의 대사를 따라 해보기도 하고, 혼자 해석도 하면서 그렇게 40년 세월 동안 독하게 공부하신 거죠. 발음도 굉장히 좋으셨어요. 지역에서는 유명인사라 인근 학교 원어민 교수의 초빙으로 학생들에게 강의하시는 모습도 방송되더군요.”
영어 공부는 즐기면서!
아인슈타인은 어떤 분야에서건 성공하고자 하면 일을 놀이처럼 하고, 놀이를 일처럼 하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꾸준하고 지속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영화를 보는 것을 일종의 놀이,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는 것으로 생각하듯 영어를 공부하는 것도 노동으로 생각하지 말고 즐길 줄 알아야 효과적이라는 의미다.
“저도 처음부터 영어가 쉬웠던 건 아니에요. 중학교 때 통역관이셨던 아버지한테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학교에서 ‘break’라는 단어를 배워 오면 16절지 연습장을 펼쳐놓고 가득 채우게끔 하셨어요. 스펠링 하나하나, 단어 전체를 발음하면서요. 16절지를 다 채우고 나면 뒤집어서 다시 한 번, ‘이제 끝났겠지’ 하면 곱하기 다섯 장. 그렇게 해야 한 단어를 통과시켜 주셨어요. 그다음엔 ‘break’가 들어가는 문장을 같은 방법으로 앞뒤 다섯 장씩 썼죠. 독하게 공부한 셈이죠.”
‘영어만이 살길’이라는 깨우침에 일찌감치 눈을 뜬 부친의 혹독한 영어공부법은 그에게 남다른 언어감각을 키우는 훈련이 되었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영화관에서 살다시피 한 시네마 키드였다고 하니, 영화와 영어가 만나 외화 번역가의 삶을 사는 그의 모습은 숙명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대체 성공하는 영어와 S라인이 무슨 상관관계란 말인가. 답 대신 객석에 퀴즈를 던지며 그의 현란한 언어유희가 펼쳐진다.
“점과 점을 이어주는 최단거리는? 직선(=Straight), 줄여서 ‘S라인’이라고 해도 되나요? 여러분과 저, 두 사람을 이어주는 최단거리는? 제 표정에서 읽히지 않나요? 여러분과 제가 가까워지려면 많이 웃어야죠. 미소(=Smile), 이것도 'S'로 시작하네요. 영화가 잘 만들어지고, 흥행에도 성공하려면 어떤 요소가 필요할까요? 월트 디즈니는 좋은 영화가 성공(=Success)하기 위한 3대 요소로, 첫째도 스토리(=Story), 둘째도 스토리, 셋째도 스토리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스토리를 강조하는 이유는 영화를 즐기면서 영어를 잘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가 스토리를 이해하는 것, 즉 독서를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스토리를 비롯해 ‘S'로 시작하는 영어 키워드가 줄(Line)을 선다는 의미에서 'S라인’이 되는 거죠.”
다시 말해 영어를 잘하려면 영화와 관련된 독서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요즘은 DVD가 출시될 때 영화의 스크립트를 압축해 놓은 영상 소설 형태의 책도 함께 출간된다. 영화 속 대사는 동시대에 널리 사용되는 일상의 살아있는 영어기 때문에 다른 어떤 원서를 읽는 것보다 훌륭한 교재다.
“영화 볼 때는 영화 자체를 즐기느라 영어를 소홀히 했다면 DVD로 볼 때는 영화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자막의 도움 없이 영화의 스크립트를 읽음으로써 효과적인 독서를 할 수 있는 거예요. 한 달에 한 편씩 집중적으로 DVD와 영상 소설을 함께 보는 방식을 기존의 영어 공부 방법과 병행해 5년, 10년 해나간다면 좋은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얼마나 꾸준히 실천하느냐 하는 것이겠죠.”
영어 원서를 가까이하고 싶어도 엄두가 안 나는 이들에게, 이미 내용을 아는 영화는 한결 접근하기 쉬운 텍스트다.
“영화는 우리가 평소에도 늘 즐기는 거니까 단지 ‘영화가 재밌었다’에서 그치지 말고, 아인슈타인 말처럼 ‘놀이와 일을 함께한다는 성공법칙’에 입각해 영화를 영어 공부에 활용한다는 생각으로 가까이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영화 보다가도 중요한 표현이나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바로 메모할 수 있잖아요. 그런 공책이 한 권 두 권 쌓여갈 때 어느새 여러분의 영어실력도 쌓여가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번역은 장미꽃밭에서 맨발로 춤추는 것
예정된 강연 시간이 다 돼가는데, 아쉬움이 남는지 그는 직접 독자와 묻고 답하는 시간을 제안했다. 주로 개인사에 대한 질문이 많았는데, 이미도라는 사람을 새롭게 알게 된 시간이었다.
Q) 영어가 아닌 스웨덴어 전공을 하셨는데, 어떤 계기로 영화 번역가가 되기로 하셨나요?
“어려서부터 영화를 좋아했어요. 아버지께서 ‘영어’를 좀 더 가까이할 기회를 주신 것 이전에 영화를 즐겨 보여주셨죠. 영어는 어려서부터 계속 공부해왔고, 사회에 나와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고민할 무렵에 얼떨결에(!) 영화 번역 제의를 받았어요. 무작정 시작했는데, 무척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책을 내기 전까지는 다른 분야에 한눈팔지 않았을 만큼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파게 된 거죠.”
Q) 단어를 선택할 때 가장 고민스러웠던 사례가 있다면요?
“우리가 흔히 쓰는 유행어나 표현을 다른 언어로 옮기고자 할 때 어떤 고충이 따를지 충분히 이해하시죠? 흔히 언어유희 또는 말장난 식으로, 유사한 영어 발음을 비틀어서 쓰이는 대사가 있어요. 이런 표현을 대사에 반영했을 때, 1차 언어의 맛을 고스란히 옮긴다는 건 어려운 일이죠. 그럴 때는 우리 정서에 맞게끔 바꿔줘야 해요.
예를 들어 <슈렉>의 ‘Far Far Away Kingdom’은 원래 <스타워즈> 오프닝에 흐르는 자막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away’의 패러디예요. 미국 관객들은 ‘Far Far Away Kingdom’이라는 표현을 접했을 때, 자연스럽게 <스타워즈>를 떠올렸을 것이고, 정말 머나먼, 거대한 우주공간을 생각하면서 도대체 왕국이 얼마나 멀리 있는 것이기에 그런 이름을 지었을까 상상할 수 있죠.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 단어의 뜻 그대로 ‘멀고 멀고 아주 먼 왕국’이라고 옮겼을 때 그 맛이 안 나기에 만든 표현이 바로 ‘겁나 먼 왕국’이었어요. 고민한 만큼 관객 반응이 굉장히 좋았던 번역이었어요.”
Q) 의역을 많이 하시는 걸로 아는데, 영화 대사 중에 우리말 속담이나 유행어를 섞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영화는 예술인 동시에 산업이라고들 하죠. 그만큼 영화가 상업적으로 흥행하기를 기대한다는 뜻이겠죠. 영화라는 건 기본적으로 오락성을 담은 매체고요. 오락성 짙은 영화의 번역 과정에서 영화적 재미를 위해 의역이 필요할 때, 이를테면 그들은 이런 표현에서 웃을 수 있는데 우리는 이해하고 웃기 어려울 때, 우리 식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의역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유행어에 의지하거나 내용을 왜곡하는 부분에 대해선 저도 반대하는 편입니다. 번역을 제2의 창작, 반쪽 창작이라고는 하지만, 창작에 버금가는 노력, 새롭고 좋은 표현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윤기 선생님께서 그런 표현을 쓰셨어요. ‘번역은 밴 아기를 낳는 것이라고 하면 창작은 배지 않은 아기를 낳는 것과 같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번역가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마치 배지 않은 아기를 낳는 것과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번역이란 행위를 쾌락과 고통이 공존한다는 의미에서 ‘장미꽃밭에서 맨발로 춤추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 말이 있습니다. 춤추는 행위가 얼마나 즐겁겠습니까마는 가시가 있기 때문에 그만큼 조심하고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거죠.”
Q) 자녀의 영어 교육 방식이 궁금합니다.
“답을 듣고 실망하시면 어떡하죠? 저 미혼이거든요.(웃음) 아이가 없어서 제 경험을 말씀드릴 순 없지만,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마음껏 놀이하듯 즐기게 해주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마다가스카>가 됐건 <라이언킹>이 됐건 <슈렉>이나 <벅스 라이프>가 됐건 저마다 좋아하는 캐릭터와 소재와 취향이 있어요. 아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영화를 즐겨 보게끔 기회를 만들어 주되 혼자 보면서 즐길 수 있게 하는 게 좋아요. 영화를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외국어에도 관심을 두기만 한다면 나이 들어서 본격적으로 영어를 배울 때쯤엔 어려움이나 두려움 없이 영어와 친해지고, 더 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어떤 어린이는 <라이언 킹>을 백 번 정도 봤다고 해요. 보다 보니 정확히 어떤 뜻인지는 모르지만 보는 대로 따라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영어를 놀이처럼 좋아하게 되겠죠. 제가 교육가가 아니기에 영어 조기 교육의 효과적인 측면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영어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을 없애주고 가능하면 독서를 많이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에 살아있는 생생한 영어 표현을 가까이하세요
Q) 번역 작업은 어떤 식으로 하시나요?
“먼저, 영화 관계자들과 시사를 한 후, 번역용으로 최대한 압축된 대본(스크립트)을 보고 작업합니다. 유출 가능성을 방지하고자 동영상 자료는 제공되지 않아요. 대신 녹음기는 휴대할 수 있어서 영화를 한 번 보고 나서 고스란히 기억해 소리만 들으며 장면을 연상하죠. 제가 아이큐도 별로 좋지 않고 기억력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닌데, 보고 나면 머릿속에 다 기억이 남아요. 번역할 때는 자막이 적당한 간격으로 넘어갈 수 있게끔 작업해야 합니다. 글자 수에도 제한이 있어서 영화 속 대사를 100% 자막 처리할 수가 없어요. 그랬다간 자막만 읽다 나가셔야겠죠.(웃음)
번역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텍스트를 ‘읽는’ 거예요, ‘Reading.’ 그리고 이해를 해야겠죠, ‘Understanding.’ 그다음에는 그 내용과 표현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Forgetting.’ 마지막으로 자기만의 창작적 표현을 만들어야 해요. 바로 ‘Rewriting’이죠.
우리식 표현에 집착하다 보면 더 좋은 번역을 할 수 있는데도 표현이 묶여 버리는 거예요. 번역가에게는 이러한 표현을 창작해낼 수 있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영어 실력을 믿고 자신 있게 번역에 입문했다가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주변에서 봐요. 물론 1차 언어인 영어에 대한 충분한 준비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우리 언어, 우리말을 잘해야 하고, 그러려면 무엇보다 독서를 많이 하는 게 중요합니다. 번역가가 되고자 계획하시는 분들은 각 방송사에서 운영하는 ‘영상번역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통하는 게 가장 정확하고, 안전하고, 빠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Q). 내용을 잘 몰라도 AFKN 같은 외국방송을 자주 듣는 것이 좋은 방법인가요?
“‘듣는 건 자신 있는데 말하는 건 잘 안 돼’, 반대로 ‘말하는 건 자신 있는데 듣는 게 안 돼’ 그런 얘기 많이 들어보셨죠?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면 들리지 않으면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CNN이나 AFKN을 청취할 때도 어느 정도 준비는 하셔야 해요. 시사에 관심을 두거나 해당 분야에 대해 나름대로 공부를 병행하면서 청취한다면 막연히 들을 때보다 발전 속도가 훨씬 빠르겠죠.
영화 속에서 표현되는 살아있는 생생한 영어 표현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공부고, 익숙한 화면이기 때문에 훨씬 친숙하실 거예요. 그래서 영어를 공부하는 데 영화를 가까이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죠.
공간적인 특성도 있고, 여러분이 시작부터 워낙 진지하시다 보니 저도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만, 이런 기회를 통해 여러분을 만나게 된 걸 정말 뜻 깊게 생각합니다. 오늘 강연의 주인공은 제가 아니고 바로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의 앞날이 여러분이 좋아했던 영화, 보고 싶은 영화처럼 되시기를 소망하겠습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중적인 문화 감각에 아이디어와 스토리가 좋고, 영화를 보고 나서 가슴에 감동까지 남겨 줄 영화라면 틀림없이 상업적으로나 작품성에서 인정받는 영화가 될 것이다. 대표이사이자 사원인 그는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 또는 책을 통해 그런 요소를 갖추고픈 바람을 담아 자신의 출판사 이름도 ‘물고기도서관(FISH)’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유행(Fashion), 아이디어(Idea), 스토리(Story) 그리고 감동(Heart)의 머리글자에서 따온 이름이다.
외화 번역가라는 낯선 직업에 최초로 대중성을 부여한 번역가 이미도. 오랜 세월 꼭꼭 숨겨온 그의 재능과 끼가 펄떡이는 활어처럼 마음껏 발산될 모습을 기대해 본다.
우리나라에서 개봉하는 외국영화 번역은 이미도가 싹쓸이한다?
‘이미도’라는 이름은 번역 회사에서 내세우는 유령 인물이다?
혹은 실제 번역은 아르바이트생이 다 하고, 자신은 이름만 빌려준다?
심지어 이미도는 여자다!
당신은 ‘이미도’에 대해 얼마나 아시나요?
많은 사람의 막연한 오해와 달리 실상은 이렇다. 한 해 수입되는 150여 편의 영어권 영화 중 실제 그가 번역하는 영화는 10% 정도에 불과하다. 다만, 그 10%에 해당하는 영화가 대부분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니, 상영되는 거의 모든 영화에 그의 이름이 오른다는 오해를 살 만도 하다. 한 달에 한 편 남짓 번역하는 수준이니, 지나친 다작은 아닌 셈.
대역(代譯)에 대한 오해 또한 싱거워진다. ‘미도(美道)’는 미군 통역관이었던 부친이 ‘미(美)국에 가라(道)’는 의미에서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지어놓은 이름이다. 여성스러운 이름과 달리 희끗희끗한 은발이 은근한 매력을 발산하는 그는 불혹을 훨씬 넘긴 나이에도 취미생활과 일에 빠져 사느라 결혼할 틈도 없이 사는 미혼 남성(!)이다.
우리나라에서 흥행에 성공한 각양각색의 할리우드 영화 중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영화를 꼽는 일은 쉽지 않다. 14년여 동안 외화 번역에 독보적인 일인자였던 그는 영화관을 찾는 관객에게 시대를 주름잡는 유명 영화감독이나 배우보다 더 두터운 존재감을 지닌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는 표현대로라면 보통의 관객은 그의 재기 발랄한 언어감각으로 재탄생한 영화 속 대사를 통해 울고 웃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스크린 뒤에 가려질 수밖에 없는 번역가라는 직업 특성상 그의 실체를 두고 피어오르는 엉뚱한 오해는 스타 번역가가 감수해야 할 유명세인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대표이사 겸 유일한 직원인 1인 출판사 ‘물고기도서관’의 간판을 내걸고 『영화백개사전 영어백과사전』을 직접 쓰고 펴냈다. 올여름엔 창작에 대한 오랜 갈증을 비로소 풀어낼 에세이집도 출판할 예정이라고 한다.
『영화백개사전 영어백과사전』은 인생을 표현하고 설명할 수 있는 100개의 키워드를 뽑아 각 키워드를 대표하는 영화 100편을 선정, 영화 속 대사를 예로 들어가며 영화와 영어 이야기를 녹여낸 책이다. 그동안 너무 오래 참았다는 듯 줄줄이 쏟아내는 그의 언어유희는 재기발랄하고 재치가 넘친다.
성공하는 영어는 S라인이다
스타 번역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출판인으로 물고기가 유영하듯 여러 영역을 넘나드는 그가 롯데시네마에서 예스24 독자들과 만났다. 그의 책이 영화를 키워드로 한 데다 영화관이야말로 그의 삶의 터전이나 다름없는 곳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강연장인 셈이다.
‘성공하는 영어는 S라인이다’라는 알쏭달쏭한 제목으로 약 한 시간에 걸쳐 진행된 강연은 200여 명의 독자들이 뿜어내는 열기와 웃음으로 화기애애했다. 시종일관 재치 있는 화술로 객석의 긴장감마저 풀어지게 하는 그는 역시나 스크린의 언어술사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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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번역 중인 <슈렉 3>의 예고편 이야기로 뚜껑을 연 강연은 영화 번역과 영어 공부법에 대한 그의 철학과 고민으로 진행됐다.
“여러분과 저의 공통점이 뭐가 있을까요? 먼저,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미 영어를 잘할 가능성이 50%나 된다는 의미예요. 또 한 가지 공통점은 지금보다 영어를 좀 더 잘하고 싶다는 거겠죠?”
14년 동안 외화 번역을 해온 그에게,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의 열쇠는 영어와 영화에 대한 관심이 만나는 지점에 숨어 있다. 영화를 좋아하면서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덜고, 어렵지 않게 공부하는 비법은 무엇일까? 그는 먼저 영어에 대한 조급증을 지적했다.
“일요일 빼고 엿새 동안 하루 한 시간씩 영어 공부를 한다고 치면 일주일에 여섯 시간, 한 달에 스물네 시간 공부하는 셈입니다. 그럼, 영미권에서 하루를 사는 거나 마찬가지가 되나요? 1년이면 12일을 공부한다는 얘기네요.
이런 예를 드는 이유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외국어 공부하면서 생기는 조급증을 경계해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hurry병’이라고 표현하는데, 어려서 우리말을 배울 때는 조급해하거나 서두르지 않는데, 나이 들어서는 어떻게 하면 좀 더 빨리 영어(외국어)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욕심 때문에 단기간에 완성할 수 있는 공부 방법에 집착하게 되죠.
우리가 하루에 한 시간씩 1년을 독학하는 것과 영미권에서 12일 생활하는 게 양적으로는 같은 시간을 투자하는 셈입니다. 영미권에서 생활하면서 영어를 공부한다면 짧은 시간에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럴 수 없는 환경에서 어떻게 하면 조급해하지 않고 효과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을까, 라고 할 때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는 게 바로 ‘영화’입니다.”
“며칠 전에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작은 소도시 아파트 단지의 경비 아저씨가 영어로 안내방송 하는 모습이 소개됐어요. 영어로 미리 정리된 대본을 보고 읽으시는 것도 아니고 한글로 된 안내문을 들고 영어로 말하는 거예요. 분명히 과거에 통역 계통이나 영어를 많이 사용하는 분야에 계셨던 분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초등학교가 학력의 전부라고 하더군요.
서른이 넘어서야 영어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시고는 40년 동안 독학을 하신 거예요. 그분의 비결이, 일할 때는 사전을 펼쳐놓고 발음하고 써가면서 공부하고, 집에서는 영화를 즐겨 본 겁니다. 영화 볼 때는 자막을 가리고, 배우의 대사를 따라 해보기도 하고, 혼자 해석도 하면서 그렇게 40년 세월 동안 독하게 공부하신 거죠. 발음도 굉장히 좋으셨어요. 지역에서는 유명인사라 인근 학교 원어민 교수의 초빙으로 학생들에게 강의하시는 모습도 방송되더군요.”
영어 공부는 즐기면서!
아인슈타인은 어떤 분야에서건 성공하고자 하면 일을 놀이처럼 하고, 놀이를 일처럼 하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꾸준하고 지속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영화를 보는 것을 일종의 놀이,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는 것으로 생각하듯 영어를 공부하는 것도 노동으로 생각하지 말고 즐길 줄 알아야 효과적이라는 의미다.
“저도 처음부터 영어가 쉬웠던 건 아니에요. 중학교 때 통역관이셨던 아버지한테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학교에서 ‘break’라는 단어를 배워 오면 16절지 연습장을 펼쳐놓고 가득 채우게끔 하셨어요. 스펠링 하나하나, 단어 전체를 발음하면서요. 16절지를 다 채우고 나면 뒤집어서 다시 한 번, ‘이제 끝났겠지’ 하면 곱하기 다섯 장. 그렇게 해야 한 단어를 통과시켜 주셨어요. 그다음엔 ‘break’가 들어가는 문장을 같은 방법으로 앞뒤 다섯 장씩 썼죠. 독하게 공부한 셈이죠.”
‘영어만이 살길’이라는 깨우침에 일찌감치 눈을 뜬 부친의 혹독한 영어공부법은 그에게 남다른 언어감각을 키우는 훈련이 되었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영화관에서 살다시피 한 시네마 키드였다고 하니, 영화와 영어가 만나 외화 번역가의 삶을 사는 그의 모습은 숙명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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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체 성공하는 영어와 S라인이 무슨 상관관계란 말인가. 답 대신 객석에 퀴즈를 던지며 그의 현란한 언어유희가 펼쳐진다.
“점과 점을 이어주는 최단거리는? 직선(=Straight), 줄여서 ‘S라인’이라고 해도 되나요? 여러분과 저, 두 사람을 이어주는 최단거리는? 제 표정에서 읽히지 않나요? 여러분과 제가 가까워지려면 많이 웃어야죠. 미소(=Smile), 이것도 'S'로 시작하네요. 영화가 잘 만들어지고, 흥행에도 성공하려면 어떤 요소가 필요할까요? 월트 디즈니는 좋은 영화가 성공(=Success)하기 위한 3대 요소로, 첫째도 스토리(=Story), 둘째도 스토리, 셋째도 스토리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스토리를 강조하는 이유는 영화를 즐기면서 영어를 잘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가 스토리를 이해하는 것, 즉 독서를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스토리를 비롯해 ‘S'로 시작하는 영어 키워드가 줄(Line)을 선다는 의미에서 'S라인’이 되는 거죠.”
다시 말해 영어를 잘하려면 영화와 관련된 독서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요즘은 DVD가 출시될 때 영화의 스크립트를 압축해 놓은 영상 소설 형태의 책도 함께 출간된다. 영화 속 대사는 동시대에 널리 사용되는 일상의 살아있는 영어기 때문에 다른 어떤 원서를 읽는 것보다 훌륭한 교재다.
“영화 볼 때는 영화 자체를 즐기느라 영어를 소홀히 했다면 DVD로 볼 때는 영화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자막의 도움 없이 영화의 스크립트를 읽음으로써 효과적인 독서를 할 수 있는 거예요. 한 달에 한 편씩 집중적으로 DVD와 영상 소설을 함께 보는 방식을 기존의 영어 공부 방법과 병행해 5년, 10년 해나간다면 좋은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얼마나 꾸준히 실천하느냐 하는 것이겠죠.”
영어 원서를 가까이하고 싶어도 엄두가 안 나는 이들에게, 이미 내용을 아는 영화는 한결 접근하기 쉬운 텍스트다.
“영화는 우리가 평소에도 늘 즐기는 거니까 단지 ‘영화가 재밌었다’에서 그치지 말고, 아인슈타인 말처럼 ‘놀이와 일을 함께한다는 성공법칙’에 입각해 영화를 영어 공부에 활용한다는 생각으로 가까이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영화 보다가도 중요한 표현이나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바로 메모할 수 있잖아요. 그런 공책이 한 권 두 권 쌓여갈 때 어느새 여러분의 영어실력도 쌓여가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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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장미꽃밭에서 맨발로 춤추는 것
예정된 강연 시간이 다 돼가는데, 아쉬움이 남는지 그는 직접 독자와 묻고 답하는 시간을 제안했다. 주로 개인사에 대한 질문이 많았는데, 이미도라는 사람을 새롭게 알게 된 시간이었다.
Q) 영어가 아닌 스웨덴어 전공을 하셨는데, 어떤 계기로 영화 번역가가 되기로 하셨나요?
“어려서부터 영화를 좋아했어요. 아버지께서 ‘영어’를 좀 더 가까이할 기회를 주신 것 이전에 영화를 즐겨 보여주셨죠. 영어는 어려서부터 계속 공부해왔고, 사회에 나와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고민할 무렵에 얼떨결에(!) 영화 번역 제의를 받았어요. 무작정 시작했는데, 무척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책을 내기 전까지는 다른 분야에 한눈팔지 않았을 만큼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파게 된 거죠.”
Q) 단어를 선택할 때 가장 고민스러웠던 사례가 있다면요?
“우리가 흔히 쓰는 유행어나 표현을 다른 언어로 옮기고자 할 때 어떤 고충이 따를지 충분히 이해하시죠? 흔히 언어유희 또는 말장난 식으로, 유사한 영어 발음을 비틀어서 쓰이는 대사가 있어요. 이런 표현을 대사에 반영했을 때, 1차 언어의 맛을 고스란히 옮긴다는 건 어려운 일이죠. 그럴 때는 우리 정서에 맞게끔 바꿔줘야 해요.
예를 들어 <슈렉>의 ‘Far Far Away Kingdom’은 원래 <스타워즈> 오프닝에 흐르는 자막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away’의 패러디예요. 미국 관객들은 ‘Far Far Away Kingdom’이라는 표현을 접했을 때, 자연스럽게 <스타워즈>를 떠올렸을 것이고, 정말 머나먼, 거대한 우주공간을 생각하면서 도대체 왕국이 얼마나 멀리 있는 것이기에 그런 이름을 지었을까 상상할 수 있죠.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 단어의 뜻 그대로 ‘멀고 멀고 아주 먼 왕국’이라고 옮겼을 때 그 맛이 안 나기에 만든 표현이 바로 ‘겁나 먼 왕국’이었어요. 고민한 만큼 관객 반응이 굉장히 좋았던 번역이었어요.”
Q) 의역을 많이 하시는 걸로 아는데, 영화 대사 중에 우리말 속담이나 유행어를 섞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영화는 예술인 동시에 산업이라고들 하죠. 그만큼 영화가 상업적으로 흥행하기를 기대한다는 뜻이겠죠. 영화라는 건 기본적으로 오락성을 담은 매체고요. 오락성 짙은 영화의 번역 과정에서 영화적 재미를 위해 의역이 필요할 때, 이를테면 그들은 이런 표현에서 웃을 수 있는데 우리는 이해하고 웃기 어려울 때, 우리 식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의역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유행어에 의지하거나 내용을 왜곡하는 부분에 대해선 저도 반대하는 편입니다. 번역을 제2의 창작, 반쪽 창작이라고는 하지만, 창작에 버금가는 노력, 새롭고 좋은 표현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윤기 선생님께서 그런 표현을 쓰셨어요. ‘번역은 밴 아기를 낳는 것이라고 하면 창작은 배지 않은 아기를 낳는 것과 같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번역가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마치 배지 않은 아기를 낳는 것과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번역이란 행위를 쾌락과 고통이 공존한다는 의미에서 ‘장미꽃밭에서 맨발로 춤추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 말이 있습니다. 춤추는 행위가 얼마나 즐겁겠습니까마는 가시가 있기 때문에 그만큼 조심하고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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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녀의 영어 교육 방식이 궁금합니다.
“답을 듣고 실망하시면 어떡하죠? 저 미혼이거든요.(웃음) 아이가 없어서 제 경험을 말씀드릴 순 없지만,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마음껏 놀이하듯 즐기게 해주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마다가스카>가 됐건 <라이언킹>이 됐건 <슈렉>이나 <벅스 라이프>가 됐건 저마다 좋아하는 캐릭터와 소재와 취향이 있어요. 아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영화를 즐겨 보게끔 기회를 만들어 주되 혼자 보면서 즐길 수 있게 하는 게 좋아요. 영화를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외국어에도 관심을 두기만 한다면 나이 들어서 본격적으로 영어를 배울 때쯤엔 어려움이나 두려움 없이 영어와 친해지고, 더 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어떤 어린이는 <라이언 킹>을 백 번 정도 봤다고 해요. 보다 보니 정확히 어떤 뜻인지는 모르지만 보는 대로 따라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영어를 놀이처럼 좋아하게 되겠죠. 제가 교육가가 아니기에 영어 조기 교육의 효과적인 측면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영어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을 없애주고 가능하면 독서를 많이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에 살아있는 생생한 영어 표현을 가까이하세요
Q) 번역 작업은 어떤 식으로 하시나요?
“먼저, 영화 관계자들과 시사를 한 후, 번역용으로 최대한 압축된 대본(스크립트)을 보고 작업합니다. 유출 가능성을 방지하고자 동영상 자료는 제공되지 않아요. 대신 녹음기는 휴대할 수 있어서 영화를 한 번 보고 나서 고스란히 기억해 소리만 들으며 장면을 연상하죠. 제가 아이큐도 별로 좋지 않고 기억력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닌데, 보고 나면 머릿속에 다 기억이 남아요. 번역할 때는 자막이 적당한 간격으로 넘어갈 수 있게끔 작업해야 합니다. 글자 수에도 제한이 있어서 영화 속 대사를 100% 자막 처리할 수가 없어요. 그랬다간 자막만 읽다 나가셔야겠죠.(웃음)
번역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텍스트를 ‘읽는’ 거예요, ‘Reading.’ 그리고 이해를 해야겠죠, ‘Understanding.’ 그다음에는 그 내용과 표현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Forgetting.’ 마지막으로 자기만의 창작적 표현을 만들어야 해요. 바로 ‘Rewriting’이죠.
우리식 표현에 집착하다 보면 더 좋은 번역을 할 수 있는데도 표현이 묶여 버리는 거예요. 번역가에게는 이러한 표현을 창작해낼 수 있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영어 실력을 믿고 자신 있게 번역에 입문했다가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주변에서 봐요. 물론 1차 언어인 영어에 대한 충분한 준비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우리 언어, 우리말을 잘해야 하고, 그러려면 무엇보다 독서를 많이 하는 게 중요합니다. 번역가가 되고자 계획하시는 분들은 각 방송사에서 운영하는 ‘영상번역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통하는 게 가장 정확하고, 안전하고, 빠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Q). 내용을 잘 몰라도 AFKN 같은 외국방송을 자주 듣는 것이 좋은 방법인가요?
“‘듣는 건 자신 있는데 말하는 건 잘 안 돼’, 반대로 ‘말하는 건 자신 있는데 듣는 게 안 돼’ 그런 얘기 많이 들어보셨죠?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면 들리지 않으면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CNN이나 AFKN을 청취할 때도 어느 정도 준비는 하셔야 해요. 시사에 관심을 두거나 해당 분야에 대해 나름대로 공부를 병행하면서 청취한다면 막연히 들을 때보다 발전 속도가 훨씬 빠르겠죠.
영화 속에서 표현되는 살아있는 생생한 영어 표현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공부고, 익숙한 화면이기 때문에 훨씬 친숙하실 거예요. 그래서 영어를 공부하는 데 영화를 가까이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죠.
공간적인 특성도 있고, 여러분이 시작부터 워낙 진지하시다 보니 저도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만, 이런 기회를 통해 여러분을 만나게 된 걸 정말 뜻 깊게 생각합니다. 오늘 강연의 주인공은 제가 아니고 바로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의 앞날이 여러분이 좋아했던 영화, 보고 싶은 영화처럼 되시기를 소망하겠습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중적인 문화 감각에 아이디어와 스토리가 좋고, 영화를 보고 나서 가슴에 감동까지 남겨 줄 영화라면 틀림없이 상업적으로나 작품성에서 인정받는 영화가 될 것이다. 대표이사이자 사원인 그는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 또는 책을 통해 그런 요소를 갖추고픈 바람을 담아 자신의 출판사 이름도 ‘물고기도서관(FISH)’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유행(Fashion), 아이디어(Idea), 스토리(Story) 그리고 감동(Heart)의 머리글자에서 따온 이름이다.
외화 번역가라는 낯선 직업에 최초로 대중성을 부여한 번역가 이미도. 오랜 세월 꼭꼭 숨겨온 그의 재능과 끼가 펄떡이는 활어처럼 마음껏 발산될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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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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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07.04
yjjmyung
2007.04.17
강연이었습니다.
좋은 자리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samsola
2007.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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