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녕의 두 여자
소설 속 주요 배경으로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빈탄 지역이 한참 나오는데 나도 거기서 멀지 않은 지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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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해외여행 중에 윤대녕의 장편 『미란』을 읽었다. 소설 속 주요 배경으로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빈탄 지역이 한참 나오는데 나도 거기서 멀지 않은 지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소한 우연이지만, 한밤에 호텔 창밖으로 산재한 남국의 야자수를 쳐다보며 그의 소설을 읽는 느낌은 기이했다. 완독까지 ‘싱하’라는 타이 맥주를 꽤 여러 병 비웠다.

윤대녕은 내 친구와 작업실을 함께 쓴다는 인연으로 몇 차례 술자리를 한 적이 있다. 글의 분위기와 사람이 일치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지 않은데 그는 그 드문 경우에 속한다. 내밀, 음습, 우울, 냉소… 그의 소설에서 연상되는 모든 느낌이 실물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하지만 단 하나, 그는 그리 과묵한 타입은 아니다. 표정이나 동작이 크지 않아서 눈에 잘 뜨이지 않는다 뿐이지 가만 보면 그도 꽤 조곤조곤 이야기하기를 즐긴다. 농담과 진담이 늘 뒤섞여 있어 상대방은 어느 쪽에 보조를 맞추어야 할지 헷갈리곤 한다. 윤대녕이라는 인물을 동물에 비유한다면 ‘해파리’쯤이 아닐까 싶은데, 실례일까?

『미란』을 읽은 감회를 우선 밝히면 그의 기량이 잘 사는 방향으로 ‘제대로 흘러갔다’이다. 『은어낚시통신』 『옛날 영화를 보러갔다』 등을 통해 펼쳐졌던 아스라하고 모호한 노을의 광채, 그 빛나는 문채文彩의 힘이 미란 속에 충만해 있었다. 이 말을 뒤집으면 그의 근작들이 다소 위험했다는 말도 된다. 제법 많이 팔린 『사슴벌레 여자』를 읽었을 때 꽤나 가슴이 답답했었다. 어, 이건 아닌데 하는 심정. ‘작위’의 혐의를 면하기엔 『사슴벌레 여자』가 너무 허약했던 것이다.

미란은 소설의 주인공 연우가 사랑한 두 여자의 이름이다. 첫사랑 오미란과 아내가 된 김미란. 이름이 같다는 사실은 물론 상징이고 암시이며 이 작품의 어떤 모티브이기도 하다. 데자뷰 현상? 그러나 두 여자는 매우, 전혀 대조적인 인간형이다. 범죄와 질병으로 어둡게 살다 죽는 오미란이 생의 그늘을 표상한다면, 김미란은 양지 쪽에서 성취와 쟁취 그리고 집요한 독점욕으로 주인공 연우를 지배하려는 인물상으로 나타난다. 그 한가운데 서 있는 연우는 마냥 흐느적거리지만 결국은 김미란의 사람으로 남는다.

줄거리를 간략히 개관해보면, 군에서 제대한 연우는 무력감 속에 무작정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호텔 바에서 일하는 여급 오미란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불안과 좌절 속에서 방황하는 그녀는 연우에게 닿을 수 없는 거리를 남긴다. 서울로 돌아온 연우는 단지 권태를 벗고자 하는 방편으로 사법고시를 치러 변호사가 된다. 그때 적극적으로 그에게 다가온 또 하나의 미란, 김미란은 당당한 커리어 우먼으로서 그녀의 적극성에 힘입어 두 사람은 결혼에 이른다. 함께 간 신혼여행지의 클럽 메드에서 뜻밖에 오미란과 재회하게 되고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다. 오미란은 14세 때 계모를 살해하고 아버지와 더불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는 처지였다.

이후 과거의 여자 오미란과 결혼한 연우 사이에 벌어지는 숨바꼭질. 가파른 가슴앓이와 연민의 감정을 넘나들며 자잘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 와중에 오미란의 아버지, 김미란의 어머니, 연우의 삼촌과 친구 박윤재 등이 각자 일정한 배역을 해낸다. 소설은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지 결말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연우의 삶이 어떻게 귀결되는지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다음은 소설의 끝 대목.

“내게 주어진 삶은 그렇게 하루하루 변함없이 흘러갔다. 행복의 몇몇 객관적인 조건과 얄팍한 기득권을 야릇하게 즐기며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보여주는 세상의 불행을 왠지 모를 무사와 안도감 속에서 지켜보며 생일상을 받을 때마다 의식적으로 한 번씩 진저리를 쳐가며 서툴게 나이를 먹어갔다. 속내야 어떻든 눈앞에 보이는 것들과 은밀하고 끈끈한 타협의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 한 삶은 결코 호락호락 허락되지 않았다.”

상식인의 삶으로, 타협으로, 김미란의 충직한 남편으캷 연우의 삶은 지리하게 흘러가버린다. 대체로 그런 게 인생의 진실이니까. 두 사람의 미란이 의미하는 바는 작가 후기에 씌어 있다.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불특정 다수가 결국에 동일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 극명하게 대조시킨 오미란과 김미란이 결국은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은 더 나아가 작가 내면에 혼재된 양면성의 표출이기도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느끼지만 윤대녕 소설의 아우라는 줄거리 속에 들어 있지 않다. 끝없이 자성하는 심리의 굴곡이랄까, 이도저도 아닌, 그러나 그래서 특별해지는 고립된 자아의 ‘추억의 아주 먼 곳’에서 그의 문학은 빛을 발한다. 아스라한 문장의 소설, 그러니까 읽기도 역시 아스라하게 읽어야 하는 것이다.

신문 검색을 해보니 언론의 평은 전반적으로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내놓고 맨 그 타령이 아니냐고 한 기사도 있었고, 우회적으로 점잖게 비판한 글(특히 조선일보 김광일 기자)도 꽤 많았다. 짐작건대 작가에 대한 특별한 기대감의 반작용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나는 『미란』을 타락한 삶의 질곡 속에서 순결한 사랑을 갈망하는 현대인의 모순된 내적 정황을 아주 잘 그려낸 수작으로 평가하고 싶다. 그것이 설사 통속과 멜로의 혐의를 지닐지라도 작품은 진부한 도식을 저만치 벗어나 있다. 세속의 논리에 마냥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는 듯하면서도 또한 끝없이 토로되는 연우의 내적 번민 속에서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오히려 연우가 사랑으로 어떤 뜻밖의 결단을 내린다면 그것이야말로 너무 ‘소설적’이지 않았을까.

#미란 #윤대녕
4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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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2012.03.20

글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작가의 분위기가 비슷한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지요. 그래서 더욱더 윤대녕이라는 작가에 대해서 관심이 가게되나 봅니다. 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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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jukaki

2007.11.27

아직 나의레종데르트를 읽지 않았습니다..그런데 그 곳에도 미란이 있었군요
저만의 염력인가요...미란이 읽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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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2007.11.16

윤대녕을 좋아하면서도 아직 그의 장편은 읽어보질 못했어요. 가끔 쓸쓸한 저녁날이면 그의 건조하면서도 무덤덤하고 또 잔잔한 문체가 그리워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가 눈에 띄지 않을뿐, 조곤조곤 얘기를 잘한다는 거... 맞네요. ^^ 이제 [미란]과 [사슴벌레 여자]를 읽을 때가 되었네요, 제게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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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

196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단국대 불문과에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198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원」이 당선되었고, 1990년 [문학사상]에서 「어머니의 숲」으로 신인상을 받아 등단했다. 출판사와 기업체 홍보실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1994년 『은어낚시통신』을 발표하며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 책을 통해 존재의 시원에 대한 천착을 통해 우수와 허무가 짙게 깔린 독특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 후 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떠오르며 '존재의 시원에 대한 그리움'을 그만의 독특한 문체로 그려나가고 있다. 오늘의 젊은예술가상(1994), 이상문학상(1996), 현대문학상(1998), 이효석문학상(2003), 김유정문학상(2007), 김준성문학상(2012)을 수상했다. 2019년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여섯 살 이전의 기억은 전혀 뇌리에 남아 있지 않다는 그의 최초의 기억은 조모의 등에 업혀 천연두 예방 주사를 맞기 위해 초등학교에 가던 날이다. 주사 바늘이 몸에 박히는 순간 제대로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일곱 살 때 조부가 교장으로 있던 학교에 들어갔다. 입학도 안 하고 1학년 2학기에 학교 소사에게 끌려가 교실이라는 낯선 공간에 내던져진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아버지에게 한자를 배웠다. 한자 공부가 끝나면 조부는 밤길에 막걸리 심부름이나 빈 대두병을 들려 석유를 받아 오게 했다. 오는 길이 무서워 주전가 꼭지에 입을 대고 찔끔찔끔 막걸리를 빨아먹거나 당근밭에 웅크리고 앉아 석유 냄새를 맡곤 했던 것이 서글프면서도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독서 취미가 다소 병적으로 변해,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 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가 우연히 '동맥'이라는 문학 동인회에 가입한다. 그때부터 치기와 겉멋이 무엇인지 알게 돼 선배들을 따라 술집을 전전하기도 하고 백일장이나 현상 문예에 투고하기도 했고 또 가끔 상을 받기도 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거의 한 달에 한 편씩 소설을 써대며 찬바람이 불면 벌써부터 신춘 문예 병이 들어 방안에 처박히기도 했다. 대학에 가서는 자취방에 처박혀 롤랑 바르트나 바슐라르, 프레이저, 융 같은 이들의 저작을 교과서 대신 읽었고 어찌다 학교에 가도 뭘 얻어들을 게 없나 싶어 국문과나 기웃거렸다. 1학년 때부터 매년 신춘 문예에 응모했지만 계속 낙선이어서 3학년을 마치고 화천에 있는 7사단으로 입대한다. 군에 있을 때에는 밖에서 우편으로 부쳐 온 시집들을 성경처럼 읽으며 제대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때 군복을 입고 100권쯤 읽은 시집들이 훗날 글쓰기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제대 후 1주일 만에 공주의 조그만 암자에 들어가 유예의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을 투명하게 보려고 몸부림쳤다. 이듬해 봄이 왔을 때도 산에서 내려가는 일을 자꾸 뒤로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뻔한 현실론에 떠밀려 다시 복학했고 한 순간 번뜩,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문학이라는 것을 아프게 깨닫는다. 데뷔 이래 줄곧 시적 감수성이 뚝뚝 묻어나는 글쓰기로 주목을 받은 윤대녕은 ‘시적인 문체’를 지녔다는 찬사를 받는다. 그의 글에서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그만의 시적 색채가 느껴지는 문체가 있어서이다. 동시에 그의 글에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일상을 마치 스냅사진을 찍듯 자연스럽게 포착하여 그려내는 뛰어난 서사의 힘이 느껴진다. 윤대녕은 고전적 감각을 견지하면서 동시에 동시대적 삶과 문화에 대한 예리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들을 지향점을 잃어버린 시대에 삶과 사랑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젊은 세대의 일상에 시적 묘사와 신화적 상징을 투사함으로서 삶의 근원적 비의를 탐색한다. 내성적 문체, 진지한 시선, 시적 상상력과 회화적인 감수성, 치밀한 이미지 구성으로 우리 소설의 새로운 표정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으로『남쪽 계단을 보라』,『많은 별들이 한 곳으로 흘러갔다』,『대설주의보』를 비롯해 장편소설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추억의 아주 먼 곳』,『달의 지평선』,『코카콜라 애인』, 『사슴벌레 여자』, 『미란』 등을 발표했다. 산문집 『그녀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것들』, 『누가 걸어간다』, 『어머니의 수저』,『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