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2003년쯤, 20세기와 21세기를 걸치는 시대를 ‘여러분은 21세기의 주역’ 소리를 어릴 때부터 들으면서 자라왔던 세대 중 누군가는, 21세기의 주역이 되기 위한 조건 중 하나였던 프로라는 개념에 소설로써 반기를 듭니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9.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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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반짝하고 끝날 것 같았던 어느 TV 개그프로그램의 유행어는 꽤 오랫동안 잔향을 일으켰습니다. 누구나 농반진반으로 이 유행어를 씁니다. ‘프로페셔널’이라는 단어가 21세기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훈장이 되는 것과 동시에 아마추어는 그 반대편의 어휘로 남고, 그 간극은 이제 개그와 유행어의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어느새 많은 이들의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한 이 프로라는 개념에 도전했던 소설이 있었습니다. 2003년쯤, 20세기와 21세기를 걸치는 시대를 ‘여러분은 21세기의 주역’ 소리를 어릴 때부터 들으면서 자라왔던 세대 중 누군가는, 21세기의 주역이 되기 위한 조건 중 하나였던 프로라는 개념에 소설로써 반기를 듭니다. 그 한 소년은 박민규라는 소설가이고, 그가 남긴 작품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입니다.

 

 

한국, 80년대, 프로야구.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다루는 주제는 제목이 말해주듯 프로야구입니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1983년 프로야구 출범과 동시에 시작했던 원년 야구 구단입니다. 동대문 운동장에서 벌어지던 고교 야구가 큰 인기를 끌던 시절, 마침내 출범한 전국 연고 체제의 프로야구는 마땅한 오락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큰 호응을 얻으면서 국민 스포츠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그 한편에는 정치적 의도 또한 없지 않은 것이 80년대의 한국 프로야구였습니다. 비민주적 절차에 의해 권력을 얻은 군사독재정권은 언제나 그렇듯이 민생 안정과 번영을 기치로 삼았고, 불법적인 권력 획득에 따르는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빵과 서커스’ 제공에 몰두했습니다. 일련의 해프닝으로 끝난 ‘국풍 81’과 같은 사건도 있었지만, 그중 특히 의혹의 눈초리를 받는 것은 바로 프로야구였습니다.

소설은 바로 그 지점부터 시작되는 프로야구를 주제로 이야기의 서두를 풀어나갑니다. 그렇기에 소설은 어떤 의미에서 80년대의 미시사를 정통으로 다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굵직한 정치적 사건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소설은 단지 83년의 프로야구 출범과 그 배경 언저리를 이야기하면서 83년의 미시사를 건드립니다. 한국의 80년대에 프로야구를 다룬다는 뼈대만으로도 소설은 일련의 역사성을 띱니다.


 

그것도 야구가 아닌 ‘프로’ 야구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원년 프로야구의 처절한 꼴찌였던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팀을 다룹니다. 주인공과 친구는 인천에 살았고, 그랬기에 당연히 유년 시절의 꿈을 삼미 슈퍼스타즈와 함께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우상이 된 삼미는 야구 성적으로만 친다면 정말 초라한 구단이었습니다. 삼미의 통산 승률은 약 0.1대였습니다. 열 번의 경기에서 한 번을 이겼다는 거지요.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불세출의 대 OB베어스 38연패(지금의 두산베어스) 덕분에 인천 지역에서는 OB맥주가 팔리지 않았던 기현상도 있었습니다. (저도 부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어른들이 크라운맥주를 주문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 재킷을 입으면 놀림감이 되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주인공을 훌륭한 조직에 몸담으라는 압박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좋은 줄을 타야 한다는 강박 속에 주인공은 명문대에 입학하고, 대기업에서 근무합니다. 그러나 그조차도 안정적이진 않았습니다. IMF로 인한 구조조정, 아내와의 이혼 끝에 주인공은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고 그런 그의 앞에 옛 친구는 돌아와 이야기합니다. 삼미 슈퍼스타즈 팬클럽을 다시 만들자고.

박민규 (1968~ )

 

두 사람은 ‘프로’의 기원을 생각합니다. 애초에 한국인들 스스로가 만든 개념이 프로는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프로야구가 등장한 이래, 알게 모르게 우리는 프로가 되어야 한다는 이름 모를 강박에 사로잡혔습니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프로는 동경의 대상, 아니 동경의 대상을 넘어 반드시 되어야만 할 인간의 롤 모델이 되고 말았습니다. 90년대를 주름잡았던 광고 카피,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로 대변되는 프로 지상주의는 지금까지도 유효합니다.

그런 주인공과 친구의 입장에서 삼미 슈퍼스타즈는 새롭게 태어납니다. 모두가 프로라는 이름을 향해 달려갈 때, 삼미는 프로가 아닌 야구를 합니다. 프로야구, 오직 승리와 돈을 위해 말 그대로 프로처럼 뛰는 야구 대신 삼미는 하고 싶은 야구를 합니다. 소설의 표현대로라면 ‘잡기 싫은 공은 잡지 않는다.’입니다. 가끔은 만루 수비 상황에서도 알을 까고, 득점 찬스에서 헛방망이질을 해도 그게 과연 잘못되고 욕먹을 일인지를 되묻습니다. 적어도 프로가 아니라면, 삼미의 플레이는 비난받기 어려웠습니다.

소설은 이때부터 오히려 극단으로 치닫기 시작합니다. 프로야구라는 살벌한 경쟁의 장에서 삼미는 마치 순교자처럼 프로가 아닌 야구를 보여주었고, 그런 삼미의 장렬한 모습을 추종하는 이들이 생겨납니다. ‘삼미교’쯤 될 법한 이 새로운 흐름을 통해 주인공과 친구는 삶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소설은 끝을 맺습니다.


 

우리는 근본에 대한 질문을 잊고 산다. 아니 잊어버리려 한다.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우리가 쉽게 지나치고 살아가지만, 실상은 우리 삶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흐름 하나를 짚어 내면서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전합니다. 아무도 모르는 새에 우리는 프로라는 굴레를 쓰고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눈 가린 마차 말 신세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자본 이윤의 경향적 저하가 이루어지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프로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뭉쳐 오늘도 이상한 자기계발에 열을 올리고, 하고 싶지 않은 일에 시간을 투자합니다. 생각을 고쳐먹고 바라보면 정말 이상한 이 현상에 그러나 아무도 의문을 던지지 않았고, 소설은 바로 그 빈 공간을 찔러 들어오기에 독자의 심경은 아득합니다.

소설 말미에 주인공과 친구들, 일본의 ‘삼미교’ 신도들이 모여서 벌이는 삼미스러운 야구 시합은 소설이 제시하는 프로 없는 세상의 모델을 제시합니다. 투수의 공이 아무리 훌륭하고 가운데에 쏠렸어도 치고 싶지 않다면 치지 않고, 외야수 플라이 볼이 높게 뜨더라도 햇살이 눈 부셔서 하늘을 보기 싫다면 잡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야구의 세상입니다. 아무런 압박 없이 그저 던지고 치고 달리며 즐기는 야구, 그들이 만드는 새로운 스포츠는 그렇습니다.


 

놀이하는 인간, 인간의 본질이자 특징

인류학자 호이징가는 저서
『호모 루덴스』에서 놀이하는 인간이야말로 다른 종과 인간을 구별 짓는 특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놀이란, 생물의 모든 행동 중 특별한 이익이나 가치를 생산하지 않으면서도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활동을 의미합니다. 호이징가는 이 ‘호모 루덴스’의 개념을 통해 예술 활동과 스포츠와 같은 인간만이 가진 특징들의 근원을 짚어낸 바 있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주장하는 바 또한 호이징가의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부터 삶은 삶이 아닌 프로가 되기 위한 방법론이자 수단이 되었고, 우리는 놀이하는 방법을 잊고 살아갑니다. 놀이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아니라, 프로가 되는 만족감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호모 루덴스라 규정되는 종의 특징에서 벗어나는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혹자는 이를 가리켜 진화라고 하겠고, 혹자는 이를 가리켜 동물과 다를 바 없다고 하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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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아하고 고고한 이미지가 되어버린 책 읽기가 어느 날부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어디 가서 취미가 책 읽기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책보다 좋은 것은 먼지 날리는 시골 비포장도로에서 하루 두 번 오는 버스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는 나이가 좀 더 들고 감성과 지성이 경륜으로 불릴 쯤이 되면 포크 가수로 전업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삼미 슈퍼스타즈
5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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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3

표지도 그렇고 발상도 재미잇고 제목도 재미있고 함 읽어봐야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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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6

재미있는 발상(?)이네요. 잊었던 것을 의미를 되살려 알게 하시네요.
책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언제가 기회되면 읽어보리라 생각해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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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31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라서 반갑습니다...위트가 넘치는 박민규의 글이 매혹적이었습니다...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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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1968년에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지구영웅전설」로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한 직후,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제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 일약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박민규는 30편의 단편을 신춘문예에 지원했지만 예심을 통과했던 것은 「카스테라」뿐이었는데, 등단 후 예전에 신춘문예에 떨어진 작품들이 주요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고 감회를 밝혔다. 소설집 『카스테라』, 『더블』, 장편 소설 『핑퐁』,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등을 썼다. 그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어릴 때부터 학교 가기가 싫었다. 커서도 학교 가기가 싫었다. 커닝을 해 대학에 붙긴 했지만 여전히 학교 가기가 싫었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먹고 살기가 문학보다 백 배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회사 가기가 좋을 리 없었다. 해운회사, 광고회사, 잡지사 등 여러 직장을 전전했다.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불현듯, 소설이 쓰고 싶어졌다. 직장 생활을 접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꼴에 『지구영웅전설』로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쉬엄쉬엄 밴드 연습도 하며, 밥 먹고 글 쓰고 놀며 나무늘보처럼 지내고 있다. 누가 물으면, 창작에 전념한다고 얘기한다. "말로는 뭘 못해"라고 모두를 방심시킨 후, 정말이지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는 '키치'를 지향하는 듯한 표지나 떠벌떠벌대는 작가의 문체에서 가벼운 유쾌함을 얻을 수 있지만, 곱씹어 보는 뒷맛은 꽤 씁쓸한 작품이다. "주변인들"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경쟁과 죽음을 부추기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풍자로 이어진다. 그가 기억하는 1982년은 "37년 만에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고, 중·고생의 두발과 교복자율화가 확정됨은 물론, 경남 의령군 궁유지서의 우범곤 순경이 카빈과 수류탄을 들고 인근 4개 마을의 주민 56명을 사살, 세상에 충격을 준 한해였다. 또 건국 이후 최고경제사범이라는 이철희·장영자 부부의 거액어음사기사건과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일어난 것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고, 팔레스타인 난민학살이 자행되고, 소련의 브레즈네프가 사망하고, 미국의 우주왕복선 콜롬비아호가 발사되고, 끝으로 비운의 복서 김득구가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벌어진 레이 '붐붐' 맨시니와의 WBA 라이트급 타이틀전에서 사망한 것도 바로 그해의 일이었다." 이런 시대에 '삼미슈퍼스타즈'가 1982년, 프로야구의 출범과 함께 탄생했다. '어려운 공은 치지 않고 잡기 어려운 공은 포기하는' 만년 꼴찌 팀이었던 삼미슈퍼스타즈를 통해 80년대 우리 모두는 피해자였으며 또한 꼴찌였다는 말을 풀어낸다. 『지구영웅전설』에 대해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남진우씨는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가, 라는 매우 묵직한 주제를 만화라는 대단히 가벼운 양식을 차용해 천착한 작품이다. ”라고 평한다. 슈퍼맨의 친구라고 주장하는 ‘내’가 이끌어가는 만화 같은 이 소설은 세계 유일의 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미국을 비판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무역기구(WTO)를 앞세운 경제 통제, 세계경찰을 자임하며 미국식 정의를 강요하는 독선 등이 그 비판의 대상이다. 『카스테라』는 2003년 여름부터 2005년 봄까지 각종 문예지에 발표한 글들을 모은 단편집으로 전생에 훌리건이 아니었을까 의심스러운 냉장고 이야기, 링고 스타와 함께 버스를 타고 떠나는 우주여행 등 특유의 만화적 상상력이 넘실대는 단편 열 편이 실려있다. 이 책에서 소설가 이외수는 “대한민국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신선하고 충격적인 사건 하나를 지목하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박민규라는 작가의 출현을 지목하겠다.”라는 추천평을 남기기도 했다. 『누런 강 배 한 척』([문학사상], 2006년 6월)은 노년의 묵중하고 허허로운 시선을 잘 빚어낸 작품이다. 생의 주변을 정리하고 똑같은 생의 반복이 무서워 스스로 자살하려고 여행을 떠나는 화자의 심정이 고요한 묵상의 표현으로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박민규식 농담이 실존적 내면 풍경의 진지함으로 착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8년 12월부터 6개월간 인터넷 서점 YES24에 연재한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외모 경쟁에서 뒤떨어진 여성들, 나아가 늘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이 시대 모든 여성들을 위한 일종의 연서이다. 또한 이 소설은 인간을 이끌고 구속하는 그 ‘힘’에 대한 문제제기다. 부를 거머쥔 극소수의 인간이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에 군림해 왔듯이, 미모를 지닌 극소수의 인간들이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를 사로잡아온 역사, 결국 극소수가 절대다수를 지배하는 시스템 오류에 대한 지적이다. 그는 이 작품을 내놓으면서 “저는 늘 스펙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경쟁력 없이 살 수밖에 없는 대다수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가 남자들을 위한 소설이었다면, 이번 소설은 여자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라고 얘기하기도 하였다. 말기 암 판정을 받은 40세 독신남의 귀향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 「근처」로 그는 2009년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심사위원들로부터 '작가 박민규라는 맥락에서 볼 때 의미 있는 변화의 표지'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또한,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삶의 문제성을 근원적인 생명의 가치에 대한 파격적인 해석을 통해 새롭게 형상화하고 있는 단편 「아침의 문」은 2010년 제34회 이상문학상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죽음과 삶의 영역이 궁극적으로 생명의 탄생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귀결되는 과정은 매우 극적이며, 이것은 사소한 일상의 테두리에 얽혀 있는 소설의 침체를 벗어나기 위한 작가적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