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CEO인터뷰]③ “현명한 경영자는 불황이라도 소를 팔지 않는다” - 김종식 커민스 코리아 대표이사 사장
김종식 커민스 코리아 대표이사 사장(커민스 아시아 총괄본부장)은 눈에 확 띈다. 잘생긴 외모도 그렇지만, 잘 다듬어진 은발이 인상적이다.
2009.05.13
김종식 커민스 코리아 대표이사 사장(커민스 아시아 총괄본부장)은 눈에 확 띈다. 잘생긴 외모도 그렇지만, 잘 다듬어진 은발이 인상적이다. 은발이 주는 이미지가 그렇듯, 현자(賢者)의 풍모도 풍긴다. 그런 풍모가 허투루 새겨진 것은 아닐 터. 그것은 그가 쌓아온 세월의 흔적이다.
인사 잘하는 것, 그가 가장 잘하는 것이었다. 직장 커리어는 그렇게 시작됐다. 재빠른 두뇌 회전과 탁월한 능력보다 그를 가장 두드러지게 한 것은 ‘관계’였다. 인사성 밝은 만큼 성실했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했다. 타인의 마음을 읽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래서 지금의 위치까지 온 그를 관통하는 열쇳말은 ‘배려 리더십’이다.
그는 어떤 문제에 부딪혀서도 억지로 풀려고 하지 않았다. 인간적인 신뢰는 모든 비즈니스의 원천이라고 봤다. 원활한 소통도 결국 신뢰에서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그는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한다. 다른 나라에서 일해온 경험 덕분일까. 그는 다른 나라 사람을 만나고 다른 나라에서 일을 할 때, 문화적 배경을 중요하게 여긴다. 인류의 공통점도 있겠지만, 작은 차이라도 알고 인정하는 것, 그것이 서로를 배려할 수 있는 첫걸음이라고 여긴다.
커민스 코리아는 몇몇 인상적인 기업문화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준비된 인재를 뽑지 않는다. 대신 인재를 직접 만든다. 말하자면, 처음부터 학벌 좋고 스펙 훌륭한 사람을 뽑기보다는 인성과 성실함을 먼저 엿보고 함께 일할 사람을 뽑는다. 세공된 다이아몬드를 찾는 것이 아니라 원석을 골라 그것을 세공하는 것. 스스로 인재라고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인재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시스템. 인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말, 커민스 코리아는 그 말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들은 상호간에 높임말을 쓴다. 직위나 직급에 상관없다. 사장이라도 예외는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 하대를 하지 않는다. 커민스 코리아의 유일한 룰이라면 룰이다.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할지 몰라도,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 그것은 일을 잘할 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디젤엔진 전문기업인 커민스 코리아의 문화는 서로 그렇게 존중과 배려를 주축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 중추에 모터사이클 타는 CEO, 김종식 사장이 있다. 청바지에 가죽 재킷, 은발의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나이 50이 넘어 마음처럼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열정이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어 시작했다는 모터사이클. 누군가는 그렇게 위험한 것을 왜 하냐고 물을지 몰라도, 삶은 원래 위험한 것이 아니었던가. “인생은 주어진 것이 아닌 만들어 가는 도전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모터사이클은 하나의 리트머스 시험지였고, 그것을 무사히 통과한 그는 지금도 달리고 있다.
그런 그를 만나서 도전과 배려의 이야기를 들었다. 기업 경영의 철학과 삶에 대해,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멘토가 되고 싶은 그의 바람까지.
박사 과정을 마친 뒤 산업계로 가겠다는 결심을 한 이유가 있었는지. 비즈니스 분야에서 인생의 승부를 걸겠다는 생각을 애초부터 하면서 공부를 했던 것인가.
보통 그런 경우, 교수나 연구원을 많이 하는데, 나는 좀 달랐다. 학위나 개념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인 것, 실제 산업계에서 적용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었다. 당시 한국의 중화학공업이 한창 뜨는 시기였던 것도 동기 부여가 됐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다보니, 실용적으로 된 면도 있다. 산업계는 새롭고 실용적인 것을 만들어내고 그러지 않나. 경영에도 관심이 있었고.
첫 직장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커민스에 입사해 ‘10년 안에 디렉터급으로 승진해 부서 리더가 되자’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목표를 이뤘다. 목표를 이루게 한 가장 강력한 요인을 따진다면.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지만, 본사에 들어가 보니 외국인, 그것도 동양인에게 뭘 갖고 점수를 줄까, 답이 안 나오더라. 그래서 동양의 미덕인 성실함에 초점을 맞췄다. 중앙연구소에서 프로젝트가 끝난 뒤, 보통 리포트 제출을 않더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포인트인데, 안 하는 게 이상하더라. 그래서 귀찮아도 주말에 부지런하게 리포트 작업을 했다.
그런데 이것을 위에서 굉장히 눈여겨봤더라. 당시 미국 동료들은 ‘그것을 왜 하느냐?’ 하는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 우직하게 (리포트를) 한 것이 커리어에 도움이 됐다.
인사를 잘하는 것부터 시작한 직장 생활 전략도 재미있더라. 지금의 여느 회사에서도 그건 통할 것 같고. 직장 생활 잘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고, 팁이 더 있나?
인사도 그렇다. 성실함이나 부지런함 외에 호감을 도출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다. 돈 안 드는 게 인사다. 또 서양은 기계적인 인사를 하는 데 반해, 우리는 존경이 드러나는 인사를 하지 않나. 몸으로 때운 거다. 미국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 안 했을 거다. (웃음)
(미국인에 비해) 가지지 못한 것이 많지만, 그런 것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뜻밖의 좋은 결과를 낳더라. 상사가 외국인이지만, 성실함이나 인사 등과 같은 것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겸손함을 바탕으로 한.
직장 생활 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 시간이 가면 누구나 일은 잘한다. 일 잘하는 것으로 승부를 거는 것은 잘못이다. 태도는 못 고친다. 그건 타고나는 것 같다. 일이 많을 때, 불만을 내뱉는 직원도 있다. 그것을 어떻게 하면 빨리 할까 고민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태도다. 윗사람의 불만은 자기 문제인 경우가 많다. 일 잘하는 스킬보다는 애티튜드가 중요하다. 태도가 나쁜데 일을 잘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CEO 되는 건 어렵다.
87년 트럭엔진 개발 프로젝트를 할 때, 다양한 인종과 성이 모여 일어난 충돌을 해결했던 일화가 흥미로웠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가 체화된 것이 아닌가 싶었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자세와도 연관돼 있지 않나 싶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어디에 중점을 두나?
당시 (프로젝트를 할 때) 그런 의식이 뚜렷하진 않았다. 인도, 여자, 외부 컨설턴트, 유대인 등이 모인 와중에 동양인이 리더였는데, 이거 잘못하면 산으로 가겠더라. 그래서 그 사람들을 인종이나 성으로 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직원으로. 선입견이 들어가지 않도록, 의식하지 않도록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사람들을 만날 때 나이나 학교에 관심을 안 둔다. 그걸 아는 순간부터 인위적으로 바뀌니까. 오래 지낸 사이라도 나이를 묻지 않는다. 그건 관심 없는 게 아니다. 선입견을 안 가지고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나이나 학교 같은 것을 묻지 않으면 관계를 넓게 가져갈 수 있다.
무엇보다 그는 ‘관계’에 집중한다. 서열과 권력에 집중하는 여느 남성들과 달리, 마음을 얻고자하는 일에 더 많은 신경을 썼다. 의도한 것은 아닐지라도, 관계의 매듭을 푸는 것이 기업의 성과로도 연결된다는 것을 그는 자연스럽게 체화한 셈이다. 그래서 직원들과의 관계도 이런 관계중심의 입장에서 풀고자 노력했다. 제대로 된 기업문화를 만드는 것이 결국은 기업을 제대로 설 수 있게 만든다. 성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후행적 결과다. 그는 직원들에게 멘토 노릇을 하면서 그들을 도와주는 일을 즐겁고 보람 있는 일로 생각한다.
CEO로서 회사가 직원들을 위해 어떤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선호하는 인재상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건, (직원들이) 학연이나 지연과 같은 인위적인 것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우리 회사는 그런 문화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직원들의 학교를 물으면 20~30%밖에 못 맞힐 거다. 그런 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다. (웃음)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들에겐 근무 시간에 융통성을 발휘하기 위한 ‘플렉서블 타임(flexible Time)’을 준다. 직원들이 고마워하더라. 우리는 특화된 산업이라, 우수 직원을 뽑지 못한다. 그래서 강호에서 성실한 직원을 모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좋은 교육과 시간을 주면, 우수한 직원이 된다.
우리는 학벌을 따져 인재를 뽑지 않는다. 그럴 여력도 없고, 흥미도 없다. 진짜 재미는 자신이 우수한 인재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멘토링과 코칭을 통해 (우수한 인재로) 변화되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도, 회사도 즐거워진다. 인터뷰할 때 성실을 가장 중요하게 보고, 기본이 튼튼하면 다이아몬드 될 수 있는 원석 같은 사람을 뽑는다.
직원들의 업무 자질과 글로벌 마인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배양하는 일에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좋은 일터’ 만드는 일에 매진했다. ‘종업원이 OK할 때까지’라는 ‘종업원 만족’을 우선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했다. 이런 환경을 만든 동기나 이유가 있다면. 또 어떤 기업문화를 만들려고 하나.
지난 3년 동안 직원 만족도가, 작년에는 90%가 넘었고, 85%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본사를 포함해 글로벌 평균치가 30% 안팎인데, (직원 만족도가) 왜 이렇게 높으냐고 놀란다. 직원들이 존중받고 있다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신분이나 직위에 관계없이 존중받는 그런 문화. (직원들에게) 자유도 많이 주고자 한다. 유일하게 자유를 주지 않는 룰이 있다면, (회사 내에서) 누가 됐든 상호 간에 존칭을 쓰도록 한다. 나도 모든 직원들에게 존칭을 쓴다.
작은 것 같아도 직원들이 만족할 수 있는 문화적 요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문화가 다듬어지면서 기업이 발전하고 있다는 기분도 좋고. 경조사도 자유롭게, 눈치 안 보면서 갈 수 있도록 한다. 직장과 가족 사이의 밸런스를 지키게끔 만들어 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서 아이가 운동회를 하면 반드시 가라고 한다. 직원 만족이 어마어마한 게 아니다. 융통성을 가지게 할 수 있는 것, 그런 게 3배의 차이를 낳기도 한다.
스스로 정한 룰이 있다. 75% 룰. 75%는 직원들 말을 듣고 25%는 내 생각을 보탠다. 전략, 행정, 인사, 고객관리 등에서 이것을 적용하면, 4건 중 3건이 맞을 것이다. 믿음과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직원들이 만족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리더십에 대해 “궁극적으로 조직원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고 했다. 비즈니스의 핵심도 결국 마음을 얻는 것이 아닌가 싶다. 중국 합작법인 운영과 관련, 공산당 서기에게 보인 사려 깊음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런 면에서 ‘배려 리더십’은 윈-윈 할 수 있는 좋은 전략 같은데.
중국 합작법인의 경우, 배려가 원래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웃음) 역사적으로나 봐도 그렇지 않나. 중국 사람이 한국 사람을 존중할 이유가 없는 거다. 그 사람 마음을 얻는 게 숙제더라. 방법을 생각해보니 내세울 게 없었다. 중국말도 못하고. 코리아 프리미엄은커녕 디스카운트밖에 없고. 이해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잘 듣고 직원들을 파악해서 접근해야겠더라. 생존 위해서 한 것이 상대방의 이해를 받은 셈이 됐다.
한국 고객들의 해외사업 진출과 확장 과정에서 커민스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고객의 비즈니스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말하자면, 국가경제 차원에서 기여를 하고 있는데,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엔진을 수입해서 이를 국내 고객들 제품이나 장비 등에 얹는데, 이것이 다시 수출되고 있다. 그렇게 수출 성장에 기여한 건 사실이다. 전 세계를 상대로 국내 고객들의 세계 진출을 돕고 있는 셈이다.
또 ‘엔진은 곧 공해’라는 인식이 강한데, 우리는 오히려 공기를 정화시키는 환경친화적인 엔진을 판매하고 있다. 환경친화제품의 수출을 통해 국력 향상은 물론 환경보호에도 이바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에 자부심이 크다. 보람이다. 직원들도 국가경제 기간산업의 수출에 이바지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중국에서의 소임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커민스 본사의 최고기술 임원의 후계자 자리를 거절하고, 한국행을 결정했다. 좋은 자리를 박차고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가 있었나.
책에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당시 큰 아들을 잃었다. 아내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가정을 위해서 내 커리어를 우선순위에서 배제했다. 가정적인 이유였다고 보면 된다.
젊은 직원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위해 살았나’보다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떻게’ 살라고 말해주고 싶은가.
국제무대에서 보면 우리는,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냉정하게 보면 내세울 것이 없다. 서울대를 나온들, ‘그게 어쨌다고(So What)?’라는 말밖에 못 듣는다. 한국에서는 그것을 알아줄지 몰라도, 밖에선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하우(How)’다. ‘하우’는, 존경받을 만한 행동을 했는가와 같은 행동 규범이나 성실함이다. 리더로서 성질이 급하다거나 상대방에게 짜증을 낸다든가 하면 존경을 못 받는다. 자기 극기가 필요하다.
또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 경청. 우리는 남의 문화에 대해서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점은 밖에 나가서 취약점이 된다. 진실된 마음이 아니면 금방 들통 난다. 다른 문화를 뛰어넘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의 생은 시도와 실수’의 반복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가장 기억나는 시도와 실수가 있다면.
아, 이런 일이 있었다. 중국법인의 사장을 할 때다. (중국) 이름이 어려워서 영어 이름을 가지자고 제의했다. 한국에서는 그 시도가 성공했다. 별 생각 없이 그렇게 했는데, 큰 반발을 샀다. 과거 조선 시대 단발령처럼 (중국식) 이름에 대한 강한 집착이 있었다. 문화적 무지에서 온 것이었던 거지. 편리함을 생각해서 그렇게 했는데, 문화적 저항감에 부딪힌 거다. 그러니까, 다른 나라를 생각할 때 문화를 먼저 알아야 한다. 언어는 몰라도 되는데, 문화의 깊이에 대해서는 숙고가 필요하다.
또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 사람 앞에서 직원들을 야단치는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여러 사람 앞에선 비판적으로 얘기했다 싶으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고 보듬어 줘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그는 취미생활로 모터사이클을 탄다. 한국에선 쉽지 않은, 시선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취미다. 그저 흘려듣고 말 우스개지만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남자가 엄마에게 말해선 안 되는 세 가지. 하나, 나 사람 죽였어. 하나, 나 남자가 좋아. 하나, 나 오토바이 타. 더구나 그는 오십이 넘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재확인하고 즐기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예전에 가수 김광석도 예순 넘어서도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그 역시 스스로를 갱신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인 것 같다. 끊임없이 진화하고 도전하길 즐기는 그런 사람.
멋진 취미 생활을 하고 있다. 모터사이클을 취미로 가진 즐거움이 있다면. 말하자면, 모터사이클 예찬이랄까.
오십 대에 들어서니, 스스로 보수적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수적이란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도전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느낌 같은 거. 그래서 내 자신을 테스트하기 위해 모터사이클을 택했다. 어릴 때부터의 꿈은 아니었고. (웃음)
사실 모터사이클을 타겠다고 하면 한국의 아내들은 결사반대지. 반대 안 하면, 그게 이상한 거고. 그걸 넘어야 한다. 남들 다 말리는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도전 의식도 생기더라. 모터사이클을 타는 동안 세 번을 바꿔 지금의 모터사이클을 타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도전도 있었고, 그걸 이겨나가는 것을 즐겼다. 아내도 그렇게 반대하다가 지금은 뒤에 타기도 한다.
개인적 목표가 65세까지 용평스키장의 최상급 슬로프에서 스키를 타고, 70세까지 모터사이클을 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려면 건강이 중요한데, 평소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나.
해외 출장이 잦아서 체계적인 건강 관리는 하기 힘들다. 그래서 차를 타고 가다가 짬이 나면, 중간에 차에서 내려 걷는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거지. TV를 볼 때, 훌라후프나 아령과 같은 운동을 하기도 한다.
2~3권의 책을 내 다른 문화권에서 CEO를 수행하며 받았던 도전과, 좌절?실패의 경험에서 배운 것을 젊은이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집필은 잘 되나? 언제쯤 책을 낼 계획인가.
5월에 출간될 것 같다. 지금 단?에선 배운 것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누려고 보니, 책 쓰는 게 제일 좋겠다 싶었고. 미래의 리더가 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미래의 청사진을 짜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멘토가 별로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 젊은이들이 더 넓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코치와 멘토의 역할이 아니겠나. 내 경우에는 인생이 어떻고, 어떤 일과 분야가 있더라, 등과 같은 선생이나 선배가 없어서 아쉬웠다.
책은 어떤 장르나 종류를 즐겨 읽는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다양한 장르의 책을 좋아한다. 그중에서 역사를 좋아한다. 역사에서 배우는 리더십도 좋고. 중국과 서양의 고전을 보면서 배운다.
작금의 세계경제 상황이 여전히 좋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어떤 자세와 철학으로 기업 경영에 나서야 하고 개인의 삶을 어떻게 컨트롤해야 좋을지 한 말씀 부탁한다.
경영인으로서는 이런 우화가 어떨까 싶다. 한 농부가 소 두 마리를 키우면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불황이 와서 한 마리를 팔고 현금화했다. 나머지 한 마리로 농사를 지었는데, 두 마리로 할 것을 한 마리가 하다 보니, 그 소도 결국 힘들어 죽었다. 현명한 경영자라면 암놈과 수놈으로 바꿔서 불황이라도 새끼를 낳게 할 거다. 먹이를 줄이더라도 애정과 정성으로 돌보면, 소는 결국 세 마리가 된다. 결론적으로 한 사람은 빈 깡통, 한 사람은 세 마리가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상황일수록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반드시 이 불황은 끝난다는 희망과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역사적인 증명이니까. 어떤 불황이든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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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잘하는 것, 그가 가장 잘하는 것이었다. 직장 커리어는 그렇게 시작됐다. 재빠른 두뇌 회전과 탁월한 능력보다 그를 가장 두드러지게 한 것은 ‘관계’였다. 인사성 밝은 만큼 성실했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했다. 타인의 마음을 읽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래서 지금의 위치까지 온 그를 관통하는 열쇳말은 ‘배려 리더십’이다.
그는 어떤 문제에 부딪혀서도 억지로 풀려고 하지 않았다. 인간적인 신뢰는 모든 비즈니스의 원천이라고 봤다. 원활한 소통도 결국 신뢰에서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그는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한다. 다른 나라에서 일해온 경험 덕분일까. 그는 다른 나라 사람을 만나고 다른 나라에서 일을 할 때, 문화적 배경을 중요하게 여긴다. 인류의 공통점도 있겠지만, 작은 차이라도 알고 인정하는 것, 그것이 서로를 배려할 수 있는 첫걸음이라고 여긴다.
커민스 코리아는 몇몇 인상적인 기업문화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준비된 인재를 뽑지 않는다. 대신 인재를 직접 만든다. 말하자면, 처음부터 학벌 좋고 스펙 훌륭한 사람을 뽑기보다는 인성과 성실함을 먼저 엿보고 함께 일할 사람을 뽑는다. 세공된 다이아몬드를 찾는 것이 아니라 원석을 골라 그것을 세공하는 것. 스스로 인재라고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인재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시스템. 인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말, 커민스 코리아는 그 말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들은 상호간에 높임말을 쓴다. 직위나 직급에 상관없다. 사장이라도 예외는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 하대를 하지 않는다. 커민스 코리아의 유일한 룰이라면 룰이다.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할지 몰라도,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 그것은 일을 잘할 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디젤엔진 전문기업인 커민스 코리아의 문화는 서로 그렇게 존중과 배려를 주축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 중추에 모터사이클 타는 CEO, 김종식 사장이 있다. 청바지에 가죽 재킷, 은발의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나이 50이 넘어 마음처럼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열정이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어 시작했다는 모터사이클. 누군가는 그렇게 위험한 것을 왜 하냐고 물을지 몰라도, 삶은 원래 위험한 것이 아니었던가. “인생은 주어진 것이 아닌 만들어 가는 도전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모터사이클은 하나의 리트머스 시험지였고, 그것을 무사히 통과한 그는 지금도 달리고 있다.
그런 그를 만나서 도전과 배려의 이야기를 들었다. 기업 경영의 철학과 삶에 대해,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멘토가 되고 싶은 그의 바람까지.
박사 과정을 마친 뒤 산업계로 가겠다는 결심을 한 이유가 있었는지. 비즈니스 분야에서 인생의 승부를 걸겠다는 생각을 애초부터 하면서 공부를 했던 것인가.
보통 그런 경우, 교수나 연구원을 많이 하는데, 나는 좀 달랐다. 학위나 개념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인 것, 실제 산업계에서 적용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었다. 당시 한국의 중화학공업이 한창 뜨는 시기였던 것도 동기 부여가 됐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다보니, 실용적으로 된 면도 있다. 산업계는 새롭고 실용적인 것을 만들어내고 그러지 않나. 경영에도 관심이 있었고.
첫 직장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커민스에 입사해 ‘10년 안에 디렉터급으로 승진해 부서 리더가 되자’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목표를 이뤘다. 목표를 이루게 한 가장 강력한 요인을 따진다면.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지만, 본사에 들어가 보니 외국인, 그것도 동양인에게 뭘 갖고 점수를 줄까, 답이 안 나오더라. 그래서 동양의 미덕인 성실함에 초점을 맞췄다. 중앙연구소에서 프로젝트가 끝난 뒤, 보통 리포트 제출을 않더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포인트인데, 안 하는 게 이상하더라. 그래서 귀찮아도 주말에 부지런하게 리포트 작업을 했다.
그런데 이것을 위에서 굉장히 눈여겨봤더라. 당시 미국 동료들은 ‘그것을 왜 하느냐?’ 하는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 우직하게 (리포트를) 한 것이 커리어에 도움이 됐다.
인사를 잘하는 것부터 시작한 직장 생활 전략도 재미있더라. 지금의 여느 회사에서도 그건 통할 것 같고. 직장 생활 잘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고, 팁이 더 있나?
인사도 그렇다. 성실함이나 부지런함 외에 호감을 도출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다. 돈 안 드는 게 인사다. 또 서양은 기계적인 인사를 하는 데 반해, 우리는 존경이 드러나는 인사를 하지 않나. 몸으로 때운 거다. 미국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 안 했을 거다. (웃음)
(미국인에 비해) 가지지 못한 것이 많지만, 그런 것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뜻밖의 좋은 결과를 낳더라. 상사가 외국인이지만, 성실함이나 인사 등과 같은 것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겸손함을 바탕으로 한.
직장 생활 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 시간이 가면 누구나 일은 잘한다. 일 잘하는 것으로 승부를 거는 것은 잘못이다. 태도는 못 고친다. 그건 타고나는 것 같다. 일이 많을 때, 불만을 내뱉는 직원도 있다. 그것을 어떻게 하면 빨리 할까 고민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태도다. 윗사람의 불만은 자기 문제인 경우가 많다. 일 잘하는 스킬보다는 애티튜드가 중요하다. 태도가 나쁜데 일을 잘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CEO 되는 건 어렵다.
87년 트럭엔진 개발 프로젝트를 할 때, 다양한 인종과 성이 모여 일어난 충돌을 해결했던 일화가 흥미로웠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가 체화된 것이 아닌가 싶었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자세와도 연관돼 있지 않나 싶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어디에 중점을 두나?
당시 (프로젝트를 할 때) 그런 의식이 뚜렷하진 않았다. 인도, 여자, 외부 컨설턴트, 유대인 등이 모인 와중에 동양인이 리더였는데, 이거 잘못하면 산으로 가겠더라. 그래서 그 사람들을 인종이나 성으로 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직원으로. 선입견이 들어가지 않도록, 의식하지 않도록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사람들을 만날 때 나이나 학교에 관심을 안 둔다. 그걸 아는 순간부터 인위적으로 바뀌니까. 오래 지낸 사이라도 나이를 묻지 않는다. 그건 관심 없는 게 아니다. 선입견을 안 가지고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나이나 학교 같은 것을 묻지 않으면 관계를 넓게 가져갈 수 있다.
무엇보다 그는 ‘관계’에 집중한다. 서열과 권력에 집중하는 여느 남성들과 달리, 마음을 얻고자하는 일에 더 많은 신경을 썼다. 의도한 것은 아닐지라도, 관계의 매듭을 푸는 것이 기업의 성과로도 연결된다는 것을 그는 자연스럽게 체화한 셈이다. 그래서 직원들과의 관계도 이런 관계중심의 입장에서 풀고자 노력했다. 제대로 된 기업문화를 만드는 것이 결국은 기업을 제대로 설 수 있게 만든다. 성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후행적 결과다. 그는 직원들에게 멘토 노릇을 하면서 그들을 도와주는 일을 즐겁고 보람 있는 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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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로서 회사가 직원들을 위해 어떤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선호하는 인재상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건, (직원들이) 학연이나 지연과 같은 인위적인 것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우리 회사는 그런 문화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직원들의 학교를 물으면 20~30%밖에 못 맞힐 거다. 그런 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다. (웃음)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들에겐 근무 시간에 융통성을 발휘하기 위한 ‘플렉서블 타임(flexible Time)’을 준다. 직원들이 고마워하더라. 우리는 특화된 산업이라, 우수 직원을 뽑지 못한다. 그래서 강호에서 성실한 직원을 모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좋은 교육과 시간을 주면, 우수한 직원이 된다.
우리는 학벌을 따져 인재를 뽑지 않는다. 그럴 여력도 없고, 흥미도 없다. 진짜 재미는 자신이 우수한 인재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멘토링과 코칭을 통해 (우수한 인재로) 변화되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도, 회사도 즐거워진다. 인터뷰할 때 성실을 가장 중요하게 보고, 기본이 튼튼하면 다이아몬드 될 수 있는 원석 같은 사람을 뽑는다.
직원들의 업무 자질과 글로벌 마인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배양하는 일에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좋은 일터’ 만드는 일에 매진했다. ‘종업원이 OK할 때까지’라는 ‘종업원 만족’을 우선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했다. 이런 환경을 만든 동기나 이유가 있다면. 또 어떤 기업문화를 만들려고 하나.
지난 3년 동안 직원 만족도가, 작년에는 90%가 넘었고, 85%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본사를 포함해 글로벌 평균치가 30% 안팎인데, (직원 만족도가) 왜 이렇게 높으냐고 놀란다. 직원들이 존중받고 있다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신분이나 직위에 관계없이 존중받는 그런 문화. (직원들에게) 자유도 많이 주고자 한다. 유일하게 자유를 주지 않는 룰이 있다면, (회사 내에서) 누가 됐든 상호 간에 존칭을 쓰도록 한다. 나도 모든 직원들에게 존칭을 쓴다.
작은 것 같아도 직원들이 만족할 수 있는 문화적 요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문화가 다듬어지면서 기업이 발전하고 있다는 기분도 좋고. 경조사도 자유롭게, 눈치 안 보면서 갈 수 있도록 한다. 직장과 가족 사이의 밸런스를 지키게끔 만들어 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서 아이가 운동회를 하면 반드시 가라고 한다. 직원 만족이 어마어마한 게 아니다. 융통성을 가지게 할 수 있는 것, 그런 게 3배의 차이를 낳기도 한다.
스스로 정한 룰이 있다. 75% 룰. 75%는 직원들 말을 듣고 25%는 내 생각을 보탠다. 전략, 행정, 인사, 고객관리 등에서 이것을 적용하면, 4건 중 3건이 맞을 것이다. 믿음과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직원들이 만족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리더십에 대해 “궁극적으로 조직원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고 했다. 비즈니스의 핵심도 결국 마음을 얻는 것이 아닌가 싶다. 중국 합작법인 운영과 관련, 공산당 서기에게 보인 사려 깊음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런 면에서 ‘배려 리더십’은 윈-윈 할 수 있는 좋은 전략 같은데.
중국 합작법인의 경우, 배려가 원래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웃음) 역사적으로나 봐도 그렇지 않나. 중국 사람이 한국 사람을 존중할 이유가 없는 거다. 그 사람 마음을 얻는 게 숙제더라. 방법을 생각해보니 내세울 게 없었다. 중국말도 못하고. 코리아 프리미엄은커녕 디스카운트밖에 없고. 이해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잘 듣고 직원들을 파악해서 접근해야겠더라. 생존 위해서 한 것이 상대방의 이해를 받은 셈이 됐다.
한국 고객들의 해외사업 진출과 확장 과정에서 커민스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고객의 비즈니스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말하자면, 국가경제 차원에서 기여를 하고 있는데,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엔진을 수입해서 이를 국내 고객들 제품이나 장비 등에 얹는데, 이것이 다시 수출되고 있다. 그렇게 수출 성장에 기여한 건 사실이다. 전 세계를 상대로 국내 고객들의 세계 진출을 돕고 있는 셈이다.
또 ‘엔진은 곧 공해’라는 인식이 강한데, 우리는 오히려 공기를 정화시키는 환경친화적인 엔진을 판매하고 있다. 환경친화제품의 수출을 통해 국력 향상은 물론 환경보호에도 이바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에 자부심이 크다. 보람이다. 직원들도 국가경제 기간산업의 수출에 이바지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중국에서의 소임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커민스 본사의 최고기술 임원의 후계자 자리를 거절하고, 한국행을 결정했다. 좋은 자리를 박차고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가 있었나.
책에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당시 큰 아들을 잃었다. 아내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가정을 위해서 내 커리어를 우선순위에서 배제했다. 가정적인 이유였다고 보면 된다.
젊은 직원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위해 살았나’보다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떻게’ 살라고 말해주고 싶은가.
국제무대에서 보면 우리는,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냉정하게 보면 내세울 것이 없다. 서울대를 나온들, ‘그게 어쨌다고(So What)?’라는 말밖에 못 듣는다. 한국에서는 그것을 알아줄지 몰라도, 밖에선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하우(How)’다. ‘하우’는, 존경받을 만한 행동을 했는가와 같은 행동 규범이나 성실함이다. 리더로서 성질이 급하다거나 상대방에게 짜증을 낸다든가 하면 존경을 못 받는다. 자기 극기가 필요하다.
또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 경청. 우리는 남의 문화에 대해서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점은 밖에 나가서 취약점이 된다. 진실된 마음이 아니면 금방 들통 난다. 다른 문화를 뛰어넘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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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은 시도와 실수’의 반복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가장 기억나는 시도와 실수가 있다면.
아, 이런 일이 있었다. 중국법인의 사장을 할 때다. (중국) 이름이 어려워서 영어 이름을 가지자고 제의했다. 한국에서는 그 시도가 성공했다. 별 생각 없이 그렇게 했는데, 큰 반발을 샀다. 과거 조선 시대 단발령처럼 (중국식) 이름에 대한 강한 집착이 있었다. 문화적 무지에서 온 것이었던 거지. 편리함을 생각해서 그렇게 했는데, 문화적 저항감에 부딪힌 거다. 그러니까, 다른 나라를 생각할 때 문화를 먼저 알아야 한다. 언어는 몰라도 되는데, 문화의 깊이에 대해서는 숙고가 필요하다.
또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 사람 앞에서 직원들을 야단치는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여러 사람 앞에선 비판적으로 얘기했다 싶으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고 보듬어 줘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그는 취미생활로 모터사이클을 탄다. 한국에선 쉽지 않은, 시선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취미다. 그저 흘려듣고 말 우스개지만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남자가 엄마에게 말해선 안 되는 세 가지. 하나, 나 사람 죽였어. 하나, 나 남자가 좋아. 하나, 나 오토바이 타. 더구나 그는 오십이 넘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재확인하고 즐기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예전에 가수 김광석도 예순 넘어서도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그 역시 스스로를 갱신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인 것 같다. 끊임없이 진화하고 도전하길 즐기는 그런 사람.
멋진 취미 생활을 하고 있다. 모터사이클을 취미로 가진 즐거움이 있다면. 말하자면, 모터사이클 예찬이랄까.
오십 대에 들어서니, 스스로 보수적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수적이란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도전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느낌 같은 거. 그래서 내 자신을 테스트하기 위해 모터사이클을 택했다. 어릴 때부터의 꿈은 아니었고. (웃음)
사실 모터사이클을 타겠다고 하면 한국의 아내들은 결사반대지. 반대 안 하면, 그게 이상한 거고. 그걸 넘어야 한다. 남들 다 말리는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도전 의식도 생기더라. 모터사이클을 타는 동안 세 번을 바꿔 지금의 모터사이클을 타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도전도 있었고, 그걸 이겨나가는 것을 즐겼다. 아내도 그렇게 반대하다가 지금은 뒤에 타기도 한다.
개인적 목표가 65세까지 용평스키장의 최상급 슬로프에서 스키를 타고, 70세까지 모터사이클을 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려면 건강이 중요한데, 평소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나.
해외 출장이 잦아서 체계적인 건강 관리는 하기 힘들다. 그래서 차를 타고 가다가 짬이 나면, 중간에 차에서 내려 걷는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거지. TV를 볼 때, 훌라후프나 아령과 같은 운동을 하기도 한다.
2~3권의 책을 내 다른 문화권에서 CEO를 수행하며 받았던 도전과, 좌절?실패의 경험에서 배운 것을 젊은이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집필은 잘 되나? 언제쯤 책을 낼 계획인가.
5월에 출간될 것 같다. 지금 단?에선 배운 것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누려고 보니, 책 쓰는 게 제일 좋겠다 싶었고. 미래의 리더가 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미래의 청사진을 짜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멘토가 별로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 젊은이들이 더 넓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코치와 멘토의 역할이 아니겠나. 내 경우에는 인생이 어떻고, 어떤 일과 분야가 있더라, 등과 같은 선생이나 선배가 없어서 아쉬웠다.
책은 어떤 장르나 종류를 즐겨 읽는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다양한 장르의 책을 좋아한다. 그중에서 역사를 좋아한다. 역사에서 배우는 리더십도 좋고. 중국과 서양의 고전을 보면서 배운다.
작금의 세계경제 상황이 여전히 좋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어떤 자세와 철학으로 기업 경영에 나서야 하고 개인의 삶을 어떻게 컨트롤해야 좋을지 한 말씀 부탁한다.
경영인으로서는 이런 우화가 어떨까 싶다. 한 농부가 소 두 마리를 키우면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불황이 와서 한 마리를 팔고 현금화했다. 나머지 한 마리로 농사를 지었는데, 두 마리로 할 것을 한 마리가 하다 보니, 그 소도 결국 힘들어 죽었다. 현명한 경영자라면 암놈과 수놈으로 바꿔서 불황이라도 새끼를 낳게 할 거다. 먹이를 줄이더라도 애정과 정성으로 돌보면, 소는 결국 세 마리가 된다. 결론적으로 한 사람은 빈 깡통, 한 사람은 세 마리가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상황일수록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반드시 이 불황은 끝난다는 희망과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역사적인 증명이니까. 어떤 불황이든 끝이 났다.
2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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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2009.06.08
상호간의 존중, 개인 시간의 허용으로 인한 즐거운 직장 만드는 부분에 공감을 하구요. 인사 잘하는 것과, 관계에 집중하는 부분 또한 수긍이 갑니다.
리더가 어째서 필연적으로 리더일수밖에 없는지 알겠습니다. 멋지네요.
daosh
2009.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