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당신입니까?
늦둥이 동생이 있습니다. 여느 청춘들과 다르지 않게 녀석도 방황을 좀 했습니다. 그런 동생을 보면서 한 번도 조급해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언젠가는 나보다 더 잘될 녀석이라는 믿음을 키우고 있죠. 별다른 이야기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처럼 방황하지 않고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다면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죠. 문제점만 얘기해주고, 방법을 스스로 찾게 합니다. 형이라는 이유로 결정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동생에게는 그가 가꾸고 키워나가야 할 자아가 있기 때문입니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9.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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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신입니까?

늦둥이 동생이 있습니다. 여느 청춘들과 다르지 않게 녀석도 방황을 좀 했습니다. 그런 동생을 보면서 한 번도 조급해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언젠가는 나보다 더 잘될 녀석이라는 믿음을 키우고 있죠. 별다른 이야기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처럼 방황하지 않고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다면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죠. 문제점만 얘기해주고, 방법을 스스로 찾게 합니다. 형이라는 이유로 결정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동생에게는 그가 가꾸고 키워나가야 할 자아가 있기 때문입니다.

강의를 나가거나, 어린 친구들과 이야기해보면 가끔 안타까움이 밀려들곤 합니다. 많은 친구들이 내가 이걸 왜 하는지, 어쩌다 시작하게 됐는지,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부모가 시켜서 하긴 했는데 하다 보니 안 맞는 것도 같고, 이제 와서 다른 걸 하자니 딱히 할 것도 없는 것이죠. 나는 그런 친구들에게 어서 자기 자신을 찾으라고 얘기합니다. 왜 싫은지 왜 좋은지도 모르고 사는 인생을 하루빨리 청산하라고 하죠. 여행을 떠나건, 방에 틀어박혀 낙서를 하며 시간을 보내건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본인이 원하는 분명한 무언가를 찾아야 합니다. 물론 새로운 길에 대한 어려움, 아픔 등이 두렵기도 하겠죠. 그런데 이길 자신이 있다면 한번 도전해보는 겁니다. 흐르는 대로 시간을 보내기에 젊음은 너무 아깝습니다.

꼭 배우거나 생산해내지 않더라도 최소한 즐기는 젊음이라도 되어야 합니다. 소비만 하는 젊음은 보는 사람에게도 아픔입니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걸 찾아 하면 일과 놀이가 하나가 됩니다. 극과 극의 행위이지만 경계가 없어지는 것이죠. 어느 순간 열심히 놀면서도 일에 대한 영감을 떠올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고 있는 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러면 기분이 좋아져 또 신나게 놀듯이 일을 하게 되는 거죠. 나도 그렇습니다. 열심히 놀고, 놀면서도 온 감각을 열어놓습니다. 밥을 먹다가도, 술을 마시다가도 언뜻 지나는 풍경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 것들이 다음 디자인에 모티브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사실 나는 멘토가 없습니다. 굳이 말하라면 나 자신이 멘토입니다. 배경도 학벌도 없지만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그것 하나만큼은 끝내주게 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운 멘토가 되기 위해서이죠. 요즘은 모두들 열심히 사는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열심히 사는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열심히 산다고 얘기하는 건 말을 할 줄 안다고 자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자아를 찾아 자신만의 능력을 갖춘다면 그것은 노래 부를 정도는 되는 것입니다. 평생을 남들과 똑같이 말만 하며 지내겠습니까, 온 마음이 즐거워지도록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살겠습니까? 선택은 당신에게 달렸습니다.

최고의 오르가슴을 느껴보았습니까?

패션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중요한 세 번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처음 옷을 접했을 때가 첫 번째, 서울 컬렉션에 나가게 됐을 때가 두 번째 그리고 얼마 전 꿈에 그리던 뉴욕 데뷔가 그 세 번째 기회였습니다. 사실 불러주는 사람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저 내 인생의 계획과 목표에 맞춰 지금 이 시기에 만들어내야 할 기회였죠. 스폰서 없이 불가능한 꿈이었지만 꼭 하고 싶다는 갈망이 나를 뉴욕으로 이끌었습니다. 파트너가 되어달라고 미리 보내놓은 메일들은 모두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포기할 것이냐, 가서 부딪힐 것이냐, 나에겐 두 가지 선택뿐이었죠. 나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한국의 직원들에게는 다 잘될 것이라고, 계약하고 오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트렁크 안에는 계약서가 아닌 홍보용 책자와 브로슈어, 패기와 열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결국 직접 부딪혀 PR 에이전시와 쇼룸 등의 파트너들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돈을 주고 일을 부탁하는 것이지만 세계 패션의 중심인 그곳에서 누구나 계약을 맺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들은 내 옷을 보고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데뷔 무대가 끝나면 런칭도 본인들이 하겠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안심하고 돌아와 정신없이 컬렉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 컬렉션을 할 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을 때였습니다. PR에이전시에서는 계속해서 플랜을 보내주는데 세일즈에 관련한 플랜이 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에이전시가 세일즈도 겸하는 곳이라 당연히 두 가지 모두 계약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PR만 계약을 한 것이었죠. 남은 시간은 한 달.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시간이었습니다. 최소한 한두 시즌 전 세일즈 계약을 맺고 매장별로 공간을 비워두니까요. 다쎽 뉴욕으로 날아갔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소개받고 만나고 설득하기를 수차례. 결국 세일즈 계약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쇼를 위해 뉴욕에 가기 전날, 친한 후배가 우울증으로 자살을 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혼이 빠져 어쩔 줄 모르는 나에게 친구들이 말했습니다. 어서 가라고, 더 큰 일을 위해 떠나라고, 그게 너를 멘토로 삼으며 꿈꿨던 후배를 위하는 길이라고요. 그리고 드디어 컬렉션 당일. 피날레에 앞서 나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실로 힘든 산등성이를 넘어 도착한 곳이었습니다. 정상이 아닌 지친 다리를 잠시 쉴 수 있는 작은 능선이었지만 그래도 많은 기억들이 스쳤습니다. 무작정 뉴욕으로 날아와 파트너를 찾아다녔던 순간부터 소중한 후배의 죽음도 뒤로 하고 이 악물고 쇼를 올리기까지 모든 과정들이 오 초의 짧은 시간 동안 펼쳐졌습니다.

사람들은 가능한 것보다 불가능한 것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무엇이든 정해진 목표라면 다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타깃을 정해놓고 달려가 잡지 못하면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잡기 위해 노력합니다. 힘들게 얻어낼수록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집니다. 나는 그것을 오르가슴이라고 표현합니다. 불가능이라는 단어로 자신의 목표를 포기하거나, 잡지 못하는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기분이죠. 하지만 한번 그 맛을 안다면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생애 최고의 오르가슴을 느껴보세요. 지금과는 다른 인생이 펼쳐질 겁니다.

글 / 최범석

패션디자이너, 제너럴아이디어 대표, 『세상의 벽 하나를 빌리다』 『최범석의 아이디어』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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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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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10.04.03

역시 한없이 망설이는 것보다는 안 될 것 같아도 해보는 게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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