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진짜’ 얼굴, 실록 안에 있소이다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박시백
<조선왕조실록>은 다른 나라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특하고도 성실한 기록물이다. 박시백 화백은 이런 실록을 중심으로 지금의 독자들이 보기 쉽고 알기 쉽게 <조선왕조실록>을 전달하고 있다.
2010.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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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대하드라마
열다섯 권짜리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하 『조선왕조실록』)의 첫 장을 넘길 때마다, 나는 이 이야기의 맨 처음을 상상해보곤 했다. 조선 역사의 처음이 아니라, 이 책의 역사의 첫 장면을 말이다. “외환위기가 한창일 때였다”로 시작되는 머리말에 그 사연이 간략하게 나온다.
사극을 재미있게 보던 저자, 문득 조선사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걸 느낀다. 당시 몸담고 있던 신문사 도서관에서 저자는 처음으로 조선에 관련된 책들을 접한다. 시사만화가의 촉수는 이내 조선 정치사의 흥미진진함을 감지해 낸다. “거기에는 우리 귀에 익숙한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의 신념과 투쟁, 실패와 성공의 이야기가 있었고 『삼국지』나 『초한지』 등에서 만나는 극적인 드라마와 무릎을 치게 하는 탁월한 처세가 있었다.”
그 순간, 저자는 이것을 만화로 그려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 일에 자신의 만화 인생을 걸고 도전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아마도 이것은 직감적인 예감이었으리라. 그때는 실록의 한 페이지도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았고, 구체적인 계약도, 계획도 없었을 때였으니 말이다. 우리는 살면서 고민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쏟지만, 정작 삶을 뒤흔들 만큼 커다란 문제 앞에서는 운명처럼 확신이 드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되돌아봤을 때, “글쎄, 그땐 그저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어”라는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순간 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러하다. “궁궐을 찾아 사진을 찍고 화보자료를 찾아 헌책방에도 기웃거렸다. (…) 동네를 산책하면서도 머릿속에선 항상 그 시대의 인물들이 이야기를 주고받고 다투곤 했다. 어쩌다 어떤 인물의 행동이 새롭게 이해되기라도 하면 뛸 듯이 기뻤다.” 열다섯 권에 실린 머리말의 글을 열다섯 번 읽으면서, 궁궐을 맴돌며 여러 사진을 찍어보고, 헌책방을 기웃거리고, 길을 걷다 “유레카” 대신 “그거야!” 정도를 중얼거리며 빙긋 웃고 있는 박시백 화백을 떠올려보았다. 그럴 때면 나도 절로 웃음이 났다.
국보 151호, 무려 320쪽짜리 책 413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조선왕조실록>은 다른 나라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특하고도 성실한 기록물이다. 조선 500여 년의 정치뿐 아니라 사회, 문화, 경제, 외교, 풍습 등 다방면의 역사적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실록을 기록하는 사관 외에는 원칙적으로 누구도 기록에 관여할 수 없었고, 당대의 왕조차 볼 수 없었던 기록이다. 박시백 화백은 이런 실록을 중심으로 지금의 독자들이 보기 쉽고 알기 쉽게 <조선왕조실록>을 전달하고 있다.
시대마다 왕을 주연으로, 정몽주, 이순신, 조광조 등 익숙하거나 의미 있는 조연들이 대거 출연! 그야말로 <조선왕조실록>은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대하드라마다. 인과관계와 정황을 따져 탄탄하게 구축한 캐릭터는 절로 감정이입을 일으켜, 역사를 사람의 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때문에 역사가 과거로만 머물지 않고, 현재의 시간에 사선을 긋고, 곡선으로 밀려들어온다. 그렇게 내 삶에 접점을 이루며 지금과는 다른 삶, 다른 길을 슬쩍 내보이기도 한다. 교과서에서 도표로 본 역사는 박물관 유리창 너머 숨을 멈추고 있는 시간의 편린에 불과했는데, 이야기 속의 역사는 쉴 새 없이 흐르고 출렁이고 있었다. 조선 사회의 어떤 사건도, 어떤 정책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없었다. 책장을 넘기며 웃는 새에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취할 수 있다는 점이 『조선왕조실록』의 가장 큰 미덕이다.
한 장면 한 장면 치밀하게 짜여 있는 만화를 보면서, 이 만화가의 머릿속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정사, 야사, 인물의 생몰연도, 의복사, 전쟁사, 중국사 등등 적어도 서너 개의 연표가 동시에 펼쳐져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정도의 꼼꼼한 작업을, ‘오래’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편한 티셔츠에 사람 좋은 얼굴을 한 책날개의 사진은 그저 이미지 컷일지도 모른다는 짐작을 하고 박시백 화백을 만나러 갔다.
그는 스스로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인터뷰 중 여러 번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우선 저자의 솔직한 대답 때문에 그랬고,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말을 보태야 할 때면, 그 난감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 때문에 웃었다. 또 예민, 꼼꼼, 괴팍 따위의 말을 한방에 날려버릴 만큼 호탕한 웃음을 터뜨릴 때마다, 보는 사람 역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웃음들은 여유로웠지만 묵직했다.
“오늘 정조 10년 9월 공부하고 왔어요.” 그는 2012년 완간이라는 결승점을 향해 한 걸음씩 발을 떼는 중이었다. 세간에는 토끼처럼 빠른 속도로 새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잘 알고 있는 거북이 같았다. 기획부터 콘티, 채색 등 모든 공정을 혼자 해내며, 서두르지 않고 예정대로 작업하고 있었다. 무엇이든 계속하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단단한 힘이 그에게도 느껴졌다. 그는 처음과 지금, 작업에 대한 생각이나 계획에 별반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담담한 말이었지만, 계획한 대로 잘 가고 있다는 믿음과 확신이야말로 『조선왕조실록』 각 권이 내보이는 완성도의 비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도세자가 노소 당쟁의 희생양? 이건 아닌데
15권을 털어낸 소회는 어떠한가요?
“영조가 정말 오래 사셨잖아요? 재임 기간도 길었고. 저로서는 상당히 지루한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시간도 예전보다 많이 걸렸고요. 어쨌거나 무사히 책이 나오게 되어 기쁩니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나 고민했던 점이 있다면요?
“13권부터 예송논쟁이 나오고, 14권에서도 당쟁이 계속 이어지니까 독자들이 지루해하는 것 같아요. 지겨운 부분이라고 해서 안 그릴 수도 없고, 15권에서는 당쟁과 그에 맞서는 영조의 탕평이 펼쳐지는데, 이것을 어떻게 덜 지루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죠.”
초반에 신하들의 말 주머니가 대사들로 빡빡하더라고요.(웃음) 15권에서는 무엇보다 사도세자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후반에는 비중 있게 다뤄졌는데요. 사도세자를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도대체 사도세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실록을 보기 전부터 궁금했던 부분이었어요. 여러 가지 해석 중에 노소 당쟁의 희생양이라는 해석이 근래에 정설이 되었는데, 자꾸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부를 계속해 나가면서 ‘정말 아니다’ 싶은 정황 근거들이 나왔죠. 왕과 세자의 관계란 원래 정치적 관계니까, 그들의 관계나 궁합 등을 통해 접근하는 게 옳다고 판단했어요.”
‘아니다’ 싶은 정황 근거들이 나왔다고 하셨는데, 이를테면 어떤 것인가요?
“대표적으로 노론 측 신하들이 왕과 세자 사이를 끊임없이 이간했다는 대목이 나와요. 만약 이간질했다면, 세자가 말로는 아프다고 하고 관서 지방에 유람 다녀온 것을 왕이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요. 사실 이 사건은 이간질도 필요 없이 있는 사실만 얘기해도 왕이 ‘세자, 이노무 자식이!’ 할 수 있는 사안이잖아요, 저도 궁금했어요. 실제로 왕이 알면서 모른 척한 것일까? 그 과정을 살펴보니, 세자가 왕이 알까 조바심 내는 장면이 나와요. 이런 것으로 봐서 나중에 제대로 밝혀지기 전까지 왕이 그 사실을 잘 몰랐다는 걸 알 수 있죠. 이런 정황을 봤을 때, 두 사람의 문제를 이간으로만 몰고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의 시사, 조선왕조실록
이전에 <조선왕조실록>을 만화화해보겠다는 생각이 강박관념 수준까지 차올랐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까닭이었습니까?
“그건 좀 오버했던 것 같고요,(웃음) 신문사에서 시사만화를 그릴 때,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세상에는 유사한 사건이 계속 벌어지는데 그림은 새롭게 그려야 하잖아요. 이런 것들이 갈수록 힘이 부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4년 정도 그렸는데, 이 일을 10년, 20년 할 수는 없겠다 싶어, 만화가로서 제가 잘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어요. 아무래도 지식이나 정보를 가공해서 만화화하는 것을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아무 근거 없이 들었어요.
그때 <조선왕조실록>을 접하게 된 거죠. 사실들 자체가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들을 소개하는 다른 책들을 보니까, 동일한 사건을 완전히 다르게 다루고 있더라고요. 해석의 차이가 아니라, 팩트 자체가 다른 것들도 많았고요. 이건 뭔가 제대로 작업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죠. 강박관념이라는 건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 먼저 해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나…….(웃음)”
다른 기록과 비교해봤을 때 <조선왕조실록>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이것도 당시의 시사잖아요. 시사 만평가 시선으로 접근하기가 쉽겠다고 생각했어요. 중국사를 볼 때도 『사기』 같은 기록이 저에겐 매력적이었어요. 조선사는 주로 드라마로 다뤄지면서 정사보다 궁중 암투 위주로 얘기된 측면이 있잖아요. 정사 자체에서도 이런 드라마를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하루하루 만평을 그리다가 어떻게 500년을 다뤄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나요? 적게 잡아도 10년은 걸리겠다 싶었을 텐데요.
“그렇죠. 『조선왕조실록』은 처음 구상할 때부터 20권을 생각했는데, 문제는 그걸 <조선왕조실록> CD를 구해 보기도 전에 구상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막연하게 그리는 속도를 고려하면, 권당 3~4개월 정도 소요되지 않을까. 빠르면 한 5년, 늦으면 7년? 이 정도면 승부를 걸어볼 만하겠다 싶어 덤벼들게 된 거죠.”
언제 ‘아니다’ 싶으셨나요?(웃음)
“바로!(웃음) 두 권쯤 하고 나니까 알겠더라고요. 첫 권은 당연히 오래 걸릴 줄 알았어요. 처음에 시안 잡고 검토를 한 후에, 마음에 안 들면 새로 그리고, 출판사와 판형 조정하면서 또 새로 그리느라 거의 1년이 넘게 걸렸어요. 그럼 이제 다음 권은 3~4개월에 끝내야 되잖아요.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저 자신을 작업에 매진시켰는데 한 5개월 정도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아…… 아니구나’ 싶었죠”
첫째도 실록, 둘째도 실록
건강은 좀 어떠세요?
“늘 몸에 소소한 말썽이 있는데, 작업하는 데 큰 지장은 없는 정도예요. 얼마 전에도 손가락이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어요. 가기 전에 인터넷을 찾아봤더니, 첫째 마디가 아프면 퇴행성 관절염일 가능성이 있고, 둘째 마디가 아프면, 류머티즘 관절염일 가능성이 크다는 거예요. 류머티즘이면 골치 아프잖아요? 가서 물어봤더니, 너무 작업을 많이 해서, 손가락을 혹사시켰다고 하더라고요. 음, 좀더 농땡이를 피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도 콘티부터 그림, 채색 모든 공정을 혼자서 하고 계세요. 그런 작업 방식을 고수하시는 까닭이 있나요?
“하다 보니 이게 편하더라고요. 작업 과정에서 실록을 공부하는 데에 시간이 많이 소요돼요. 공부하는 데에만 기본 한 달 반에서 세 달이 걸리고. 나머지 3~4개월 동안 콘티 작업을 한 후에 그리거든요. 사람을 둔다 하더라도 공부를 같이 할 수 없으니 실록 공부와 콘티 짜는 일은 어쨌든 제가 해야 하는 일인 셈이죠, 허드렛일을 부탁할 순 있겠는데 오히려 번거로울 것 같더라고요.”
공부하는 과정을 소개해주신다면요?
“첫째도 실록, 둘째도 실록이죠. 실록이 워낙 방대해서 공부하면서 필기를 해요. 나중에 찾아봐야 하니까요. 노트 필기 하면서 한번 쭉 보고, 필기한 것을 가지고 저만의 연표를 다시 만들어요. 큰 사건들은 머릿속 기억에 있으니까, 그것들을 간략해서 한 권짜리 요약본을 만들어요. 이게 콘티를 짜는 데 기본이 되죠. 그걸 통해서 장을 구성하고, 소제목을 잡고, 그런 다음 콘티 작업을 해요. 그 외 참고 서적은, 실록과 병행해서 보는데, 초기에는 참고 서적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워낙 지식이 없이 시작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실록 위주로 해석하고 판단하게 돼요.”
이야기의 뼈대를 세우기 위해, 다양한 에피소드를 선택하고 취합하실 텐데요. 중점적인 사건 등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시나요?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죠. 그 전에는 다루지 않았는데 재미있는 사건이라든지, 혹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소개해요. 대개는 그동안에 여러 책에서 바로 잡던 것 위주로 선택해요.”
병자호란 이야기를 다룰 당시에, 편집자로부터 조선의 저력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후기에 밝히신 바 있습니다. 근거 있는 반론을 보내주는 독자도 있다고 하셨고요. 이런 적극적인 반응이 많은가요? 어떻게 검토하고 반영하시는지요?
“독자들의 의견이 저에게 직접 온다기보다는 블로그에 많이 올리시는데, 제가 원래 귀가 얇아서 듣기는 다 듣고, 신경을 많이 써요. 그런데 또 고집이 있어서 하고 싶은 대로 하거든요.(웃음) 그래도 소소한 실수들을 지적하는 것에 대해서는 바로 반영을 하죠.”
기억에 남는 태클이 혹시 있었나요?
“당장 이번 책만 하더라도, 소를 올린 사람이 당시 20세인데 할아버지로 그려져 있다고 하더라고요. 확인해보니까 그 말이 맞더라고요. 수정해야 하거든요. 주요한 인물들은 출생연도를 같이 적어놓고 그 사건 시점에 이 사람이 몇 살인가, 이런 것들을 고려하는데, 어디선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은 오히려 고맙죠.”
그런데 그걸 어떻게 찾아내셨을까요.(웃음)
“저도 되게 신기해요. 책을 보시는 분 중에 전문가이신 분들도 꽤 있어요. 아주 세세한 것들을 잡아주시는 독자들도 가끔 있고요.”
당파, 입장이 달라도 팩트는 팩트로 기록돼
실록과 야사, 참고 자료 등을 검토하다 보면 서로 어긋나거나 상반된 이야기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판단해서 이야기를 구성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실록 우선이죠. 실록도 어쨌든 역사 기록물이니까 담당 사관의 시각이 개입되고, 그 실록이 나올 당시에 집권한 세력의 영향도 있을 테고, 그래서 곡해도 있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실록을 보다 보면, 팩트 기사와 해설 기사가 구분돼요. 실록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은, 설령 사관과 당파가 다르고, 미워하는 당파 쪽의 발언이라고 해도, 발언 자체는 있는 그대로 싣는다는 거죠. 후대의 우리가 그 당시의 인물과 사건을 중심을 갖고 바라볼 수 있게 해줘요. 이렇게 풍부한 팩트 위주로 씌어졌기 때문에 실록이 사실에 가까울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보죠.
이야기를 전달할 때, 균형 감각을 유지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세종 시절을 예로 들면, 으레 태평성대라고만 생각하지만, 집권 사대부들과는 달리 민중의 삶은 더 어려웠다는 점을 보여주셨죠. 유랑민은 넘쳐나고, 화폐 정책도 민중들의 삶을 어렵게 한 것 중 하나였고요. 한 시대를 볼 때 이렇게 전체적인 조망을 위해 어떻게 노력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역사는 결국 후대 사람들이 보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네들 시각이 반영될 수밖에 없잖아요. 저 역시도 지금의 시선으로 소개하고, 결과를 가지고 보게 되죠. 이런 것과 동시에 시대적인 흐름 속에서 당대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고려하려고 애를 써요.
조광조 이후에 사림세력이 집권하게 되면서, 조광조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잖아요. 지금의 눈으로 보면, 사실 조광조의 주장에 어설픈 면이 많단 말이죠. 이를테면 ‘과거제를 폐지하자. 대신 추천을 통해 선발하자’고 한다든지. 그야말로 온정주의가 흐르고, 각종 뇌물이 오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데 조광조는 그런 아마추어적인 요구를 했단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조광조가 내세운 것이 굉장히 영향력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따랐어요. 이것은 그 시대에 그런 흐름과 요구가 있었다는 거죠.”
민중들의 이야기나 민심에 대한 내용도 <조선왕조실록>에 담겨 있나요?
“간간히 나와요. <조선왕조실록>은 날씨부터 시작해서, 어디에서 꼬리가 두 개 달린 송아지가 나왔다는 등 특이한 사항은 대부분 기록되어 있고 흉년이 되어 사람들이 얼마나 굶어 죽었다, 이런 것들도 다 나오거든요. 이런 기록 속에서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이 보이죠.
그런데 세종 편의 경우 독자들에게 곡해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작품이 작가 손을 떠나면, 독자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보게 되는데, 마치 세종의 흠을 드러내며 ‘봐라, 세종, 이런 사람이었다’고 말한 것처럼 보시기도 하더라고요. 저는 정말 세종이 빼어난 왕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아무리 빼어나다 하더라도 조선 사회라는 그 상황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백성들의 삶이 사대부와는 다를 수 있었다는 걸 얘기한 건데 좀 곡해된 면이 있더라고요.”
저도 그 부분이 의외였어요. 하지만 세종은 그 이후의 왕들에게 계속 영향을 미치잖아요. 비교되기도 하고, 그림자처럼 드러나기도 하는데, 후대로 갈수록, 세종의 가치가 더 돋보인다고 느꼈던 기억이 나요.
정도전, 끝까지 이상을 버리지 않았던 정치가
열다섯 권을 완성해오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시대는 언제인가요?
“첫 편이 자료가 방대해서 어려웠고, 세종실록도 어려웠어요. 최근에는 많이 나왔는데, 작업 당시에는 세종을 잘 소개하는 책들이 거의 없었어요. 진짜 위대한 임금에 대해 공부하면서, 이걸 잘 요약해서 보여줘야겠다는 욕심은 앞서는데, 자료는 너무 방대하고. 가령 음악에 관련해서 전문적으로 파고들면 잘 모르잖아요. 그런 게 어려웠던 것 같고. 그 다음에 15권…… 너무 지겨워서.(웃음)”
오히려 자료가 많으면 더 어려운 점도 있군요.(웃음) 가장 매력 있는 인물로 매번 세종대왕을 꼽으셨습니다. 여전히 같은 생각이신가요? 혹시 또 매력 있는 인물이나, 인상 깊었던 인물이 있었다면 누가 있을까요?
“초기의 인물들이 되게 매력적인 것 같아요. 태조도 그렇고, 정도전도 그렇고. 특히나 태조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으로 평가절하된 인물이 아닌가 싶어요. 정치적 역량을 봤을 때,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역성혁명을 성공시킨 사람인데, 마치 고려 자주 국가를 무너뜨리고 명나라에 사대하는 조선을 만들었다는 오명을 태조한테 씌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하지만 만약 그때 태조가 조선을 세우지 않았다면, 사대부들이 주역이 됐을 텐데, 그래도 상황은 똑같았을 거라고요. 사대 같은 부분들은. 당시 사대부들의 생각이 공통적이었고, 그런 흐름이 있었으니까요.
그런 걸 벗겨놓고 본다면, 그야말로 여진족 틈에서 거치게 성장해서, 전장에서 대부분의 인생을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정도전 같은 사대부들을 만나, 그들의 리더로서 부족함 없이 처신을 잘했죠. 왕조를 세워서 국왕이 되기까지 리더십도 굉장하고 멋있었던 사람이 아니었나 싶어요. 정도전은 보는 사람 대부분이 멋있다고 그러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태조의 삶은 정말 한편의 드라마였잖아요. 그래서 기억이 많이 남더라고요. 반대로 가장 얄미웠던 인물이 있다면요? 저는 개인적으로 한명회가 좀…….(웃음) 그림도 얄밉게 그려진 것 같고요.(웃음)
“아, 얄밉다고 접근하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한명회가 유능한 사람이었던 건 틀림없는 것 같아요. 얄밉다기보다 진짜 화나는 인물들이 꽤 있죠. 가장 대표적으로 인조가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인조 시대 때 사대부들 자체가 그러하고…… 진짜 화가 나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인물이라고 한다면, 누가 있을까요? 지금 이때에 한 사람을 불러낼 수 있다면?
“여전히 저는 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시대든, 어느 시대든 간에. 특히나 정치가로서 뭔가 해보겠다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이상에만 치우치게 되면 빛을 못 보게 되는데, 정도전은 이상을 잃지 않으면서 현실과 잘 결합해갔던 인물인 것 같아요. 정치권에 나왔을 때, 나이도 많았고 어려움도 많이 겪었지만 끝까지 이상을 버리지 않았던 인물이었다고 봐요. 그래서 여전히 필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요.”
흑백으로 바라보는 역사 인물, 보이는 대로 그렸다
어떤 것은 그림으로 표현하시고, 어떤 부분에서는 한 페이지 글로 가득 채우시기도 하셨어요. 그림과 이야기의 비중은 어떻게 조정하시나요?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가 문치의 나라잖아요. 이렇게 토론이 많았던 나라가 있었나 싶어요. 동양의 정치 원리가 유교주의니까 그렇기도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궁극의 단계를 보여주는 게 조선사인 것 같아요. 싸움도 다 말로 이뤄지는 거예요. 상소를 내고, 경연장에서 주장으로 대고, 이러한 것을 일부라도 소개하지 않고는 이 싸움을 표현해낼 수가 없죠. 정치사의 흐름을 보여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두 가지 사이에서 고민을 하게 되는데, ‘만화냐? 역사서냐?’ 하는 문제죠. 결국 역사를 소개하는 것이니까, 제대로 소개를 하자는 마음에서 한바닥 대사를 쓰기도 했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왔으니까 어떻게 하겠습니까. 끝까지 (역사서로) 해야지.(웃음)“
노론 소론 하도 말이 많아서, 그 당시 임금님도 정말 피곤했을 것 같아요. 그림이다 보니, 하나의 장면을 그리는 데에 많은 정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 시대의 의복, 머리, 건축 등의 배경 등등 이런 것들은 어떻게 정리해서 작업하시나요? ‘흉배 착용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모자가 여기서부터 바뀝니다’ 등 여기저기서 꼼꼼함이 눈에 띄었는데요.
“저 의외로 꼼꼼하지 않은 편이에요. 처음에 시작을 할 때, 이런 걸 다 갖추고 시작하자니, 도무지 시작을 못하겠더라고요. 하면서 고쳐나가자 했죠. 처음 1권 같은 경우는, 고려 말의 고증이 안 된 상태에서 마구 그렸어요. 그나마 조선 시대부터는 초상화가 많이 있으니까 그것에 기반을 두고 그리기도 했고요.
실록 자체에 복식이나 복색에 대해 자꾸 나와요. 당시에도 사람 사는 세상이었기 때문에 유행이 있거든요. 관복 같은 경우 ‘당상관은 홍색을 입고, 당하관은 청색을 입어라’ 이렇게 법규를 만들면 한 2~3일 지나 이게 무너져요. 당상관 옷이 멋있으니까 다 빨간색으로 입는 거예요. 그러다 이런 풍속이 과해졌다 싶으면, 다시 조정에서 논의해 정정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그때그때의 유행이 있고, 여름에 남성들이 넥타이를 좁게 맸다가 짧게 맸다가 하듯이 사모도 높아졌다가 낮아졌다가 휘어졌다가 펴졌다가 계속 변화를 해요. 실록에서 나오는 사항은 대부분 반영하는데 복식사를 따로 많이 공부한 게 아니라서 부족함이 많습니다.”
캐릭터가 가장 인상적입니다. 책을 덮고 나면 사건보다 인물들의 캐릭터가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아, 그 인물이 이런 사람이었지. 세종대왕님이 통통한 사람이었지’ 이런 식으로.(웃음)
“통통한 게 아니라, 뚱뚱한 사람이었죠.(웃음)”
캐릭터는 어떻게 구축해가시나요?
“제가 작업하는 걸 보면 사람들이 실망할 텐데. 실록을 공부하다 보면 인물에 대해 단편적인 묘사가 나올 때가 있어요. 가령 세종을 보면, ‘비중했다. 살찌고 무거웠다’ 이런 말이 있고, 태종의 경우에는 양녕을 소개하면서, ‘나보다 키도 크고 잘생기고, 진짜 왕처럼 생겼는데, 나는 별거 아니다’ 이런 표현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수염이 많았다는 등 이런 식의 단편적인 묘사가 있긴 한데 실록에서 외모에 대한 묘사는 약한 것 같아요. 추상화가 남아 있는 경우라면 당연히 그것을 따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인상 위주로 만들게 되죠.
강단 있어 보인다 내지는 잔머리가 뛰어나 보인다, 등의 느낌? 있잖아요. 그런 게 작용되고, 역으로 얄미운 사람은 좀 잘생기게 그렸다가 그 인상이 심술궂게 변해가는 걸 묘사하기도 해요, 반대로 볼품없이 생겼는데 성장하면서 매력적으로 변해가는 인물도 있죠. 그런데 ‘이걸 어떻게 그릴까’ 막 연구하는 건 아니에요. 후다다닥 생각해서 열 명의 캐릭터가 두어 시간에 뚝딱 나오곤 하죠.(웃음)”
인물이 많아서, 얼굴이나 표정을 그리는 일도 만만찮을 것 같습니다. 왕뿐만 아니라 신하도 있고 백성도 있으니까요. 똑같은 얼굴도 있죠?(웃음)
“확인을 안 해봐서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어, 이런 얼굴은 어디선가 나왔던 것 같아’ 싶은 게 당연히 있죠. 아무래도 제가 좋아하는 선 패턴이 있다 보니까, 눈은 어떤 눈, 이런 식으로 다루게 되는 것들이 있다 보니 비슷한 눈이 열 명도 더 될 거예요. 하지만 눈 말고 코나 입 등 다른 데서 달라지면 되잖아요. 이게 역사물이어서 좋은 게, 눈, 코, 입이 다 같아도 수염만 다르면 다른 사람이에요.(웃음) 덕분에 많은 사람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차별성을 가질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저는 양쪽 눈 사이의 거리에 따라 인상이 달라지는 게 재미있었어요.(웃음) 인물을 그릴 때, 어떤 화가들은 자기 얼굴을 넣거나 아는 사람의 얼굴을 배경으로 넣기도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혹시 정치 인물을 그리시면서 현대의 얼굴을 모델로 삼은 적은 없으셨나요?
“일종의 장난인데, 1권에 이인임 같은 경우, 얼굴에서 수염을 떼면, 김종필 자민련 전 총재 얼굴이에요. 이인임이 당시 보수를 상징하는 인물이고, 정치적 수완이 되게 뛰어난 인물이라 그 얼굴을 빌렸고, 4권에 보면 허조라고 있어요. 뛰어난 재상이었는데, 굉장히 꼬장꼬장해서 세종이 지겨워하는 인물이 있어요. 민주당 국회의원이었던 조순형 씨 얼굴을 빌렸었죠. 그 이후에도 이런 걸 할까 하다가, ‘에이, 큰 의미가 없겠구나’ 싶어서 말았어요.(웃음)
이런 건 있습니다. 가령, 캐릭터를 만들 때, 이 사람은 굉장히 머리가 뛰어나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다 싶으면, 이와 유사한 인상의 사람들이 있잖아요. 이회창 씨라든가, 유시민 씨 이런 분들이 떠오르면 사진을 보지 않고, 머릿속의 이미지만 놓고 그려요, 눈매는 이런 식으로 해야지 하는 식으로.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얼굴인데도 제가 원했던 느낌이 나오기도 하죠.”
일반적으로 인물들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쁜 평가를 받아온 인물은 그만큼의 긍정적인 면을 보여주고, 오히려 마냥 숭상되는 인물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식으로요. 인물을 다룰 때 어떤 일관된 태도가 있으신가요?
“제가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고, 그냥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라고 보시는 게 맞습니다. 기존에 역사 인물들에 대해 흑백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어요. 좋은 인물이다 하면, 그 사람의 모든 걸 다 훌륭하고 좋은 쪽으로만 바라보고, 그 대척점에 있었다면 악당처럼 여기고요. 이렇게 애들 이야기처럼 해석한 경우가 많아요.
이를테면 10권의 유성룡 같은 경우, 대부분의 책이 유성룡을 훌륭한 재상, 임진왜란의 영웅이라는 식으로 다루는데, 실제 역사를 보니까 아닌 얘기들이 많이 있는 거예요. 가장 놀랐던 것은, 이순신을 다룬 드라마나 책에서 항상 유성룡을 이순신의 후원자로 등장시킨 점이었어요. 유성룡이 쓴 자기 책 『징비록』에서 이런 식의 대목이 있거든요. ‘내가 이순신을 후원했기 때문에, 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순신을 건드렸다’는. 사실 기록을 보면 이순신 처벌을 의논할 때, 유성룡은 언제나 왕의 이야기에 영합하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여요. 이런 당연한 사실들이 그동안 다른 분들 눈에 왜 안보였을까 그게 참 궁금해요.
남곤 같은 경우도 이러한데, 당시 굉장히 뛰어난 인물이었거든요. 그런데 조광조의 적이라고 하면서, 남곤은 나쁜 놈이라는 낙인을 찍으니까 세월이 바뀌어도 그런 평가가 계속 반복돼왔어요. 그렇다고 이런 오해를 풀어줘야겠다, 하는 사명감은 아니었고, 보이는 대로 그리다 보니까 이렇게 되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 지배층은 어쩜 그렇게 닮아 있을까
각 권마다 유머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낄낄 웃게 만드는 부분이 많았는데요. 인물들의 캐릭터도 그렇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재치와 센스가 굉장하다고 느꼈어요. 평소 성격은 어떠세요? 굉장히 유머가 많으실 것 같아요.(웃음)
“없는 편이죠. 낯가림이 심하고 버벅거려요.(웃음) 그런데 그림을 그릴 때는 다른 것 같아요. 예전에 박수동 선생님이었나? 정말 재미있게 그림을 그리는 만화가가 TV에서 인터뷰를 하는데, 정말 안 웃기는 거예요.(웃음) 아, 이게 다른 거구나 싶었죠.”
역사가 반복된다는 말이 실감나더라고요. 지금 있을 법한 일이 그때에도 있었고, 시대마다 비슷한 일이 보이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나아가기도 하고, 뒤로 가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어요. 역사가 반복된다는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역사라는 게 사람 일이 모아져서 만들어지는 거죠, 한 개인사 안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잖아요. 정말 굳게 결심하지 않으면 유사한 상황에서 그 사람은 유사한 행동을 하게 돼요. 그런 사람들의 덩어리로서 역사를 보면, 유사한 패턴들이 자주 반복되는 게 보이죠. 그런 면에서 반복이라는 말이 틀린 표현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럼에도 역사란, 변증법처럼 나선형으로 한 단계씩 계속 나아지고 있지 않은가 하는 낙관이 있죠.”
각 시대마다 현대 정치를 빗대 비교하는 장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시사 만평가다운 면모가 보이는 대목이었어요. 『조선왕조실록』 작업을 하는 10여 년의 시간 동안 한국 정치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요. 조선 시대를 들여다보면서 이런저런 소회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DJ 정부 말년에 작업을 시작했고, 첫 책이 나온 게 노무현 정부 초기였어요. 지금 다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는데, 이것과는 상관은 없지만…… 잘 가지 않겠나 생각해요.(웃음)”
진심이신가요?(웃음)
“뉘앙스가 약간 다른 얘기지만, 조선사를 보면서 제일 화가 나고 답답했던 점, 용인이 안 되는 점이 하나 있었어요. 인조 시대를 작업하면서, 마음속에서 폭발했는데,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관한 문제예요. 500년 동안 권리는 무한하고 책임은 제로에 가까운 사대부가 집권층이었단 말이죠. 그런데 공교롭게도 현대 사회에서 그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같아요. 역사를 봐도 그렇고, 지금의 형태를 봐도 그렇고, 우리 사회 지배층이라는 사람들은 어쩜 그렇게 닮아 있을까? 이런 안타까움이 있죠.”
한국적 특성으로 봐야 할까요, 인간적 특성으로 이해해야 할까요?
“로마만 봐도 그렇지 않죠. 시스템의 문제겠죠. 가령 군대 문제만 해도 그래요, 초기에는 양반층도 무조건 갑니다. 궁궐을 호위하는 군대는 원래 양반 자제들이 가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양반 비스무리한 사람들까지 군 복무에서 빠지는 거야. 나중에는 양반이면 당연히 빠지는 사회가 되어버린 거죠……. 조선 왕조가 임진왜란 때 정리가 한번 됐어야 하는데…….”
맞아, 이런 일이 있었어……. 어? 이런 인물이 있었어?
처음 이 작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15권을 완성한 지금을 돌이켜봤을 때, 이 작업에 대한 생각이나 계획이 바뀐 것은 없나요?
“신기하게도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처음 시작할 때, 실록을 20권으로 그려야지 계획했는데, 그때는 실록을 하나도 보지 않았을 때란 말이죠.(웃음) 공부하면서 지금까지 왔는데 크게 달라진 것들이 없고, 그때 이런 식으로 해야지, 했던 것도 대체로 그렇게 해온 것 같고, 다만 생각보다 기간이 많이 걸렸죠.”
성실하신 편인가 봐요.
“그렇다고 그래요.”
규칙적으로 작업하세요?
“그렇진 않고요. 가급적이면 열심히 해야지 하는데, 자꾸 바람이 들어서.(웃음)”
하기 싫을 때도 있지 않으세요?
“늘 하기 싫죠. 거의.(웃음)”
너무 길다 보니, 중간에 다른 작업을 하고 싶을 때도 있으실 것 같고.(웃음)
“한 5권까지 그릴 때는 그런 생각도 들었죠. 별로 세상에 주목도 못 받고, 이걸 과연 애초에 구상한 대로 해낼 수 있을까 싶고. 만화가 인생의 승부로 생각했었는데, 승부가 날 것 같지도 않고.(웃음) 내가 왜 이렇게 대책 없이 무모한 짓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좀 했죠. 그래서 한 5권에서 7권, 요쯤이 어려운 시기였던 것 같아요. 연산군쯤 가서는 ‘3분의 1쯤 했네’ 싶어 그런가 그런 생각은 없어졌어요. 시장 반응도 나아졌고, 그 이후부터는 잘 온 것 같아요.”
이전에 쓴 책들 보시면, 그때 상황이나 생각들 나세요?
“제가 오늘 15권을 봐야 질문에 대답할 텐데 싶어, 앞에 50페이지 정도 보고 왔거든요. 보면서 ‘맞아, 이런 일이 있었어’.(웃음) 14권쯤 되잖아요? ‘어? 이런 인물이 나왔어?’ 기억이 안 나고. 기억력 용량이 진짜 너무 작아요.(웃음)”
시사만평 할 때는 반응이 즉각 왔을 텐데, 『조선왕조실록』은 반응이 뜸해서 아쉽지 않으세요?
“아, 그런 거 저 되게 싫어요.(웃음) 반응도 다음 날 오면 괜찮은데, 신문사에서 그리면, 신문을 받아놓고 가잖아요. 7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딱 타면, 사람들의 반응이 바로 와요. 가장 좋은 건 ‘어우, 박화백, 오늘 좋았어’ 하면 최고죠. 어떤 날은 몇 사람이 같이 탔는데, 아무 소리가 없어요. 오히려 그럴 땐 괜찮아요. 근데 ‘박화백, 오늘 그 뭐야?’ 이러면 짜증이 팍 나는 거죠.(웃음)”
그래도 ‘오늘 좋았어’ 하는 반응이 제일 많았죠?
“그렇지 않아요. 사람들이 남의 일에 관심이 없어요. 왜냐면 신문 나오면 빨리 자기가 쓴 기사 틀린 거 없나 얼른 보고 가거든요. 그러니까 (만평은) 보지 않고 갈 때가 많죠.”
21세기에 다시 <조선왕조실록>을 작업하시잖아요. 현대의 사관 역할을 하고 계신 셈인데요. 자연히 그 당시의 사관들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셨을 것 같아요.
“당시의 사관들이 참 멋있었죠, 조선 왕조의 정치 시스템은 아까 얘기했던 사대부들의 후안무치함만 빼면 굉장히 훌륭한 면들이 많아요. 왕권에 대한 견제 장치도 다각적으로 되어 있고, 사관에게는 기록과 관련해서 누구도 터치할 수 없는 전권을 줬잖아요. 왕 앞에서든 어디서든 쓰고, 이것에 대해 나중에 실록을 취합할 때도, 관할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 사람들도 개입하는 데 한계가 있었어요. ‘빼라, 넣어라’ 함부로 못하는 거죠. 사관이라는 사람 자체가 이런 시스템 하에 있었기 때문에 사명감을 가지고 출발했고, 설령 그 사관이 특정 정파 입장에 있었다 하더라도 팩트는 팩트로 기록한 점들은 훌륭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지금 신문 기사들보다 훨씬 낫죠.”
기록이 500년 동안 계속되었다는 점이 굉장한 것 같아요. 어떤 왕이라면, 이런 제도부터 없애고 싶었을 것 같은데.
“그게 되게 신기하죠. 동양 정치가 이룩해낸 대단히 수준 높은 체계라고 할 수 있죠.”
역사에 관심 있다면, 실록을 권한다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배워온 역사 지식이 무척이나 단절되어 있다는 점을 깨닫고 놀랐습니다. 임금의 업적이나 사건을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지, 이렇게 인과관계를 따져가며 역사를 접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의 국사 수업이라는 것도 단편적인 지식 암기이고요. 직접 작업하시면서도 느끼셨을 것 같은데요.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이 ‘역사를 이렇게 접했으면, 이렇게 교육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면요?
“지금 교육 시스템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고 봐요. 전문가가 아닌 중?고등학생 수준에 맞춰, 최대한 공인된 학설에 기초해서 축약한 정보를 줘야 하다보니. 게다가 시험 때문에 더 암기화된 측면이 있긴 한데, 지금 교과서 체제보다 발전한 또 다른 뭔가를 떠올리기는 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들의 권고에 따라서 다양한 서적들을 접한다거나 이러면 좀더 풍부하게 역사를 접할 수도 있겠죠.
저 같은 사람들 있잖아요. 역사를 소개하는 안내자 같은 사람들이, 조선사와 관련해서 실록을 좀 더 많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업하면서 많이 놀랐던 게 실록에 버젓이 나와 있는데도, 엉성한 얘기를 하는 책들이 많더라고요. 여전히 실록 연구도 덜 되어 있고요. 물론 지금처럼 국역이 되어 누구나 접할 수 있게 된 게 오래된 일이 아니라, 그럴 수 있다고 봐요. 예전에는 한자 본을 누구나 찾아 읽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소수의 먼저 보신 분들이 ‘이건 이거니라’ 하면 그렇게 가곤 했거든요.
요즘에도 역사에 관심 있고 공부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분들이 실록에 달려들고, 태종이면 태종, 한 인물이나 한 사건에 파고들면, 실록에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조들이 <조선왕조실록>이라는 놀라운 역사 기록물을 남겨주셨으니, 후손들이 잘 활용해야죠. 최소한 그 시절이 이랬구나 하는 것을 제대로 알아야죠.”
이렇게 쉽게 풀어 쓴 글에서도 왜곡이 있곤 하잖아요. 이 책을 접하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딱히 없고요. 이전에 어떤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고 사학과를 가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개론서로서 길잡이, 실록을 잇는 하나의 징검다리였으면 싶죠.”
혹시 앞으로도 이런 대작을 기획할 계획이 있으신가요?
“아~ 아뇨.(절레절레)”
다 만화가에 거셨다고 했는데, 4분의 3 지났는데 어떤 것 같으세요?
“애초 생각 흐름대로 잘 가고 있는데, 생각보다 더 잘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제 수준치고는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더 잘하는 것 같아요.(웃음)”
요즘 온라인으로 만화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데 어떻게 보세요?
“온라인으로 확대가 되고 있는 건지, 온라인만 살아남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웃음) 만화 시장이 많이 위축된 것 같아요. 10년 전만 해도 일반 단행본에서 권당 10만 권 나가는 책이 꽤 있었거든요. 지금은 이런 교양서나 학습서는 그나마 팔리는데, 극화라고 불리는 만화 작품들이 시장에서 정말 대접을 못 받는 것 같아요. 그중에 괜찮은 것들이 꽤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워낙 시장이 협소하니까, 작가들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좋은 만화가 많다고 하셨는데, 주목하는 만화가나 눈에 띄는 만화가가 있다면요?
“작년에 웹툰 중에 윤태호 씨의 『이끼』를 재미있게 봤어요. 잘 생각이 안 나는데 꽤 있었어요. 교양만화 파트에서도 『십자군 이야기』의 김태권 씨도 그렇죠. 재미있잖아요. 재기 발랄한 젊은 친구들이 많이 있죠.”
관심도 많고 논란도 많은(웃음) 16권 ‘정조’ 편 작업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갓 걸음을 뗀 단계예요. 공부하고 있어요. 24년 정도 재위했는데, 10년 정도 본 상태고, 오늘 정조 10년 9월 공부하고 왔어요.”
그 시대에는 짜증 나거나 속상한 거, 없으세요?(웃음)
“짜증, 무지하게 나죠. 말이 너무 많으셔서. 신하들이 한마디 하면, 두 마디 세 마디 하시게 되니까 어휴……. 그게 사실 대단히 멋있는 모습이에요. 정말 터프하고. 리더십 있고. 근데 참…… 저로선 피곤하죠.(웃음)”
다 완성하고 나면, 아쉬우실 것 같아요? 섭섭하실 것 같아요?
“아휴, 당연히 시원하죠.”
마지막 질문입니다. 어떤 만화가로 남고 싶으세요?
“뭐, 괜찮았다. 쓸 만한 놈이었어.(웃음)”
열다섯 권짜리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하 『조선왕조실록』)의 첫 장을 넘길 때마다, 나는 이 이야기의 맨 처음을 상상해보곤 했다. 조선 역사의 처음이 아니라, 이 책의 역사의 첫 장면을 말이다. “외환위기가 한창일 때였다”로 시작되는 머리말에 그 사연이 간략하게 나온다.
사극을 재미있게 보던 저자, 문득 조선사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걸 느낀다. 당시 몸담고 있던 신문사 도서관에서 저자는 처음으로 조선에 관련된 책들을 접한다. 시사만화가의 촉수는 이내 조선 정치사의 흥미진진함을 감지해 낸다. “거기에는 우리 귀에 익숙한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의 신념과 투쟁, 실패와 성공의 이야기가 있었고 『삼국지』나 『초한지』 등에서 만나는 극적인 드라마와 무릎을 치게 하는 탁월한 처세가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러하다. “궁궐을 찾아 사진을 찍고 화보자료를 찾아 헌책방에도 기웃거렸다. (…) 동네를 산책하면서도 머릿속에선 항상 그 시대의 인물들이 이야기를 주고받고 다투곤 했다. 어쩌다 어떤 인물의 행동이 새롭게 이해되기라도 하면 뛸 듯이 기뻤다.” 열다섯 권에 실린 머리말의 글을 열다섯 번 읽으면서, 궁궐을 맴돌며 여러 사진을 찍어보고, 헌책방을 기웃거리고, 길을 걷다 “유레카” 대신 “그거야!” 정도를 중얼거리며 빙긋 웃고 있는 박시백 화백을 떠올려보았다. 그럴 때면 나도 절로 웃음이 났다.
국보 151호, 무려 320쪽짜리 책 413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조선왕조실록>은 다른 나라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특하고도 성실한 기록물이다. 조선 500여 년의 정치뿐 아니라 사회, 문화, 경제, 외교, 풍습 등 다방면의 역사적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실록을 기록하는 사관 외에는 원칙적으로 누구도 기록에 관여할 수 없었고, 당대의 왕조차 볼 수 없었던 기록이다. 박시백 화백은 이런 실록을 중심으로 지금의 독자들이 보기 쉽고 알기 쉽게 <조선왕조실록>을 전달하고 있다.
시대마다 왕을 주연으로, 정몽주, 이순신, 조광조 등 익숙하거나 의미 있는 조연들이 대거 출연! 그야말로 <조선왕조실록>은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대하드라마다. 인과관계와 정황을 따져 탄탄하게 구축한 캐릭터는 절로 감정이입을 일으켜, 역사를 사람의 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때문에 역사가 과거로만 머물지 않고, 현재의 시간에 사선을 긋고, 곡선으로 밀려들어온다. 그렇게 내 삶에 접점을 이루며 지금과는 다른 삶, 다른 길을 슬쩍 내보이기도 한다. 교과서에서 도표로 본 역사는 박물관 유리창 너머 숨을 멈추고 있는 시간의 편린에 불과했는데, 이야기 속의 역사는 쉴 새 없이 흐르고 출렁이고 있었다. 조선 사회의 어떤 사건도, 어떤 정책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없었다. 책장을 넘기며 웃는 새에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취할 수 있다는 점이 『조선왕조실록』의 가장 큰 미덕이다.
한 장면 한 장면 치밀하게 짜여 있는 만화를 보면서, 이 만화가의 머릿속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정사, 야사, 인물의 생몰연도, 의복사, 전쟁사, 중국사 등등 적어도 서너 개의 연표가 동시에 펼쳐져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정도의 꼼꼼한 작업을, ‘오래’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편한 티셔츠에 사람 좋은 얼굴을 한 책날개의 사진은 그저 이미지 컷일지도 모른다는 짐작을 하고 박시백 화백을 만나러 갔다.
그는 스스로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인터뷰 중 여러 번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우선 저자의 솔직한 대답 때문에 그랬고,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말을 보태야 할 때면, 그 난감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 때문에 웃었다. 또 예민, 꼼꼼, 괴팍 따위의 말을 한방에 날려버릴 만큼 호탕한 웃음을 터뜨릴 때마다, 보는 사람 역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웃음들은 여유로웠지만 묵직했다.
“오늘 정조 10년 9월 공부하고 왔어요.” 그는 2012년 완간이라는 결승점을 향해 한 걸음씩 발을 떼는 중이었다. 세간에는 토끼처럼 빠른 속도로 새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잘 알고 있는 거북이 같았다. 기획부터 콘티, 채색 등 모든 공정을 혼자 해내며, 서두르지 않고 예정대로 작업하고 있었다. 무엇이든 계속하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단단한 힘이 그에게도 느껴졌다. 그는 처음과 지금, 작업에 대한 생각이나 계획에 별반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담담한 말이었지만, 계획한 대로 잘 가고 있다는 믿음과 확신이야말로 『조선왕조실록』 각 권이 내보이는 완성도의 비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도세자가 노소 당쟁의 희생양? 이건 아닌데
15권을 털어낸 소회는 어떠한가요?
“영조가 정말 오래 사셨잖아요? 재임 기간도 길었고. 저로서는 상당히 지루한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시간도 예전보다 많이 걸렸고요. 어쨌거나 무사히 책이 나오게 되어 기쁩니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나 고민했던 점이 있다면요?
“13권부터 예송논쟁이 나오고, 14권에서도 당쟁이 계속 이어지니까 독자들이 지루해하는 것 같아요. 지겨운 부분이라고 해서 안 그릴 수도 없고, 15권에서는 당쟁과 그에 맞서는 영조의 탕평이 펼쳐지는데, 이것을 어떻게 덜 지루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죠.”
초반에 신하들의 말 주머니가 대사들로 빡빡하더라고요.(웃음) 15권에서는 무엇보다 사도세자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후반에는 비중 있게 다뤄졌는데요. 사도세자를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도대체 사도세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실록을 보기 전부터 궁금했던 부분이었어요. 여러 가지 해석 중에 노소 당쟁의 희생양이라는 해석이 근래에 정설이 되었는데, 자꾸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부를 계속해 나가면서 ‘정말 아니다’ 싶은 정황 근거들이 나왔죠. 왕과 세자의 관계란 원래 정치적 관계니까, 그들의 관계나 궁합 등을 통해 접근하는 게 옳다고 판단했어요.”
‘아니다’ 싶은 정황 근거들이 나왔다고 하셨는데, 이를테면 어떤 것인가요?
“대표적으로 노론 측 신하들이 왕과 세자 사이를 끊임없이 이간했다는 대목이 나와요. 만약 이간질했다면, 세자가 말로는 아프다고 하고 관서 지방에 유람 다녀온 것을 왕이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요. 사실 이 사건은 이간질도 필요 없이 있는 사실만 얘기해도 왕이 ‘세자, 이노무 자식이!’ 할 수 있는 사안이잖아요, 저도 궁금했어요. 실제로 왕이 알면서 모른 척한 것일까? 그 과정을 살펴보니, 세자가 왕이 알까 조바심 내는 장면이 나와요. 이런 것으로 봐서 나중에 제대로 밝혀지기 전까지 왕이 그 사실을 잘 몰랐다는 걸 알 수 있죠. 이런 정황을 봤을 때, 두 사람의 문제를 이간으로만 몰고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의 시사, 조선왕조실록
“그건 좀 오버했던 것 같고요,(웃음) 신문사에서 시사만화를 그릴 때,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세상에는 유사한 사건이 계속 벌어지는데 그림은 새롭게 그려야 하잖아요. 이런 것들이 갈수록 힘이 부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4년 정도 그렸는데, 이 일을 10년, 20년 할 수는 없겠다 싶어, 만화가로서 제가 잘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어요. 아무래도 지식이나 정보를 가공해서 만화화하는 것을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아무 근거 없이 들었어요.
그때 <조선왕조실록>을 접하게 된 거죠. 사실들 자체가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들을 소개하는 다른 책들을 보니까, 동일한 사건을 완전히 다르게 다루고 있더라고요. 해석의 차이가 아니라, 팩트 자체가 다른 것들도 많았고요. 이건 뭔가 제대로 작업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죠. 강박관념이라는 건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 먼저 해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나…….(웃음)”
다른 기록과 비교해봤을 때 <조선왕조실록>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이것도 당시의 시사잖아요. 시사 만평가 시선으로 접근하기가 쉽겠다고 생각했어요. 중국사를 볼 때도 『사기』 같은 기록이 저에겐 매력적이었어요. 조선사는 주로 드라마로 다뤄지면서 정사보다 궁중 암투 위주로 얘기된 측면이 있잖아요. 정사 자체에서도 이런 드라마를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하루하루 만평을 그리다가 어떻게 500년을 다뤄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나요? 적게 잡아도 10년은 걸리겠다 싶었을 텐데요.
“그렇죠. 『조선왕조실록』은 처음 구상할 때부터 20권을 생각했는데, 문제는 그걸 <조선왕조실록> CD를 구해 보기도 전에 구상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막연하게 그리는 속도를 고려하면, 권당 3~4개월 정도 소요되지 않을까. 빠르면 한 5년, 늦으면 7년? 이 정도면 승부를 걸어볼 만하겠다 싶어 덤벼들게 된 거죠.”
언제 ‘아니다’ 싶으셨나요?(웃음)
“바로!(웃음) 두 권쯤 하고 나니까 알겠더라고요. 첫 권은 당연히 오래 걸릴 줄 알았어요. 처음에 시안 잡고 검토를 한 후에, 마음에 안 들면 새로 그리고, 출판사와 판형 조정하면서 또 새로 그리느라 거의 1년이 넘게 걸렸어요. 그럼 이제 다음 권은 3~4개월에 끝내야 되잖아요.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저 자신을 작업에 매진시켰는데 한 5개월 정도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아…… 아니구나’ 싶었죠”
첫째도 실록, 둘째도 실록
건강은 좀 어떠세요?
그런데도 콘티부터 그림, 채색 모든 공정을 혼자서 하고 계세요. 그런 작업 방식을 고수하시는 까닭이 있나요?
“하다 보니 이게 편하더라고요. 작업 과정에서 실록을 공부하는 데에 시간이 많이 소요돼요. 공부하는 데에만 기본 한 달 반에서 세 달이 걸리고. 나머지 3~4개월 동안 콘티 작업을 한 후에 그리거든요. 사람을 둔다 하더라도 공부를 같이 할 수 없으니 실록 공부와 콘티 짜는 일은 어쨌든 제가 해야 하는 일인 셈이죠, 허드렛일을 부탁할 순 있겠는데 오히려 번거로울 것 같더라고요.”
공부하는 과정을 소개해주신다면요?
“첫째도 실록, 둘째도 실록이죠. 실록이 워낙 방대해서 공부하면서 필기를 해요. 나중에 찾아봐야 하니까요. 노트 필기 하면서 한번 쭉 보고, 필기한 것을 가지고 저만의 연표를 다시 만들어요. 큰 사건들은 머릿속 기억에 있으니까, 그것들을 간략해서 한 권짜리 요약본을 만들어요. 이게 콘티를 짜는 데 기본이 되죠. 그걸 통해서 장을 구성하고, 소제목을 잡고, 그런 다음 콘티 작업을 해요. 그 외 참고 서적은, 실록과 병행해서 보는데, 초기에는 참고 서적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워낙 지식이 없이 시작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실록 위주로 해석하고 판단하게 돼요.”
이야기의 뼈대를 세우기 위해, 다양한 에피소드를 선택하고 취합하실 텐데요. 중점적인 사건 등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시나요?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죠. 그 전에는 다루지 않았는데 재미있는 사건이라든지, 혹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소개해요. 대개는 그동안에 여러 책에서 바로 잡던 것 위주로 선택해요.”
병자호란 이야기를 다룰 당시에, 편집자로부터 조선의 저력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후기에 밝히신 바 있습니다. 근거 있는 반론을 보내주는 독자도 있다고 하셨고요. 이런 적극적인 반응이 많은가요? 어떻게 검토하고 반영하시는지요?
“독자들의 의견이 저에게 직접 온다기보다는 블로그에 많이 올리시는데, 제가 원래 귀가 얇아서 듣기는 다 듣고, 신경을 많이 써요. 그런데 또 고집이 있어서 하고 싶은 대로 하거든요.(웃음) 그래도 소소한 실수들을 지적하는 것에 대해서는 바로 반영을 하죠.”
기억에 남는 태클이 혹시 있었나요?
“당장 이번 책만 하더라도, 소를 올린 사람이 당시 20세인데 할아버지로 그려져 있다고 하더라고요. 확인해보니까 그 말이 맞더라고요. 수정해야 하거든요. 주요한 인물들은 출생연도를 같이 적어놓고 그 사건 시점에 이 사람이 몇 살인가, 이런 것들을 고려하는데, 어디선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은 오히려 고맙죠.”
그런데 그걸 어떻게 찾아내셨을까요.(웃음)
“저도 되게 신기해요. 책을 보시는 분 중에 전문가이신 분들도 꽤 있어요. 아주 세세한 것들을 잡아주시는 독자들도 가끔 있고요.”
당파, 입장이 달라도 팩트는 팩트로 기록돼
“실록 우선이죠. 실록도 어쨌든 역사 기록물이니까 담당 사관의 시각이 개입되고, 그 실록이 나올 당시에 집권한 세력의 영향도 있을 테고, 그래서 곡해도 있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실록을 보다 보면, 팩트 기사와 해설 기사가 구분돼요. 실록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은, 설령 사관과 당파가 다르고, 미워하는 당파 쪽의 발언이라고 해도, 발언 자체는 있는 그대로 싣는다는 거죠. 후대의 우리가 그 당시의 인물과 사건을 중심을 갖고 바라볼 수 있게 해줘요. 이렇게 풍부한 팩트 위주로 씌어졌기 때문에 실록이 사실에 가까울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보죠.
이야기를 전달할 때, 균형 감각을 유지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세종 시절을 예로 들면, 으레 태평성대라고만 생각하지만, 집권 사대부들과는 달리 민중의 삶은 더 어려웠다는 점을 보여주셨죠. 유랑민은 넘쳐나고, 화폐 정책도 민중들의 삶을 어렵게 한 것 중 하나였고요. 한 시대를 볼 때 이렇게 전체적인 조망을 위해 어떻게 노력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역사는 결국 후대 사람들이 보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네들 시각이 반영될 수밖에 없잖아요. 저 역시도 지금의 시선으로 소개하고, 결과를 가지고 보게 되죠. 이런 것과 동시에 시대적인 흐름 속에서 당대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고려하려고 애를 써요.
조광조 이후에 사림세력이 집권하게 되면서, 조광조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잖아요. 지금의 눈으로 보면, 사실 조광조의 주장에 어설픈 면이 많단 말이죠. 이를테면 ‘과거제를 폐지하자. 대신 추천을 통해 선발하자’고 한다든지. 그야말로 온정주의가 흐르고, 각종 뇌물이 오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데 조광조는 그런 아마추어적인 요구를 했단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조광조가 내세운 것이 굉장히 영향력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따랐어요. 이것은 그 시대에 그런 흐름과 요구가 있었다는 거죠.”
민중들의 이야기나 민심에 대한 내용도 <조선왕조실록>에 담겨 있나요?
“간간히 나와요. <조선왕조실록>은 날씨부터 시작해서, 어디에서 꼬리가 두 개 달린 송아지가 나왔다는 등 특이한 사항은 대부분 기록되어 있고 흉년이 되어 사람들이 얼마나 굶어 죽었다, 이런 것들도 다 나오거든요. 이런 기록 속에서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이 보이죠.
그런데 세종 편의 경우 독자들에게 곡해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작품이 작가 손을 떠나면, 독자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보게 되는데, 마치 세종의 흠을 드러내며 ‘봐라, 세종, 이런 사람이었다’고 말한 것처럼 보시기도 하더라고요. 저는 정말 세종이 빼어난 왕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아무리 빼어나다 하더라도 조선 사회라는 그 상황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백성들의 삶이 사대부와는 다를 수 있었다는 걸 얘기한 건데 좀 곡해된 면이 있더라고요.”
저도 그 부분이 의외였어요. 하지만 세종은 그 이후의 왕들에게 계속 영향을 미치잖아요. 비교되기도 하고, 그림자처럼 드러나기도 하는데, 후대로 갈수록, 세종의 가치가 더 돋보인다고 느꼈던 기억이 나요.
정도전, 끝까지 이상을 버리지 않았던 정치가
열다섯 권을 완성해오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시대는 언제인가요?
“첫 편이 자료가 방대해서 어려웠고, 세종실록도 어려웠어요. 최근에는 많이 나왔는데, 작업 당시에는 세종을 잘 소개하는 책들이 거의 없었어요. 진짜 위대한 임금에 대해 공부하면서, 이걸 잘 요약해서 보여줘야겠다는 욕심은 앞서는데, 자료는 너무 방대하고. 가령 음악에 관련해서 전문적으로 파고들면 잘 모르잖아요. 그런 게 어려웠던 것 같고. 그 다음에 15권…… 너무 지겨워서.(웃음)”
오히려 자료가 많으면 더 어려운 점도 있군요.(웃음) 가장 매력 있는 인물로 매번 세종대왕을 꼽으셨습니다. 여전히 같은 생각이신가요? 혹시 또 매력 있는 인물이나, 인상 깊었던 인물이 있었다면 누가 있을까요?
“초기의 인물들이 되게 매력적인 것 같아요. 태조도 그렇고, 정도전도 그렇고. 특히나 태조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으로 평가절하된 인물이 아닌가 싶어요. 정치적 역량을 봤을 때,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역성혁명을 성공시킨 사람인데, 마치 고려 자주 국가를 무너뜨리고 명나라에 사대하는 조선을 만들었다는 오명을 태조한테 씌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하지만 만약 그때 태조가 조선을 세우지 않았다면, 사대부들이 주역이 됐을 텐데, 그래도 상황은 똑같았을 거라고요. 사대 같은 부분들은. 당시 사대부들의 생각이 공통적이었고, 그런 흐름이 있었으니까요.
그런 걸 벗겨놓고 본다면, 그야말로 여진족 틈에서 거치게 성장해서, 전장에서 대부분의 인생을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정도전 같은 사대부들을 만나, 그들의 리더로서 부족함 없이 처신을 잘했죠. 왕조를 세워서 국왕이 되기까지 리더십도 굉장하고 멋있었던 사람이 아니었나 싶어요. 정도전은 보는 사람 대부분이 멋있다고 그러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태조의 삶은 정말 한편의 드라마였잖아요. 그래서 기억이 많이 남더라고요. 반대로 가장 얄미웠던 인물이 있다면요? 저는 개인적으로 한명회가 좀…….(웃음) 그림도 얄밉게 그려진 것 같고요.(웃음)
“아, 얄밉다고 접근하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한명회가 유능한 사람이었던 건 틀림없는 것 같아요. 얄밉다기보다 진짜 화나는 인물들이 꽤 있죠. 가장 대표적으로 인조가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인조 시대 때 사대부들 자체가 그러하고…… 진짜 화가 나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인물이라고 한다면, 누가 있을까요? 지금 이때에 한 사람을 불러낼 수 있다면?
“여전히 저는 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시대든, 어느 시대든 간에. 특히나 정치가로서 뭔가 해보겠다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이상에만 치우치게 되면 빛을 못 보게 되는데, 정도전은 이상을 잃지 않으면서 현실과 잘 결합해갔던 인물인 것 같아요. 정치권에 나왔을 때, 나이도 많았고 어려움도 많이 겪었지만 끝까지 이상을 버리지 않았던 인물이었다고 봐요. 그래서 여전히 필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요.”
흑백으로 바라보는 역사 인물, 보이는 대로 그렸다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가 문치의 나라잖아요. 이렇게 토론이 많았던 나라가 있었나 싶어요. 동양의 정치 원리가 유교주의니까 그렇기도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궁극의 단계를 보여주는 게 조선사인 것 같아요. 싸움도 다 말로 이뤄지는 거예요. 상소를 내고, 경연장에서 주장으로 대고, 이러한 것을 일부라도 소개하지 않고는 이 싸움을 표현해낼 수가 없죠. 정치사의 흐름을 보여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두 가지 사이에서 고민을 하게 되는데, ‘만화냐? 역사서냐?’ 하는 문제죠. 결국 역사를 소개하는 것이니까, 제대로 소개를 하자는 마음에서 한바닥 대사를 쓰기도 했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왔으니까 어떻게 하겠습니까. 끝까지 (역사서로) 해야지.(웃음)“
노론 소론 하도 말이 많아서, 그 당시 임금님도 정말 피곤했을 것 같아요. 그림이다 보니, 하나의 장면을 그리는 데에 많은 정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 시대의 의복, 머리, 건축 등의 배경 등등 이런 것들은 어떻게 정리해서 작업하시나요? ‘흉배 착용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모자가 여기서부터 바뀝니다’ 등 여기저기서 꼼꼼함이 눈에 띄었는데요.
“저 의외로 꼼꼼하지 않은 편이에요. 처음에 시작을 할 때, 이런 걸 다 갖추고 시작하자니, 도무지 시작을 못하겠더라고요. 하면서 고쳐나가자 했죠. 처음 1권 같은 경우는, 고려 말의 고증이 안 된 상태에서 마구 그렸어요. 그나마 조선 시대부터는 초상화가 많이 있으니까 그것에 기반을 두고 그리기도 했고요.
실록 자체에 복식이나 복색에 대해 자꾸 나와요. 당시에도 사람 사는 세상이었기 때문에 유행이 있거든요. 관복 같은 경우 ‘당상관은 홍색을 입고, 당하관은 청색을 입어라’ 이렇게 법규를 만들면 한 2~3일 지나 이게 무너져요. 당상관 옷이 멋있으니까 다 빨간색으로 입는 거예요. 그러다 이런 풍속이 과해졌다 싶으면, 다시 조정에서 논의해 정정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그때그때의 유행이 있고, 여름에 남성들이 넥타이를 좁게 맸다가 짧게 맸다가 하듯이 사모도 높아졌다가 낮아졌다가 휘어졌다가 펴졌다가 계속 변화를 해요. 실록에서 나오는 사항은 대부분 반영하는데 복식사를 따로 많이 공부한 게 아니라서 부족함이 많습니다.”
캐릭터가 가장 인상적입니다. 책을 덮고 나면 사건보다 인물들의 캐릭터가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아, 그 인물이 이런 사람이었지. 세종대왕님이 통통한 사람이었지’ 이런 식으로.(웃음)
“통통한 게 아니라, 뚱뚱한 사람이었죠.(웃음)”
캐릭터는 어떻게 구축해가시나요?
“제가 작업하는 걸 보면 사람들이 실망할 텐데. 실록을 공부하다 보면 인물에 대해 단편적인 묘사가 나올 때가 있어요. 가령 세종을 보면, ‘비중했다. 살찌고 무거웠다’ 이런 말이 있고, 태종의 경우에는 양녕을 소개하면서, ‘나보다 키도 크고 잘생기고, 진짜 왕처럼 생겼는데, 나는 별거 아니다’ 이런 표현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수염이 많았다는 등 이런 식의 단편적인 묘사가 있긴 한데 실록에서 외모에 대한 묘사는 약한 것 같아요. 추상화가 남아 있는 경우라면 당연히 그것을 따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인상 위주로 만들게 되죠.
강단 있어 보인다 내지는 잔머리가 뛰어나 보인다, 등의 느낌? 있잖아요. 그런 게 작용되고, 역으로 얄미운 사람은 좀 잘생기게 그렸다가 그 인상이 심술궂게 변해가는 걸 묘사하기도 해요, 반대로 볼품없이 생겼는데 성장하면서 매력적으로 변해가는 인물도 있죠. 그런데 ‘이걸 어떻게 그릴까’ 막 연구하는 건 아니에요. 후다다닥 생각해서 열 명의 캐릭터가 두어 시간에 뚝딱 나오곤 하죠.(웃음)”
인물이 많아서, 얼굴이나 표정을 그리는 일도 만만찮을 것 같습니다. 왕뿐만 아니라 신하도 있고 백성도 있으니까요. 똑같은 얼굴도 있죠?(웃음)
“확인을 안 해봐서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어, 이런 얼굴은 어디선가 나왔던 것 같아’ 싶은 게 당연히 있죠. 아무래도 제가 좋아하는 선 패턴이 있다 보니까, 눈은 어떤 눈, 이런 식으로 다루게 되는 것들이 있다 보니 비슷한 눈이 열 명도 더 될 거예요. 하지만 눈 말고 코나 입 등 다른 데서 달라지면 되잖아요. 이게 역사물이어서 좋은 게, 눈, 코, 입이 다 같아도 수염만 다르면 다른 사람이에요.(웃음) 덕분에 많은 사람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차별성을 가질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저는 양쪽 눈 사이의 거리에 따라 인상이 달라지는 게 재미있었어요.(웃음) 인물을 그릴 때, 어떤 화가들은 자기 얼굴을 넣거나 아는 사람의 얼굴을 배경으로 넣기도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혹시 정치 인물을 그리시면서 현대의 얼굴을 모델로 삼은 적은 없으셨나요?
“일종의 장난인데, 1권에 이인임 같은 경우, 얼굴에서 수염을 떼면, 김종필 자민련 전 총재 얼굴이에요. 이인임이 당시 보수를 상징하는 인물이고, 정치적 수완이 되게 뛰어난 인물이라 그 얼굴을 빌렸고, 4권에 보면 허조라고 있어요. 뛰어난 재상이었는데, 굉장히 꼬장꼬장해서 세종이 지겨워하는 인물이 있어요. 민주당 국회의원이었던 조순형 씨 얼굴을 빌렸었죠. 그 이후에도 이런 걸 할까 하다가, ‘에이, 큰 의미가 없겠구나’ 싶어서 말았어요.(웃음)
이런 건 있습니다. 가령, 캐릭터를 만들 때, 이 사람은 굉장히 머리가 뛰어나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다 싶으면, 이와 유사한 인상의 사람들이 있잖아요. 이회창 씨라든가, 유시민 씨 이런 분들이 떠오르면 사진을 보지 않고, 머릿속의 이미지만 놓고 그려요, 눈매는 이런 식으로 해야지 하는 식으로.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얼굴인데도 제가 원했던 느낌이 나오기도 하죠.”
일반적으로 인물들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쁜 평가를 받아온 인물은 그만큼의 긍정적인 면을 보여주고, 오히려 마냥 숭상되는 인물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식으로요. 인물을 다룰 때 어떤 일관된 태도가 있으신가요?
“제가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고, 그냥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라고 보시는 게 맞습니다. 기존에 역사 인물들에 대해 흑백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어요. 좋은 인물이다 하면, 그 사람의 모든 걸 다 훌륭하고 좋은 쪽으로만 바라보고, 그 대척점에 있었다면 악당처럼 여기고요. 이렇게 애들 이야기처럼 해석한 경우가 많아요.
이를테면 10권의 유성룡 같은 경우, 대부분의 책이 유성룡을 훌륭한 재상, 임진왜란의 영웅이라는 식으로 다루는데, 실제 역사를 보니까 아닌 얘기들이 많이 있는 거예요. 가장 놀랐던 것은, 이순신을 다룬 드라마나 책에서 항상 유성룡을 이순신의 후원자로 등장시킨 점이었어요. 유성룡이 쓴 자기 책 『징비록』에서 이런 식의 대목이 있거든요. ‘내가 이순신을 후원했기 때문에, 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순신을 건드렸다’는. 사실 기록을 보면 이순신 처벌을 의논할 때, 유성룡은 언제나 왕의 이야기에 영합하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여요. 이런 당연한 사실들이 그동안 다른 분들 눈에 왜 안보였을까 그게 참 궁금해요.
남곤 같은 경우도 이러한데, 당시 굉장히 뛰어난 인물이었거든요. 그런데 조광조의 적이라고 하면서, 남곤은 나쁜 놈이라는 낙인을 찍으니까 세월이 바뀌어도 그런 평가가 계속 반복돼왔어요. 그렇다고 이런 오해를 풀어줘야겠다, 하는 사명감은 아니었고, 보이는 대로 그리다 보니까 이렇게 되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 지배층은 어쩜 그렇게 닮아 있을까
“없는 편이죠. 낯가림이 심하고 버벅거려요.(웃음) 그런데 그림을 그릴 때는 다른 것 같아요. 예전에 박수동 선생님이었나? 정말 재미있게 그림을 그리는 만화가가 TV에서 인터뷰를 하는데, 정말 안 웃기는 거예요.(웃음) 아, 이게 다른 거구나 싶었죠.”
역사가 반복된다는 말이 실감나더라고요. 지금 있을 법한 일이 그때에도 있었고, 시대마다 비슷한 일이 보이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나아가기도 하고, 뒤로 가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어요. 역사가 반복된다는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역사라는 게 사람 일이 모아져서 만들어지는 거죠, 한 개인사 안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잖아요. 정말 굳게 결심하지 않으면 유사한 상황에서 그 사람은 유사한 행동을 하게 돼요. 그런 사람들의 덩어리로서 역사를 보면, 유사한 패턴들이 자주 반복되는 게 보이죠. 그런 면에서 반복이라는 말이 틀린 표현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럼에도 역사란, 변증법처럼 나선형으로 한 단계씩 계속 나아지고 있지 않은가 하는 낙관이 있죠.”
각 시대마다 현대 정치를 빗대 비교하는 장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시사 만평가다운 면모가 보이는 대목이었어요. 『조선왕조실록』 작업을 하는 10여 년의 시간 동안 한국 정치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요. 조선 시대를 들여다보면서 이런저런 소회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DJ 정부 말년에 작업을 시작했고, 첫 책이 나온 게 노무현 정부 초기였어요. 지금 다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는데, 이것과는 상관은 없지만…… 잘 가지 않겠나 생각해요.(웃음)”
진심이신가요?(웃음)
“뉘앙스가 약간 다른 얘기지만, 조선사를 보면서 제일 화가 나고 답답했던 점, 용인이 안 되는 점이 하나 있었어요. 인조 시대를 작업하면서, 마음속에서 폭발했는데,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관한 문제예요. 500년 동안 권리는 무한하고 책임은 제로에 가까운 사대부가 집권층이었단 말이죠. 그런데 공교롭게도 현대 사회에서 그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같아요. 역사를 봐도 그렇고, 지금의 형태를 봐도 그렇고, 우리 사회 지배층이라는 사람들은 어쩜 그렇게 닮아 있을까? 이런 안타까움이 있죠.”
한국적 특성으로 봐야 할까요, 인간적 특성으로 이해해야 할까요?
“로마만 봐도 그렇지 않죠. 시스템의 문제겠죠. 가령 군대 문제만 해도 그래요, 초기에는 양반층도 무조건 갑니다. 궁궐을 호위하는 군대는 원래 양반 자제들이 가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양반 비스무리한 사람들까지 군 복무에서 빠지는 거야. 나중에는 양반이면 당연히 빠지는 사회가 되어버린 거죠……. 조선 왕조가 임진왜란 때 정리가 한번 됐어야 하는데…….”
맞아, 이런 일이 있었어……. 어? 이런 인물이 있었어?
“신기하게도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처음 시작할 때, 실록을 20권으로 그려야지 계획했는데, 그때는 실록을 하나도 보지 않았을 때란 말이죠.(웃음) 공부하면서 지금까지 왔는데 크게 달라진 것들이 없고, 그때 이런 식으로 해야지, 했던 것도 대체로 그렇게 해온 것 같고, 다만 생각보다 기간이 많이 걸렸죠.”
성실하신 편인가 봐요.
“그렇다고 그래요.”
규칙적으로 작업하세요?
“그렇진 않고요. 가급적이면 열심히 해야지 하는데, 자꾸 바람이 들어서.(웃음)”
하기 싫을 때도 있지 않으세요?
“늘 하기 싫죠. 거의.(웃음)”
너무 길다 보니, 중간에 다른 작업을 하고 싶을 때도 있으실 것 같고.(웃음)
“한 5권까지 그릴 때는 그런 생각도 들었죠. 별로 세상에 주목도 못 받고, 이걸 과연 애초에 구상한 대로 해낼 수 있을까 싶고. 만화가 인생의 승부로 생각했었는데, 승부가 날 것 같지도 않고.(웃음) 내가 왜 이렇게 대책 없이 무모한 짓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좀 했죠. 그래서 한 5권에서 7권, 요쯤이 어려운 시기였던 것 같아요. 연산군쯤 가서는 ‘3분의 1쯤 했네’ 싶어 그런가 그런 생각은 없어졌어요. 시장 반응도 나아졌고, 그 이후부터는 잘 온 것 같아요.”
이전에 쓴 책들 보시면, 그때 상황이나 생각들 나세요?
“제가 오늘 15권을 봐야 질문에 대답할 텐데 싶어, 앞에 50페이지 정도 보고 왔거든요. 보면서 ‘맞아, 이런 일이 있었어’.(웃음) 14권쯤 되잖아요? ‘어? 이런 인물이 나왔어?’ 기억이 안 나고. 기억력 용량이 진짜 너무 작아요.(웃음)”
시사만평 할 때는 반응이 즉각 왔을 텐데, 『조선왕조실록』은 반응이 뜸해서 아쉽지 않으세요?
“아, 그런 거 저 되게 싫어요.(웃음) 반응도 다음 날 오면 괜찮은데, 신문사에서 그리면, 신문을 받아놓고 가잖아요. 7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딱 타면, 사람들의 반응이 바로 와요. 가장 좋은 건 ‘어우, 박화백, 오늘 좋았어’ 하면 최고죠. 어떤 날은 몇 사람이 같이 탔는데, 아무 소리가 없어요. 오히려 그럴 땐 괜찮아요. 근데 ‘박화백, 오늘 그 뭐야?’ 이러면 짜증이 팍 나는 거죠.(웃음)”
그래도 ‘오늘 좋았어’ 하는 반응이 제일 많았죠?
“그렇지 않아요. 사람들이 남의 일에 관심이 없어요. 왜냐면 신문 나오면 빨리 자기가 쓴 기사 틀린 거 없나 얼른 보고 가거든요. 그러니까 (만평은) 보지 않고 갈 때가 많죠.”
21세기에 다시 <조선왕조실록>을 작업하시잖아요. 현대의 사관 역할을 하고 계신 셈인데요. 자연히 그 당시의 사관들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셨을 것 같아요.
“당시의 사관들이 참 멋있었죠, 조선 왕조의 정치 시스템은 아까 얘기했던 사대부들의 후안무치함만 빼면 굉장히 훌륭한 면들이 많아요. 왕권에 대한 견제 장치도 다각적으로 되어 있고, 사관에게는 기록과 관련해서 누구도 터치할 수 없는 전권을 줬잖아요. 왕 앞에서든 어디서든 쓰고, 이것에 대해 나중에 실록을 취합할 때도, 관할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 사람들도 개입하는 데 한계가 있었어요. ‘빼라, 넣어라’ 함부로 못하는 거죠. 사관이라는 사람 자체가 이런 시스템 하에 있었기 때문에 사명감을 가지고 출발했고, 설령 그 사관이 특정 정파 입장에 있었다 하더라도 팩트는 팩트로 기록한 점들은 훌륭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지금 신문 기사들보다 훨씬 낫죠.”
기록이 500년 동안 계속되었다는 점이 굉장한 것 같아요. 어떤 왕이라면, 이런 제도부터 없애고 싶었을 것 같은데.
“그게 되게 신기하죠. 동양 정치가 이룩해낸 대단히 수준 높은 체계라고 할 수 있죠.”
역사에 관심 있다면, 실록을 권한다
“지금 교육 시스템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고 봐요. 전문가가 아닌 중?고등학생 수준에 맞춰, 최대한 공인된 학설에 기초해서 축약한 정보를 줘야 하다보니. 게다가 시험 때문에 더 암기화된 측면이 있긴 한데, 지금 교과서 체제보다 발전한 또 다른 뭔가를 떠올리기는 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들의 권고에 따라서 다양한 서적들을 접한다거나 이러면 좀더 풍부하게 역사를 접할 수도 있겠죠.
저 같은 사람들 있잖아요. 역사를 소개하는 안내자 같은 사람들이, 조선사와 관련해서 실록을 좀 더 많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업하면서 많이 놀랐던 게 실록에 버젓이 나와 있는데도, 엉성한 얘기를 하는 책들이 많더라고요. 여전히 실록 연구도 덜 되어 있고요. 물론 지금처럼 국역이 되어 누구나 접할 수 있게 된 게 오래된 일이 아니라, 그럴 수 있다고 봐요. 예전에는 한자 본을 누구나 찾아 읽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소수의 먼저 보신 분들이 ‘이건 이거니라’ 하면 그렇게 가곤 했거든요.
요즘에도 역사에 관심 있고 공부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분들이 실록에 달려들고, 태종이면 태종, 한 인물이나 한 사건에 파고들면, 실록에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조들이 <조선왕조실록>이라는 놀라운 역사 기록물을 남겨주셨으니, 후손들이 잘 활용해야죠. 최소한 그 시절이 이랬구나 하는 것을 제대로 알아야죠.”
이렇게 쉽게 풀어 쓴 글에서도 왜곡이 있곤 하잖아요. 이 책을 접하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딱히 없고요. 이전에 어떤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고 사학과를 가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개론서로서 길잡이, 실록을 잇는 하나의 징검다리였으면 싶죠.”
혹시 앞으로도 이런 대작을 기획할 계획이 있으신가요?
“아~ 아뇨.(절레절레)”
다 만화가에 거셨다고 했는데, 4분의 3 지났는데 어떤 것 같으세요?
“애초 생각 흐름대로 잘 가고 있는데, 생각보다 더 잘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제 수준치고는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더 잘하는 것 같아요.(웃음)”
요즘 온라인으로 만화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데 어떻게 보세요?
“온라인으로 확대가 되고 있는 건지, 온라인만 살아남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웃음) 만화 시장이 많이 위축된 것 같아요. 10년 전만 해도 일반 단행본에서 권당 10만 권 나가는 책이 꽤 있었거든요. 지금은 이런 교양서나 학습서는 그나마 팔리는데, 극화라고 불리는 만화 작품들이 시장에서 정말 대접을 못 받는 것 같아요. 그중에 괜찮은 것들이 꽤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워낙 시장이 협소하니까, 작가들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좋은 만화가 많다고 하셨는데, 주목하는 만화가나 눈에 띄는 만화가가 있다면요?
“작년에 웹툰 중에 윤태호 씨의 『이끼』를 재미있게 봤어요. 잘 생각이 안 나는데 꽤 있었어요. 교양만화 파트에서도 『십자군 이야기』의 김태권 씨도 그렇죠. 재미있잖아요. 재기 발랄한 젊은 친구들이 많이 있죠.”
관심도 많고 논란도 많은(웃음) 16권 ‘정조’ 편 작업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갓 걸음을 뗀 단계예요. 공부하고 있어요. 24년 정도 재위했는데, 10년 정도 본 상태고, 오늘 정조 10년 9월 공부하고 왔어요.”
그 시대에는 짜증 나거나 속상한 거, 없으세요?(웃음)
“짜증, 무지하게 나죠. 말이 너무 많으셔서. 신하들이 한마디 하면, 두 마디 세 마디 하시게 되니까 어휴……. 그게 사실 대단히 멋있는 모습이에요. 정말 터프하고. 리더십 있고. 근데 참…… 저로선 피곤하죠.(웃음)”
다 완성하고 나면, 아쉬우실 것 같아요? 섭섭하실 것 같아요?
“아휴, 당연히 시원하죠.”
마지막 질문입니다. 어떤 만화가로 남고 싶으세요?
“뭐, 괜찮았다. 쓸 만한 놈이었어.(웃음)”
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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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중요한 거 하나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말랑루즈
2010.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