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강연회]소통의 즐거움, 날개를 달아봐 - 『이공계 글쓰기 달인』 이은희
『이공계 글쓰기 달인』은 전공자이거나 사회 초년생인 이공계 출신들을 위한 훌륭한 지침서다. 화려한 수식이나 덧붙임 없이, 진솔하게 이공계 출신의 커뮤니케이션 문제점을 지적하고, 따라 하기 쉬운 해결책을 자세하게 정리하고 있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10.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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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어려움이라니. 물론 가물가물한 어휘력에 머리를 쥐어짜고, 뭔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펜에 (요즘은 노트북 자판이) 속상한 적인 왕왕 있지만. 의도한 대로 글을 쓰지 못해서 속상했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내가 타고난 낙천주의자이기도 했지만, 어렸을 때 책을 좋아했던 덕분에 ‘글 쓰는 감’이 어쭙잖게나마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이런 식으로 쓰면 된다는 막연한 느낌. 그 느낌을 따라서 A4 용지 10페이지가 넘는 글도 무난하게 쓰곤 했다.

모태신앙인 탓에 유치원 때 그야말로 교회에 열과 성을 다했다. 그때 보게 된 십계명 계율 중 나를 감동시킨 한 구절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 그것을 좌우명 삼아,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살았다. 그런 나이기에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이과적인 머리’는 절대로 탐하지 말아야 할 남의 것이었다. 그리고 관심도 없었다. 과학은 신통방통하게도 내 머릿속에 든 것보다 점수가 항상 잘 나왔으며, 수학은 과외선생님 덕분에 그럭저럭 수능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out of my mind'가 된 수학과 과학의 지식들이여. 영영 이별이라고 생각했다.

비 내리는 연대 공학관의 어느 강의실

비가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날이었다. 2010년 들어 처음 만난, 폭이 족히 0.5mm는 될 듯한 굵은 빗줄기가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내리고 있었다. 신촌은 친구들과 술 마실 때 외에는 가본 적이 없어서 초행길이나 마찬가지. 가도 가도 세브란스 병원만 보일뿐, 연대 정문이라는 것은 코빼기도 비추질 않았다. 그야말로 머리부터 구두 속 스타킹까지 홀딱 젖은 채로 어렵게 찾아간 연세대학교 공학관. 대학 졸업 이후 처음 여는 강의실 문에 살짝 느꼈던 흥분도, 문을 열고 나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비 한 방울 맞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보송보송 옷차림에, 아직도 키가 자라는 중인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앳된 얼굴. 아, 나는 잘못 찾아왔구나. 강의실 안에는 두꺼운 원서로 된 전공서적을 책상위에 올려놓은 ‘공대생’님들이 잔뜩 있던 것이다. 아니, 말을 수정하겠다. ‘공대생’님들이 잔뜩 있다, 가 아니라 ‘공대생’님들만이 있었다. 대학이라고는 예술대학 안에 갇혀 폐쇄적인 4년의 시간을 보낸 것뿐인 나에게는, 동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여왕을 눈앞에 처음 뒀을 때의 심정 같다고나 할까.

어여쁜 이은희 작가가 강의를 시작했다. 그녀는 프로젝터 화면에 준비해온 파일을 보여주면서, 굉장히 빠른 어법으로 소개했다. 연구계획서 작성하기, 연구제안서 쓰기. 그녀가 강연하는 것들은 『이공계 글쓰기 달인』 책 안에서 내가 필요 없는 지식이라며 스킵해둔 게 대부분이었다. 한참 멍하게 앉아 이은희 작가의 속사포 같은 강연 속도에 익숙해질 때쯤 깨달았다. 그녀가 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전체 책 분량의 1/20 정도밖에 안 되는 그 ‘TIP’들에 있었다는 사실을.

이공계는 넘사벽?!


작가 강연회나 책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공계 출신은 일반인과 커뮤니케이션이 어렵다’는 것. 왜 그럴까, 대학 4년. 잘해야 석사 3년을 포함 7년간을 ‘이공계’라는 나라에서 공부 좀 한 것뿐일 텐데. 그 전에 고교 교육까지 20년의 시간 동안 쌓아왔을 게 분명한 ‘일반인의 커뮤니케이션’을 잊어버리기라도 하는 걸까? 이은희 작가의 책도 그랬고, 강연에서도 “이 세상은 여러 사람이 같이 얽혀 사는 것, 전혀 다른 배경의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어떤 사람과 만나든지 알고 있는 지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게 필요.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 연습해야 한다”라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사실, 이 말의 진의는 강연회 후에 알게 되었다. 취재 차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의 개발담당자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원천기술에 대해서 쉽게 설명해달라고 거듭 부탁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이 넘도록 진행된 인터뷰에서 정작 방송으로 쓸 수 있을 만한 건 채 30초 정도밖에 나오질 않았다. 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에서, 일반적으로 기자들을 상대하는 것은 홍보팀 소수의 사람뿐. 개발 연구 쪽 직원들끼리만 말을 주고받다 보니, 어순이나 문맥이 맞지 않아도 그들끼리는 충분히 소통이 가능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적인 표현력을 배우지 않았다는 것.

요즘은 이공계 계열의 사람들도 단순히 연구 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공계 글쓰기의 달인』주인공 ‘전이공’처럼 화장품 연구팀에서 홍보부서로 옮겨와, 선크림 광고기획안을 짤 수도 있는 것이다. 선크림 연구에 참여했기 때문에, 홍보팀 누구보다도 기능적인 장점을 잘 안다. 그렇지만 자기가 아는 것을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기껏해야, 타인이 써먹을 만한 ‘소스’를 제공할 뿐. 힘들게 자료 조사하고 발표까지 했지만, 결국에는 모든 공은 다른 팀원이 차지한다. 이유는 한 가지. 전이공은 알고 있는 지식들을 광고의 컨셉과 카피로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공계가 궁금해 하는 것, 질문과 답변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글쓰기 기본지식이고, 2부는 글쓰기 응용편. 1부에서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아는 것 이상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은 말과 형제니 겁내지 말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2부는 실험노트에서 시작해서, 연구계획서, 논문, 연구 제안서, 보고서 등 실용적인 글쓰기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강연은 2부에 나와 있는 구체적인 글쓰기의 방법을 주로 소개했다. ‘연구제안서를 쓰기 전에 연구 기관의 요구를 먼저 이해하라’ ‘응용 가능성을 강조해서, 실용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기하라’ ‘이공계 출신이 직업상 써야 할 글쓰기의 상당부분 유형이 보고서이니, 보고받는 사람에 따라서 매뉴얼을 작성하라’.

결국 글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논리적인 사고니, 이공계 출신들의 논리력이라면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려는 구체적인 기술을 쌓아 충분히 잘할 수 있다는 다독거림을 작가는 잊지 않았다. 그리고 삼십 분 정도 질문이 이어졌는데, 사실 내가 강연회에서 가장 놀란 것은 이 질문의 내용이었다. 대부분의 청중들이 대학 졸업을 앞둔 이공계 전공자들이라 좀 더 사회에서 필요한 구체적인 글쓰기 기술을 질문할 줄 알았다. 하지만, 질문의 대부분은 대중과의 소통에 관해서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는 과학 전문 작가가 되고 싶은데, 힘든 점은 없나요?’였다. 강연자 자체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신경생리학을 공부했지만 인터넷에 ‘하리하라’라는 필명으로 연재한 글이 책으로 묶이면서 과학전문작가가 된 이은희 씨였기에 그런 질문 한두 개 정도는 충분히 던질 수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거의 모든 질문자가 과학 전문 작가나 기자로서의 길을 꿈꾸고 있다는 것, 적어도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일반 대중들이 이공계 지식에 괴리감을 느끼고 있는데, 독자의 시선을 끌 수 있는 노하우는?

“사람들이 가장 일상생활에서 많이 접하는 신화, 드라마, 영화, 소설을 예로 들어서 전문 지식을 펼쳐라. 대중이 좋아하는 인터넷 포털과 신문을 보고 그들의 취향을 분석해라. 대중 개개인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먼저 제공한 후, 그와 관련돼서 대중이 알아야 할 전문지식을 덧붙이는 식으로 글을 써라.”

이공계 출신 과학전문작가의 전망은?

“단순히 글을 잘 쓰는 것은 쉽다. 그중에서 몇 명 성공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색깔, 필체 등이 있는 작가들이다. 글은 자꾸자꾸 쓰면 실력이 늘어난다. 이공계생 특징인 독특한 소재 덕분에, 글 쓰는 솜씨가 조금 떨어져도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결국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을 여러분의 할머니께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지 못하면 여러분은 그것을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남긴 말이다.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타인을 탓하기 전에, 우선 쉽게 표현하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라는 의미의 짧은 말이다. 이은희 작가는 이 말을 꽤나 화두로 담고 살아온 것 같다. 책의 주인공 전이공은, 커뮤니케이션을 배우는 첫 번째로 중고등학교 과학 교과서를 다시 읽는다. 학생 수준에서 핵심과학 내용을 이해시키기 위해 덧붙였던 비유가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이었던 것.

결국 모든 성과는, 기록으로 남기는 자가 승리한다.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에 손무보다 더 훌륭한 병법가가 살았을지도, 조선 시대 이순신 장군 이전에 철갑선을 고안해낸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손자병법서’와 ‘거북선’이 기록으로 남아있기에, 모든 공은 두 사람에게로 돌아갔다. 어느 고전문학 연구가는 『리어왕』 『햄릿』 등 희비극 작품들을 셰익스피어 혼자 쓰지 않았을 것이라 주장하지만, 어쩌겠는가.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외쳤던 수백 년 전부터 지금까지도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셰익스피어 혼자 차지하고 있는 것을.

『이공계 글쓰기 달인』은 전공자이거나 사회 초년생인 이공계 출신들을 위한 훌륭한 지침서다. 화려한 수식이나 덧붙임 없이, 진솔하게 이공계 출신의 커뮤니케이션 문제점을 지적하고, 따라 하기 쉬운 해결책을 자세하게 정리하고 있다. 이 책은 나와 같이 수학이나 과학과는 3만 광년 떨어진 문과?예체능계열 사람에게도 꽤나 쏠쏠한 재미를 준다. 책의 주인공이 커뮤니케이션에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공계 출신들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은 단지 이공계 출신이 겪는 어려움이 아니라는 사실. 이공계 출신보다는 극적인 요소는 떨어지지만,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소통의 문제점을 결국에는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은희 #이공계 글쓰기의 달인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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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05.26

예전에 이공계가 우리나라에서 대접을 잘 못받는 이유가 일은 잘 하는데도 그 공은 말 잘하는 사람이 다 차지해버리기 때문이라고 들은 기억이 나네요. 이과하면 머리 좋고 그렇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과 이야기가 잘 안통한다는 이미지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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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2.04.01

결국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이공계출신이라도 글을 잘쓸수 있다는것을 비법보다는 격려와 용기로 다독여 주는것 같네요. 일단 써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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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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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연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신경생리학을 전공하고, 고려대학교에서 과학언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졸업 후 신약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3년간 근무하다가 인터넷에 연재하던 글이 책으로 발간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현재는 과학책방 [갈다]의 이사이자, 하리하라라는 필명으로 과학을 쓰고 알리고 기획하는 과학커뮤니케이터로 일한다. 2001년부터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블로그에 연재하던 글들을 모아 2002년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를 발간했고, 2003년 같은 책으로 한국과학기술도서상 저술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과학저술 작업을 시작했다. 현재 한양대에서 과학기술학에 대해 강의하면서, 틈틈히 ‘하리하라’라는 필명으로 네이버와 동아일보에 칼럼을 연재하고, 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 과학서를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하리하라의 과학 블로그 1, 2』, 『하리하라의 바이오사이언스』, 『하리하라, 미드에서 과학을 보다』, 『하리하라의 청소년을 위한 의학 이야기,』 『하리하라의 음식 과학』,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하리하라의 과학고전 카페 1, 2』, 『하리하라의 세포 여행』, 『하리하라의 몸 이야기』, 『하리하라의 과학 24시』, 『하리하라의 눈 이야기』, 『다윈의 진화론』, 『몬스터과학 3 두몽이 유전의 비밀을 풀다』 등 다수의 하리하라 과학 시리즈가 있다. 제21회 한국과학기술도서상(한국과학기술부장관상) 저술 부문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