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세계 최초로 한국인에 공개한 터키 ‘순수 박물관’ - ‘오르한 파묵 문학 기행’
오르한 파묵은 2008년 내한한 바 있다. 당시 그는 그해 하반기에 『순수 박물관』이 터키에서 출간될 예정이며, 한국 독자들이 자신을 만나러 온다면 기꺼이 함께 식사를 할 것이라는 약속을 했다.
201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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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는 지난 8월 23일부터 30일까지 터키로 ‘오르한 파묵 문학 기행’을 다녀왔다. 기행단은 독자와 한국에서 출간된 파묵의 작품을 모두 번역한 번역가 이난아 포함 17명으로 구성되었다.
오르한 파묵은 2008년 IPA 총회 기조연설을 위해 내한한 바 있다. 당시 그는 그해 하반기에 『순수 박물관』이 터키에서 출간될 예정이며, 소설 속에 ‘순수 박물관’ 1회 입장권을 포함시킬 계획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또한 한국 독자들이 자신을 만나러 온다면 기꺼이 함께 식사를 할 것이라는 약속을 했다. 따라서 이번 문학 기행은 오르한 파묵이 2년 전의 이 약속을 기억하고 지켜 줌으로써 성사된 것이기도 하다.
민음사는 5월 말에 『순수 박물관』을 출간한 후, 7월부터 ‘전문 번역가 이난아 선생님과 함께 오르한 파묵 읽기’라는 4주간의 프로그램으로 ‘오르한 파묵 북클럽’을 시작하였다. 참가자들은 파묵의 작품을 함께 읽으면서, 그가 그리고 있는 ‘이스탄불’이라는 도시를 직접 보고 싶다는 열망을 키우게 되었고, 이러한 바람에 오르한 파묵이 흔쾌히 부응하면서, 7박 8일간의 ‘오르한 파묵 문학 기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8월 23일 밤 11시 50분에 인천 공항에서 비행기에 몸을 실은 기행단이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한 것은 다음 날 현지 시간 새벽 5시경. 오르한 파묵과 약속한 오후 6시에 ‘순수 박물관’으로 향했다. ‘순수 박물관’은 퓌순이 케말에게 알려 준 주소대로 ‘추쿠르주마, 달그츠 측마즈’에 있었고, 그녀가 살던 집처럼, 골목 모퉁이에 위치한 작은 3층짜리 건물이었다. 기행단은 설레고 흥분된 마음으로 파묵을 기다렸고, 마침내 그가 길 위쪽에서 걸어 내려왔을 때는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파묵 역시 먼 곳까지 찾아와 준 독자들에게 감동한 듯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는 우선 ‘순수 박물관’ 내부를 공개했다. 퓌순이 살던 집을 떠올리게 하는 좁은 집 안에는 아직 아무것도 전시돼 있지 않았다. 그러나 1층에서부터, 소설 후반부에 케말이 혼자 지내던 지붕 층까지, 파묵은 한 층 한 층 소개해 주었다. 박물관 내부는 소설의 각 장당 하나의 섹션으로 나눠지고, 각 장의 내용을 떠올리게 하는 전시물이 놓일 예정이라고 한다.
파묵은 전시물을 준비 중인 아틀리에에까지 우리를 초대해서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다. 현재 ‘순수 박물관’ 준비 작업은 두 군데의 아틀리에에서, 두 명의 큐레이터와 두세 명의 디자이너 등 여러 명이 함께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틀리에에 들어간 기행단은 다시 한 번 파묵의 세심함과 독창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수집품들을 그저 전시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는 전시한 물건들을 가지고 다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케말이 박물관에 대해 “1. 돌아다니는 곳이 아니라 느끼고 경험하는 곳이다. 2. ‘느끼게 될 것’의 영혼을 형성하는 것은 수집품이다. 3. 수집품이 없는 곳은 박물관이 아니라 전시관이다.”라고 정의했던 것이 실현된 느낌이었다. ‘순수 박물관’은 소설 『순수 박물관』의 내용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넘어, 그것 그대로 또 하나의 설치 예술 작품이었다.
그 후 기행단은 보스포루스 해 옆에 위치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작가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작가를 직접 만나 책에 사인을 받고 함께 사진을 찍고 대화를 나누는 독자들 이상으로, 작가 역시 무척 상기되고 행복해 보였다. 그는 독자들 한 명 한 명에게 질문을 하고 자신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으며, 특히 이번에 나온 자신의 에세이집에 대해서도 들려주어 독자들을 한껏 기대하게 만들었다. 오르한 파묵과 독자들의 만남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연인들의 재회처럼 떠들썩하고 흥겨웠고, 우리는 많은 시간이 흐르기 전에 다시 만날 듯이 가볍게 작별했다.
다음 날 우리는, 케말과 퓌순이 결혼을 약속하고 처음으로 만나 함께 걸었던 베이오울루로 향했다. 케말이 “우리는 아이날르 상가뿐 아니라, 다른 상가에도 가서 여러 단추 가게에 들렀다. 퓌순이 점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형형색색의 단추들을 살펴보고, 이것저것 질문을 하며 옛날 단추로 세트를 만들려고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좋았던가.”라며 행복해했던 것이 떠들썩한 거리 분위기에서도 느껴지는 듯했다. 특히 ‘프로피테롤’이라는 터키식 디저트로 유명한 ‘인지 제과점’에 들어갔을 때는, 힘들었던 과거가 지나가고 행복만이 펼쳐질 거라 기대하던 케말과 퓌순이 가게의 한쪽 테이블에 앉아 있을 것만 같았다. ‘인지 제과점’은 사랑하는 연인에게 딱 맞을 정도로 아늑했고, 프로피테롤은 그들의 사랑만큼 달콤하고 씁쓸했다.
그다음으로는 『검은 책』의 주요 배경이 되었던 니샨타쉬로 향했다. 『검은 책』에서 “그 사이에는 경찰서, 커다란 밤나무, 모퉁이, 들락거리는 손님이 많은 알라딘의 가게가 있었다.”라고 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알라딘의 가게’의 주인은 실제로 그리고 여전히 ‘알라딘’이었는데, 아쉽게도 몸이 좋지 않아 가게에 나오지 않았기에 그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 거리의 다른 화려한 가게들과는 달리 여전히 장난감이며, 복권이며, 문구류를 팔고 있는 그곳에서 우리는 갈립의 추억을 마치 우리 자신의 추억처럼 떠올릴 수 있었다.
맞은편에는 경찰서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평범한 경찰서였겠지만, 『검은 책』을 읽은 독자들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경찰서였다. 갈립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제랄과 뤼야, 이들이 마침내 모이는 장소, 그곳이 바로 알라딘의 가게와 경찰서를 사이에 둔 길이었기 때문이다.
“예, 테쉬비키예 경찰서 앞 길이 차단되었어요. 누가 또 총에 맞은 것 같습니다.”
갈립이 묻자 운전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 교통은 차단되어 있었다. 나무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바람은 전혀 없었다. 작은 광장은 인공적인 색과 소리로 만들어진 연극 무대 같았다. 진열장의 싱어 재봉틀 옆에 있는 마네킹은 경찰서 앞에 모인 경찰과 호기심 많은 구경꾼의 소란을 지켜보며 그들 사이에 합세하려는 것 같았다. 갈립은 마음속으로 ‘그래, 나도 나 자신이야!’라고 말하고 싶었다. 사진기사의 플래시가 빛나는 푸른색으로 번쩍이는 순간, 갈립은 보았다. 하지만 꿈속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이십 년 전 잃어버린 열쇠를 찾은 것처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알아보지 못했다면 좋았을 얼굴. 싱어 재봉틀을 전시해 놓은 진열장에서 두 걸음 떨어진 인도에 하얀 얼룩이 누워 있었다. 남자였다. 제랄. 몸은 신문으로 덮여 있었다. 뤼야는 어디에 있는가? 갈립은 그곳으로 다가갔다. (『검은 책』 중)
오르한 파묵은 “나는 나 자신을 설명할 때 이스탄불을, 이스탄불을 설명할 때 나 자신을 설명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2006년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그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파묵은 고향 이스탄불의 음울한 영혼을 탐색해 가는 과정에서 문화의 충돌과 교차에 관한 새로운 상징을 발견했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힌 바 있다. 파묵의 작품과 이스탄불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고, 이스탄불이라는 도시를 알면 파묵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세계 최초로 공개하는 ‘순수 박물관’ 방문과 파묵과의 저녁 식사, 작품의 배경이 되는 지역 탐방 등으로 짜인 이번 ‘오르한 파묵 문학 기행’은 그런 의미에서 파묵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기회이자 다시없을 기회였다.
민음사는 5월 말에 『순수 박물관』을 출간한 후, 7월부터 ‘전문 번역가 이난아 선생님과 함께 오르한 파묵 읽기’라는 4주간의 프로그램으로 ‘오르한 파묵 북클럽’을 시작하였다. 참가자들은 파묵의 작품을 함께 읽으면서, 그가 그리고 있는 ‘이스탄불’이라는 도시를 직접 보고 싶다는 열망을 키우게 되었고, 이러한 바람에 오르한 파묵이 흔쾌히 부응하면서, 7박 8일간의 ‘오르한 파묵 문학 기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8월 23일 밤 11시 50분에 인천 공항에서 비행기에 몸을 실은 기행단이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한 것은 다음 날 현지 시간 새벽 5시경. 오르한 파묵과 약속한 오후 6시에 ‘순수 박물관’으로 향했다. ‘순수 박물관’은 퓌순이 케말에게 알려 준 주소대로 ‘추쿠르주마, 달그츠 측마즈’에 있었고, 그녀가 살던 집처럼, 골목 모퉁이에 위치한 작은 3층짜리 건물이었다. 기행단은 설레고 흥분된 마음으로 파묵을 기다렸고, 마침내 그가 길 위쪽에서 걸어 내려왔을 때는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파묵 역시 먼 곳까지 찾아와 준 독자들에게 감동한 듯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는 우선 ‘순수 박물관’ 내부를 공개했다. 퓌순이 살던 집을 떠올리게 하는 좁은 집 안에는 아직 아무것도 전시돼 있지 않았다. 그러나 1층에서부터, 소설 후반부에 케말이 혼자 지내던 지붕 층까지, 파묵은 한 층 한 층 소개해 주었다. 박물관 내부는 소설의 각 장당 하나의 섹션으로 나눠지고, 각 장의 내용을 떠올리게 하는 전시물이 놓일 예정이라고 한다.
파묵은 전시물을 준비 중인 아틀리에에까지 우리를 초대해서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다. 현재 ‘순수 박물관’ 준비 작업은 두 군데의 아틀리에에서, 두 명의 큐레이터와 두세 명의 디자이너 등 여러 명이 함께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틀리에에 들어간 기행단은 다시 한 번 파묵의 세심함과 독창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수집품들을 그저 전시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는 전시한 물건들을 가지고 다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케말이 박물관에 대해 “1. 돌아다니는 곳이 아니라 느끼고 경험하는 곳이다. 2. ‘느끼게 될 것’의 영혼을 형성하는 것은 수집품이다. 3. 수집품이 없는 곳은 박물관이 아니라 전시관이다.”라고 정의했던 것이 실현된 느낌이었다. ‘순수 박물관’은 소설 『순수 박물관』의 내용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넘어, 그것 그대로 또 하나의 설치 예술 작품이었다.
그 후 기행단은 보스포루스 해 옆에 위치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작가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작가를 직접 만나 책에 사인을 받고 함께 사진을 찍고 대화를 나누는 독자들 이상으로, 작가 역시 무척 상기되고 행복해 보였다. 그는 독자들 한 명 한 명에게 질문을 하고 자신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으며, 특히 이번에 나온 자신의 에세이집에 대해서도 들려주어 독자들을 한껏 기대하게 만들었다. 오르한 파묵과 독자들의 만남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연인들의 재회처럼 떠들썩하고 흥겨웠고, 우리는 많은 시간이 흐르기 전에 다시 만날 듯이 가볍게 작별했다.
다음 날 우리는, 케말과 퓌순이 결혼을 약속하고 처음으로 만나 함께 걸었던 베이오울루로 향했다. 케말이 “우리는 아이날르 상가뿐 아니라, 다른 상가에도 가서 여러 단추 가게에 들렀다. 퓌순이 점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형형색색의 단추들을 살펴보고, 이것저것 질문을 하며 옛날 단추로 세트를 만들려고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좋았던가.”라며 행복해했던 것이 떠들썩한 거리 분위기에서도 느껴지는 듯했다. 특히 ‘프로피테롤’이라는 터키식 디저트로 유명한 ‘인지 제과점’에 들어갔을 때는, 힘들었던 과거가 지나가고 행복만이 펼쳐질 거라 기대하던 케말과 퓌순이 가게의 한쪽 테이블에 앉아 있을 것만 같았다. ‘인지 제과점’은 사랑하는 연인에게 딱 맞을 정도로 아늑했고, 프로피테롤은 그들의 사랑만큼 달콤하고 씁쓸했다.
맞은편에는 경찰서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평범한 경찰서였겠지만, 『검은 책』을 읽은 독자들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경찰서였다. 갈립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제랄과 뤼야, 이들이 마침내 모이는 장소, 그곳이 바로 알라딘의 가게와 경찰서를 사이에 둔 길이었기 때문이다.
“예, 테쉬비키예 경찰서 앞 길이 차단되었어요. 누가 또 총에 맞은 것 같습니다.”
갈립이 묻자 운전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 교통은 차단되어 있었다. 나무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바람은 전혀 없었다. 작은 광장은 인공적인 색과 소리로 만들어진 연극 무대 같았다. 진열장의 싱어 재봉틀 옆에 있는 마네킹은 경찰서 앞에 모인 경찰과 호기심 많은 구경꾼의 소란을 지켜보며 그들 사이에 합세하려는 것 같았다. 갈립은 마음속으로 ‘그래, 나도 나 자신이야!’라고 말하고 싶었다. 사진기사의 플래시가 빛나는 푸른색으로 번쩍이는 순간, 갈립은 보았다. 하지만 꿈속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이십 년 전 잃어버린 열쇠를 찾은 것처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알아보지 못했다면 좋았을 얼굴. 싱어 재봉틀을 전시해 놓은 진열장에서 두 걸음 떨어진 인도에 하얀 얼룩이 누워 있었다. 남자였다. 제랄. 몸은 신문으로 덮여 있었다. 뤼야는 어디에 있는가? 갈립은 그곳으로 다가갔다. (『검은 책』 중)
오르한 파묵은 “나는 나 자신을 설명할 때 이스탄불을, 이스탄불을 설명할 때 나 자신을 설명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2006년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그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파묵은 고향 이스탄불의 음울한 영혼을 탐색해 가는 과정에서 문화의 충돌과 교차에 관한 새로운 상징을 발견했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힌 바 있다. 파묵의 작품과 이스탄불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고, 이스탄불이라는 도시를 알면 파묵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세계 최초로 공개하는 ‘순수 박물관’ 방문과 파묵과의 저녁 식사, 작품의 배경이 되는 지역 탐방 등으로 짜인 이번 ‘오르한 파묵 문학 기행’은 그런 의미에서 파묵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기회이자 다시없을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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