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빠져 루브르만 3천 번 넘게 갔어요
평일 저녁, 샤갈전이 한창인 서울시립미술관 세미나실에서는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미술관에서 만나는 음악회. 굉장히 낭만적이면서 참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든다.
글ㆍ사진 윤하정
2011.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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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저녁, 샤갈전이 한창인 서울시립미술관 세미나실에서는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미술관에서 만나는 음악회. 굉장히 낭만적이면서 참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빌려 단독으로 펼쳐질 줄 알았던 음악회 무대에는 음악과 미술이 공존한다. 더욱이 이 음악회의 진행자는 클래식 연주가가 아니라 미술해설가. 유럽관광객들에게는 ‘말하는 종합예술백과사전’으로 통하는 윤운중 씨다. 유럽의 유명 미술관을 휘젓고 있어야 할 그가 어찌하여 음악회 진행을 맡았는지, 그 숨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샤갈의 작품 중에 음악과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것들이 있어요. 실제로 샤갈은 발레나 오페라의 무대장치나 의상을 많이 담당했거든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가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공연될 때도 배우들의 의상을 직접 디자인했어요. <불새> <다프니스와 클로에> <아라비안나이트> 등의 작품도 마찬가지고요.

샤갈의 어떤 작품들은 클래식 곡과 제목이 같습니다. 문학에서 시작한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은 샤갈이 그 내용을 가지고 같은 제목으로 그림을 그렸고, 멘델스존은 <결혼행진곡>을 만들었죠. 이렇게 연관이 있는 미술과 음악을 소개하고 함께 감상하는 시간으로 꾸며지고 있습니다.”


이름하야 ‘아르츠 콘서트’. 미술을 뜻하는 ‘Arts’의 스페인식 발음인 ‘아르츠’와 음악공연을 뜻하는 ‘콘서트’의 조합어로, 무대에서는 영상으로 그림을 보고 라이브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원화는 아니지만, 영상은 다양한 미술 작품을 비교해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사실 관객들이 음악과 미술이 만나는 부분을 예측하기란 힘듭니다. 그래서 큰 기대 없이 오시는데, 제가 음악과 미술 작품의 관련성을 알려드리고, 작품이 나온 시대적인 배경과 미술작품을 보는 방법 등을 소개하면 훨씬 깊이 있는 감상을 할 수 있어서 좋아하세요.”

공연 때마다 매진됐던 ‘아르츠 콘서트’는 급기야 2월 13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 입성할 예정이다. 날이 날이니 만큼 이번 공연의 테마는 ‘사랑’이다.

“밸런타인데이 콘서트라서 로망스가 주제예요. 화가를 비롯한 예술가들의 사랑 이야기죠. 리스트, 쇼팽, 브람스, 슈만, 드뷔시 등 낭만주의와 인상주의 시대 예술가들의 사랑은 굉장히 복잡하고 다이내믹하거든요. 그 시대의 명화와 관련된 곡들을 소개합니다. 또 2부에서는 사랑을 담아낸 미술 작품에서 연상되는 느낌을 대중음악으로 표현할 예정이고요.”

결국 세부적인 프로그램은 그의 손에서 나왔다. 지난 10년간 루브르를 3천 번 이상 방문하며 4만 명의 관광객들에게 작품을 해설했으니 미술해설이야 박사급이라지만, 도대체 음악은 어떻게 찾아냈단 말인가?

“음악사를 공부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한참 멀었죠. 하지만 미술사나 음악사나 비슷한 흐름을 좇아요. 순서를 따지면 제일 먼저 문학이 나오고, 그 다음에 미술, 이후에 음악이 좇아옵니다. 작품을 만들고 제작하는 게 화가가 음악가보다 즉각적이거든요. 그래서 음악사를 공부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아요. 다만 곡을 듣고 외우는 게 어렵죠(웃음). 앞으로 몇 년은 더 공부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 모르는 걸 알아가는 건 항상 재밌는 것 같아요. 너무 방대해서 파고 파도 계속 나오니까 더 재밌죠.”

유럽 투어 여행사에 소속돼 있는 그는 미술 해설도 그렇게 시작했다. 공고를 나와 대기업 연구소에서 일했던 그는 여행사를 운영하는 친구의 부탁으로 로마로 건너갔고, 바티칸에서 처음으로 미술작품을 접했다. 그때는 고흐와 고갱이 형제인 줄 알았다!

“머리털 나고 처음 간 미술관이 ‘바티칸’이에요. 국내에서는 간 적도 없고, 서울시립미?관이 있는지도 몰랐어요(웃음). 그런데 제가 해야 하는 일이 어느 정도 미술적 소양이 있는 교사나 대학생들에게 작품을 설명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죠. 정규 교육을 못 받았으니 다른 해설가에 비해 그림에 대한 호기심이 컸고, 그래서 남다른 해설이 가능한 것 같아요. 저 어려운 말 안 씁니다(웃음).”

정규 커리큘럼을 듣지 않았을 뿐 그의 지식은 방대하다. 오죽하면 ‘말하는 종합예술백과사전’이겠는가. 물론 여기까지 오기에는 엄청난 양의 시간과 돈을 쏟아 붓는 노력이 있었다.

“진학을 해야겠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지식은 본질적이고 구체적이고 실용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학자가 아니에요. 학교에서 공부를 하느니, 차라리 현장에 가서 작품을 보고, 어느 미술관은 어떻게 가는 것이 편리하고, 언제 가야 사람이 없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서 번 돈을 다 씁니다. 작품을 보려면 나라마다 있는 미술관에 찾아가야 하고, 다녀오면 서점에 나온 책은 모조리 봐서 가장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이론을 제 것으로 만들어야죠. 저는 사실만 전하고 감상은 관람객들에게 맡깁니다.”

날마다 미술관을 돌며 해설을 하다 보면 지겨울 법도 하다. 벌써 10년 가까운 세월이 아니던가.

“저는 대상이 매일 바뀌잖아요. 게다가 루브르의 작품만 수십만 점인데, 제가 설명하는 작품도 매일 바꿀 수 있습니다. 아직 모든 작품을 잘 알지도 못하고요. 저는 가이드든 도슨트든 호칭은 상관없어요. 원화를 격조 있게 설명해서 다른 사람에게 중요한 이미지나 느낌을 전해준다는 것에, 매일 그런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껴요. 지금도 이 일은 중요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여행을 갈 때면 일정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미술관 방문.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 작품을 직접 보는 희열은 있지만, 사실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림은… 어렵다.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1시간짜리 드라마나 2시간짜리 영화에는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림은 한 장에 이미지를 담았으니까요. 그림에 장미꽃이 있다면 그것은 꽃이 아니라 화려함을 뜻해요. 도상학이라고 하는데, 그런 공부가 돼 있는 사람은 그림을 보며 풀어 제치는 재미가 있지만, 아닌 사람은 어렵죠. 희랍어로 된 텍스트를 읽는 것과 같아요(웃음). 그때 누군가 작품을 들려준다면 재밌지 않겠어요? 자막 없이 외화를 보다 자막을 주는 것과 같죠. 미술도 영화 못지않게 재밌습니다.”

국내에도 많은 미술관이 있고 다양한 전시회가 열린다. 그런데 유독 해외 유명 작품전이 열릴 때면 사람에 치일 정도로 관람객들이 몰린다. 미술 해설가로서 어떻게 바라보는가?

“루브르에 1년이면 8백만 명 가까이 옵니다. 하루에 평균 2만5천 명이 방문하는 거죠. 그런데 이번 <샤갈전>에는 많으면 하루에 만 명이 옵니다. 면적을 비교하면 시립미술관이 루브르의 1/1000 수준이에요. 단위면적당 관람객 밀도는 세계 최고수준인 셈이죠. 예술품이 주는 감동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유명 전시에서 느끼는 흥미나 관심을 다른 작가의 작품에도 나눠줬으면 좋겠어요. 서양미술이 주는 즐거움은 우리나라 작품에서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거든요. 요즘은 작가와 직접 대화하는 시간도 많고, 그렇게 접하다 보면 예술적인 안목이 넓혀지는 겁니다.”

그는 그렇게 대중들의 삶 가까이에 예술을 밀어 넣고 싶다. 자신이 특별하지 않았던 만큼, 누구나 미술과 음악을 쉽게 즐길 수 있다고.

“아르츠 콘서트가 잘 정착돼서 대중들이 미술과 음악이 어렵다거나 동떨어진 장르라는 편견을 버리고, 현실에서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것에 일조하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보람입니다.”

지난 8년간 미술공부에 전?했던 윤운중 씨는 음악 공부도 미술만큼은 해야 할 거라며 의지를 불태웠다. 물론 본연의 무대인 루브르에는 2월 공연이 끝나는 대로 되돌아갈 예정이다. 윤운중 씨를 유럽의 어느 음악당에서, 또는 미술과 음악이 있는 페스티벌에서 만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이다. 여전히 그는 남다른 입담으로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을 것이다.

그의 해설은 왜 남다를까? 굴곡 많은 삶을 경험해본 베테랑 배우처럼 그의 예술사적 지식과 경험 역시 바닥에서 정상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아내기 때문이 아닐까? 몸으로 부딪혀 만난 예술, 윤운중의 다이내믹한 해설로 뜨거운 사랑을 담아낸 세기의 음악과 미술 작품을 만나보기 바란다. 2월 13일 무대에는 첼리스트 송영훈을 비롯해 뮤지컬 배우 김소현, 팝재즈 피아니스트 윤한, 보컬그룹 스윗소로우도 참여할 예정이다.

#루브르 #윤운중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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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1.11.20

아트,아르츠 꼭 외국어로 써야 느낌이 다른가요.루브르를 여러번 갔다왔다고해서 제대로 봤다고 할수 없죠. 그림한장에 얽힌 역사와 신화, 종교가 가득 담겨 있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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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