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은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다. 그녀의 책들은 순식간에 품절되었고, 서점 앞에 오픈런 행렬이 늘어서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서점뿐만 아니라, 한강 작가가 운영하는 서촌의 작은 독립서점은 순식간에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그녀의 과거 인터뷰와 영상들도 다시 주목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또한, 그녀가 소설을 집필하며 즐겨 들었던 음악들도 관심을 끌었는데, 그중에는 현대음악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Spiegel Im Spiegel)’, 필립 글래스의 ‘에튀드 5번’ 같은 클래식 음악들도 있다.
이 곡들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현존하는 작곡가들의 작품이라는 점과 아르보 패르트와 필립 글래스 모두 ‘미니멀리즘’의 대가로 불린다는 것이다. 아르보 패르트의 음악은 흔히 ‘영적 미니멀리즘’이라 불리며, 깊이 있는 명상적이고 초월적인 분위기로 잘 알려져 있다. 반면, 필립 글래스는 ‘미니멀리즘의 선구자’로 불리며, 반복적인 패턴과 단순한 구조를 통해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한 작곡가로 평가받는다.
미니멀리즘 음악은 20세기 중반에 등장한 현대음악의 한 흐름으로, 반복적인 패턴과 단순하고 명료한 화음, 조화적인 선율이 특징적이다. 현대음악의 전위적인 불협화음과는 달리 듣기에 편안하고 어렵지 않아 영화음악이나 광고 등에도 사용되며 가장 대중적인 현대음악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 필립 글래스는 <트루먼 쇼> <디 아워스> 등의 영화음악을 작곡했고, 아르보 패르트의 음악들도 영화 <그래비티> <어바웃 타임>에 사용됐다.
미니멀리즘을 바탕으로 최근에는 ‘네오클래식’이라는 이름 아래 보다 사색적이고 명상적인 음악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음악들은 포스트 미니멀리즘나 컨템포러리 클래식 음악으로도 불리며, 직관적이고 간결한 표현으로 전통적인 클래식 음악보다 접근하기 쉬운 특징을 지닌 경우가 많다. 전자음악의 활용이나 대중음악적인 요소를 통해 현대적인 감각과 대중성을 동시에 담아내며 새로운 음악적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네오클래식’ 음악의 인기가 높아지자, 많은 클래식 음반사들은 기존 클래식 카탈로그에 ‘네오클래식’ 장르를 새롭게 추가했다. 이 장르에서 자주 언급되는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막스 리히터,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올라퍼 아르날즈 등이 있으며, 과거 뉴에이지 작곡가로 불리던 이루마 또한 현재는 네오클래식 장르로 분류되고 있다.
비록 ‘네오클래식’이라는 이름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장르에 속하는 음악들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이미 익숙하다. 영화, 드라마, 광고 음악 등 다양한 매체에서 사용되며 대중과 가까운 곳에 머물러 있어,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중에서도 현재 ‘네오 클래식’의 가장 유명한 스타는 막스 리히터와 루도비코 에이나우디가 아닐까 싶다. 특히, 막스 리히터의 음악들은 오늘날 클래식 공연장에서도 많은 연주자들이 자주 연주되는 곡들이 많은데 특히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작곡한 비발디의 ‘사계’가 가장 유명하다. 이 곡은 2012년 22개국 클래식 음반 차트 1위에 올랐고, 지금까지도 자주 연주된다. 또한 그의 음악은 <컨택트> <셔터 아일랜드> <브리저튼>과 같은 영화와 드라마의 OST로 삽입되고 지금까지도 여러 영화 음악에 참여하고 있다. 2015년 발매된 <Sleep>은 총 연주 시간이 장장 8시간이 이르는 곡인데, 리히터는 인간의 수면사이클을 반영하여 잠 못드는 현대인들을 위해 작곡했다고 한다. 그는 이 곡을 실제로 수십 개의 침대를 설치한 공간에서 연주하는 독특한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앨범은 무려 20억 회 넘는 스트리밍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에 못지않은 작곡가가 바로 위에 함께 언급한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인데, 막스 리히터가 실험적인 접근을 선호한다면, 루도비코 에이나우디는 조금 더 간결하고 명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집계에 따르면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음악은 매년 약 90억 회 이상 스트리밍 되고 있다. 2022년 앨범 <언더워터>는 발매 일주일 만에 영국 클래식 차트 1위에 올랐으며,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스포티파이에서는 모차르트, 베토벤보다도 높은 팔로워 수를 보유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그의 음악 또한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 를 비롯한 아카데미 수상작인 <노매드랜드> <더 파더> 등의 OST로 사용되었고, 특히 국내 모 전자브랜드 광고에 에이나우디의 ‘Primavera’가 사용되었을 때는 광고음악을 찾는 댓글들이 영상에 주를 이루기도 했다. 현재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인기는 가히 신드롬적이다. 세계 곳곳에서 그의 공연은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는데, 2025년 프랑스, 스위스, 영국에서의 공연은 이미 매진되었으며, 2025년 6월 예정된 영국 로열 앨버트 홀의 5회차 공연이 순식간에 매진되어 7월 공연을 추가하기도 했다.
이처럼 막스 리히터와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음악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이들의 음악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상업적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클래식의 범주에 포함되기에는 가볍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오히려 ‘네오클래식’이라는 새로운 범주를 정의하는 출발점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음악이 선사하는 자연 친화적이고 치유적인 메시지는 많은 현대인들에게 큰 위로가 되고 있다. 이는 복잡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음악적 현상일지도 모른다. 이들의 음악은 현대인들에게 쉼과 위안을 선사하는 또 하나의 언어가 되고 있다.
묘점원 (뉴스레터 '공연장 옆 잡화점')
클래식 공연 기획사 '크레디아'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 클래식 공연 기획자들이 직접 무대 비하인드 스토리와 음악, 예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