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코 시대의 정점을 보여준 작품 - 비지스(Bee Gees)
형제그룹 비지스의 보컬리스트 로빈 깁이 간암 투병 중이라고 합니다. 쌍둥이 동생 모리스 깁이 지난 2003년 사망한 터여서 많은 음악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글ㆍ사진 임진모(대중문화평론가)
201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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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그룹 비지스의 보컬리스트 로빈 깁이 간암 투병 중이라고 합니다. 쌍둥이 동생 모리스 깁이 지난 2003년 사망한 터여서 많은 음악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비지스의 맏형 배리 깁이 동생 곁에서 용기를 불어넣고 있다고 하는데요. 아무쪼록 좋은 소식이 들렸으면 합니다. 이번 주는 디스코 시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영화 < 토요일 밤의 열기 >의 사운드트랙을 소개합니다.


비지스(Bee Gees) < Saturday Night Fever >(1978)

가장 극렬한 저항을 내뿜은 펑크 록이 영국에 휘몰아치고 있었던 70년대 말 미국에는 전혀 다른 성격의 음악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새로운 흑인음악 디스코(Disco)가 그것이었다. 디스코는 멜로디와 가사를 최대한 줄이고 연속적인 비트를 강조한, 단순하지만 신나는 전형적인 댄스뮤직이었다. 75년부터 서서히 붐을 이루기 시작한 디스코는 이러한 강점 때문에 순식간에 미국이란 거대한 땅덩어리를 삼켜버렸다. 모든 계층과 연령층이 디스코의 리듬에 열광했다.

영국에는 펑크의 깃발 아래 혁명의 구호가 휘날리고 있을 때 미국인들은 디스코와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희희낙락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상황이 달라도 그렇게 다를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영미간의 사회, 경제적 환경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영국이 경기침체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한 반면 미국은 호황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더구나 각종 사회적 혼란에 원인을 제공한 월남전도 끝난 상태였다.

이에 따라 미국의 대중들은 그저 들어서 즐겁고 춤추기 좋은 음악을 원했다. 음악적으로는 사이키델릭 록, 프로그레시브 록, 하드 록 등 무거운 주제와 사운드의 ‘골치 아픈 음악’은 더 이상 듣기 싫다는 공감대가 퍼져 있었다. 디스코는 당시 미국의 이와 같은 국민정서와 맞물려 부상하게 된 것이었다. 이로 인해 노골적인 상업성의 경향은 피할 수가 없었다.

많은 가수와 평론가들이 반기를 들게 된 것은 당연했다. 당시 브로드웨이 가수인 멜바 무어는 “우리는 지금 대량 소비시대의 통조림 식품과 같은, 음악에 있어서의 맥도널드 시대에 처해있다”라고 개탄했으며 보수적인 논객 앨버트 골드먼은 “디스코는 예술이 아니라 소비지향의 상품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저널리스크 로버트 힐번은 강한 톤으로 “엘비스는 우리들의 삶에 신념을 불어넣어 주었고 60년대 록 음악인들은 사랑과 고통을 노래했다. 그러나 디스코는 매춘 집의 밤과 같은 일시적인 전율만을 제공하고 있다”고 혹평했다. 하지만 비판의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룡’ 디스코는 지구촌을 댄스로 감염시켰다. 비판적 입장이었던 멜바 무어도 나중 디스코 음악을 시도하는 등 ‘무서운 현실’에 타협했다.


1977년 9월 발표된 한 디스코영화의 동명 사운드트랙 음반< 토요일 밤의 열기 >(Saturday Night Fever)는 바로 디스코 열풍을 전세계로 확산시킨 앨범이었다. RSO레코드사의 사장 로버트 스틱우드가 제작한 영화 ‘토요일밤의 열기’는 당시 무명배우였던 존 트래볼타를 일약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창조해냈고, 음악을 맡은 비지스(Bee Gees)를 ‘디스코음악의 황제’로 탄생시켰다.

이 음반은 팝 음악사에 사운드트랙 앨범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갖가지 기록을 쏟아냈다. 가장 많이 팔린 음반(2500만장), 여러 곡을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랭크시킨 앨범(4곡), 비지스의 맏형인 배리 깁의 4연속 넘버원 히트기록 작성, RSO레코드사의 5연속 넘버원 히트기록 등.

비지스는 거뜬히 팝계 정상에 등극했다. 현대판 ‘마이더스 터치’로 비유될 만큼 그들은 ‘발표곡=빅히트’이라는 비틀스 이래 볼 수 없던 가공할 퍼레이드를 펼치며 돈을 긁어모았다. 70년대 말 팝계는 깁(Gibb)형제들의 것이었다. 발라드한 분위기의 소프트 록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들은 70년대 중반 갑작스레 디스코로 전향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리듬 앤 블루스의 펑키(funky)한 성격에 특유의 멜로디를 부여한 그들의 디스코는 일반 흑인 디스코와는 달리 여기에 록의 드럼 비트를 강조한 매우 힘찬 것이었다. 이 때문에 디스코가 정작 흑인 음악이었으면서도 백인인 비지스가 그 물결을 주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도 많은 평자들은 백인들이 흑인의 것을 강탈하여 장사하는 과거 음악 역사의 왜곡이 또 다시 재현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각의 흑인들 사이에서 동성애라는 성 관념의 파괴와 누구라도 춤추어 주목받을 수 있다는 평등주의의 표현으로 등장한 디스코는 백인의 자본욕에 의해 상업음악으로 변질되어버렸다.

많은 사람들을 춤의 향연으로 이끈 비지스의 대표작 「밤의 열기」(Night fever), 「스테잉 얼라이브」(Stayin' alive)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How deep is your love) 등이 모두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또한 배리 깁이 만들어줘 비지스 곡들과 마찬가지로 차트 1위를 차지한 이본느 엘리만의 「내가 널 가질 수 없다면」(If I can't have you)도 실려 있다.

< 토요일 밤의 열기 >는 70년대 말 팝계를 강타한 디스코의 정체와 음악을 가늠하기에 적절한 앨범이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이 앨범을 명반으로 치지는 않는다. 많이 팔린 만큼 ‘팔리는 음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높은 판매고가 때론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을 때가 있는데 가엾게도 < 토요일 밤의 열기 >가 그 비극의 사례에 끼어있다. 오리지널리티를 희생시킨 음반의 종말(?)이란 원래 그런 법이다.

글 / 임진모


#비지스 #디스코
7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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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2012.03.07

한때 디스코하면 비지스가 떠오를 정도로 쉽게 표현해 요즘말로 비지스가 전 세계의 대세였던 때가 있었지요. 세월의 흐름은 어쩌지 못해서 동생은 죽고 형은 간암 투병중이나 봅니다. 그래도 세월을 띄어 넘는 음악이 있기에 비지스는 영원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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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ve

2012.03.03

흐흐.비지스가 신나는 디스크곡의 절정을 보여줬던가요...알고 있던 곡이 사뭇달라서 살짝 매치가 찌지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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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jmcp25

2012.01.29

토요일밤의 열기는 영화로도 성공하고 음반으로 만들어지면서 디스코의 열풍을 확대시킨것 같아요. 70년대 미국은 월남전이 끝나고 아직은 어둡고 우울했던 사회 분위기를 디스코의 열풍으로 바뀔 수 있었던것 같아요. 단순하면서도 비트를 강조한 댄스 뮤직은 가라앉아 있었던 국민정서를 한층 올려주는 계기를 마련해준것 같습니다. 비지스의 멤버 로빈깁이 암투병 중이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비지스가 침울했던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것처럼 그들도 다시 일어나길 바라는 팬들의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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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모(대중문화평론가)

학력
고려대학교 사회학 학사

수상
2011년 제5회 다산대상 문화예술 부문 대상
2006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부문 공로상

경력
2011.06~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
영상물 등급위원회 공연심의위원
내외경제신문 기자

음악웹진 이즘(www.izm.co.kr)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