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가 읽어주는 그림 화제… 어떻길래? - 박세당『그림 읽어주는 남자』
반전 혹은 의외의 모습을 가진 삶은 언제나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런 까닭으로 책『그림 읽어주는 남자』를 처음 펼쳐들었을 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다방면에 ‘종횡무진’해 온 저자의 이력 때문이다…
글ㆍ사진 임나리
201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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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5일『그림 읽어주는 남자』의 저자 강연회가 열렸다. <포털아트갤러리>에서의 만남이었다. 화랑에서의 ‘그림 읽어주는 남자’와의 만남, 더없이 잘 어우러진 풍경이었다. 저자 박세당은 <포털아트>와의 인연을 시작으로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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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아트>는 인터넷으로 그림을 경매하는 곳입니다. 저는 이 화랑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이곳에서 거래된 그림들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곳에서 거래된 그림의 양으로 보면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 가는 화랑입니다. 지금까지 <포털아트>에서 경매를 통해 팔린 그림이 35,000점 이상 됩니다. 평균적으로 한 사람이 2~3점정도 구매했다고 하더라도 회원이 10,000명 이상 되는 거죠.”

저자와의 만남이 마련된 오프라인 화랑은 오래전부터 그가 2주에 한 번씩 콜렉터(그림을 거래하고 수집하는 사람)들과 모임을 가져온 장소다. 자신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독자들과 만나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픈 마음에 강연회 장소로 결정하게 되었다.


대중과 가까운 곳, 같은 눈높이에서 그림을 읽고 말을 걸다

반전 혹은 의외의 모습을 가진 삶은 언제나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런 까닭으로 책『그림 읽어주는 남자』를 처음 펼쳐들었을 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다방면에 ‘종횡무진’해 온 저자의 이력 때문이다. 그의 본업은 치과의사다. 동시에 그는 발명가이고 언어학습전문가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로서 그는, 미술 컬렉터다.

그렇다. 그는 다재다능하다. 그리고 미술 분야에만 매달려온 비평가가 아니다. 바로 그 지점에 그의 평론은 존재한다. 전문적으로 미학과 비평을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대중과 가까운 곳, 같은 눈높이에서 작품을 읽고 말을 걸어온다. 전문적이고 어려운 용어들로 대중들에게 좀처럼 다가서지 못했던 것이 기존의 미술 평론들의 취약점이었다면, 저자의 평론은 쉽고 친근하게 다가온다는 강점이 있다.

그는 자신이 그림을 이야기하려는 이유에 대해 책 서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어떤 이는 말한다. 그림감상에서 설명은 필요 없고 단지 느낌으로 충분하다고. 물론이다. 나도 거기에 동감이다. 그러나 그림을 단지 말로는 설명이 안되고 다만 한 번의 큰 울림으로 충분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실은, 그 울림을 설명할 수 있는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했을 뿐이지 표현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 길을 택했을 것이다.’ 뒤이어 덧붙인 말은 미술 비평에 접근하는 그의 태도를 짐작하게 한다. ‘이 책은 누구의 말처럼 객관적인 평론은 결코 아니지만 그림을 즐기는 방법에 대해서만은 흥미로운 제안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p.7)


미술을 이야기할 때 가장 나쁜 말은
‘이미 유행이 지나갔다’고 얘기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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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권진규는 로뎅의 적통을 잇는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각가 부르델(Antonie Bourdelle)은 로뎅의 제자죠. 그 부르델의 제자가 일본 사람입니다. 수제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시미즈(靑水多嘉示)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시미즈의 수제자가 바로 권진규입니다. 그런 작가가 한국에 와서 평단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당시 한국 미술계에서는 엥포르메(Informer)라고 해서 상을 파괴하는 것이 유행이었거든요. ‘요즘 때가 어느 때인데 사람 얼굴을 똑같이 만드느냐’고 얘기한 거죠.”

어느 분야든 시기별로 주도하는 세력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들 세력에 의해 짜여진 판은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예외없이 배타성을 띄게 된다. 저자는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작품을 창작하는 사람이든 비평하는 사람이든, 미술계에 몸담고 있는 누구라도 파벌을 형성하고 ‘대세를 따를 것’을 종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미술을 이야기할 때 가장 나쁜 말은 ‘이미 유행이 지나갔다.’고 얘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유행이란 지나가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독특하고 다양한 생태계가 형성된 한국의 현대미술

조각가 권진규의 일화를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야기는 ‘그만큼 우리나라 예술가들의 수준이 뛰어나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책을 집필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계기이기도 하다.

“오늘날 프랑스와 미국, 영국 등에서 발전해온 그림의 형식들은 이미 오래전에 한국에 도입되었어요. 영화와 미술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전세계 주류에서 불과 몇 년 뒤져있을 뿐이에요.”

저자는 근대 프랑스가 혁명과 세계대전 등의 격동을 겪으면서 오늘날 뛰어난 예술적 수준에 이르렀듯이, 한국의 현대미술에도 역사적 경험을 통해 체득한 통찰력이 녹아들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개발 독재시대 등을 거치면서 작가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와 무의식이 모여, 독특하고 다양한 생태계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와 함께 읽는 가국현의 <농가의 겨울>

그렇게 다채로운 화가들 중 31인을 선정하고 저자의 시각으로 그들의 작품을 풀어낸 이야기가『그림 읽어주는 남자』에 실려있다. 그 가운데 특별히 가국현 화가의 작품 다섯점에 대한 저자의 풀이를 강연회에서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작품 <농가의 겨울>을 ‘읽는’ 저자의 목소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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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국현 作 <농가의 겨울>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겨울의 이미지는 어떤가요? 생명이 사라진 시간이죠. 그런데 사실 인문학적으로 겨울은 생명을 지독하게 응축하고 있는 거에요. 하지만 우리에게 겨울은 황량한 이미지죠. 그 이미지가 그림 속 나무에 나타나 있습니다. 제 눈에는 털실을 넣어놓은 것처럼 보이는데요. 이 나무는 생명력이라든지 단단해 보이는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

하늘은 무슨 색인가요? 극도로 차가운 색깔인 보랏빛에 청색이 함께 있어요. 청보라빛이라고 할 수 있겠죠. 단색이 아니라, 핑크빛도 들어있고 붉은빛도 들어있어요. 여기에서 하늘은 온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생명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느끼게 만들죠.

그런데 그것만을 느끼게 해준다면 재미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 화가의 특징은 선 자체가 모호하고 앙고라 스웨터를 부욱 찢어놓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거에요. 나중에 화가를 만나서 이야기해보니 이것을 곰팡이라고 표현을 해요. 처음에 벽에 퍼진 곰팡이의 경계가 모호한 것을 보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대요. 그런데 여기에서는 곰팡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고 털실 같은 이미지가 강하죠.

그렇기 때문에 하늘과 지붕의 경계가 또렷한 상태가 아닙니다. 우리말로 이런 것을 가물가물하다고 해요. 이런 선은 가국현 화가만이 만들어낸 거에요. 일반적으로는 너무나 추워서 냉랭한 느낌밖에 나지 않겠죠. 그런데 화가가 만들어 놓은 솜사탕 또는 앙고라 스웨터 찢어놓은 것 같은 질감이 따뜻한 느낌을 주죠. 그래서 대단히 차가운 색들만 썼는데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느낌이 따뜻해집니다.

이 눈밭에 들어가면 얼어 죽을 것 같지 않죠? 뭔가 이부자리같이 포근할 것 같은 느낌이 들죠. 이 화가는 질감으로 실제 그림과 우리가 받는 느낌을 배반시켜 놓잖아요. 그것이 작가가 가지고 있는 비범함입니다.”


저자와 함께 그림을 읽는 시간이 끝난 후 독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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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작가님께서 그림을 읽는 시각이 화가의 창작 의도와 일치하는 건가요?

답변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면, 제가 그 이야기들을 읽어낼 수는 없습니다. 화가가 생각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작품에 나타나지는 않아요. 다만 저처럼 세밀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세밀하게 생각했을 지도 모르죠. 그것은 제가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화가가 저의 해설을 듣고 너무 좋아해요. 그렇게 설명 드리는 것이 맞을 것 같아요. 저희 해설이 재미있고, 그래서 그림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같은 작품도 시간이 흐르면 해석이 달라질 수 있지 않나요?

답변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그림에 대한 평가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어요.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있느냐, 하는 부분에 있어서 차이는 있겠지만 정답이라는 것은 없죠. 저는 정답이 있다고 보지만 전체적인 입장에서 볼 때 저만 옳은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제가 인문학이나 미술사적인 지식을 바탕에 두고 그림을 읽지만,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라는 뜻입니다.

질문

여러 평론가들의 비평이 서로 엇갈릴 때 화가의 의견과는 상관없는 건가요?

답변

화가는 자신의 뜻과 맞는 평론가를 선택하는 거에요. 화가에게 선택받은 평론이 성공하는 거죠. 저는 화가에게 선택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 선택받길 바라는 사람입니다. 엄격하게 말해서 저는 평론가를 자처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평론가라면 비평을 해야 하잖아요. 저는 비평을 하기 싫은 거에요. 다만 제가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되면 그것을 칭찬만 해주고 싶어요. 제가 싫어하는 그림에 대해 나쁘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렇게 저의 위치를 점하려고 하구요. 아직까지는 좋은 그림만 고르고 전달하는 데에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비평도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어요. 제가 책에서 다룬 31명 화가들의 그림이 다 달라요. 우리나라 평론가들은 (좋은 그림에 대한)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게 있어서 같은 류의 그림을 주로 모아요. 저는 똑같은 류의 그림을 끌고 나오는 것 자체가 싫기 때문에, 아주 다른 개성을 가진 그림들을 소개한 거에요. 그러면서 소개하는 필체 자체가 각기 다른 겁니다. 어떻게 보면 자기 주관이 없는 것 같기도 하겠고, 어떻게 보면 대단히 특이하고 스펙트럼이 넓은 거죠.

질문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평론가란 어떤 사람인가요?

답변

좋은 평론가는 다양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카데믹한(학술적인-필자 주) 것에 머무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첫 번째는 다양한 삶을 살아야 하고, 두 번째는 인문학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화가와 그리고 콜렉터와 교통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평론이라는 것이 콜렉터와 화가 없이 자신 혼자 독자적으로 쓸 수 있는 공간이 아니란 말이죠. 비평이란 그런거죠. 하나만 더 보태자면, 자신이 쓰고 있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 썼으면 좋겠습니다. 상대방에게 어떻게 도달할 지에 대해서 알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오늘날의 콜렉터들은 충분히 성숙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론가가 콜렉터와 화가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고민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인문에 대한 지식이 뛰어나야 해요. (화가들이 보여주는)다채로운 생태계의 스펙트럼에 자신도 다채롭게 맞추면 가장 이해가 잘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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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예술작품은 창작자의 손을 떠나는 순간부터 이미 그의 것이 아니다. 수용자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든 그것은 각자의 선택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데 정답은 없다는 저자의 말은 진실이다. 하지만 정답은 없더라도 치우치지 않고 왜곡되지 않은 시각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소다. 그를 위해서 각기 다른, 때로는 전혀 상반된 해석까지도 접해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객관적인 평론은 아니지만 그림을 즐기는 방법에 대한 흥미로운 제안들 중 하나다. 그것만으로도 새로운 시도로써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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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어주는 남자 박세당 저 | 다할미디어

한국 화가 31명의 개성을 가장 함축적으로 풀어낸 맛깔스런 글이다. 저자의 이력이 참 개성있다. 치과대학에 다니던 시절부터 시나리오 작품을 써서 영화를 흥행시켰고, 발명가로서, 벤처사업가로 성공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호기심 가득히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을 그림으로 돌려 느닷없이 그림을 읽어준다. 저자 박세당의 글에는 그림에 드러난 은유와 상징의 세계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예술의 기본기를 탄탄하게 갖춘 저자의 학문체계들이 밑바탕이 됐다. 그가 읽어주는 그림을 통해 한국화가들의 그림에 대한 평가가 재평가되기를 바란다.

 




#박세당 #그림 읽어주는 남자 #포털아트 #포털아트갤러리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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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꽃방

2012.04.25

정말 다재다능하신 분이시네요, 그림을 보고 느끼는 것을 말로 설명할 수 있다니 그 또한 우리 보통 사람과 많이 다른거 같아요, 저도 그림을 참 좋아해서 가끔 인사동에 나가면 그림들을 보고 오곤 하는데 그 느낌을 뭐라 일일이 다 말하지 못하겠더라구요, 그냥 보고 느끼는것에 만족하는 한 사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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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