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짝할 사이에 수천만 원 오른다고?” - 공사비와의 전쟁
건축가가 기본적인 조언과 추천을 하는 것들도 있지만 그야말로 건축주의 취향과 선택에 맡기는 정도가 가장 큰 부분이다. 때문에 이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공사비가 증액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당초 공사비 예산으로 책정된 가격대의 제품들과 나란히 전시된 상급품들에 눈이 가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당초의 제품들이 성에 차지 않아 공사비 증액을 감수하고 상급 제품을 선택하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글ㆍ사진 박인석
2012.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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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지 않는 아파트

현장이 발 빠른 진도를 나타내는 것과 비례해 마음은 더욱 다급해졌다. 공사비 마련을 위해 매물로 내놓은 두 집 아파트가 모두 팔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 한 명도 집 구경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매물을 전세로 돌리려니 한 달 안에 집을 비워 줘야 하고, 죽전주택은 이제 막 지하층 벽체가 올라가는 상황이어서 잘못하다가는 길에 나앉아야 할 형편이었기 때문에 조바심과 걱정이 거듭되었다. 다행히 같은 대학의 선배교수께서 팔려고 내놓은 비어 있는 아파트가 한 채 있으니 필요하면 집이 지어질 동안 들어가 살아도 된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하시면서 배려해 주셔서 그나마 타들어가는 속을 진정시킬 수는 있었다.

살던 아파트가 팔리지 않아서 노심초사하기는 윗집도 마찬가지였다. 이자 부담은 계속 늘어나고 있었으나 시세보다 한참 싼 값으로 내놓기 전에는 아파트 팔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결국 일단 전세를 내놓고 이사하기로 했다. 한때 10억 원을 넘던 아파트를 그리 싸게 팔 수 없다는 욕심과, 갖고 있으면 혹시 조금 오르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심리가 작용한 결과다.

전세 계약은 쉽게 이루어졌다. 전세금은 3억 2천만 원. 입주 시점에서 빚이 그 만큼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다. 전세를 놓은 상태에서도 아파트 팔기를 계속 시도하겠지만 당시 상황으로 보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당분간 빚을 계속 지고 있어야 하고 이자부담 역시 계속될 것을 각오해야 했다. 이자부담 기간을 일 년 더 늘려 잡고 당초 천만 원 정도로 예상했던 이자 비용도 3천만 원으로 늘려 잡았다. 1년 후에도 아파트가 팔리지 않으면? 그 때 일은 그 때 가서 걱정하기로 했다. 어쨌든 아파트는 있으니까.


욕심과 현실 사이:아랫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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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살림살이를 그대로 가져온 아랫집 거실

우리 내외가 공감한 원칙은 단순하지만 분명한 것이었다. 아니, 분명하기 때문에 단순한 것이라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가장 먼저 합의된 내용은 아파트에서 사용하던 거의 모든 것을 그대로 가져간다는 것이었다. 아주 오래 묵은 것이기는 하지만 에어컨과 거실용 소파와 식탁, 거실에 놓여 있던 낮고 긴 수납장, 큰 아이와 작은 아이의 책상과 의자 등이 그것이다.

두 번째는 약간 손을 본다면 거의 새것이라 할 수 있는 몇 가지는 이사를 전후해서 고쳐 쓰자는 것이었다. 식탁의자의 앉는 부분이 조금 낡아 벗겨진 것이었지만 새로 천갈이를 하기로 했고, 우리 내외가 쓰던 안방의 시스템 수납장도 그대로 옮겨 치수를 줄인 뒤 작은아이 방에 설치하기로 했다.

세 번째는 우리 스스로 욕심을 냈다고 생각한 것들은 다시 생각해 과감하게 줄인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짓기 과정에서 결행하지 않으면 살면서 고치거나 더하거나 바꾸기 어려운 것들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비용을 지불한다는 점을 전제로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가족들에게 호언했던 많은 내용들이 결국 허언으로 끝나고 말았다. 식기세척기 구입 계획이 취소되었고 싱크대를 포함한 주방가구의 빌트인 부분 역시 대폭 축소되어 쌀통과 도마건조기만 선택하였다. 보조주방의 가스레인지와 후드는 당연하게도 고려 사항에서 제외되었다. 큰아이가 내심 기대하고 있었을 자작나무 합판을 이용한 붙박이형 책꽂이 역시 기성제품 구입으로 대체되었고, 건강생활을 들어 설치하기로 했던 안방과 서재의 동판 깔기도 없었던 일이 되었다. 1층 거실에서 2층으로 오르는 계단 하부의 쓰지 못할 공간에 짜 넣으려던 수납 겸용 책꽂이도 제외했고, 1층 서재와 공용공간의 자작나무 책꽂이는 합판의 두께를 줄이는 것으로 비용을 절감했다.


취향과 비용 사이:윗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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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집 거실과 식사실

이렇게 해서 추가공사비는 1,700만 원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직 일이 끝난 것이 아니다. 훨씬 더 많은 추가공사비 발생 여부를 가름할 난코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싱크대, 조명기구, 타일 등 소위 인테리어용 장치물과 마감재를 결정하는 일이다. 이들은 벽돌, 목재 등 현장에서 가공되는 건축 재료들과 달리 기성품으로 제작된 것들로서 디자인이나 성능이 다종다양한 수많은 제품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건축가가 기본적인 조언과 추천을 하는 것들도 있지만 그야말로 건축주의 취향과 선택에 맡기는 정도가 가장 큰 부분이다. 때문에 이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공사비가 증액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당초 공사비 예산으로 책정된 가격대의 제품들과 나란히 전시된 상급품들에 눈이 가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당초의 제품들이 성에 차지 않아 공사비 증액을 감수하고 상급 제품을 선택하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마음 독하게 먹지 않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수천만 원이 올라간다.”

집짓기를 시작하면서 주변의 건축가들로부터 누누이 들어온 주의사항이었다.
내 전략은 모든 것을 취향의 문제로 몰고 가는 것이다.

“일정 가격 수준 이상에서는 성능 차이는 별로 없다. 디자인과 재질에 대한 취향 차이일 뿐이다. 비싼 제품이 마음에 든다면 그건 운 나쁘게도 취향에 맞는 재료가 하필 비싼 재료이기 때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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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와 바꾼 집 박인석,박철수 공저 | 동녘

대학에서 주거건축을 가르치는 것은 물론 문화센터를 비롯한 전문가 혹은 비전문가 대상의 크고 작은 강좌에서 아파트 관련 강의를 하는 박철수ㆍ박인석 교수. 두 사람은 소위 말하는 ‘아파트 전문가’다. 이들이 살던 아파트를 팔고 죽전에 단독주택을 짓고 이사했다. “나만의 작업실을 갖고 싶어서”, “두 딸에게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마음의 고향을 주고 싶어서”와 같은 특별할 것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이 책은 박철수ㆍ박인석 두 교수의 단독주택 이주기와 이주 후 1년 동안 지내면서 겪은 생활을 기록한 도전기다.

 



#아파트 #공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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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으로 시작한 ‘주택문제에 대한 인식’을 주택연구소에서의 연구와 명지대학교에서의 주거건축 전동 교수활동으로 이어가고 있다. 한국사회를 읽는 주요한 키워드로 ‘아파트공화국’은 ‘단지공화국’으로 교정해야함을 지적하는 일, 공공 공간 환경 개선 없이 사유 단지개발 장려 전략으로 일관하는 정부 도시ㆍ주택정책을 비판하고 바른 정책의 실천을 제안하는 일이 최근의 주된 관심사이다. 주택 수요가 아파트단지에 편중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변화시키려면 경제성ㆍ편리성ㆍ쾌적성에서 아파트단지와 경쟁할만한 주거유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당 딸린 집에서 살고 싶다는 개인적인 동기로 시작한 집짓기에 단지공화국 극복이라는 실천적 의미를 부여하여 《아파트와 바꾼 집》이라는 이름을 책의 제목으로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