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여배우’ 임수정, 전도연의 뒤를 잇나… <내 아내의 모든 것> 임수정
예쁘고, 요리도 잘하고, 섹시하기까지 한 수다쟁이 아내 역할로 등장하는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본 임수정의 모습이 낯설다고 느낀다면 아마도 임수정에 대해 가지고 있는 ‘소녀’ 이미지에 대한 환상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임수정이 출연한 작품들을 살펴보면 딱 하나의 이미지로 굳혀두기에 그녀의 매력은 단순한 판단과 정의의 저 편에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12.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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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도 아이도 아닌 여인의 신경병적 죄의식을 가리기 위해, 환상을 타인에 대한 원망과 그로 인한 공포로 치환하는 <장화홍련>의 수미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앳된 얼굴, 그와 어울리지 않는 길고 예쁜 몸을 휘저으며 관객들의 뇌리 속을 숨 가쁘게 유영한다.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져버릴 것 같은 수연(문근영)과 독한 눈매와 긴 팔다리로 또 다른 공포를 자아내는 은주(염정아) 사이에서 수미 역할의 임수정은 질투와 공포, 애정과 죄의식 사이에 스스로를 가둔다.
뽀얀 피부와 쀼루퉁해 보이는 작은 입술 덕분에 임수정의 얼굴에선 여인이 아닌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문근영이 그저 귀엽고 보호해주고 싶은 소녀의 얼굴이라면 임수정은 무심한 듯 아무려면 어떠냐는 공허해 보이는 눈망울 아래로 대화를 거부하는 듯 꼭 다문 입술을 가진, 조금은 까다로워 보이는 소녀 같다. 예쁘고, 요리도 잘하고, 섹시하기까지 한 수다쟁이 아내 역할로 등장하는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본 임수정의 모습이 낯설다고 느낀다면 아마도 임수정에 대해 가지고 있는 ‘소녀’ 이미지에 대한 환상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임수정이 출연한 작품들을 살펴보면 딱 하나의 이미지로 굳혀두기에 그녀의 매력은 단순한 판단과 정의의 저 편에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임수정의 매력은 ‘소녀’의 이미지가 아니라 뭐라고 딱 꼬집어 얘기하기 어려운 그 무정형성에 있는 게 아닐까?
기대를 배반하는 재미, <내 아내의 모든 것>
이선균과 임수정 커플이란 얘기를 들으면 왠지 기분 좋은 로맨틱 코미디나 가슴 저린 멜로를 연상하게 되지만, <내 아내의 모든 것>은 그 기대를 배반한다. 결혼 7년차 아내 정인(임수정)의 독설로 일관되는 수다에 지친 두현(이선균)이 희대의 카사노바 성기(류승룡)에게 의뢰해 아내가 자신을 떠나게 하려는 술수를 부리는 이야기이다. 두현의 계획대로 정인은 성기를 만난 다음 조금씩 달라져간다. 게다가 성기조차 아내 정인에게 빠져든다. 두현의 기막힌 발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후회가 되어 돌아온다.
민규동 감독은 두현과 정인이 만나는 첫 장면을 우리가 흔히 보아온 로맨틱 코미디처럼 경쾌하고 예쁘게 그려낸다. 단, 10분 동안만……. 그리고 그 이후는 결혼 생활 자체가 지긋지긋한 두현의 찌든 삶이 눈앞에 나타난다. 민규동 감독은 시작보다 과정이 더 어렵고, 갈등 후에 더욱 단단해지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로맨스가 아닌 코미디에 조금 더 비중을 두고 그려내지만, 그 현실은 달짝지근한 판타지만은 아니다. 해피엔딩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운 결말에 이르면, <내 아내의 모든 것>이 추구하는 것이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에 앞서 ‘사랑’과 ‘삶’이라는 인간 사이의 관계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민규동 감독은 1999년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를 통해 여고생 사이에 흐르는 퀴어적 감수성을 공포라는 형식을 빌려 새로운 장르 영화의 가능성을 열었다. 이어 2005년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2008년 <서양골동양과자점 엔티크>, 2011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통해 섬세한 연출력으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연출한 작품을 살펴보면 대부분 두 주연배우가 이끌어가는 영화가 아니라 다수의 배우들이 모여 앙상블을 이뤄, 하나의 결을 만들어가는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배우들의 앙상블을 재기발랄하게 이끌어내는 그의 장점은 <내 아내의 모든 것>에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아내를 궁지에 몰아넣었음에도 밉살스럽지 않은 이선균의 다양한 표정은 호들갑스럽지 않고 충분히 공감이 간다. 현실성 없는 4차원 캐릭터에도 매력을 불어넣는 류승룡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웃음의 핵심이다. 여기에 거칠고 직설적이며 섹시하면서도 귀여운 임수정의 다양한 매력이 어우러지면서 영화는 다소 상투적일 수 있는 이야기에 탄력을 붙여 넣는다. 떠들썩한 소동을 현대적이며 세련되게 그려내면서도 그 끝에 ‘사랑’의 중요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도 이 영화의 큰 매력이다.
단단한 밀도, 그 성숙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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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이미 20대 성인이었지만, 드라마 <학교 4>로 데뷔한 이후 2002년 <피아노 치는 대통령>에서도 앳된 얼굴의 그녀는 여전히 여고생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의 임수정을 있게 해준 영화 <장화, 홍련>에서 그녀는 아이도 어른도 아닌 어중간한 표정의 수미로 다가왔다. 영화 속 수미는 단 한 번도 웃어본 적이 없어 보이는 마음이 갈라진 아이였다. 김래원, 이미숙과 함께 한 <...ing>에서도 임수정은 여전히 여고생이었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병약한 여주인공이었지만, 마냥 여리고 눈물만 흘리는 여고생은 아니었다. 영화 속 그녀는 씩씩하고 현재적이다.
<장화, 홍련>으로 각종 신인상을 휩쓸며 주목받아온 그녀이기에 다음 작품의 선택이 중요한 상황이었다. 영화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배우로 주목받는 그녀의 차기작은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였다. 조금 의외의 선택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현재의 소지섭을 톱스타로 만들었으며, ‘미사 폐인’을 대거 만들어낸 이 화제의 드라마를 통해 임수정은 무난하지 않은 자신의 개성 위에 사랑스러운 은채의 이미지를 덧입혔다. 이를 통해 임수정은 이미 충분한 희소성에 대중적 인기까지 덧입은 젊은 배우로 거듭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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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네 커플의 각기 다른 이별 이야기를 하나로 엮은 <새드 무비>로 복귀한 임수정은 이전과 다른 위치에 서 있었다. 정우성, 신민아, 이기우, 차태현, 손태영, 염정아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에서 임수정은 주목받는 신인이 아니라, 당당하게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는 모습으로 성장했다. 영화가 다소 평이한 편이라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영화 속 임수정은 앳된 여고생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좀 더 부드럽고 온화한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전 그녀의 작품들이 그녀의 나이보다 어린 여자들을 연기했다면, <새드 무비> 속의 역할은 가장 그녀의 실제 나이에 가까운 역할이었다.
2006년 기수가 되어 돌아온 <각설탕>에서 임수정은 원 탑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냈고, 같은 해 정지훈과 함께 한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통해 임수정은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하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을 최대한 드러내면서, 그녀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스펙트럼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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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정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영화는 2007년 허진호 감독의 <행복>이었다. 무책임한 남자가 헌신적인 여인과 사랑을 나누다 배신한다는 이 통속적인 이야기 속에서 임수정은 평생을 죽음을 벗 삼아 살아온 여인이 사랑에 빠지는 지긋지긋하고 아픈 과정을 뼈저리게 보여준다. 전도연이나 엄정화 정도의 능숙한 배우들만이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맞설 수 있을 것 같은 황정민과 어우러진 임수정에게서 소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임수정은 허진호 감독의 균열과 실패에 관한 이 이야기 속에서 단순한 성숙이 아니라 연기의 밀도를 단단하게 채워가고 있었다.
김지운, 박찬욱, 허진호에 이어 그녀가 만난 감독은 <전우치>의 최동훈 감독이었다. 이 영화에서 임수정은 치명적 매력의 팜므 파탈로 분했으나 강동원에게 초점이 맞춰져 크게 부각되지는 못했고, 영화 속 캐릭터가 다소 평이하다는 아쉬움도 남았다. 하지만, 다양하고 개성 있는 인물들의 각축장이었던 이 영화 속에서도 임수정은 다른 배우에게 묻히는 법이 없다. 균형과 조화 속에서도 개성을 드러내는 법을 배워간다는 점에서 이 영화도 임수정에게는 중요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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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어느새 30대가 된 임수정은 그 시작을 동명의 히트 뮤지컬을 영화화한 <김종욱 찾기>와 함께 한다. 영화 속 캐릭터는 충분히 개성이 넘친다. 털털하고 어수선한 노처녀 무대감독에서 뮤지컬 배우로 변신하는 엔딩까지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미 열애설에 휩싸인 적이 있는 공유와 호흡을 맞추는 용기(?)를 보이면서 임수정은 이미 자신이 소녀의 이미지에 갇혀있지 않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강변한다. <여자, 정혜>, <멋진 하루>를 통해 섬세한 연출력으로 주목받은 이윤기 감독의 2011년 작품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에서 임수정은 현빈과 함께 저예산영화의 지평을 넓히는데 일조한다. 지극히 제한된 장소에서 두 배우만이 이끌어가는 이 영화에서 임수정에게선 삶에 지친 여인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느리고 조심스럽고 집요한 카메라 앞에서 임수정은 흔들리는 법 없이 영화를 묵묵히 이끌어 간다.
현재 가장 주목받은 젊은 감독들과 함께 한 작업을 통해 연기의 폭과 그 가능성을 넓혀가고 있는 임수정이 민규동 감독과 함께 한 <내 아내의 모든 것>은 그녀의 근작들에 비하면 훨씬 더 대중적이며 친근하다. 그래서 임수정의 변신을 꽤 주목하고 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영화 속 임수정은 늘 새로운 모습이었다. 속사포로 쏘아대는 독설, 헐렁한 티셔츠 차림에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은 놀랍지만, 그러한 그녀의 변신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은 이미 전작들을 통해 그녀가 다양한 연기의 층위를 개발하며, 그 깊이를 더해왔기 때문이었다. 이제 40대가 된 전도연의 나이가 아쉬운 가운데, 30대 여배우의 대안으로 임수정이 있다는 말도 과찬이 아니다. 그녀는 확실히 믿음직한 배우로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임수정은 여전히 귀여운 동안이다. 여배우의 외모는 어쩔 때는 연기의 걸림돌이 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인위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 때문에 연기가 묻혔던 샤를리즈 테론은 <몬스터>를 통해 특수 분장으로 얼굴을 억세게 고치고서야 비로소 연기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임수정의 태생 동안은 연기의 걸림돌일 수도 있었지만, 능력 있는 감독과 작품을 선별하는 임수정의 탁월한 감각은 외모의 한계를 뛰어넘었고, 이제 곧 임수정이라는 배우는 그저 이름만으로도 신뢰할 만한 몇 안 되는 배우의 반열에 오르리란 확신이 든다. 그래서 이창동 감독과의 작업을 꿈꾸는 그녀의 욕심은 아마 곧 그 결실을 이루지 않을까 싶다.
9개의 댓글
필자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yerim49
2012.08.24
다대기
2012.08.07
jehovah511
2012.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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