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의 모든 것』
백수린 저 | 문학과지성사
봄밤,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앞서가던 사람을 멈춰 세우고 싶어 몇 번이나 손을 뻗었다가 거두어들이던 남산의 오르막길. 그 사람 머리 위로 내리쬐던 남산타워의 빛. 동시에 압도해 오던 두려움과 설렘 같은 것. 정작 그 순간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십수 년이 흐른 후다.
백수린 작가의 새 소설집 『봄밤의 모든 것』을 읽으며 내게도 있었던 오래전 봄밤들을 떠올렸다. 그때에는 미처 다 알지 못했던 것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 그런 반추의 행위가 삶에서 하는 일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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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의 모든 것』은 『폴링 인 폴』, 『참담한 빛』, 『여름의 빌라』에 이은 작가의 네 번째 소설집이다. ‘빛의 소설가’라는 수식어답게, 이 책 역시 한때 우리 삶에 드리웠던 과거의 빛을 다시 돌이켜보는 7편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첫 번째 소설 「아주 환한 날들」은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세요.”라는 요청으로 시작한다. 평생교육원 수필쓰기 강사는 글을 쓰려면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는데, 남편은 먼저 세상을 떠났고 결혼한 딸과는 사이가 멀어진 지 오래인 70대 여성 옥미에게 그건 “너무 무서운 일”이다.
옥미가 마음을 들여다볼 용기를 품게 된 것은 갑작스럽게 일상에 날아든 ‘앵무새’ 덕분이다. 사위의 부탁 때문에 엉겁결에 떠맡은 앵무새는 시끄럽고, 털도 날리고, 심지어 사랑까지 필요로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귀찮기만 하던 앵무새에게 관심을 주기 시작하면서 어떤 기억들이 옥미를 찾아온다. 어린 시절, 첫사랑, 그리고 딸이 자신에게 등을 돌리게 된 사건들까지. “넘어져도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서던 몸들. 땀에 젖은 채 겁 없이 내달리던 젊은. 영원할 것 같은 그 시절”들이. 갑자기 날아들었다 떠난 앵무새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옥미는 그제야 사랑과 상실의 고통을 다시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비로소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한다.
“수없이 많은 것을 잃어온 그녀에게 그런 일이 또 일어났다니. 사람들은 기어코 사랑에 빠졌다. 상실한 이후의 고통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되고 마는 데 나이를 먹는 일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36쪽, 「아주 환한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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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들여다보면, 거기엔 당시에는 결코 이해할 수 없던 사람들의 얼굴도 남아 있다. 소설 「빛이 다가올 때」에서 ‘나’는 오래전 사촌인 인주 언니와 함께 뉴욕에서 머물렀던 시절을 떠올린다. 언니는 큰이모의 꿈을 대속하느라 평생을 공부해 교수가 되고 이모를 돌보는 데 자신의 인생을 바쳐왔다. 그랬던 언니는 큰이모가 죽은 뒤 연구교수로 뉴욕에 머물며 자주 가던 카페의 아르바이트생이자 스무 살 어린 미국 남성을 사랑하게 된다. 당시 ‘나’는 그걸 눈치챘으면서도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 모른 척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언니의 나이가 되고 나서야 ‘나’는 그게 얼마나 ‘달콤하고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는지 이해한다. “이미 오래전 지나왔으나, 그런 시기가 틀림없이 내게도 있었”고, “그건 언제 누구에게 찾아오든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을.
「봄밤의 우리」의 ‘그녀’ 역시 15년 전 파리에서 공부할 때 만난 일본인 유타를 당시엔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보다 열두 살 많은 유타는 어려운 공부를 해내고도 미래에 대한 준비 없이 살며, 삶의 목표는 일본으로 돌아가 노쇠한 할머니를 돌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할머니를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돌아가는 건 너무 아깝지 않아?”라고 묻지만 정작 유타는 “그렇게라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냐고 반문한다. 그녀가 유타를 이해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사랑하는 늙은 개를 먼저 떠나보내고 상실감에 괴로워하면서다. 그제야 그녀는 유타의 사랑과 헌신을 이해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그사이에 할머니를 떠나보낸 유타는 그녀에게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슬픔은 극복이 안 되지.”라고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시간이 흘러 그들 사이에는 상실을 매개로 한 유대와 이해가 새롭게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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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예측할 수 없고 과거는 바로잡을 수 없다. 책에 실린 7편의 소설들은 한결같이 그 아득한 간극을 예민하게 감각한다. 예를 들어 소설 「눈이 내리네」에서 스무 살이었던 다혜의 눈에 이모할머니의 삶은 “단조롭고 지루하게 반복되는 노년의 일상”으로 보일 뿐이다. 시간이 조금 흘러 스물여덟 살에 다혜는 “끝을 준비할 수밖에 없는 마음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마저도 결국엔 “주제넘은 오만. 어리석은 소리”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다. “여전히, 지금도” “다혜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렇다면, 결국 현재의 의미를 현재에 다 알 수 없다면, 우리는 무력하기만 한걸까? “어떤 얼굴로 다가올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미래와 끝에 대해서 대비할 능력이 마치 우리에게 있는 것처럼 헛되게 믿으면서.”(245쪽,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삶을 지속할 뿐인 걸까?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현재에는 그 의미를 다 알지 못한다는 것, 한참의 시간이 흐른 이후에야 비로소 희미하게나마 그 의미의 일부나마 떠오를 것이라는 사실, 그건 놀랍게도 공허가 아니라 삶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니까, 우리는 미래를 짐작할 수 있어서 미래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다시 살 수 있어서 미래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건 달리 말하자면 ‘희망’이라 불리는 것이다. 작가가 후기에서 쓰고 있듯 “우리의 삶이, 이 세계가, 겨울의 한복판이라도 우리는 봄을 기다리기로 선택할 수 있다고. 봄이 온다고 믿기로 선택할 수 있다고.”
오늘의 이 시간들도 나중엔 어떤 환한 기억이 될 것이다. 그 기대로, 우리는 헛된 믿음을 반복하며 희망을 품는다. 앞서가는 사람의 손을 기어코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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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의 모든 것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한소범(한국일보 기자)
1991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국문학과 영상학을 전공했다. 발표된 적 없는 소설과 상영되지 않은 영화를 쓰고 만들었다. 2016년부터 한국일보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