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보다 젊음을 유지하는 데 요긴한 것, 시
젊은 얼굴(동안)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젊은 마음(동심)이다. 얼굴이 늙는 것보다 마음이 늙는 것에 더욱 민감해져야 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게 우리가 몸소 느끼는 행복에 더욱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마음의 노화에 대비하는 나만의 습관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201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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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
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
- 사무엘 울만 <청춘>
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
- 사무엘 울만 <청춘>
어렸을 때 내 소원은 하루빨리 나이를 먹는 거였다. 일 년에 딱 한 살씩 늘다 어느 세월에 어른이 되겠냐며 늘 초조해 했다.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게 많았다. 지금까지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지만, 매일 밤 일기장에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일들을 적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다 크고 나서는 해가 바뀔 때마다 ‘너무 빠르다!’는 탄식을 한다. 아침저녁, 거울 속 얼굴에서 주름을 마주할 때나 층계를 몇 발자국 오르고 숨을 헉헉거릴 때마다 세월의 흐름을 원망해보지만 외면의 노화와 함께 착실히 진행 중인 ‘내면의 노화’에 대해서는 간과하며 살았다. 어쩌면 몸이 늙는 것보다 마음이 늙는 것이 더 안타까운지 모르는데도.
구르는 낙엽만 봐도 웃음을 터트린다는 십대 때는 책 한 권, 영화 한 편에도 인생이 바뀔 듯 크게 느끼고 반응했다. 좋아하는 노래를 수십 번씩 반복해 듣느라 밤을 새우고, 이미 색색깔 펜으로 밑줄을 가득 쳐 둔 소설책을 질리지도 않고 읽고 또 읽었다. 그 시절 나에게 있어 ‘희로애락’은 하루에도 몇 번씩 경험할 수 있는, 살아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때는, 그 말을 그저 오래된 단어로 떠올릴 뿐인 지금을 동경하느라 바빴다. 이때가 되면 원하는 게 줄어드는 대신 기대와 기쁨도 함께 줄어든다는 것, 감정과 관계에 타협이라는 말을 집어넣게 된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경험의 양이 늘어날수록 감동의 양이 줄어드는 ‘내면의 노화’는 지금이 시간에도 분명 진행되고 있다.
꼼꼼히 화장품을 챙겨 바르며 주름의 깊이를 메워보듯 마음의 노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나름의 대책이 필요했다. 얼마 전, 감성이 점점 메말라가고 있다는 나의 푸념에 지인들이 제안한 것은 다름 아닌 ‘시를 읽어라’였다. 시를 읽으라고? 따분하고 어렵고 재미 없는 그거?
마음이 늙었다는 것은 일상에 느낌표 대신 물음표가 늘어가는 일. 느끼기보다 먼저 이유를 찾고, ‘어째서?’와 ‘왜?’를 반복하며 그 감정이 주는 의미와 의의에 집착하는 일이다. 시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친구의 “그냥 읽어봐. 모르겠는 말이 있으면 넘어가고”라는 말 자체가 이해가 안 갔다. 모르고 넘어가면 그 문장은 그냥 아무것도 아닌데도? 좋은 게 있으니까 권한 거 아니야? 그러니까 그 좋은 게 뭐냐고, 응? 시 얘기만 나오면 질문부터 하기 시작하는 나에게 친구는 어느 날, 제안을 했다. “그러지 말고 나 좀 따라와.”
친구가 데려간 곳은 음악 공연 사이사이 시를 읽어주는 독특한 형식의 낭송회였다. 글로만 읽고는 이해하기 어렵던 문장에 멜로디를 붙여 탄생한 노래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시의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등장한 여러 편의 시 중 유난히 울림을 주던 구절도 만났다.
살고 있나요 묻는다면 아마도 아프리카 - 이제니 ‘아마도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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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디가 입혀진 시를 감상하는 일도, 차분한 목소리로 누군가가 읊는 시를 듣는 일도 처음이었지만 그날 접한 시들은 유난히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래서 그날 밤 선물 받은 시집을 읽는 것으로 다시 시 읽기를 시작했다. 물론 예전과 다르게 완벽히 이해가 가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읽었다. 기분이 가라앉은 날은 크게 소리 내서 읽기도 하고, 잠이 안 오는 밤에는 아무 페이지나 펴서 듬성듬성 몇 편씩 읽고 나서 잠을 청했다. 그렇게 두어 달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매일 시를 읽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는 사이 시를 읽는다는 건 문장과 단어 속의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는 일이 아니라 읽는 순간 내가 받은 느낌에 집중하는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 그냥 읽고 느끼면 되는 거였어.
매일 밤 시를 읽으며 메모를 하거나 일기를 쓰다 보면 밤늦은 시간까지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끄적거리던 학창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나의 빛나는 젊음은 보지 못하고 그저 먼 미래만 동경하던 그 시절처럼, 시를 읽고 무언가를 써 내려가는 동안만큼은 마음의 노화에 대한 염려는 잊힌다. 아니, 오히려 여전히 내 안에 이렇게 제멋대로인 공상과 투박한 감성이 살아 있다는 것에 놀란다. 역시 마음의 안티에이징을 위한 ‘시 읽기’는 효과 있는 조언이었다며 감탄하면서.
젊은 얼굴(동안)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젊은 마음(동심)이다. 얼굴이 늙는 것보다 마음이 늙는 것에 더욱 민감해져야 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게 우리가 몸소 느끼는 행복에 더욱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마음의 노화에 대비하는 나만의 습관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뭐든 상관없다. 나를 잠시라도 들뜨게 할 수 있다면. 저절로 고민만큼이나 기대 많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웃음 지을 수 있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
작가, 서른을 위해 변명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어려보이시네요’ 보다 ‘젊어보이시네요’ 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면 이제는 새로운 스타일의 안티에이징에 도전할 때다. 나를 예쁘게, 혹은 어려 보이게 하는 무언가를 찾기보다 나를 기쁘게 하는 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발견하고 그 것을 실행하는데 집중하는 일. 젊음은 바르고, 꾸미고, 입는 것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생각하고, 실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젊어 보이는 것보다 중요한 건 젊은 마음으로 사는 것일테니. 더는 어려보이지도 않는다면 어리게라도 살아보는 거다! | ||
- 서른엔 행복해지기로 했다 김신회 저 | 미호
오늘보다 살짝 더 즐거운 내일을 위한 계획표이자 행복해지기 위한 변명 일기다. 일상의 반경 100미터를 둘러봐도 서른의 내가 고쳐야 할 것, 당장 끊어야 할 것들이 허다하다. 하지만 나를 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현재 내 모습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지금의 내가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서른,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좋은 사람,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7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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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신회(작가)
10여 년 동안 TV 코미디 작가로 일했고, 10년 남짓 에세이스트로 활동 중이다. 지혜로운 사람보다 유연한 사람, 부지런한 사람보다 게으른 사람에게 끌리지만 정작 자신은 지혜에 집착하고 쓸데없이 부지런한 타입이라 난감할 따름. 이런 내가 마음에 안 드는 날이 대부분일지라도, 스스로에게 정 붙이는 연습을 하며 사는 중이다.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오늘 마음은 이 책』 등을 썼다.
jehovah511
2012.05.23
요새는 모든 것이 지루하게만 느껴지고 감정도 메말라 가네요.
저도 시를 읽을 때 인가봐요. 공부하듯이 시를 읽지 않고 그냥 순간에 집중해 느껴보려고요.
pmh0122
2012.05.21
찍눈이
2012.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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