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의 뮤지션, 그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마릴린 맨슨, 판타스틱 드럭 스토어, 마이 애프터눈

충격 요법을 애용하는 밴드들은 늘 있어 왔습니다. 과거의 블랙 사바스나 앨리스 쿠퍼, 키스 같은 밴드들이 그랬지요. 가장 최근의 사례를 꼽자면 당연히 이 밴드, 마릴린 맨슨입니다. 당시 그는 세기말의 불안을 캐치해 내 그것을 자신의 이미지에 상당부분 할애했었는데요. 달라진 세상에서 그의 음악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신보를 통해 알아보았습니다.

충격 요법을 애용하는 밴드들은 늘 있어 왔습니다. 과거의 블랙 사바스나 앨리스 쿠퍼, 키스 같은 밴드들이 그랬지요. 가장 최근의 사례를 꼽자면 당연히 이 밴드, 마릴린 맨슨입니다. 당시 그는 세기말의 불안을 캐치해 내 그것을 자신의 이미지에 상당부분 할애했었는데요. 달라진 세상에서 그의 음악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신보를 통해 알아보았습니다. 오랜만의 정규앨범, < Born Villain >을 소개해 드립니다. < 탑 밴드 시즌 2 >를 통해 이름을 알린 판타스틱 드럭 스토어의 앨범과 소녀시대의 작곡가로 이름을 알린 황현(마이 애프터눈)의 솔로 앨범도 소개해 드립니다.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 < Born Villain >

그런 때가 있었다. 마릴린 맨슨이라는 밴드가 세기말의 아이콘으로 인식되던, ‘자극’의 콘셉트가 곧 ‘충격’이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던 때가 말이다. 미디어에게는 오로지 비난의 대상이었을지 몰라도, 오컬트 팬들과 당시의 10대들에게만큼은 그는 곧 숭배의 대상이며 종교와도 다름없었다. 이 괴상한 그룹은 그렇게, 긍정과 부정의 자양분을 모두 섭취하며 무럭무럭 자라났다.

이것이 이 불길한 이름을 가진 밴드의 성장 배경이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음악도 음악이지만) 사회적 불안을 건드리는 남다른 감각이 있었기에 보다 큰 집중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역사에 남아있는 대부분의 록 밴드들이 그러하듯, 이들 또한 사회적 맥락과 그 궤를 함께 한다.

이제 눈을 돌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인 2012년을 생각해보라.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빗나간 지 오래고, 세기말의 불안은 사라졌다. 세계화 현상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물론 포르노 산업에도 영향을 미쳤고, 우리는 웬만한 자극을 통해서는 충격을 받지 않는다. 이쯤에서 질문을 던져보자. ‘만약 당신이 그것을 그토록 잘 활용하던 마릴린 맨슨이라면’ 이제 어떤 음악을 보여줄 것인가. 타개책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

2003년의 < Golden Age Of Grotesque >이후 맨슨의 전략은 ‘힘을 빼자’인 것으로 보인다. 신보의 특이점이 있다면 (여전히 자극적인 면모는 있지만) 마릴린 맨슨이 그를 규정하던 충격의 화법에서 상당부분 벗어났다는 점일 텐데, 어떤 의미로는 이제까지 이들의 음반 중 가장 색다른 커리어로 다가오기도 한다. 만약 이것이 음악적인 면에서 전성기 이상의 커리어를 뛰어넘는 흡인력을 보여주었다면, 아마 맨슨의 최고작 리스트에는 < Antichrist Superstar >와 함께 < Born Villain >도 함께 이름을 올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싱글로 낙점된 「No reflection」을 포함, 모든 수록곡들을 들어봐도 예전만큼의 에너지, 혹은 멜로디 흡인력은 감지되지 않는다. 과거 「Irresponsible hate anthem」과 「Rock is dead」, 「Disposable teens」 등의 곡을 통해서 알 수 있던 것은 이들이 어두운 곡에서도 댄서블한 후크를 뽑아내는 것에 능란한 그룹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들의 곡에서 그런 맛을 기대하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은 그룹이 새로이 돌파해야 할 약점으로 보인다.

그러나 ‘변화’의 영역에 초점을 맞춘다면 새롭게 꾸린 개인 레이블(Hell Inc)에서, 그것도 오랜만에 ‘Parental Advisory’ 딱지를 벗어던지고 나온 < Born Villain >은 분명 그들의 디스코그래피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혼돈의 20세기를 지나 내성(耐性)의 21세기에 직면한 마릴린 맨슨, 신보는 시대의 틈에 끼인 그의 새로운 싸움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글 / 여인협(lunarianih@naver.com)

판타스틱 드럭스토어(Fantastic Drugstore) < This Is Nothing >

< 탑밴드 시즌 2 >에서 뉴 메탈 밴드 피아와 스카펑크 밴드 넘버원 코리안이 함께 소속된 죽음의 조합에서 판타스틱 드럭스토어(Fantastic Drugstore)는 데뷔 1년차 신생 밴드답지 않은 장악력을 뽐내며 화제가 되었다.

개러지 음악의 생애처럼 짧았지만 강했던 이들의 < 탑밴드 > 예선 탈락은 아쉬웠다. 이와 같은 기억의 체류는 갉아대는 사운드와 조화를 이룬 트렌디함으로 데뷔 전부터 < 갭 본 투 락 넥스트 인디스타 > 1위 수상과 <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 숨은 고수 발탁을 이루며 대중에게 임팩트를 가하는 원동력을 제조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각인이다. 심장 뛰는 설렘만 남기고 낙마한 판타스틱 드럭스토어는 첫 번째 EP < This Is Nothing >을 통해 그 기대감을 채워준다.

모든 곡을 홈 레코딩으로 투박하게 포장한 이 음악꾸러미는 손때가 묻어있는만큼 이들의 색깔을 잘보여준다. 미니멀한 드럼, 튜닝되지 않아 거친 개러지 기타 톤으로 맛을 낸 「This is nothing (Intro)」과 한번에 연결되는 「만나줄래」는 꾸밈없는 신세대 정서를 머금고 있다. 발칙한 비유가 돋보이는 「똥개」와 「아저씨」에선 리드미컬한 진행 속에서 간결하게 뽑아낸 기타 멜로디로 트렌드까지 챙긴 영특함도 보인다. 곡의 인트로와 아웃트로가 수미상관 구조인 마지막 트랙 「Bad girl」은 끝나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그 잔향을 정규 음반까지 연장시킨다.

< This Is Nothing >은 판타스틱 드럭스토어의 10분의 1도 보여주지 않았다는 자신감을 내비친다. ‘(이건)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개러지의 까칠한 자취는 듣는 내내 젊은 패기와 앙칼진 재치를 수혈해준다.

글 / 김근호 (ghook0406@hanmail.net)

마이 애프터눈(My Afternoon) < Chord >

작곡가 황현은 소녀시대의 「비타민」, 「첫눈에」 그리고 에프엑스의 「좋아해도 되나요」 등 굵직한 걸 그룹에게 곡을 줬지만 그 이상이 없었다. 스타 작곡가라고 하기엔 미약한 그의 경력은 송라이터에 대한 관점일 뿐, 최근 그의 행보는 이것이 어색한 규정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이렇듯 황현이 여성 보컬 신아녜스와 결성한 마이 애프터눈은 만족하지 못한 자기표현을 직접 일구려는 의도다. 마이 애프터눈을 통해 황현의 음악적 본념이 단순한 ‘만들기’가 아니라 ‘표현의 수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잔잔하고 섬세한, 그래서 아이돌이 다루기엔 깨지기 쉬운 여린 감성을 표현한다. 자신들의 음악을 힐링 팝(Healing Pop)이라는 부르는 마이 애프터눈은 일상의 소소함으로 거대한 세상을 비유하고 담아낸다.

「나무」, 「My afternoon」, 「14:07」은 건반을 전면에 내세운 신스 팝에 현악 스트링, 기타 등 클래식한 사운드를 적절히 첨가하며 무게중심을 되짚는다. 여기에 황현과 신아녜스의 조화는 꽤 능숙한 균형 감각을 선보이며, 「외출」에서 두 보컬리스트의 중저음과 우울한 음색은 곡 분위기를 탈선하지 않는 감정 선을 들려준다.

가사는 이들 음악의 또 다른 흥미요소다. 편도선을 소재로 아픔을 노래한 「편도선(Tonsil)」은 사랑의 숨겨진 감각을 깨우고, 「Penitence」에서는 노랫말론 낯선 ‘토로’, ‘배설’, ‘전가’ 같은 단어를 사용해 틀을 깬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불편함과 신선함으로 극명하게 갈릴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

< Chord >는 데뷔작임에도 음악 색깔에 대한 애매함은 없다. 작곡가 생활 동안 쌓아왔던 노하우와 괴리감이 만든 이 처녀작은 뮤지션으로선 괜찮은 시작이다.

글 / 김근호 (ghook040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