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여성을 사랑한 전과 34범 무기징역 필리핀 남자
여기에서 이런 상상을 한번 해보자. 이 글은 읽고 있는 당신은 34살의 미혼 여성이다. 그리고 전과 34범의 남자가 출소를 해서 당신에게 꽃과 반지를 주며 청혼을 한다. 그때 당신의 기분은 어떨 것 같은가? 아마 대부분의 여자가 온몸을 벌벌 떨며, 지금 이 순간이 살면서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참 중요한 정보를 하나를 빠뜨렸는데…
글ㆍ사진 이지성 김종원
2012.07.25
작게
크게
고백하지만 우리는 처음 그의 사진을 보았을 때, 그 엄청난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만약 지하철에서 그가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면, 조용히 일어나 다른 칸으로 가든지 내렸을 정도로 그의 우람한 체격과 거친 인상은 강렬했다. 게다가 온몸에 있는 문신은 중압감을 더했다. 그는 인상처럼 엄청난 인생을 살았는데, 살면서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다하고 다녔던, 무려 전과 34범의 남자다. 보통 사람은 전과를 하나 남기기도 힘이 드는데, 그는 마치 신기록을 세우듯 전과를 올린 것이다.

여기에서 이런 상상을 한번 해보자. 이 글은 읽고 있는 당신은 34살의 미혼 여성이다. 그리고 위에 설명한 전과 34범의 남자가 출소를 해서 당신에게 꽃과 반지를 주며 청혼을 한다. 그때 당신의 기분은 어떨 것 같은가? 아마 대부분의 여자가 온몸을 벌벌 떨며, 지금 이 순간이 살면서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참 중요한 정보를 하나를 빠뜨렸는데, 그는 당신보다 무려 14살이 많은 연상이고, 거친 인상의 필리핀 빈민 출신 남자다. 그리고 큰 규모의 조직폭력배의 두목이다.


‘당신은 할 수 있겠는가? 나이가 14살이나 많은 전과 34범의 필리핀 빈민 출신 남자와 사랑할 자신이 있는가?’


“눈 안 돌려! 이 자식이 감히 어딜 쳐다봐!”
저녁 10시, 필리핀 마닐라의 한 술집에서 큰 사건이 일어날 조짐이 보인다. 술에 약간 취한 건장한 남자가 지나가다 그를 쳐다본 한 남자에게 괜한 시비를 걸었다. 둘은 그 지역을 담당하는 조직폭력배 두목이다. 소란스러워지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직원들이 술집 안으로 들어왔고,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피할 수 없었다. 싸우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들은 동시에 흉기를 꺼내들었고, 바로 집단 난투극이 벌어졌다. 못이 박힌 방망이와 ‘사시미칼’을 휘두르는 그들. 잔인한 난도질에 술집은 온통 피바다로 변했다. 누가 이기고 있다는 판단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눈앞의 상황은 처참하다.

이때 ‘탕’ 소리와 함께 가볍게 상황이 정리된다. 시비를 건 두목이 총을 꺼내들어 상대편 두목을 쏜 것이다. 그는 총을 쏜 뒤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숨이 붙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발로 시체를 차서 뒤집어보는 여유까지 보여준다. 상대는 아직 숨이 남아 있었다. 그러자 그는 그의 배를 강하게 몇 번 차 약간 남은 생명마저 빼앗으려 한다. 마침 들어 닥친 경찰이 제지하지 않았다면 그는 살인자가 되었을 것이다. 폭력배임을 과시하며 공짜 술을 마시고, 조폭임을 과시하며 돈을 뜯고, 고의로 사고를 내 보험금을 타내고, 도박 사업의 투자자를 모집해 거액의 투자금을 가로채는 등의 범죄를 저질렀던 그를 사람들은 ‘사람이기를 포기한 자’라고 말했다. 사건이 일어나고 몇 달 후,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몇 년 전에 그를 주인공으로 다룬 영화까지 만들어졌을 정도로 그는 필리핀에서 굉장히 유명한(?) 조직폭력배의 두목이었다. 위의 내용은 그 영화에 나온 내용을 각색한 것이다. 직접 사건 현장을 보지 못했기에 정확하게 상황을 묘사할 수는 없지만, 그의 악랄함이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994년, 그는 20년 만에 출소한다. 전과 34범인 그의 이름은 호세 발라이스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모범수로 인정이 되어 20년 만에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는 굉장히 악랄한 범죄자로 판단되어 무려 1년 6개월 동안이나 독방에서 생활했다. 오직 식사시간에만 양팔에 채운 족쇄를 풀 수 있었다. 하루만 갇혀 있어도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은 독방, 하지만 그를 더 힘들 게 한 것은 언제든지 사형이 집행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싸우며 그는 그 긴 시간을 버틴 것이다. 자살을 하던 사형이 집행되던 모든 사람이 그가 감옥에서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죽지 않고 모든 걸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사랑 때문이었다.

전과 34범이 되는 게 그의 잘못도 있지만, 사실 그를 이렇게 만든 건 세상이었다. 전과자에 대한 사회의 냉대는 정말 심각하다. 한 번의 전과가 그를 세상에 설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게다가 그는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된 가정을 경험한 적이 없다. 태어나자마자 고아로 살았다. 부모가 그를 버렸을 때, 그도 세상을 버렸다. 사랑에 목말랐던 그는, 날이 갈수록 삐뚤어졌다. 하루도 사고를 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죽도록 싸우고, 다시 살 만해지면 사람들과 싸우고 도둑질 하기를 반복했다. 그는 지난 수십 년을 짐승처럼 살아온 것이다. 그런 냉혈한인 그가 놀랍게도 감옥에서 처음 눈물을 흘렸다. 예수를 부정하던 그가 변함없는 사랑을 주는 예수의 말에 감동을 하고 감옥에서 예수를 받아들인 것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의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후 그는 누구보다도 독실한 신자가 되어, 강력범들이 우글거리는 죄수들에게 예수의 사랑을 전했다. 그런 변화 덕분에 언제 사형을 당할지 모를 그가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출소하게 되었다. 감옥에서 청춘을 보낸 그의 나이는 이제 48살이다. 한 번도 제대로 된 가정을 가져보지 못한 그는 이제 정말 사랑이 가득한 가정을 가지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2000년, 필리핀에 도착한 김숙향 교사는 처음 선교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이런 기도를 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겠습니다. 그러니 저를 고아나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해주세요.’

당시 그녀에게는 후원자도 없었고,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녀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 앞에 드리고 고아들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을 믿음으로 확신하고 싶은 마음에 40일 간의 금식기도에 들어갔다. 당시 금식기도라는 게 없었던 필리핀에서, 김숙향 교사의 40일 금식기도는 굉장한 화제가 되었다. 그녀에게 필리핀 현지 목사 열 명이 금식기도를 하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요청을 했다. 40일 동안 먹지 않고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금식 전후의 식사량 조절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자세한 방법을 알지 못하고 무작정 금식기도를 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그녀는 그런 자세한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올라간 기도원에서 평생의 운명을 만나게 된다. 목사 열 명과 그녀가 동그랗게 모여 인사를 나누는데, 유독 한 사람만 머뭇거리며 그녀에게 다가오지 못하고 멀찌감치 서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다가가 그에게 인사를 건넸는데, 그가 바로 앞에서 소개한 전과 34범의 목사 호세 발라이스다.

금식기도에 대한 방법을 설명한 후에 그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고, 늘 하던 일을 하며 별 생각 없이 시간을 보냈는데, 뜻밖의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한 목사가 그녀를 위해 지난 세 달 동안 기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녀를 평생의 반려자로 생각하며 하루에 다섯 번 시간을 정해두고 기도를 한다는 소식에 ‘그건 잘못된 기도’라고 생각한 그녀는 당황스러웠다. 그 사람이 누군지, 어떤 잘못을 한 사람인지를 알고 나서는 더욱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독신으로 살겠다고 맹세한 이유도 있지만, 낯선 필리핀 남자를 더구나 전과 34범의 남자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멈추지 않고 애정 공세를 했다. 다섯 시간 이상 차를 몰고 와 그녀가 일하는 고아원 아이들에게 수박과 초콜릿 등 먹을 것을 나눠주었고, 그녀에게는 꽃바구니를 안겨주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48세였고 그녀는 34살이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다


좋은 학벌에 멋진 외모 그리고 탄탄한 재력. 이런 조건을 갖춘 사회적으로 촉망받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별 특별한 일이 아니다. 드라마에 모든 걸 다 갖춘 ‘실장님’이 남자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사랑일까? 누가 봐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그 사랑 속에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사실을 김숙향 교사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로 다가오자 그녀는 두려움을 숨길 수 없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그를 피하고 싶었다.

그녀가 그에게 던진 첫 질문은 이것이다.

“왜 나를 위해 기도하죠?”

그러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 비록 큰 죄를 지었지만 주님은 저를 용서해주었고, 이제 저는 봉사활동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지난 몇 달 동안 기도를 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당신 얼굴만 떠올랐어요. 물론 저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과 저는 어울리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요. 이상하게도 기도를 하면 할수록 당신이 내 여자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어요.”

꽤 낭만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그녀는 그의 고백을 듣고 그가 더 싫어졌다고 한다. 자신도 모르게 ‘감히 나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의 마음은 더 강해졌지만,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절대로 내 남자가 아니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확신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는 절대로 내 남자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확인하고 싶은 그녀는, 고아원에 3일 휴가를 내고 기도를 했다. 그녀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도를 하면 할수록 그녀는 『성경』의 이런 구절이 떠올랐다고 한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고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요한일서』 4장 18절)

그녀는 더욱 두려워졌다. 이런 불길한 느낌은 정말 처음이었다. 전과 34범을 가진 남자가 자신을 마음에 두고 기도를 한다는 것도 두려웠고, 이 사실을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알게 되는 것도 두려웠다. ‘이런 사람과 결혼을 해서 이곳에서 봉사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그녀를 두렵게 만들었다. 그녀는 결국 3일 간의 기도를 통해 어둠 속에서 잠시 머물려고 했던 셈이다. 그녀는 단지 그가 다가오는 것이 두려웠다. 그가 더 가깝게 다가올수록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더욱 자신에게 주입시켰다.

하지만 그의 간절한 마음이 그녀의 마음에 닿는 순간,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에게 가는 길은 그녀가 걷기에 너무 멀었고, 그 앞에 놓인 벽은 그녀가 오르기엔 너무나 높았다. 주위의 시선에 몸이 무거워져 그녀는 바람처럼 그에게 날아갈 수 없었다. 그녀는 모든 잘못은 그녀에게 있었다고 느끼게 되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고, 그들이 왜 나를 그렇게 바라보는지 그 이유를 찾아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너무 많은 이유와 너무 많은 사람들을 알아버린 것이다. 결국 그녀는 그렇게 별 소득 없이 3일 간의 기도를 끝냈다. 그런데 눈앞에 피하고 싶은 모습이 펼쳐졌다. 그가 꽃다발을 차에 한 가득 싣고 그녀에게 찾아온 것이다. 그녀는 그를 거부했다. 모르는 사람을 본 것처럼 그를 외면한 채 앞만 보고 걸어갔다. 그렇게 일 년 내내 그를 거부했다.

그녀가 자신을 받아주지 않자, 괴로운 마음에 그는 40일 금식기도에 들어갔다. 그의 사랑은 강렬했지만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여자는 가만히 있는데 네가 너무 혼자 좋다고 구걸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단다. 그러자 그는 다시 한 번 그녀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고 금식기도에 들어갔다. 그녀는 그의 금식기도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러든 말든, 네 마음대로 하라는 식이었다. 그가 금식기도에 들어가자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하나님이 내게 결혼을 허락한다는 신호를 주신 거라면, 차라리 한국 남자와 결혼하게 주세요.’

3주 정도 지나자 놀랍게도 그녀에게 중매가 들어왔다. 한국인인데 필리핀에서 약학 공부를 하는 남자였다. 그는 부모님만 모시고 살 수 있다면 당장 결혼하자고 말할 정도로 그녀에게 결혼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줬다. 하지만 그런 그 사람이 싫었다고 한다. 부모님을 모시고 살려면 한국에서 살아야 했다. 그는 한국에서 자리가 잡히면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가자고 했지만, 그녀는 잠시도 아이들 곁을 비울 수 없었다. 그렇게 그의 마음을 받아주지 못하고 다시 방황에 빠져 있을 때, 그녀가 한국 남자를 만나는 걸 아는 친구 한 명이 그녀를 호되게 야단쳤다.

“너 아무리 필리핀 사람을 무시해도 그렇지, 한 남자가 너를 위해 목숨을 걸고 금식기도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다른 남자를 만날 수가 있니?”

그녀가 생각해도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그에게 마음이 가지 않았다. 40일 금식기도를 끝낸 그가 고아원으로 찾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곳으로 도망을 쳤고,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모르는 사람인 양 그를 피했다. 결국 그녀에 대한 그의 마음도 지쳐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993년 1월, 그녀는 필리핀 기도원 3주년 행사에 참가했다. 그도 이 기도원에 자주 찾아온다는 것을 알았던 그녀는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그녀는 겉으로는 그를 피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를 채 비워내지 못한 상태였다. 그가 정말 진심으로 자신을 위해 기도했다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에게 그와 자신의 사랑을 묻는다. 혹시 행사 강단에 그 남자가 강사로 서면, 이건 정말 하나님의 뜻일 줄 알겠다고 생각하며 그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주보에 이미 강사로 올라오는 사람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올라온 가능성은 없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그녀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놀랍게도 그가 강단에 올라선 것이다. 나중에 알아보니 강사 초청을 받은 사람이 교통체증으로 인해 제 시간에 도착하는 게 불가능해지자, 대신 그가 올라선 것이었다고 한다. 순간 그녀의 눈엔 엄청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일이 있은 후 며칠 동안 그녀는 마음을 추슬렀다. 그 와중에 한국에서 온 놀라운 전화를 한 통 받는다. 한국에서 교육학 교수로 있는 새언니에게 온 전화였다. 새언니는 다급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무슨 일 있니?”라고 물었다. 놀랍게도 새언니는 독신으로 살 것이라고 공언했던 그녀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꿈을 꿨다고 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녀 옆에 서 있는 남자가 필리핀 전통 결혼예복을 입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연치고는 너무 신기한 우연이었다. 바로 그녀는 그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그는 놀란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곤, 우린 인연이 분명하다며 당장 결혼하자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서두를 수는 없었다. 가족의 동의를 받는 것도 문제였다. 미국에서 목회를 하는 오빠에게 호세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예상했던 것처럼 크게 반대했다. “더이상 그를 만나면 너는 내 동생도 아니고, 죽을 때까지 한국에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사랑은 흡수되는 것이고 통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녀의 진심을 알게 된 그녀의 오빠는 결혼을 허락했다. 다만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게 좋다고 판단해서, 1993년 6월 19일에 결혼식을 올렸다.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된 지 겨우 두 달 만에 결혼한 것이다.


김숙향 교사는 호세 발라이스의 끈질긴 구애 끝에 그의 사랑을 받아들여 결혼했다.
일반적인 결혼관으로는 믿기 어려운 결혼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 짧은 두 달 동안 그는 입버릇처럼 ‘내가 당신과 같은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라고 했다. 기도를 할 때도 ‘과연 저 사람이 내 사람인가’ 생각할 정도로 감사한다고 했다. 한번은 그녀가 결혼 전에 잠시 한국에 다녀온다고 했더니 “만약 필리핀에 돌아오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늘 그녀에게 “나의 모든 것을 주겠다. 내 삶을 당신에게 바치겠다”고 말했다.

그녀 역시 그의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그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나 혼자는 위대한 일을 하기 힘들지만, 함께라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그와 함께 할 톤도 봉사활동에 대한 소망을 꿈꿔 나갔다. 전과 34범, 14살 연상, 게다가 필리핀 빈민 출신인 그이지만, 그녀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닫혔던 마음을 열자, 이제 그 사람 그대로를 보게 되었고,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물질, 시간, 노력으로 되는 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생명까지도 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그녀는 그에게서 그것을 느낀 것이다. 그가 준 수많은 선물들에 사랑을 느낀 게 아니라, 끈질기게 그녀를 따라 다닌 그에게 사랑을 느낀 게 아니라, 그녀를 위해서라면 기어이 생명까지도 내놓겠다는 그 한마디에서 그의 진심을 느낀 것이다.

#톤도 #필리핀 #김숙향 교사
12의 댓글
User Avatar

ll6785ll

2012.08.05

우ㅡ와 너무 놀라워요... 저라면 과연 저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드네요
답글
0
0
User Avatar

소봉~

2012.08.03

정말 대단한 사랑이네요, 불가능한 사랑이 이루어진 데에는 사랑하는 만큼의 용기가 필요했네요~ 멋져요~
답글
0
0
User Avatar

바이라

2012.08.03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고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요한일서』 4장 18절)

제가 두려울 때 받은 말씀인데요 ㅎㅎ
역시 온전한 사랑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다면, 상식을 초월하는 사랑을 할 수 있나봅니다 ...
답글
0
0

더 보기

arrow down
Writer Avatar

이지성 김종원

이지성
1993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 소설, 교육, 자기계발, 인문, 기독교, 어린이 등의 분야에서 스물다섯 권이 넘는 책을 출간했다. 대표작으로 『꿈꾸는 다락방』 시리즈,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리딩으로 리드하라』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공저) 등이 있다. 주요 저서들은 미국, 일본, 중국, 대만, 베트남 등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자기계발과 인문고전 독서의 바탕은 ‘사랑’이라는 깨달음을 실천하기 위해 팬카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서울역, 왕십리, 대전, 대구, 부산 등지의 빈민촌에서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그 자료를 팬카페에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그 밖에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와 함께 세계 최빈국 어린이들을 일대일로 후원하고, 마을에 우물을 파고 학교와 병원을 짓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김종원
‘자기계발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믿는다. 모든 문제를 환경 탓으로 돌리며 불평으로 일관하는 이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줄 롤 모델을 찾아내 치열하게 연구한다. 현재 경제경영, 자기계발 관련 콘텐츠 디렉터 및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이부진 스타일』 『삼성가 여자들』 『전략기획자로 승부하라』 『킹피셔』(공저) 『블루마켓을 찾아라』(공저) 등이 있으며, 이중 일부가 일본, 중국, 대만 등에서 번역 출간되고 있다.

사진/ 유별남
한 장의 그림을 그리듯 심혈을 기울여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 다른 문화 속에서 같은 삶의 무늬를 찾아내는 그의 사진은 무척 정적이면서도 밝고 따뜻하다. 지은 책으로 『중동의 붉은 꽃, 요르단』, 사진 작업을 함께한 책으로 『신의 뜻대로』 『아이 러브 드림』 『너의 눈에서 희망을 본다』 등이 있다. 'EBS 세계테마기행'의 요르단, 가이아나, 인도 편에 출연했으며, 'In PAKISTAN'(파키스탄 국립현대미술관) 외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다.

Writer Avatar

김종원

출간 저서 누적 판매량 100만 부. 20여 년간 집필한 책 100여 권. 각종 방송과 기업, 대학 및 단체를 대상으로 강연하며 소통해 온 인문교육 전문가. 부모들을 위해 집필한 다수의 인문학 책이 큰 사랑을 받으며 “대한민국 학부모들이 가장 사랑하는 인문학 멘토”로 자리매김한 작가다. 지은 책으로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66일 인문학 대화법』 『66일 밥상머리 대화법』 『66일 자존감 대화법』 『66일 공부머리 대화법』 『나에게 들려주는 예쁜 말』 『김종원의 진짜 부모 공부』 『우리 아이 첫 인문학 사전』 『부모 인문학 수업』 『아이를 위한 하루 한 줄 인문학』 등이 있다. 현재 다양한 온라인 채널과 강연, 그리고 매일 1편 이상 인문학적 영감을 일깨워 주는 글을 통해 독자들과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말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책에는 ‘좋은 대화란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예쁘게 말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다’라는 그의 말하기 철학을 담았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강연가로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그가 느낀 바는, 좋은 마음이 담긴 말을 전할 때 관계의 온도는 높아지고 품격 있는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말하기란 결국 마음’이라는 생각을 전하고자 이 책을 썼다. 『너에게 들려주는 단단한 말』은 저자가 처음으로 쓴 청소년을 위한 인생철학 에세이다. 인생이란 여정에서 어둡고 막막한 터널을 처음으로 마주하는 청소년기는 어떤 생각을 키우고,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앞으로 펼쳐질 삶의 모양이 달라질 수도 있는 시다. 그래서 저자는 “그 하룻밤, 그 책 한 권, 그 한 줄이 인생을 바꿀지도 모른다”라고 했던 니체의 말처럼, 지금 각자의 고민을 안고 힘들어하는 청소년들의 삶이 긍정으로 바뀔 순간을 떠올리며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도 온 마음을 담아 이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