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여성의 날 특집 – 딕테를 읽는 여자들딕테 모임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진행 중입니다. 딕테를 읽으며 텍스트 너머로 연결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나아가 함께 읽는 여성들이 함께여서 도착할 수 있는 낯설고 먼 곳의 풍경도 담았습니다.
함께 발화하기, 같이 받아쓰기
해석 불가해 보이는 텍스트가 읽히고 보이고 말하게 되고 듣게 되는 경험은 아이가 글자를 익히게 되는 과정과 비슷하다. 그것은 언어가 없는 사람이 언어를 얻는 과정이기도 하다. 동시에 하나의 언어를 얻은 사람이 새로운 언어를 익히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럼 모든 언어는 해석되어야 하는가. 이 모든 말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한가. 서울과 제주에서 ‘딕테 - 발화하기, 받아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나서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돌고 있는 생각이다.
종이잡지클럽에서 딕테 모임을 기획하게 된 건 어떤 만남에서 시작된다. 우연한 기회에 장혜령 시인과 안부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제주점에 종종 오는 단골이다. 대화가 몇 차례 오가며 그가 딕테와 관련한 낭송극과 모임을 해왔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홀린 것처럼 그에게 ‘딕테’ 모임을 서울과 제주에서 해보자고 제안했다.
“서점 이름이 종이잡지클럽이라 잡지 관련한 모임만 하시는 줄 알았어요.”
시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기는 한데 ‘딕테’ 는 꽤 잡지 같다고 느껴져요.”
내 대답에 시인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잡지만 다루는 공간에 있다 보면 ‘읽기’가 아니라 ‘보기’의 감각에 충실하게 된다. 기묘한 목차, 그 안을 느슨하게 채운 이미지와 텍스트. 여백의 편집. 딕테의 많은 것들은 잡지적인 ‘보기’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읽기’와 ‘보기’. 그 다음은 무엇일까. 언어를 조금이라도 공부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듣게 되고, 말하게 되고 결국에는 쓰게 된다. 원래 그가 하던 낭송극의 방식에 참여한 분들이 직접 자신의 감각을 받아쓰는 형태를 더한 모임을 준비했다. ‘읽기’와 ‘보기’를 넘어선 또 다른 감각이 모두에게 깃들기를 바라면서.
“음성들이 울리고 한 목소리가 외치고 나면 많은 목소리가 물결처럼 메아리치고 나는 그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오직 한 방향, 음성들이 울리는 단 하나의 방향으로.”
모든 불이 꺼지고 목소리는 시작한다.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에 존재하는 것만 같다. 구성은 비슷하지만 모두의 목소리가 다른 것처럼, 제주와 서울 두 모임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제주에서는 성당에서 사제가 집전하는 미사 같다는 기분을, 서울에서는 마녀들이 모여 주문을 외는 집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공간과 목소리와 사람들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텍스트의 감각은 매번 독립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것은 ‘영화’ 적이지도 않고, ‘라디오’ 적이지도 않다.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각자의 이미지가 참여자들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모임을 통해 ‘읽기’와 ‘보기’를 넘어서 ‘말하기’, ‘듣기’, ‘쓰기’의 감각까지 조금 더 멀리 나아가볼 수 있었다.
모든 언어는 해석되어야 하는가. 이 모든 말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한가. 모임이 끝나도 여전히 나를 멤돌고 있는 질문이다. 해독 불가한 어려운 지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딕테에 매료되는 까닭은 구절 하나하나 의미와 해석을 요구하기보다 그 자체로 하나의 무의미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 아닐까. 우리가 누군가의 무탈과 안녕을 바라며 끊임없이 하지만 무의미하게 외고 있는 기도문처럼 말이다.
-장혜령 시인과 함께 기획하고 진행한 ‘딕테 - 발화하기, 받아쓰기’ 모임 후기입니다. (종이잡지클럽 김민성)
종이잡지클럽 독서 모임
겹쳐진 목소리로 나아가기 - 10번의 목요일
『딕테』가 출간(복간)되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테레사 학경 차와 『딕테』를 읽고 이야기하는 자리가 생겨났다. 대구에서도 『딕테』를 함께 읽고 응답하는 자리가 마련되길 바랐다. 이 바람은 서점 손님들의 바람이기도 해서 '사장님, 딕테 읽기 모임은 언제 여시나요?'라는 질문에 응답하며 『딕테』 같이 읽을 사람, 여기여기 모여라- 를 외치며 읽기 모임이 시작되었다.
『딕테』 읽기 모임은 시집 『오래 미워한 사람에게』의 저자이자 글을 쓰고 짓는 김정애 작가와 함께 진행된다. 10번의 목요일, 매주 한 장씩 낭독과 감상을 나누며 마지막 시간에는 각자가 받아쓰기한 언어와 목소리로 아트북을 만들고 모임을 맺는다. 매주 한 명의 뮤즈와 여성들의 이야기를 마주하며 우리의 세상과 테레사 학경 차의 세상이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역사 속 희미하게 반짝이던 여성들을 호명하며 낱낱의 언어로 숨을 불어넣는, 그리하여 지금도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스스로 확장해 나가는 텍스트를 경험하고 있다.
각자의 경험으로 읽어내린 텍스트는 크고 작은 파편으로 남아 매주 새로운 물음표를 만든다. 혼자 테레사 학경 차의 이야기를 마주할 때 혼란하고 낯설었던 마음은 참여자들의 이야기와 목소리가 덧입혀지며 충분해지는 과정을 겪는다. 개인적으로 모임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낭독이 끝난 후의 침묵. 한 명, 한 명의 목소리가 오간 자리에 여운을 느끼며 골똘해지는 순간, 우리가 겹쳐 있음을 느끼게 된다.
모든 떠돌아다니는 것에는 목적지가 있다고 한다. 말해지지 않는 것을 언어로 써 내려가며 테레사 학경 차가 닿고 싶었던 곳(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녀의 목소리에 목소리를 겹치며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고 있을까. 10번의 목요일이 끝난 후 마침표와 쉼표 사이 그녀에게 어떤 응답을 들려줄 수 있을지, 또다시 새로운 물음표 앞에 선다. (차방책방 이재은)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딕테
출판사 | 문학사상

김민성
합정과 제주에서 잡지전문공간 종이잡지클럽을 운영합니다.

이재은
차방책방 운영자. 지금, 여기의 목소리가 담긴 책들을 소개하고 판매합니다. 각자의 취향으로 느리게 이어져가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