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의 장소, 호텔에서 과연 무슨 일이? - 히가시노 게이고 『매스커레이드 호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경쾌하게 읽힌다.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분명하고, 정해진 트랙 위를 빠르게 질주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싫어하는 이들도 있다. 사건의 틀에만 집중하고 인간의 내면을 가볍게 다룬다거나, 트릭 자체도 대단히 헐거운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편견일 수도 있다.
2012.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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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경쾌하게 읽힌다.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분명하고, 정해진 트랙 위를 빠르게 질주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싫어하는 이들도 있다. 사건의 틀에만 집중하고 인간의 내면을 가볍게 다룬다거나, 트릭 자체도 대단히 헐거운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편견일 수도 있다.
데뷔 이래 25년간 무려 77권의 책을 낸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걸작과 범작 때로는 졸작까지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다. 범작을 읽고 실망했다가도 『백야행』 『용의자 X의 헌신』 등을 읽으면 정신이 번뜩 드는 것 같다. 『붉은 손가락』처럼 이야기는 느슨해도 뭔가 울림을 느끼는 작품도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작가인 건 분명하다. 그래서 지나치게 정형화되기도 하고, 인물이 단순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히가시노에게 믿는 건 분명하게 있다. 적어도 히가시노는 읽는 그 순간만은 빠져들게 한다. 끝까지 달려가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든다. 적어도 읽다가, 그만 볼까, 란 생각만은 철저하게 거부한다.
『매스커레이드 호텔』. 25주년 기념작이란 설명은 잊어도 좋다. 1년에 한권 정도씩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라면 의미가 있을 법도 하지만 매년 3, 4권을 발표하는 작가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다만 주목할 지점은 있다. 『매스커레이드 호텔』의 주인공은 호텔리어인 야마기시 나오미와 닛타 형사다. 호텔이 무대이기 때문에 야마기시라는 캐릭터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닛타 형사는 어떤가. 무려 77권을 내는 동안 히가시노 게이고는 의외로 캐릭터를 영웅화하는 것을 꺼려 왔다.
이과 출신인 히가시노답게 물리학 교수인 유가와를 내세운 것도 시작은 단편이었고, 나오키상 수상작인 『용의자 X의 헌신』에서도 유가와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사건을 풀어내는 것은 유가와이지만, 캐릭터의 비중이나 매력으로 본다면 수학 교사인 이시가미의 보조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가가형사도 마찬가지다. 『악의』 『붉은 손가락』 등 꾸준하게 등장하긴 했지만, 『신참자』 이전까지는 캐릭터 자체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형사를 캐릭터화하는 것을 피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최근 변한 것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위상이다. 지금 히가시노는 일본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작가로 부상했다. 유가와 교수와 가가 형사를 내세운 드라마 <갈릴레오>와 <신참자>가 대성공을 거두었고 극장판도 만들어졌다. 다양한 작품들을 모아 ‘히가시노 게이고 미스테리즈’라는 드라마까지 만들어질 정도다. 지금 최고의 인기이니,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울 작품들이 더 많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매력적인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다면 더욱 좋다. 그런 점에서 『매스커레이드 호텔』의 닛타 형사는 조건에 딱 들어맞는 캐릭터다.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범인이 남긴 메시지를 풀어낸 결과 다음 범행장소는 특급호텔인 코르테시아도쿄인 것을 알게 된다. 특별수사본부는 호텔의 양해 하에 형사들을 프론트 직원과 벨보이 등으로 위장 근무를 시키기로 한다. 프론트 직원으로 배치된 닛타 형사는 불만이 많다. 아무리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서라지만, 사건 수사가 아닌 엉뚱한 일들에 매달려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규칙은 손님이 정해요……우리는 손님의 룰에 따라야 해요. 반드시.’라고 말하는 야마기시 나오미의 철저한 교육을 받으며 닛타는 어엿한 호텔리어처럼 보이게 된다. 호텔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닛타는 성장하게 된다.
닛타라는 인물이 매력적인 것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는 점이다. 닛타는 상상력이 유연하다. 어떤 단서를 찾거나, 뭔가가 떠오르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지점으로 마구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반면 일상생활에서는 지극히 평범하다. 기왕이면 자신이 사건을 해결하는 중심이 되길 원하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도 있다.
하지만 야마기시의 철저한 프로정신을 배우면서 닛타는 한 단계 성장한다. 또한 관할서의 중년 형사인 노세에게서도 한 수 배운다. 출세와는 멀어진 고리타분한 형사정도로만 생각했지만, 의외로 노세 형사는 저변에서 모든 것을 훑으면서 단서를 집어 올리는 노련하고 치밀한 타입이었다. 닛타는 솔직하게 자신의 실수, 편견을 인정하고 야마기시와 노세에게 배운다. 배웠다는 것을 인정하고, 성장한다. 그 솔직하고, 공명정대함이 닛타의 또 다른 매력이다.
닛타 형사가 등장하는 첫 작품으로서 『매스커레이드 호텔』은 흥미로운 상황을 그려낸다. 호텔이라는 공간은 현실에 속해 있지만, 한편으로는 일탈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방에서 올라온 수험생들이 하룻밤의 호사를 위해 묵는 장소이기도 하고, 유명인이 모습을 숨기고 밀애를 나누는 장소이기도 하고, 수많은 결혼식과 연회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일상 속의 특별함을 느끼고 싶을 때 찾는 장소이기도 하고. 일상과 조금 떨어진 장소를 찾을 때, 사람들은 보통 가면을 쓴다. 그리고 호텔리어는 그들의 가면을 그대로 인정해준다. 현실의 그들이 어떤 존재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예약을 하고, 숙박을 하는 이 사람들의 모습 그것만을 인정하고, 그들의 룰을 따르면 된다. 다만 ‘모든 손님은 신이 아니에요. 악마도 섞여 있죠. 그걸 간파해내는 것도 우리가 할 일이에요.’라는 야마기시의 말처럼, 호텔리어에게는 형사처럼 예리한 눈이 필요하다. 사물의 이면을 간파해내는 능력이 뛰어난 닛타 형사는 호텔에서 만나는, 가면을 쓴 ‘보통 사람’의 모습을 통해 범죄자의 심리를 유추해본다.
사람을 만나는 직업, 특히 형사의 경우에는 원한을 사기 쉽다. 본인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만, 상대는 자신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하기도 쉽다. 닛타 형사는 프론트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형사와 범죄자로 만난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닛타에게 뭔가 원한을 지니고 있다. 손님인 것을 이용하여 닛타를 괴롭히던 남자의 정체를 겨우 알게 되었을 때, 닛타는 깨닫게 된다. ‘어떤 일로 인간이 상처를 입는지, 타인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그렇게 상처입지 않기 위해 가면을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상처를 입어도, 그것은 가면 위일 뿐이라고 기어코 생각하는 것일지도.
『매스커레이드 호텔』은 ‘호텔’이라는 비일상적 공간을 통해서, 인간의 감춰진 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데뷔작 『방과 후』부터 시작되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질문, 인간은 왜 사람을 죽이는가, 에 대한 답을 묵직하게 파고든다. 타인이 보기에는 너무나도 사소하지만, 개인에게는 너무나도 치명적이고 거대한 살의, 혹은 악의. 우리는 그 사소하지만 절실한 악의 때문에 늘 가면을 쓰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악의를 피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악의를 숨기기 위해.
☞ 내가 생각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고작은?! ☜
데뷔 이래 25년간 무려 77권의 책을 낸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걸작과 범작 때로는 졸작까지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다. 범작을 읽고 실망했다가도 『백야행』 『용의자 X의 헌신』 등을 읽으면 정신이 번뜩 드는 것 같다. 『붉은 손가락』처럼 이야기는 느슨해도 뭔가 울림을 느끼는 작품도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작가인 건 분명하다. 그래서 지나치게 정형화되기도 하고, 인물이 단순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히가시노에게 믿는 건 분명하게 있다. 적어도 히가시노는 읽는 그 순간만은 빠져들게 한다. 끝까지 달려가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든다. 적어도 읽다가, 그만 볼까, 란 생각만은 철저하게 거부한다.
『매스커레이드 호텔』. 25주년 기념작이란 설명은 잊어도 좋다. 1년에 한권 정도씩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라면 의미가 있을 법도 하지만 매년 3, 4권을 발표하는 작가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다만 주목할 지점은 있다. 『매스커레이드 호텔』의 주인공은 호텔리어인 야마기시 나오미와 닛타 형사다. 호텔이 무대이기 때문에 야마기시라는 캐릭터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닛타 형사는 어떤가. 무려 77권을 내는 동안 히가시노 게이고는 의외로 캐릭터를 영웅화하는 것을 꺼려 왔다.
이과 출신인 히가시노답게 물리학 교수인 유가와를 내세운 것도 시작은 단편이었고, 나오키상 수상작인 『용의자 X의 헌신』에서도 유가와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사건을 풀어내는 것은 유가와이지만, 캐릭터의 비중이나 매력으로 본다면 수학 교사인 이시가미의 보조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가가형사도 마찬가지다. 『악의』 『붉은 손가락』 등 꾸준하게 등장하긴 했지만, 『신참자』 이전까지는 캐릭터 자체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형사를 캐릭터화하는 것을 피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최근 변한 것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위상이다. 지금 히가시노는 일본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작가로 부상했다. 유가와 교수와 가가 형사를 내세운 드라마 <갈릴레오>와 <신참자>가 대성공을 거두었고 극장판도 만들어졌다. 다양한 작품들을 모아 ‘히가시노 게이고 미스테리즈’라는 드라마까지 만들어질 정도다. 지금 최고의 인기이니,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울 작품들이 더 많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매력적인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다면 더욱 좋다. 그런 점에서 『매스커레이드 호텔』의 닛타 형사는 조건에 딱 들어맞는 캐릭터다.
닛타라는 인물이 매력적인 것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는 점이다. 닛타는 상상력이 유연하다. 어떤 단서를 찾거나, 뭔가가 떠오르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지점으로 마구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반면 일상생활에서는 지극히 평범하다. 기왕이면 자신이 사건을 해결하는 중심이 되길 원하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도 있다.
하지만 야마기시의 철저한 프로정신을 배우면서 닛타는 한 단계 성장한다. 또한 관할서의 중년 형사인 노세에게서도 한 수 배운다. 출세와는 멀어진 고리타분한 형사정도로만 생각했지만, 의외로 노세 형사는 저변에서 모든 것을 훑으면서 단서를 집어 올리는 노련하고 치밀한 타입이었다. 닛타는 솔직하게 자신의 실수, 편견을 인정하고 야마기시와 노세에게 배운다. 배웠다는 것을 인정하고, 성장한다. 그 솔직하고, 공명정대함이 닛타의 또 다른 매력이다.
닛타 형사가 등장하는 첫 작품으로서 『매스커레이드 호텔』은 흥미로운 상황을 그려낸다. 호텔이라는 공간은 현실에 속해 있지만, 한편으로는 일탈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방에서 올라온 수험생들이 하룻밤의 호사를 위해 묵는 장소이기도 하고, 유명인이 모습을 숨기고 밀애를 나누는 장소이기도 하고, 수많은 결혼식과 연회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일상 속의 특별함을 느끼고 싶을 때 찾는 장소이기도 하고. 일상과 조금 떨어진 장소를 찾을 때, 사람들은 보통 가면을 쓴다. 그리고 호텔리어는 그들의 가면을 그대로 인정해준다. 현실의 그들이 어떤 존재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예약을 하고, 숙박을 하는 이 사람들의 모습 그것만을 인정하고, 그들의 룰을 따르면 된다. 다만 ‘모든 손님은 신이 아니에요. 악마도 섞여 있죠. 그걸 간파해내는 것도 우리가 할 일이에요.’라는 야마기시의 말처럼, 호텔리어에게는 형사처럼 예리한 눈이 필요하다. 사물의 이면을 간파해내는 능력이 뛰어난 닛타 형사는 호텔에서 만나는, 가면을 쓴 ‘보통 사람’의 모습을 통해 범죄자의 심리를 유추해본다.
사람을 만나는 직업, 특히 형사의 경우에는 원한을 사기 쉽다. 본인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만, 상대는 자신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하기도 쉽다. 닛타 형사는 프론트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형사와 범죄자로 만난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닛타에게 뭔가 원한을 지니고 있다. 손님인 것을 이용하여 닛타를 괴롭히던 남자의 정체를 겨우 알게 되었을 때, 닛타는 깨닫게 된다. ‘어떤 일로 인간이 상처를 입는지, 타인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그렇게 상처입지 않기 위해 가면을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상처를 입어도, 그것은 가면 위일 뿐이라고 기어코 생각하는 것일지도.
『매스커레이드 호텔』은 ‘호텔’이라는 비일상적 공간을 통해서, 인간의 감춰진 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데뷔작 『방과 후』부터 시작되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질문, 인간은 왜 사람을 죽이는가, 에 대한 답을 묵직하게 파고든다. 타인이 보기에는 너무나도 사소하지만, 개인에게는 너무나도 치명적이고 거대한 살의, 혹은 악의. 우리는 그 사소하지만 절실한 악의 때문에 늘 가면을 쓰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악의를 피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악의를 숨기기 위해.
☞ 내가 생각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고작은?! ☜
- 매스커레이드 호텔 히가시노 게이고 저/양윤옥 역 | 현대문학
『매스커레이드 호텔』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가 생활 25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작품. 닛타 고스케 형사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매스커레이드 호텔』은 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을 잡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란 점에서 마땅히 추리소설로 분류해야 하지만 그보다 넓게 보면 온갖 군상이 등장하는 휴먼 드라마에 가깝다. 일류 호텔을 드나드는 각양각색의 인간들과 그들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들여다보는 동안 어쩌면 “우리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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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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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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