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에 빠진 여인, 그리고 환호하는 독자들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환영 속 여인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언제였는지 톨스토이가 직접 언급한 적은 없다. 다만 항상 마음속에 담아두었다가, 1873년 봄 드디어 그 여인의 이야기를 소설로 옮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황혼녘에 톨스토이를 찾아온 ‘환상 속의 그대’가 어느 불운한 간부(姦婦)의 이야기, 《안나 카레니나》로 다시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2012.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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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약 2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야스나야 폴 랴나’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러시아어로 ‘빛나는 숲 속의 들녘’을 뜻하는 이 광대한 사유지는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출생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날도 톨스토이는 자신이 나고 자란 저택 안의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었다. 초저녁, 비포장도로를 따라 늘어선 자작나무들이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햇빛을 반사하며 희끄무레한 빛을 발했다. 방금 저녁식사를 마친 터였다. 배가 불러서인지 슬금슬금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마침내 까무룩 잠결로 빠져드는 순간, 하나의 환영(幻影)이 불현듯 그의 뇌리를 스쳤다.
‘맨살이 드러난 여인의 팔꿈치.’
도저히 그 환영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환영은 점점 자라났다. 톨스토이가 홀린 듯 지켜보는 가운데, 여인의 팔꿈치 주위로 번져가던 환영은 이윽고 한 인물의 형체를 이루었다. 어느덧 그의 앞엔 우아한 무도복 차림의 여인이 서 있었다. 참으로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었다. 화려한 드레스를 떨쳐입고도 애수를 가득 머금은 그 아름다운 얼굴이란. 그 후로도 여인의 환영은 집요하게 톨스토이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마치 한순간의 백일몽 뒤에 숨은 이야기를 세상에 전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속삭이듯이.
[출처] 예스24 영화
환영 속 여인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언제였는지 톨스토이가 직접 언급한 적은 없다. 다만 항상 마음속에 담아두었다가, 1873년 봄 드디어 그 여인의 이야기를 소설로 옮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황혼녘에 톨스토이를 찾아온 ‘환상 속의 그대’가 어느 불운한 간부(姦婦)의 이야기, 《안나 카레니나》로 다시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톨스토이가 저녁식사 후 나른한 환영으로 만난 여인은 단 한 사람이었으나, 안나 카레니나라는 인물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그리는 데 기여한 실존 인물은 두 명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집필에 들어가기 전에 그와 우연히 마주치게 된 두 명의 여인이 있었다.
그중 한 여인을 만난 곳은 툴라의 툴루비예프 장군 자택이었다. 파티에 참석 중이던 톨스토이는 검은 곱슬머리의 한 귀부인에게 넋을 빼앗겼다. 특히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걷는 그녀의 ‘부드러운 걸음걸이’였다. 그는 처제인 타냐에게 물었다.
“저 아름다운 여인은 누구지?”
그녀는 시인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딸인 마리아 하르퉁이었다. 톨스토이가 자기 집 소파에 기대어 선잠에 빠졌을 때 보았던 여인의 환영이 하르퉁의 모습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가 푸슈킨의 딸을 본보기로 삼아 안나 카레니나의 외모를 구상했다고 믿는 이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안나 카레니나》의 초기 원고엔 안나의 성이 카레니나가 아닌 푸슈킨이었다.
톨스토이의 상상력에 불을 지핀 또 한 명의 여인이 있다. 1872년 1월, 안나 스테파노바 피로고바라는 여인이 톨스토이 자택 근처의 기차역 선로에 뛰어들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녀는 톨스토이와 같은 마을에 사는 사내와 내연의 관계였는데, 그 남자가 자신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자 이를 비관하다 급기야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톨스토이가 사랑하는 이에게 버림받은 이 불운한 여인의 사연에 영감을 받아 작품의 주인공에게도 같은 이름을 붙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바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이 끔찍한 사건이 자신의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로고바 사건이 벌어지기 이전에 이미 불륜에 빠진 여인의 이야기를 쓰기로 작정하고 작품을 구상해왔다고 밝혔다. 실제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의 1870년 2월 일기에는 남편이 불륜에 빠진 상류층 여인을 ‘단죄가 아닌 연민’의 시선으로 그릴 계획이라는 내용이 있다. 톨스토이가 여인의 팔꿈치 환영을 본 것도 아마 이 일기가 쓰인 무렵의 일일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초고 집필은 단 3주 만에 끝났다. 그러나 원고를 매만지는 과정에서 이야기는 점점 불어났고, 결국 작가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랜 후에야 작품이 완성되었다. 그러는 사이, 불륜에 빠진 인물들을 다루는 소설의 가치에 대한 의구심이 톨스토이의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작품을 쓰는 내내 이 의구심과 맞서 싸워야 했다. 급기야 “누가 나를 대신해서 이 소설을 마무리해줬으면!” 하고 한탄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 소설은 1875년부터 러시아의 문예지 <러스키 베스트니크Ruskii Vestnik(러시아 통보)>에 연재 형식으로 발표되었는데, 놀랍게도 독자들의 반응이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정작 톨스토이 자신은 연재를 마친 1877년에도 이 소설을 ‘평범하고 시시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는데 말이다. 그러나 여인의 환영에 영감을 받아 몰아치듯 글을 쓰던 집필 초기, 톨스토이는 “이 소설에, 그러니까 내 평생 처음 써보는 ‘진정한 소설’에 특별히 마음이 끌린다.”고 표현할 만큼 작품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톨스토이가 중간에 펜을 꺾지 않고 《안나 카레니나》를 끝까지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이토록 각별했던 처음의 마음가짐이 원동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은 아닐까.
그날도 톨스토이는 자신이 나고 자란 저택 안의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었다. 초저녁, 비포장도로를 따라 늘어선 자작나무들이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햇빛을 반사하며 희끄무레한 빛을 발했다. 방금 저녁식사를 마친 터였다. 배가 불러서인지 슬금슬금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마침내 까무룩 잠결로 빠져드는 순간, 하나의 환영(幻影)이 불현듯 그의 뇌리를 스쳤다.
‘맨살이 드러난 여인의 팔꿈치.’
도저히 그 환영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환영은 점점 자라났다. 톨스토이가 홀린 듯 지켜보는 가운데, 여인의 팔꿈치 주위로 번져가던 환영은 이윽고 한 인물의 형체를 이루었다. 어느덧 그의 앞엔 우아한 무도복 차림의 여인이 서 있었다. 참으로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었다. 화려한 드레스를 떨쳐입고도 애수를 가득 머금은 그 아름다운 얼굴이란. 그 후로도 여인의 환영은 집요하게 톨스토이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마치 한순간의 백일몽 뒤에 숨은 이야기를 세상에 전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속삭이듯이.
[출처] 예스24 영화
환영 속 여인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언제였는지 톨스토이가 직접 언급한 적은 없다. 다만 항상 마음속에 담아두었다가, 1873년 봄 드디어 그 여인의 이야기를 소설로 옮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황혼녘에 톨스토이를 찾아온 ‘환상 속의 그대’가 어느 불운한 간부(姦婦)의 이야기, 《안나 카레니나》로 다시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톨스토이가 저녁식사 후 나른한 환영으로 만난 여인은 단 한 사람이었으나, 안나 카레니나라는 인물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그리는 데 기여한 실존 인물은 두 명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집필에 들어가기 전에 그와 우연히 마주치게 된 두 명의 여인이 있었다.
그중 한 여인을 만난 곳은 툴라의 툴루비예프 장군 자택이었다. 파티에 참석 중이던 톨스토이는 검은 곱슬머리의 한 귀부인에게 넋을 빼앗겼다. 특히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걷는 그녀의 ‘부드러운 걸음걸이’였다. 그는 처제인 타냐에게 물었다.
“저 아름다운 여인은 누구지?”
그녀는 시인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딸인 마리아 하르퉁이었다. 톨스토이가 자기 집 소파에 기대어 선잠에 빠졌을 때 보았던 여인의 환영이 하르퉁의 모습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가 푸슈킨의 딸을 본보기로 삼아 안나 카레니나의 외모를 구상했다고 믿는 이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안나 카레니나》의 초기 원고엔 안나의 성이 카레니나가 아닌 푸슈킨이었다.
톨스토이의 상상력에 불을 지핀 또 한 명의 여인이 있다. 1872년 1월, 안나 스테파노바 피로고바라는 여인이 톨스토이 자택 근처의 기차역 선로에 뛰어들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녀는 톨스토이와 같은 마을에 사는 사내와 내연의 관계였는데, 그 남자가 자신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자 이를 비관하다 급기야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톨스토이가 사랑하는 이에게 버림받은 이 불운한 여인의 사연에 영감을 받아 작품의 주인공에게도 같은 이름을 붙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바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이 끔찍한 사건이 자신의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로고바 사건이 벌어지기 이전에 이미 불륜에 빠진 여인의 이야기를 쓰기로 작정하고 작품을 구상해왔다고 밝혔다. 실제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의 1870년 2월 일기에는 남편이 불륜에 빠진 상류층 여인을 ‘단죄가 아닌 연민’의 시선으로 그릴 계획이라는 내용이 있다. 톨스토이가 여인의 팔꿈치 환영을 본 것도 아마 이 일기가 쓰인 무렵의 일일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초고 집필은 단 3주 만에 끝났다. 그러나 원고를 매만지는 과정에서 이야기는 점점 불어났고, 결국 작가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랜 후에야 작품이 완성되었다. 그러는 사이, 불륜에 빠진 인물들을 다루는 소설의 가치에 대한 의구심이 톨스토이의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작품을 쓰는 내내 이 의구심과 맞서 싸워야 했다. 급기야 “누가 나를 대신해서 이 소설을 마무리해줬으면!” 하고 한탄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 소설은 1875년부터 러시아의 문예지 <러스키 베스트니크Ruskii Vestnik(러시아 통보)>에 연재 형식으로 발표되었는데, 놀랍게도 독자들의 반응이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정작 톨스토이 자신은 연재를 마친 1877년에도 이 소설을 ‘평범하고 시시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는데 말이다. 그러나 여인의 환영에 영감을 받아 몰아치듯 글을 쓰던 집필 초기, 톨스토이는 “이 소설에, 그러니까 내 평생 처음 써보는 ‘진정한 소설’에 특별히 마음이 끌린다.”고 표현할 만큼 작품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톨스토이가 중간에 펜을 꺾지 않고 《안나 카레니나》를 끝까지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이토록 각별했던 처음의 마음가짐이 원동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은 아닐까.
레프 톨스토이 러시아의 작가이자 사상가. 러시아 툴라의 명문 귀족 가정에서 태어났다. 카잔대학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농장일을 시작했지만 실패, 카프카즈의 군대에 입대한다. 1852년 《유년시대》 등을 발표하며 문학성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농민운동과 러시아 민중의 삶에 관심이 많았다. 대표작으로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바보 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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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실리어 블루 존슨
미국 뉴욕대학교에서 영미문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출판사 랜덤하우스와 그랜드 센트럴 퍼블리싱에서 편집자로 근무했다. 비영리 문예지 「슬라이스Slice」를 공동 설립, 운영하면서 수많은 베스트셀러 작가들과 인터뷰를 진행한 바 있다.
평소 많은 작가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어떻게 문학적 영감을 얻고 아이디어를 글로 옮기는지에 관심이 많았던 존슨은 《댈러웨이 부인》, 《오만과 편견》, 《노인과 바다》, 《어린 왕자》 등 위대한 문학작품들의 흥미진진한 뒷이야기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을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에 오롯이 담아냈다. 현재는 유명 작가들의 독특한 글쓰기 기술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minok327
2012.09.20
ths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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