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라! - 『나는 게이라서 행복하다』
김조광수만큼 확고한 철학과 당당함을 가지고 성 소수자로 살아가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한국 사회에 또 있을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김조광수에 주목해야만 하는 이유다. 제작자로서 그리고 감독으로서 그는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사회적 커밍아웃 이후 성 소수자 인권운동을 주도하면서 그는 무엇을 꿈꾸고 있는 걸까?
글ㆍ사진 남명희
2012.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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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게이라서 행복하다 #김조광수 #게이
4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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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월사람들

2013.02.07

성소수자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져야 옳은지 아직 헤매고 있는데,
확실한 건. 점점 더 많아지네요 성소수자들의 수가 왜 증가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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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꾸다스

2012.09.30

정말 어느 누구 어느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게 힘든 것 같아요.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자신감을 갖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라고 봐요. 제일 밑바닥까지 내려갔을 때에도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그런 사랑, 그건 그 어떤 것을 사랑하는 것보다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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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냥

2012.09.26

성별이 아니라 사랑의 문제다라는 말에 공감합니다.저번에 그분의 기사를 채널 예스에서 읽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저도 그분의 생각에 많이 감화가 되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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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희

`엑스파일`, `미국드라마`, `만화`, `영화`, `U2의 노래`를 밥보다 더 좋아하며, `영화평을 그림과 함께 곁들여 쓰기`를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영화 잡지 , <씨네 21> 등 다양한 매체에 글과 카툰을 발표했으며, 추계 예술대학교, 건국대, 한양대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서로는 미국 드라마를 다룬 『미치도록 드라마틱한 세계, 미드』가 있습니다. 홈페이지 엑스파일위키와 워리넷, 팬픽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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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광수

김조광수는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를 10년 동안 다녔지만 학과 공부는 팽개치고 학생운동만 열심히 했다. 1998년 청년필름을 만들어 창립작 「해피 엔드」로 칸영화제에 입성했지만 그 후에 만든 주옥같은 예술영화들, 「와니와 준하」 「질투는 나의 힘」 등은 줄줄이 흥행에 실패해 그는 충무로에서 가장 돈 없고 빚만 많은 제작자가 되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지치지 않고 될 때까지 계속한다’는 그의 열정과 투지는 결국 결실을 맺었다. 「분홍신」과 「올드미스다이어리」로 기획력을 보여주었고 지난해 「조선명탐정」과 「의뢰인」으로 700만이 넘는 관객을 기록해 청년필름 대표로서 그리고 제작자로서의 능력을 확인시켜주었다. 2006년 사회적으로 커밍아웃한 그는 성 소수자 인권운동에 앞장서서 활동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청소년 성 소수자들의 아픔을 덜어주는 일에 관심이 크다.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 나가거나 퀴어 퍼레이드에서 사회를 보는 것도, 공개적으로 결혼식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다 그 때문이다. 2008년에 단편 「소년, 소년을 만나다」를 만들며 영화감독이 되었고, 2012년 6월 그의 첫 장편영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이 관객을 만난다.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퀴어영화를 만들고 성 소수자 인권운동에 도움이 될 수 있어 행복하다는 그는 암스테르담 게이&레즈비언영화제 관객상, 믹스브라질영화제 감독상, 환경재단 ‘2011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