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유혹한다 - 패션, 로코코 예술을 평정하다
로코코 회화들은 유희와 관능으로 점철된 남녀상열지사의 극단적 세계를 보여준다. 이 화가들은 마치 우리의 단원이나 혜원처럼, 사회적 상황을 충실히 묘사한 풍속화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는 점에서 그 이전의 화가들과는 구별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패션 화가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패션을 세부적으로 잘 묘사해놓았다. 로코코의 패션은 이 화가들의 뛰어난 묘사력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글ㆍ사진 유경희
201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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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람들은 베르사유 같은 경직될 만큼 웅장한 바로크 스타일에 식상한 상태였다. 그들은 작은 살롱의 친밀함을 원했다. 18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면서 사적 공간의 치장과 설비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로코코 예술은 실내장식에서 공예품에 이르기까지 가장 섬세한 매력을 발산하며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사람들은 사소한 일상용품까지 예술 수준으로 승화시켰다. 하다못해 편지지 한 장에도 예술적인 취향을 반영하기 위해 애썼다. 로코코 시대의 유명 화가들은 업무용 서류, 명함, 광고, 계산서를 만들고 간판을 그리기도 했다. 예술가가 장식적인 일에 종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화가가 디자이너를 겸업한 셈이다.

이런 귀족과 부르주아 문화 속에서 화가들은 그들의 취향에 적합한, 그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회화 장르를 탄생시킨다. 후대 미술사가들은 이런 유의 그림들을 폭넓게 ‘패션 회화(fashion painting, tableaux de mode)’라고 부른다. 귀족, 궁정 사람들, 도시 사람들이 살롱, 궁전, 자연 등에서 담소하거나 유희하는 모습을 그린 초상화와 유사한 그림이 그것이다. 패션 회화는 1720년대 이후 주로 파리에서 유행했으며, 패셔너블한 귀족적 삶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초상화 혹은 풍속화로 분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사실 장르 구분이 약간 애매하다. 이 분야의 유명한 화가로는 로마의 프랑스 아카데미 회장직을 맡을 만큼 성공한 루이-미셀 반 루(Louis-Michel Van Loo, 1707~71)와 장-프랑수아 드 트루아(Jean-Francois de Troy, 1679~1752) 등이 있다.

패션 회화가 생겨나기 바로 전 패션화이기도 하고 풍속화이기도 한 기묘한 장르가 있었다. 바로 로코코의 대표적 화가인 바토(Jean-Antoine Watteau, 1684~1721)에 의해 ‘페트 갈랑트(fetes galantes)’라는 새로운 범주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페트 갈랑트는 ‘우아한 축제’ 또는 ‘사랑의 연회’라는 뜻으로, 당시 귀족남녀들이 전원에서 희희낙락하는 모습을 담았다. 남녀가 음악을 연주하고, 시를 읊고, 그네를 밀어주고, 서로 희롱하는 장면 등이 포함되는 질펀하게 묘사된다.


[바토, 「시테라 섬으로의 출발」, 캔버스에 유채, 129x194㎝, 1712~17, 파리 루브르 박물관]

바토의 대표작 「시테라 섬으로의 출발」은 이런 페트 갈랑트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 그림은 지중해에 실재하는 섬인 시테라를 배경으로 한 것인데, 이곳은 고대의 이교도들이 비너스 여신을 참배하던 곳이다. 그러나 아스라이 안개가 낀 듯한 대기 속의 인물들은 여신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연애 유희를 즐기고 있는 귀족들이다. 바토는 현실과 꿈의 경계인 듯한 풍경을 섬세하고 환상적으로 묘사했는데, 배를 덮고 있는 로카유 모티프나, 구름을 타고 곡선을 이루며 공중에 떠 있는 아기 천사들은 로코코 미술에 흔히 등장하는 장식적 요소들이다.

로코코 시대의 대표적 화가로는 바토를 포함, 프랑수아 부셰(Francois Boucher, 1703~70), 장-시메옹 샤르댕(Jean Simeon Chardin, 1699~1779), 영국의 토머스 게인즈버러(Thomas Gainsborough, 1727~88) 등이 있다. 부셰는 대단한 화가라기보다는 예술적 관습의 대표자로서 신흥부자 및 자유주의적 궁정 인사들에게 가장 환영받는 에로틱한 장르 그림의 대가였다. 그는 페트 갈랑트 다음으로 로코코 회화의 가장 중요한 주제인 ‘연애 신화’를 창조했다. 또한 에로틱한 주제를 공예미술로 확장해 국민적인 양식을 만들어냈다.

로코코 시대의 이런 축제와 연회 그림 덕분에 우리는 그 시대의 패션의 유행과 사랑과 연애의 형태를 가늠할 수 있다. 이런 회화에는 이전의 르네상스 화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빨강, 파랑, 주홍, 진보라 등의 원색이 배제되고 혼합색이 사용된다. 환락이나 정념은 원색보다는 어슴푸레하고 혼탁한 색채가 더 어울리는 법이다. 화가들이 이런 색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사용했다기보다는 당시 사람들이 그런 색채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보는 편이 옳다. 예컨대 바로크의 권력과 위엄을 상징하던 황금색은 은색에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모든 것은 부드러운 은색에 색조를 맞추었다. 밝은 하늘색, 부드러운 장밋빛이 보랏빛과 자줏빛을 몰아냈다. 번쩍번쩍 빛나는 에메랄드빛은 광택이 없는 엷은 초록빛에 밀려났다. 명암의 대비가 분명하지 않은 색채, 묘연한 색채, 빛바랜 색채 등 이전까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색채에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벼룩의 빛깔이 가장 인기 있는 색채라 하여 누구나 벼룩빛깔의 옷을 입었다 하니, 정말 소름끼칠 정도로 별난 시대가 아닌가?


[장-오노레 프라고나르, 「그네」, 캔버스에 유채, 81x64㎝, 1767, 런던 월리스 컬렉션]

로코코 시대의 또 다른 유명화가 장-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e Fragonard, 1732~1806)는 더욱더 이상한 주문을 받는다. 그는 어떤 귀족의 초대로 방문한 별장에서 그 귀족의 애첩이 전원에서 그네를 타고, 자신은 그 여자의 발을 보고 있는 장면을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러면서 그 귀족은 화가에게 “나를 더 기쁘게 해주고 싶다면, 더욱 깊숙한 데를 그려도 좋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그네를 밀어주는 시종은 어쩌면 여자의 남편이라는 설도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그림은 풍자화가 해석될 수도 있다. 남편이 오히려 기둥서방으로 전락, 아내의 뒤꽁무니에서 머슴 같은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 무능력한 존재로 그려진 것이다. 이렇듯 그의 그림은 만연했던 유부녀들의 외도 뒤에는 그것을 묵묵한 남편들이 있었다는 반증을 보여주는 풍자적 성격을 띠고 있다.

로코코 회화들은 유희와 관능으로 점철된 남녀상열지사의 극단적 세계를 보여준다. 이 화가들은 마치 우리의 단원이나 혜원처럼, 사회적 상황을 충실히 묘사한 풍속화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는 점에서 그 이전의 화가들과는 구별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패션 화가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패션을 세부적으로 잘 묘사해놓았다. 로코코의 패션은 이 화가들의 뛰어난 묘사력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당시 패션 회화는 마치 오늘날의 광고 같은 효과를 가졌다. 그만큼 매혹적인 장르였다. 그러나 현대의 광고가 얼마간 현실을 외면한 채 허구적이며 허영심을 조장하는 측면을 떠올리면, 로코코 패션 회화 역시 연애와 가족 관계만을 집중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유한계급의 삶의 이면, 예컨대 사유재산에 대한 행정과 재무관계, 가난한 계층에 대한 의무적 보살핌,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공모와 암투, 군사적인 의무와 봉사 등과 같은 현실적이고 어지러운 측면은 배제하고 있다. 어쩌면 그 시대 사람들은 상류층의 유쾌하고 초연한 삶의 일면만 보기를 원했던 것은 아닐까? 말하자면, 패션 회화는 그들이 보고 싶은 삶의 방식만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세련된 놀이와 사교로 점철된 듯한 이들 삶의 이면을 겹눈으로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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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살롱 유경희 저 | 아트북스
책 속의 글들은 몇 년 전부터 저자가 대중강좌를 해오던 결혼, 패션, 카페, 여행, 요리 등의 테마들이다. 미술 이야기 뿐만 아니라 영화, 문학, 드라마, 인간관계, 온갖 사회문제 등 종횡무진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한 화가, 한 그림의 에피소드만 얘기해도 우리의 삶은 얼마나 풍요로워지는지 모른다. 소소하지만 그 배경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는 알 수 없는 코드들을 하나하나 해석하며 첫걸음을 떼는 이 책은 2004년에 나온 『테마가 있는 미술여행』의 개정증보판으로, 책 내용 중 결혼, 아동, 요리, 살롱, 카페, 여행의 여섯 개 테마는 개정증보판에 새로이 추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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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코코 #패션 회화 #바토 #갈랑트 #아트 살롱
5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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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

2013.03.20

로코코 양식은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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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0307

2013.02.02

국가, 사회 같은 거대담론에서 벗어나 남녀상열지사같은 사소한 일상을 그리기 시작한 시대가 로코코 시기였죠 :) 어떻게 보면 천박하고 퇴폐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화려한 색채가 맘에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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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nghee0412

2013.01.30

기사에 소개된 그림들이 하나같이 다 아름답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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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희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시각예술과 정신분석학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뉴욕 대학교에서 예술행정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수년간 미술잡지 기자와 큐레이터로 일했으며, 현재는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유경희예술처방연구소’를 운영하며 예술과 인문학을 통한 상상력과 창의력, 힐링과 멘토링에 관한 글쓰기, 상담, 특강 등을 기획ㆍ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예술가의 탄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