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수 필요 없다던 시어머니, 결혼한 뒤에는?
혼수니 예단이니 필요 없다고 말해주는 쿨한 시어머니들도 “어머, 네 며느리는 이런 것도 안 해줬어? 좀 심했다”라는 말 한 마디면 와르르 무너진다. 눈치 없고 배려 없는 다른 집 시어머니들이 한두 마디씩 던지는 말에 지속적으로 상처받는 시어머니가 새 며느리에게 나쁜 꼬리표를 붙이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국의 시어머니들이 며느리에게 바라는 예물은 비싼 물건 자체라기보다는 그 물건이 상징하는 자존심인 것이다.
글ㆍ사진 남인숙
2013.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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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는 못 사도 시어머니 선물은 하라

Y는 시부모님을 잘 만나서 시집간다고 내심 좋아하던 참이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시댁에서 예단이나 혼수 같은 건 모두 필요없다며 그녀 자신이 살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사라고 말해주었다. 시어머니는 예단에 신경 쓰지 말라고 특별히 그녀를 따로 불러 당부까지 했다. 그녀가 신나서 가구를 보러 다니고 근사한 신혼 여행지를 알아보고 있던 차에 결혼한 친구를 만나 식사하게 되었다. 그녀가 사려 깊은 예비 시어머니를 자랑하자 친구는 심각한 얼굴로 충 고했다.

“너 시어머니가 하지 말란다고 진짜 아무것도 안 할 생각이야? 하지 말라셨으면 친척들 선물은 준비 안 해도 되겠지만 시어머니 선물은 꼭 사드려.”
“진짜 안 해도 된다니까. 그리고 그럴 돈도 없어.”
“그럼 텔레비전이나 김치냉장고 같은 거 사지 말고 그 돈으로 선물해드려. 그런 건 살면서 차차 장만하면 되지만, 결혼할 때 시어머니 기분을 흡족하게 해드리지 않으면 그거 평생 피곤해진다.”


Y는 친구의 말을 듣고 고민하다가 다른 비용을 아껴 그냥 시어머니 선물을 사기로 했다. 혼수 예단 다 필요 없다던 시어머니는 그녀가 모피 코트를 내밀자 깜짝 놀랄 정도로 기뻐했다. 입으로는 “얘는……아무것도 하지 말라니까”하고 말하면서도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 후로도 Y는 시어머니가 보는 사람마다 “며느리가 그렇게 하지 말라는데도 모피 코트를 선물했다”고 자랑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녀는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긴 그것은 꼭 시어머니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었다. 시어머니 선물을 사면서 마음이 찔려 친정어머니 선물로 금팔찌도 같이 샀는데 친정어머니 역시 “우리 사위가 해준 것”이라며 여기저기 자랑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시댁과의 갈등 없이 신혼을 잘 보낸 이유 중에는 그 선물도 포함되어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당신은 세계적으로 뒷말 많기로 유명한 한국의 시어머니들이 나가면 며느리 욕을 줄기차게 해댈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시어머니들은 밖에 나가서는 며느리의 험담을 하지 않는다. 그건 남에게 지기 싫기 때문이다.

당신은 잘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나이 들어서의 가장 큰 낙은 자식 자랑하는 것이다. 그녀들의 하루 계획표에 하루에 한두 시간씩 ‘자식 자랑하기’라는 항목이 들어 있다고 해도 믿길 정도다. 그런데 여기에는 묘하게 경쟁이 붙기 때문에 남들 다 자랑하기에 바쁜데 나 혼자만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웬만큼 못마땅한 점이 있어도 밖에서만은 거짓말과 과장을 섞어서라도 자식의 좋은 점만을 이야기하게 된다. 여기서의 ‘자식’은 당연히 며느리도 포함된다. 중년 여성들 사이의 이 고질적인 습관은 초연하던 시어머니도 울화병이 나게 만든다.

Y의 시어머니처럼 혼수니 예단이니 필요 없다고 말해주는 쿨한 시어머니들도 그 그룹에 끼면 별수 없다. “어머, 네 며느리는 이런 것도 안 해줬어? 좀 심했다”라는 말 한 마디면 와르르 무너진다. 눈치 없고 배려 없는 다른 집 시어머니들이 한두 마디씩 던지는 말에 지속적으로 상처받는 시어머니가 새 며느리에게 나쁜 꼬리표를 붙이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국의 시어머니들이 며느리에게 바라는 예물은 비싼 물건 자체라기보다는 그 물건이 상징하는 자존심인 것이다.

오늘날의 혼수나 예단 같은 것은 전통이 와전된 허례허식임에는 분명하다. 언제고 없어져야 하는 악습이 맞다. 그러나 그런 겉치레를 무시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이라도 사회적인 분위기가 먼저 조성되어 있어야 한다. 유럽의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비싼 학용품을 갖고 다니면 “필요 없는 곳에 돈을 쓰는 멍청이”라고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 분위기에서 부모에게 비싼 물건을 사달라고 조를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와 같이 우리 사회에서 예단이나 예물에 물 쓰듯 돈 쓰는 것을 ‘골 빈 짓’이라며 손가락질하는 문화가 자리 잡는다면 누구도 과한 혼수 따위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이다. 변화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영원히’일 수도 있다.

그동안 혼수나 예단을 속물들이나 주고받는 불필요한 것이라며 우습게 봤던 여자들이 그것 때문에 갈등을 겪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

혼수하려고 마련해두었던 돈을 집 얻는 데 몽땅 보탰던 한 여자는 혼수를 안 했다며 드러내놓고 불만을 표시하는 시어머니의 행태가 기가 막혔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집 장만을 여자가 같이 했다면, ‘일반적으로’ 여자가 하는 혼수도 면제되어야 하는 것이 상식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시어머니라는 목성인들은 대개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생각한다.

‘집은 어차피 저희들끼리 같이 사는 거고 나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건데, 왜 그것 때문에 내가 예단을 못 받아야 하는 거지?’

사실 혼수를 허례허식이라고 하며 없애자고 하는 것은 받는 입장에서나 할 수 있는 것이지 주는 입장인 당신이 꺼낼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경험자들 중에는 “혼수 잘해봐야 약발 몇 달 안 간다. 할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꽤 있지만, 그녀들은 혼수를 하지 않은 여자들이 당하는 일을 겪어보지 못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혼수로 빚어지는 갈등은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관계가 형성되기 이전에 일어나는 일이라서 결혼생활을 하는 중에 생기는 각종 갈등하고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야말로 평생의 관계를 좌우할 수도 있는 일이다.

혼수든 예단이든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남들 하는 만큼을 기쁜 마음으로 하라. 형편이 못 된다면 Y처럼 시어머니 선물만이라도 해서 그녀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라. 결혼 문화의 악습을 뿌리 뽑고 싶다면 30년쯤 후 시어머니가 될 당신들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늙어야 한다. ‘나도 내가 한 만큼 뽑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지금의 상황을 불평할 자격이 없다.


자랑거리를 제공하라

중년 여성들의 자식 자랑에는 허위와 과장이 다소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본인들이 그렇게 말을 부풀리면서도 남들이 하는 말은 곧이곧대로 믿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들에게 자식 자랑을 듣고 온 날이면 너무나 배가 아프고, 내 자식이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에 화가 나는 것이다.

그런 입장에 있는 시어머니들을 기쁘고 뿌듯하게 해주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간혹 실속보다는 자랑거리가 되는 일들을 슬쩍 찔러주는 것이다.

J의 시부모님은 아버님 연금이 있어서 생활비 정도는 자급할 수 있다. 그래서 그녀는 남들처럼 생활비에서 얼마를 떼어 매달 용돈을 드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 대신 그 돈을 모아서 가끔씩 화끈하게 시부모님을 위한 이벤트를 마련한다. 3년 전에는 호주로 여행을 보내드렸고, 재작년에는 시어머니 주름살 제거 수술을 해드렸으며, 작년 이사하실 때는 번쩍번쩍한 대리석 식탁을 사드렸다. 올해는 가까운 동남아 리조트로 또다시 여행을 보내드릴 생각이다. 시어머니는 해마다 기억에 남을 선물을 하는 아들 며느리 자랑에 바쁘다. 그러면 친구들은 어깨에 힘이 들어간 시어머니를 다들 부러워한다. 그 자식들이 매달 꼬박꼬박 부쳐오는 용돈과 J의 시부모님을 위해 들어가는 돈은 합쳐놓고 보면 비슷하거나 오히려 적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꼭 J처럼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만 적용되는 문제가 아니다. 안마나 마사지하는 방법을 배워 만날 때마다 조금쯤 전문적인 수준으로 몸을 풀어주거나, 요리에 자신 있다면 시어머니 친구들을 초대해 그럴듯한 식사를 대접하는 것도 좋다. 아이가 경시대회 나가 1등을 한 것과 같은 일들은 빼놓지 않고 꼬박꼬박 보고해야 한다. 시어머니가 여럿이 여행이라도 다녀오는 날에 보란 듯이 터미널까지 마중 나갈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뭐든 작은 것을 꾸준히 해주는 것보다는 새롭게 자랑할 거리를 제공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시어머니는 알아서 몇 배쯤 부풀리고 가공해서 두고두고 야무지게 자랑거리로 써먹는다. 그녀가 신나서 자랑하게 되면 마음도 그 입을 따라 호감도가 상승하게 되어 있다.

사회생활을 할 때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수가 줄어들던 인간관계가 중년 이후 주부가 되면 양적으로 팽창하게 된다. 각종 ‘동네 커뮤니티’에 휩쓸려 다니면서 끝도 없이 수다를 풀어내는 것은 박사 출신 시어머니나 초등학교만 나온 시어머니나 마찬가지다. 매일 이루어지는 그 수다의 50퍼센트 이상이 자식 이야기라는 것을 의식한다면 말하기만 번드르르한 겉치레일지라도 시어머니에게는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속이 꽉 찬 인생을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은 당신 인생 자체에서나 적용할 일이다. 적어도 시어머니의 일상에서는 겉치레가 곧 실속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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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작정 결혼하지 않기로 했다
남인숙 저 | 리더스북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 『어쨌거나 남자는 필요하다』 등으로 100만 독자의 사랑을 받고 2030 여성들에게 현실적이고 꼭 필요한 조언을 해주는 젊은 멘토로 떠오른 남인숙이, 올해로 결혼 15년차에 접어든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결혼 이후의 삶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다. 이 책은 결혼에 대해 공부하지 않은 채 애정과 사랑만으로 무작정 결혼한 이들의 말 못할 고민을 지켜보면서 쓴, 행복한 결혼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바치는 ‘언니’의 날카로운 조언이자 뜨거운 주례사이다.






여성을 위한 결혼 관련 도서들

[ 결혼도 잘하는 여자 ]
[ 이럴 거면 나랑 왜 결혼했어? ]
[ 사랑한다 고백을 받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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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고부관계 #남인숙
15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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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fumini

2013.08.20

근데 왜 꼭 시어머니한테만 해야 되나요??
사위는 장모님한테 뭘 하는데요??
우리나라 결혼은 진짜 짜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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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비

2013.02.28

주변에 결혼하는 지인들을 보니, 정말 시어머니 선물은 꼭 해야하는 것 같다는... ㅎㅎ 잘못 머리를 써서 돈을 오히려 더 많이 쓴 지인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요령이 정말 필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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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nta

2013.02.27

아아아아- 머리가 막 아프려고 하네요. 그냥 어쩐지 도무지 같이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아무 생각없이 같이 살아버리고 싶은 저로서는 우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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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숙

소설가, 에세이스트. 1974년 서울 출생. 숙명여대 국문학과 재학 시절부터 방송작가, 자유기고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다. 출간 이후 80만 부 이상이 판매되며 여성 에세이 분야의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한 베스트셀러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2004)를 비롯하여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 : 실천편』(2006), 『여자, 거침없이 떠나라』(2008), 『여자의 인생은 결혼으로 완성된다』(2009), 『여자, 그림으로 행복해지다』(2010) 등 2030 여성을 위한 에세이를 펴내어 독자들의 뜨거운 지지와 공감을 얻었다. 또한 그녀의 여성 에세이는 중국과 대만, 베트남, 몽골에 번역 출간되었고 특히 중국에서는 15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보이며 자국 위주의 중국 출판계에서는 드물게 비소설 분야의 베스트셀러 1위 기록을 세우는 등 여자에게 솔직하고 현실적인 조언을 전해주는 멘토의 지침서로서 언어와 문화의 한계를 극복하고 동시대 아시아 여성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