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루지 영감은 정말 개과천선 했을까?! - 『헬로 미스터 디킨스』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며 한국 작가 9명이 펴낸 『헬로 미스터 디킨스』. 지난 1월 12일, 서울 광화문 부근에 위치한 영국문화원에서 ‘찰스 디킨스 테마 소설집 『헬로 미스터 디킨스』 낭독회’가 열렸다. 소설에 참여한 7명의 작가와 CBS라디오 PD 정혜윤이 무대에 올라 디킨스를 이야기했다.
2013.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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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이다. 『크리스마스 캐럴』, 『올리버 트위스트』 등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각종 매체를 통해 그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등장하는 덕분이다. 2012년은 그가 태어난 지 200주년(1812년 2월 7일)이었던 해다. 디킨스 탄생 2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한 다양하고 다채로운 행사와 이벤트가 영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있었다. 9명의 한국 작가들도 그에 동참했다. 디킨스의 탄생과 작품을 기리기 위해 헌정 소설집을 내놓은 것. 『헬로, 미스터 디킨스』(이음 펴냄)가 그것이다. 찰스 디킨스 테마 소설집으로 9명의 작가들이 디킨스의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었다. 30년 이상 당대 최고 작가로 활동하면서 사회 비판과 풍자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았던 디킨스였다. 그는 『올리버 트위스트』, 『두 도시 이야기』, 『데이비드 코퍼필드』, 『리틀 도릿』, 『위대한 유산』 등 14권의 장편소설을 비롯해 『크리스마스 캐럴』를 비롯한 중단편 소설과 <미국 인상기> 등 여러 산문을 남겼다.
디킨스, 문을 열다
롤랜드 데이비스 영국문화원장이 『크리스마스 캐럴』 일부를 먼저 낭독했다. 그는 낭독한 부분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그에 관해 말할 때면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서 크리스마스를 가장 잘 보낼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왜 이 부분을 낭독했는가?
개인적으로 나이 들수록 크리스마스에 대한 관심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고, 크리스마스 직전 『크리스마스 캐럴』을 재해석한 영화를 봤다. 제목이 <머펫스 크리스마스 캐럴>인데, 여러분도 한 번 봤으면 좋겠다. 여전히 사람들이 디킨스 작품을 재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국 사람들은 디킨스를 얼마나 좋아하나?
여전히 디킨스를 좋아한다.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올리버 트위스트>와 같은 드라마로 (그의 작품이) 계속 옮겨지고 있다. 『크리스마스 캐럴』도 여전히 많이 팔린다. 우리집 아이들도 TV드라마 등을 통해 디킨스가 하고자 한 진짜 이야기를 더 잘 이해한다.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디킨스를 읽는 방법
첫 주자, 김경욱 작가다. ‘김’ 씨 성을 가진 그는 어디서든 거의 첫 주자로 나섬을 말하면서 긴장을 푼다. 반면 『헬로, 미스터 디킨스』에서 그의 단편 「크리스마스 캐럴」은 마지막에 서 있다. 디킨스의 동명 소설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정치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K가 언제 사형집행을 받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내용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세 정령이 찾아온다. 이 세 정령에 이끌려 K가 과거, 현재, 미래를 본다.” 그는 현재의 정령을 따라가는 내용을 낭독한다.
“K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폭도, 간첩, 빨갱이라고 낙인찍힌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본다. (중략) 여기는 김치찌개의 밤, 라면의 밤, 누룽지의 밤”(p.286~288)
감옥에 갇힌 K가 누군지도 궁금한데, 그를 생각하며 「크리스마스 캐럴」을 쓴 이유는 뭔가?
어떤 소설을 쓸까 고민 중이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전직 대통령이 정치범으로 감옥에 수감돼 있을 때, 굉장히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하더라. 그때 읽은 책 목록 중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있더라. 그걸 발견한 순간, 머리에, 가슴에 뭉글뭉글 떠오르더라. 그 생각을 따라서 썼다. 한계상황에서 K가 어떤 마음으로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었을까 상상하면서 써봤다.
어떻게 이 사람이 힘을 갖게 됐는지 궁금하다.
소설에 잘 썼는데, 전달이 안 됐나? (웃음) 소설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편인데, 작품에 대해 덧붙이자는 부탁을 받으면 난감하다. 모든 걸 쏟아 부어서. 여러분이 읽고 느꼈으면 좋겠다.
다시 낭독의 시간. “K는 무릎을 꺾는 한기에 눈을 뜬다. 눈앞에는 회색 벽이 서 있다. (중략) 그에 관해 말할 때면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서 크리스마스를 가장 잘 보낼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p.290~292)
맨 마지막에 찰스 디킨스의 것과 똑같은 문장을 쓴 이유가 궁금하다.
이 문장을 내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한계 상황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마음. 그리고 두려움을 상상했고, 그것에도 불구하고 신념을 지키는 용기에 대해 이 문장을 바치고 싶었다.
바통을 이어받은 이는 「유령들」의 최제훈이다. 디킨스의 것에서 스크루지를 교화했던 유령들이 다시 등장한다. 재밌는 것은 스크루지의 개과천선 이후를 다뤘는데, 최제훈은 유령들이 결국 교화에 실패한 것으로 가정했다. 스크루지는 유령 잡는 사람을 부른다. 낭독을 한다.
“문 고리쇠로부터 시작해 침대기둥으로 끝나는 긴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그의 얼굴은 부패가 진행되는 것처럼 점점 거무죽죽해졌다. (중략) 그의 손등을 두드려주고 가방에서 장비들을 꺼내 사냥 준비를 시작했다.”(p.247~249)
스크루지가 착한 일을 하다가 실패했다. 문제가 생긴 거다. 인간을 신뢰할 수가 없게 된 거다. 좋은 일 해봤자 나만 손해 아냐? 사람들이 그에게 요구만 한다. 개인의 결심이 사회를 신뢰할 수 없는 순간 깨지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소설가가 이 부분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 소설을 쓰면서 다시 원전을 읽어봤다. 200년 전이지만 스크루지가 지금의 자본주의를 대변하는 인물 같았다. 인물 이상이지. 자선을 베푼다는 것이 선의에 기반한 장식적인 행동이라면, 자본주의 시스템에 기반한 선의는 굉장히 약할 수밖에 없다. 스크루지 영감이 자선을 이용하는 가난한 사람들 때문에 원 상태로 돌아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최제훈이 낭독 모드를 취했다.
“나는 채찍을 풀어 바닥에 늘어뜨린 채 스크루지 영감을 향해 다가갔다.(중략) 오늘 중으로 바다로 나가려면 서둘러야 했다.”(p.265~266)
디킨스는 낭독의 대가였다. 듣는 이들이 배를 잡고 떼굴떼굴 구를 정도였다. 그는 연재소설도 많이 썼는데, 사람들이 다음 회를 무척 기다렸다고 하더라. 마지막 장면에 대해 듣고 싶다.
마지막에 유령이었다는 것은 반전이 아니고, 탐욕 자체가 유령이었다. 원고를 다 쓰고 보내고 나서 디킨스에게 좀 미안하더라. 탄생 200주년 기념 작품집인데, 개과천선한 스크루지를 원 상태로 돌려서 실어놓으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이 자리를 통해 심심한 유감을 표하고 싶다. (웃음) 그래도 문학이 그런 거니까, 디킨스도 흔쾌히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한다.
「날씨 이야기」의 윤성희가 작품을 소개한다.
“이 소설은 『크리스마스 캐럴』과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크리스마스 이야기와 세 정령들을 떨어트리고 스크루지만 소설 속 인물로 데려오면 어떨까 생각했다. 과거를 끌어안고 살아서 유령처럼 사는 여자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나는 스크루지가 못됐다는 것보다 어쩜 이렇게 고독하게 살까 그것이 궁금했다. 그런 면을 주인공 마음에 담고 싶었다. 주인공은 유령처럼 살아가고 모든 사물도 주인공 눈에는 유령처럼 산다.”
윤성희의 낭독이다.
“잘못 배달된 엽서를 받고서야 언니는 지금까지 진심으로 누굴 미워해본 적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중략) “내가 미쳤니?” 언니가 말했다”(p.231~233)
가족들이 보기에 주인공은 미쳐버릴 것 같은 사람으로 설정돼 있다. 주인공 이야기를 듣고 싶다. 불구경 간 이야기도 함께.
주인공은 스스로 유령처럼 살아간다는 것을 모른다. 자신은 살아있는 사람처럼 산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인과 어긋나지 않을까, 그렇게 여겼다. 주인공이 미쳐가지만 서서히 미쳐가는 과정 중의 하나? 가족을 잃고 고독해지면서 사회에 들어가기 위해 스스로 안간힘을 쓰는 제스처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주인공은 한국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인물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보면, 스크루지가 잘 살 수 있을까 생각하듯, 이 주인공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마지막에 동생이 언니에게 거울을 선물해 준다. 사실, 이 부분을 놓고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거울은 흔한 것일 수 있는데, 언니에게 뭔가를 선물함으로써 자신의 본심을 표현하고 언니도 자신을 들여다보라는 그런 의도가 있었다.
『두 도시 이야기』에서 디킨스를 읽는 방법
김중혁은 「픽포켓」이라는 제목의 단편을 썼다. 이 제목, 사연이 있다. 그는 처음 『올리버 트위스트』를 떠올렸다. ‘픽포켓(Pickpockeㆍ소매치기)’으로 제목을 정했다. 헌데 함께 작업하는 작가들을 보니, 윤성희가 있었다. 김중혁, 생각했다. 아, 소매치기는 윤성희가 전문이지. 그래, 다른 이야기를 쓰자. 『두 도시 이야기』를 토대로 쓰기로 했다. 문제는 마땅한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다. 「픽포켓」, 그대로 쓰기로 했다. 김중혁 답다.
‘부산’을 배경으로 썼다.
소설 쓸 때 지명을 잘 안 쓰는데, 여기에 나오는 부산은 가상의 부산이라고 보면 된다. 디킨스가 런던을 좋아하는데, 런던 뒷골목과 한국 뒷골목 이야기를 닿게 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썼다. 즉, 이것은 골목이야기다.
김중혁이 읊는다. 나름 고저를 넣어서.
“모든 창문에는 비밀이 있었고, 기민지는 그 비밀이 늘 부러웠다.(중략) 기민지도 땅을 보면서 계속 걸었다. 어딘가 분필 덩어리가 있을 것이다.”(p.75~77)
소설 속에서 여가수가 사라진다. 골목이야기로 도시를 이야기한다는 것에 대해 말해 달라.
이 소설의 주인공은 골목이다. 골목을 지나가는 아이들, 골목을 지나가는 기민지가 있는 것이다. 골목이 주인공인 소설을 쓰고 싶었다.
이날 상대적으로 다른 작가들에 비해 피곤한 기색의 백가흠. 디킨스로부터 파생된 그의 단편은 「수도원 오르는 길-더 송The Song 4」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정혜윤 PD가 물었다.
어젯밤 뭐했기에 그렇게 힘들어하나?
‘클라우드’라는 음악 카페가 있다. 어제 강정마을을 후원하는 인디뮤지션 음악회를 하면서 낭독회도 열었는데, 공연이 3시간을 넘어갔다. 유명인들이 많이 왔더라. 요조도 처음 봤고, 시와 등 유명인사들이 많았다. 공연은 참 좋았는데 뒤풀이 때문에 힘들었다(웃음).
배경이 아테네와 광주다.
아테네에 간 적이 있다. 그리스가 긴축재정에 들어가면서 고난에 처해 있을 겨울에 두 달 정도 있었다. 뭘 좀 써봐야겠다 생각하면서 한국에 돌아왔는데, 마침 이 소설을 쓸 기회가 왔다.
백가흠이 읊는다.
“그가 본 것은 방안의 작은 창과 창밖으로 내려앉은 어둠과, 그것을 밤새 환하게 비추던 하얀 눈이 전부였다.(중략) 몸이 불편하니 자기가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는지도 금세 까먹었다.”(p.147~148)
이왕주는 어떻게 이왕주가 됐을까?
요즘 연작을 쓰고 있는데, 7개의 주제가 비슷하다. 과거의 기억이 치유되지 않고 시간이 흐른 뒤, 어느 순간 그것이 발현되는 순간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광주라는 도시를 소재로 소설을 쓰자니, 정면으로 응시하기가 힘들더라. 어쨌든 좀 비켜나서 보고 싶고, 시간이 많이 흘러서 잊은 듯 보고 싶고, 그런 것들이 내게도 있었다. 아테네 풍경을 보면서 생각했다. 과거 혁명에 실패한 상처를 품고 30년이 지난 때, 즉 이것을 치유하지 않고 어떤 때가 오면, 소설 속 맹목적인 이왕주처럼 그런 것이 생겨나지 않을까. 디킨스의 소설은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나온 예언자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지 못할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다. 환경이나 시스템이 인간을 인간적이지 못하도록 제약을 가할 거라는. 역사의 도시, 두 도시의 풍경이 잘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콤플렉스가 문학의 주요 소재였다면 언제부터인가 트라우마가 많이 등장하는 것 같다. 6.25, 광주, IMF 등이 그렇다.
그리스가 지금 겪고 있는 것. 우리가 1998년에 겪은 일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들이 지금 지키려고 하는 건, 우리가 복지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다시 한국을 되돌아보니, 우리는 뭔가 이상한 것을 극복하려고 십 몇 년 동안 애써온 것이 아닌가 싶더라.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뭔가 극복했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극복한 것이 없다. 어떤 나라는 혁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데, 우리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거지, 혁명이라는 것.
듣고 보니, 생각이 나는데, IMF때 그 많았던 금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안다. 기업들이 사들였다. 지금 은행에 있다. (국민들이) 뭔가 해보자 했는데, 한쪽에선 그걸 큰 기회로 삼았던 거지. 결국, 서민들만 엄청 희생한 셈이다. IMF 이전에는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청난 희생으로 그걸 메운 것이지, 극복이라고 보기 어렵다. 소설에서 14살 먹은 아이가 잘못했다고 할 수 있는 건, 겁이 나서 동생이 죽은 것을 사실대로 부모에게 말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것이 부모마저 잃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는데, 이 모든 것이 이 14살 먹은 아이의 잘못 때문인가? 그것을 생각해보고 싶었다.
「밥 짓는 이야기」를 들고 나온 박솔뫼에게 바통이 이어졌다.
소설에 대해 소개해 달라.
이 소설, 읽은 사람들이 귀엽다고도 하는데, 서늘한 부분이 있었어야 했는데, 그리 못했던 것 같다. 내 소설집에 실을 땐 잘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미진한 부분이 있었는데, 여기 실을 때는 몰랐다. 이건 의뢰 같은 것이었다.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이 있는 거지. 디킨스와 다소 연관이 있을만한. 두 도시와 혁명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썼다. 그냥 그 정도다.
“남자는 씻은 쌀과 적당한 물을 밥솥에 넣고 취사 버튼을 누르고 나는 여전히 이불을 덮은 채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뭐가 더 있을까 생각하고 있다.(중략) 이불 속에서 무얼 먹어? 오늘은 무얼 먹어? 하고 질문들끼리 따뜻하게 감기고 그러면 이불은 서걱거리며 된장찌개야 하고 말해주지만 그걸 누가 알아듣나.”(pp.177~178)
영화 <레미제라블>의 흥행으로 혁명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박솔뫼 작가가 쓴 혁명은 이불 속에서 이뤄진다. 왜 혁명적이라고 느꼈을까?
혁명 이야기가 생각한 만큼 쓰진 못했다. 실제로 이런 꿈을 꿨다. 크게 가난하거나 부유하지도 않은, 그러나 크게 행복하지 않고 착취당하는 비슷한 나잇대 사람들이 사는 우주가 있다. 그건 싸워서 쟁취한 우주다. 그런데 그 우주를 만든 것이 너희 세대라고 말하는 할아버지가 나오는 꿈을 꿨다. 지금 나라는 사람이 사는 걸 생각해보면 그럭저럭 살지만, 어떤 식으로든 압박감 같은 것을 느낄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다. 생각해보면 지금 사람들이 성취해보고 싶은 우주가 그런 우주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꿈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나는 90년대에 유년시절을 보냈는데, 그 무렵엔 한국이 뭔가 잘 되지 않을까 하는,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분위기였던 것 같다. 신기한 한편으로 내가 부잣집에서 산 것처럼 그걸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착각할 때가 있다. 순간순간 그런 감정을 느낄 때가 착각이라는 것을 알고, 앞으로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런 순간과 감정을 소설에 쓰고 싶었다.
소설에선 맨 처음 나오는 「두 여자 이야기」는 하성란의 작품이다. 하 작가는 이날, 마지막으로 등장했다.
이 소설을 소개해 달라. 광주에 뭔가를 두고 왔다는 것을 부채감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나?
D-city. 광주를 떠올릴 수 있고, 소설 속 두 여자는 결국 한 여자다. 이 사람이 광주에 간 것은 그 일이 있기 전이다. 산속을 헤매면서 평화로운 도시를 발견했고, 나중에 이 도시가 난장판이 되리라는 것을 몰랐던 거지. 밤에 오줌을 지리면서 오줌을 묻은 이불을 빨고 너는 도시의 소식을 듣게 되는데, 주인공 여자가 오인 받는 오인영이라는 여자가 있다. 주인공은 오인영을 자신이 산속에 놓고 온 반쪽이 아닐까 생각한다. 산에 남아 있다가 보름 뒤 그 일이 벌어지는 도시에 나타난 여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하성란의 낭독이다.
“재킷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식이 끝나고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중략) 단맛 뒤에는 늘 비릿한 피 냄새가 뒤따랐다.”(p.25~26)
디킨스, 문을 열다
롤랜드 데이비스 영국문화원장이 『크리스마스 캐럴』 일부를 먼저 낭독했다. 그는 낭독한 부분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그에 관해 말할 때면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서 크리스마스를 가장 잘 보낼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왜 이 부분을 낭독했는가?
개인적으로 나이 들수록 크리스마스에 대한 관심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고, 크리스마스 직전 『크리스마스 캐럴』을 재해석한 영화를 봤다. 제목이 <머펫스 크리스마스 캐럴>인데, 여러분도 한 번 봤으면 좋겠다. 여전히 사람들이 디킨스 작품을 재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국 사람들은 디킨스를 얼마나 좋아하나?
여전히 디킨스를 좋아한다.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올리버 트위스트>와 같은 드라마로 (그의 작품이) 계속 옮겨지고 있다. 『크리스마스 캐럴』도 여전히 많이 팔린다. 우리집 아이들도 TV드라마 등을 통해 디킨스가 하고자 한 진짜 이야기를 더 잘 이해한다.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디킨스를 읽는 방법
첫 주자, 김경욱 작가다. ‘김’ 씨 성을 가진 그는 어디서든 거의 첫 주자로 나섬을 말하면서 긴장을 푼다. 반면 『헬로, 미스터 디킨스』에서 그의 단편 「크리스마스 캐럴」은 마지막에 서 있다. 디킨스의 동명 소설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정치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K가 언제 사형집행을 받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내용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세 정령이 찾아온다. 이 세 정령에 이끌려 K가 과거, 현재, 미래를 본다.” 그는 현재의 정령을 따라가는 내용을 낭독한다.
“K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폭도, 간첩, 빨갱이라고 낙인찍힌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본다. (중략) 여기는 김치찌개의 밤, 라면의 밤, 누룽지의 밤”(p.286~288)
감옥에 갇힌 K가 누군지도 궁금한데, 그를 생각하며 「크리스마스 캐럴」을 쓴 이유는 뭔가?
어떤 소설을 쓸까 고민 중이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전직 대통령이 정치범으로 감옥에 수감돼 있을 때, 굉장히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하더라. 그때 읽은 책 목록 중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있더라. 그걸 발견한 순간, 머리에, 가슴에 뭉글뭉글 떠오르더라. 그 생각을 따라서 썼다. 한계상황에서 K가 어떤 마음으로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었을까 상상하면서 써봤다.
어떻게 이 사람이 힘을 갖게 됐는지 궁금하다.
소설에 잘 썼는데, 전달이 안 됐나? (웃음) 소설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편인데, 작품에 대해 덧붙이자는 부탁을 받으면 난감하다. 모든 걸 쏟아 부어서. 여러분이 읽고 느꼈으면 좋겠다.
다시 낭독의 시간. “K는 무릎을 꺾는 한기에 눈을 뜬다. 눈앞에는 회색 벽이 서 있다. (중략) 그에 관해 말할 때면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서 크리스마스를 가장 잘 보낼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p.290~292)
맨 마지막에 찰스 디킨스의 것과 똑같은 문장을 쓴 이유가 궁금하다.
이 문장을 내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한계 상황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마음. 그리고 두려움을 상상했고, 그것에도 불구하고 신념을 지키는 용기에 대해 이 문장을 바치고 싶었다.
바통을 이어받은 이는 「유령들」의 최제훈이다. 디킨스의 것에서 스크루지를 교화했던 유령들이 다시 등장한다. 재밌는 것은 스크루지의 개과천선 이후를 다뤘는데, 최제훈은 유령들이 결국 교화에 실패한 것으로 가정했다. 스크루지는 유령 잡는 사람을 부른다. 낭독을 한다.
“문 고리쇠로부터 시작해 침대기둥으로 끝나는 긴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그의 얼굴은 부패가 진행되는 것처럼 점점 거무죽죽해졌다. (중략) 그의 손등을 두드려주고 가방에서 장비들을 꺼내 사냥 준비를 시작했다.”(p.247~249)
스크루지가 착한 일을 하다가 실패했다. 문제가 생긴 거다. 인간을 신뢰할 수가 없게 된 거다. 좋은 일 해봤자 나만 손해 아냐? 사람들이 그에게 요구만 한다. 개인의 결심이 사회를 신뢰할 수 없는 순간 깨지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소설가가 이 부분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 소설을 쓰면서 다시 원전을 읽어봤다. 200년 전이지만 스크루지가 지금의 자본주의를 대변하는 인물 같았다. 인물 이상이지. 자선을 베푼다는 것이 선의에 기반한 장식적인 행동이라면, 자본주의 시스템에 기반한 선의는 굉장히 약할 수밖에 없다. 스크루지 영감이 자선을 이용하는 가난한 사람들 때문에 원 상태로 돌아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최제훈이 낭독 모드를 취했다.
“나는 채찍을 풀어 바닥에 늘어뜨린 채 스크루지 영감을 향해 다가갔다.(중략) 오늘 중으로 바다로 나가려면 서둘러야 했다.”(p.265~266)
디킨스는 낭독의 대가였다. 듣는 이들이 배를 잡고 떼굴떼굴 구를 정도였다. 그는 연재소설도 많이 썼는데, 사람들이 다음 회를 무척 기다렸다고 하더라. 마지막 장면에 대해 듣고 싶다.
마지막에 유령이었다는 것은 반전이 아니고, 탐욕 자체가 유령이었다. 원고를 다 쓰고 보내고 나서 디킨스에게 좀 미안하더라. 탄생 200주년 기념 작품집인데, 개과천선한 스크루지를 원 상태로 돌려서 실어놓으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이 자리를 통해 심심한 유감을 표하고 싶다. (웃음) 그래도 문학이 그런 거니까, 디킨스도 흔쾌히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한다.
「날씨 이야기」의 윤성희가 작품을 소개한다.
“이 소설은 『크리스마스 캐럴』과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크리스마스 이야기와 세 정령들을 떨어트리고 스크루지만 소설 속 인물로 데려오면 어떨까 생각했다. 과거를 끌어안고 살아서 유령처럼 사는 여자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나는 스크루지가 못됐다는 것보다 어쩜 이렇게 고독하게 살까 그것이 궁금했다. 그런 면을 주인공 마음에 담고 싶었다. 주인공은 유령처럼 살아가고 모든 사물도 주인공 눈에는 유령처럼 산다.”
윤성희의 낭독이다.
“잘못 배달된 엽서를 받고서야 언니는 지금까지 진심으로 누굴 미워해본 적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중략) “내가 미쳤니?” 언니가 말했다”(p.231~233)
가족들이 보기에 주인공은 미쳐버릴 것 같은 사람으로 설정돼 있다. 주인공 이야기를 듣고 싶다. 불구경 간 이야기도 함께.
주인공은 스스로 유령처럼 살아간다는 것을 모른다. 자신은 살아있는 사람처럼 산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인과 어긋나지 않을까, 그렇게 여겼다. 주인공이 미쳐가지만 서서히 미쳐가는 과정 중의 하나? 가족을 잃고 고독해지면서 사회에 들어가기 위해 스스로 안간힘을 쓰는 제스처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주인공은 한국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인물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보면, 스크루지가 잘 살 수 있을까 생각하듯, 이 주인공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마지막에 동생이 언니에게 거울을 선물해 준다. 사실, 이 부분을 놓고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거울은 흔한 것일 수 있는데, 언니에게 뭔가를 선물함으로써 자신의 본심을 표현하고 언니도 자신을 들여다보라는 그런 의도가 있었다.
『두 도시 이야기』에서 디킨스를 읽는 방법
김중혁은 「픽포켓」이라는 제목의 단편을 썼다. 이 제목, 사연이 있다. 그는 처음 『올리버 트위스트』를 떠올렸다. ‘픽포켓(Pickpockeㆍ소매치기)’으로 제목을 정했다. 헌데 함께 작업하는 작가들을 보니, 윤성희가 있었다. 김중혁, 생각했다. 아, 소매치기는 윤성희가 전문이지. 그래, 다른 이야기를 쓰자. 『두 도시 이야기』를 토대로 쓰기로 했다. 문제는 마땅한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다. 「픽포켓」, 그대로 쓰기로 했다. 김중혁 답다.
‘부산’을 배경으로 썼다.
소설 쓸 때 지명을 잘 안 쓰는데, 여기에 나오는 부산은 가상의 부산이라고 보면 된다. 디킨스가 런던을 좋아하는데, 런던 뒷골목과 한국 뒷골목 이야기를 닿게 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썼다. 즉, 이것은 골목이야기다.
김중혁이 읊는다. 나름 고저를 넣어서.
“모든 창문에는 비밀이 있었고, 기민지는 그 비밀이 늘 부러웠다.(중략) 기민지도 땅을 보면서 계속 걸었다. 어딘가 분필 덩어리가 있을 것이다.”(p.75~77)
소설 속에서 여가수가 사라진다. 골목이야기로 도시를 이야기한다는 것에 대해 말해 달라.
이 소설의 주인공은 골목이다. 골목을 지나가는 아이들, 골목을 지나가는 기민지가 있는 것이다. 골목이 주인공인 소설을 쓰고 싶었다.
이날 상대적으로 다른 작가들에 비해 피곤한 기색의 백가흠. 디킨스로부터 파생된 그의 단편은 「수도원 오르는 길-더 송The Song 4」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정혜윤 PD가 물었다.
어젯밤 뭐했기에 그렇게 힘들어하나?
‘클라우드’라는 음악 카페가 있다. 어제 강정마을을 후원하는 인디뮤지션 음악회를 하면서 낭독회도 열었는데, 공연이 3시간을 넘어갔다. 유명인들이 많이 왔더라. 요조도 처음 봤고, 시와 등 유명인사들이 많았다. 공연은 참 좋았는데 뒤풀이 때문에 힘들었다(웃음).
배경이 아테네와 광주다.
아테네에 간 적이 있다. 그리스가 긴축재정에 들어가면서 고난에 처해 있을 겨울에 두 달 정도 있었다. 뭘 좀 써봐야겠다 생각하면서 한국에 돌아왔는데, 마침 이 소설을 쓸 기회가 왔다.
백가흠이 읊는다.
“그가 본 것은 방안의 작은 창과 창밖으로 내려앉은 어둠과, 그것을 밤새 환하게 비추던 하얀 눈이 전부였다.(중략) 몸이 불편하니 자기가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는지도 금세 까먹었다.”(p.147~148)
이왕주는 어떻게 이왕주가 됐을까?
요즘 연작을 쓰고 있는데, 7개의 주제가 비슷하다. 과거의 기억이 치유되지 않고 시간이 흐른 뒤, 어느 순간 그것이 발현되는 순간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광주라는 도시를 소재로 소설을 쓰자니, 정면으로 응시하기가 힘들더라. 어쨌든 좀 비켜나서 보고 싶고, 시간이 많이 흘러서 잊은 듯 보고 싶고, 그런 것들이 내게도 있었다. 아테네 풍경을 보면서 생각했다. 과거 혁명에 실패한 상처를 품고 30년이 지난 때, 즉 이것을 치유하지 않고 어떤 때가 오면, 소설 속 맹목적인 이왕주처럼 그런 것이 생겨나지 않을까. 디킨스의 소설은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나온 예언자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지 못할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다. 환경이나 시스템이 인간을 인간적이지 못하도록 제약을 가할 거라는. 역사의 도시, 두 도시의 풍경이 잘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콤플렉스가 문학의 주요 소재였다면 언제부터인가 트라우마가 많이 등장하는 것 같다. 6.25, 광주, IMF 등이 그렇다.
그리스가 지금 겪고 있는 것. 우리가 1998년에 겪은 일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들이 지금 지키려고 하는 건, 우리가 복지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다시 한국을 되돌아보니, 우리는 뭔가 이상한 것을 극복하려고 십 몇 년 동안 애써온 것이 아닌가 싶더라.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뭔가 극복했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극복한 것이 없다. 어떤 나라는 혁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데, 우리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거지, 혁명이라는 것.
듣고 보니, 생각이 나는데, IMF때 그 많았던 금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안다. 기업들이 사들였다. 지금 은행에 있다. (국민들이) 뭔가 해보자 했는데, 한쪽에선 그걸 큰 기회로 삼았던 거지. 결국, 서민들만 엄청 희생한 셈이다. IMF 이전에는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청난 희생으로 그걸 메운 것이지, 극복이라고 보기 어렵다. 소설에서 14살 먹은 아이가 잘못했다고 할 수 있는 건, 겁이 나서 동생이 죽은 것을 사실대로 부모에게 말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것이 부모마저 잃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는데, 이 모든 것이 이 14살 먹은 아이의 잘못 때문인가? 그것을 생각해보고 싶었다.
「밥 짓는 이야기」를 들고 나온 박솔뫼에게 바통이 이어졌다.
소설에 대해 소개해 달라.
이 소설, 읽은 사람들이 귀엽다고도 하는데, 서늘한 부분이 있었어야 했는데, 그리 못했던 것 같다. 내 소설집에 실을 땐 잘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미진한 부분이 있었는데, 여기 실을 때는 몰랐다. 이건 의뢰 같은 것이었다.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이 있는 거지. 디킨스와 다소 연관이 있을만한. 두 도시와 혁명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썼다. 그냥 그 정도다.
“남자는 씻은 쌀과 적당한 물을 밥솥에 넣고 취사 버튼을 누르고 나는 여전히 이불을 덮은 채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뭐가 더 있을까 생각하고 있다.(중략) 이불 속에서 무얼 먹어? 오늘은 무얼 먹어? 하고 질문들끼리 따뜻하게 감기고 그러면 이불은 서걱거리며 된장찌개야 하고 말해주지만 그걸 누가 알아듣나.”(pp.177~178)
영화 <레미제라블>의 흥행으로 혁명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박솔뫼 작가가 쓴 혁명은 이불 속에서 이뤄진다. 왜 혁명적이라고 느꼈을까?
혁명 이야기가 생각한 만큼 쓰진 못했다. 실제로 이런 꿈을 꿨다. 크게 가난하거나 부유하지도 않은, 그러나 크게 행복하지 않고 착취당하는 비슷한 나잇대 사람들이 사는 우주가 있다. 그건 싸워서 쟁취한 우주다. 그런데 그 우주를 만든 것이 너희 세대라고 말하는 할아버지가 나오는 꿈을 꿨다. 지금 나라는 사람이 사는 걸 생각해보면 그럭저럭 살지만, 어떤 식으로든 압박감 같은 것을 느낄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다. 생각해보면 지금 사람들이 성취해보고 싶은 우주가 그런 우주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꿈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나는 90년대에 유년시절을 보냈는데, 그 무렵엔 한국이 뭔가 잘 되지 않을까 하는,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분위기였던 것 같다. 신기한 한편으로 내가 부잣집에서 산 것처럼 그걸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착각할 때가 있다. 순간순간 그런 감정을 느낄 때가 착각이라는 것을 알고, 앞으로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런 순간과 감정을 소설에 쓰고 싶었다.
소설에선 맨 처음 나오는 「두 여자 이야기」는 하성란의 작품이다. 하 작가는 이날, 마지막으로 등장했다.
이 소설을 소개해 달라. 광주에 뭔가를 두고 왔다는 것을 부채감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나?
D-city. 광주를 떠올릴 수 있고, 소설 속 두 여자는 결국 한 여자다. 이 사람이 광주에 간 것은 그 일이 있기 전이다. 산속을 헤매면서 평화로운 도시를 발견했고, 나중에 이 도시가 난장판이 되리라는 것을 몰랐던 거지. 밤에 오줌을 지리면서 오줌을 묻은 이불을 빨고 너는 도시의 소식을 듣게 되는데, 주인공 여자가 오인 받는 오인영이라는 여자가 있다. 주인공은 오인영을 자신이 산속에 놓고 온 반쪽이 아닐까 생각한다. 산에 남아 있다가 보름 뒤 그 일이 벌어지는 도시에 나타난 여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하성란의 낭독이다.
“재킷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식이 끝나고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중략) 단맛 뒤에는 늘 비릿한 피 냄새가 뒤따랐다.”(p.25~26)
- 헬로, 미스터 디킨스 김경욱,김중혁,박성원,박솔뫼,배명훈,백가흠,윤성희,최제훈,하성란 공저 | 이음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 문학을 이끌어가는 아홉 명의 한국 작가들이 디킨스의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쓴 신작 단편들을 모았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두 도시’를 주제로 글을 쓴 다섯 편의 소설(김중혁, 박솔뫼, 배명훈, 백가흠, 하성란)과, 『크리스마스 캐럴』을 기상천외하게 리바이벌한 세 편의 소설(김경욱, 윤성희, 최제훈), 그리고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고아 소년이 등장하는 『올리버 트위스트』의 느슨한 변주 소설 한 편(박성원)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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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브루스
2013.01.31
팡팡
2013.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