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세준의 뮤지컬 입성기
“가수로 노래할 땐 나만 잘하면 되잖아요. 내가 못하면 나만 욕먹으면 되고요. 그런데 뮤지컬은 팀으로 움직이니까 제가 잘 못하면 팀 전체가, 작품 전체가 욕을 먹을 수 있잖아요. 그런 생각이 드니까 부담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공연의 목표가 ‘민폐 끼치지 말자’예요. 이번 작품을 통해서 뮤지컬 배우로 인정받자 하는 건 10원어치도 없고요. 나 때문에 욕먹는 일은 없도록 하자 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예요.”
201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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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리허설에서의 최종적 실수
가수 생활 15년 만에 뮤지컬에 데뷔한다 하니 그리 떨리랴 싶었다. 이세준 역시 뮤지컬 무대에 대한 낯섬이나 어려움이 생각보다 크진 않았다 한다. 처음엔 연습기간이 너무 긴 게 아닌가 생각할 정도. 하지만 최종 리허설 무대에 서고서야 첫 무대에 대한 긴장감이 그를 압박해왔다.
“최종 리허설을 할 때 무대에 제가 나와 있어야 했는데 늦게 나가기도 하고요. 손수건을 전해줘야 하는데 무대에 안 갖고 나간 거예요. 그 때 너무 당황스러워서 지금은 더 조심하고 있어요.”
물론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배우들은 혹시 모를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시뮬레이션이 그래서 필요하다. 이세준 역시 혹시나 챙겨 나가야 할 소품을 깜빡했을 경우에 상대 배우와 몸짓으로 합을 맞추기로 했다. 그런 긴장감으로 뮤지컬 <광화문연가2>의 첫 공연을 시작했다.
“제가 달달달 떨더라고요”
어떤 생방송에서도 오차 없는 하모니를 만들어내고, 진행자를 압도하는 능청스러운 재치로 무장해왔던 이세준도 뮤지컬 첫 무대에서만큼은 예외가 없었다.
“첫 무대가 가까워올수록 다른 동료들은 긴장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프로들이 왜 긴장을 하냐고 그랬죠. 저는 하나도 안 떨렸거든요. 실제로 첫 무대에서도 안 떨 줄 알았어요. 올라갔는데 제가 달달달 떨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세준 떠는 것 좀 봐’ 스스로 생각하며 웃겼어요. 노래하면서도 떨 줄 몰랐어요. 티가 났던 것 같아요.”
예상치 못한 긴장감이 엄습했던 이유는 뭘까?
“가수로 노래할 땐 나만 잘하면 되잖아요. 내가 못하면 나만 욕먹으면 되고요. 그런데 뮤지컬은 팀으로 움직이니까 제가 잘 못하면 팀 전체가, 작품 전체가 욕을 먹을 수 있잖아요. 그런 생각이 드니까 부담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공연의 목표가 ‘민폐 끼치지 말자’예요. 이번 작품을 통해서 뮤지컬 배우로 인정받자 하는 건 10원어치도 없고요. 나 때문에 욕먹는 일은 없도록 하자 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예요.”
“처음엔 거절했죠”
사실 뮤지컬은 보는 걸 좋아했지 무대에 서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던 이세준, 몇 번 제안을 받은 적도 있지만 그저 즐겨 관람하는 취미생활로만 남겨두기로 했던 바, 이번 <광화문연가2> 제안을 받았을 때도 처음엔 완곡한 거절을 했더랬다.
“연기하는 건 상상도 안 해봤고 배운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섭외 제의 전화를 받았을 때 못 할 것 같다면서 ‘뭔데요?’ 물었더니 <광화문연가2>라고 하더라고요. 듣자마자 ‘한 시간만 고민해보고 전화할게요’ 했어요.”
그 때 이미 마음이 돌아섰던 거다.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에 그렇게 간단히 뛰어들 수 있었던 건 노래의 힘, 이영훈의 힘이었다.
“이 작품의 매력 때문이었죠. 제가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일단 제가 어려서부터 몸으로, 머리로, 마음으로 들어왔던 노래니까 표현하기 수월할 것 같았고, 연기는 많이 부족하지만 노래로 커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만약에 내가 정말 뮤지컬을 한다면 첫 뮤지컬로 가장 좋은 작품이 아닐까 싶었어요.”
한 시간 고민 끝에 뮤지컬에 도전하기로 한 그는 내심 몸치는 아닌지라 춤까지도 각오를 했다. 연출가의 배려로 춤 출 일이 거의 없다는 건 나중에 알았지만.
보는 음악, 듣는 뮤지컬 <광화문연가2>
<광화문연가2>라고 해서 전작을 답습한 부분은 없다. 전작에서 그린 무거운 시대적 배경도, 심각한 사랑 얘기도 가볍고 밝은 에너지로 전환됐다. 뮤지컬 <광화문연가>를 콘서트로 제작하는 과정에서 겪는 인물들의 새로운 이야기가 바로 <광화문연가2>의 얼개. 콘서트 형식이다 보니 노래의 비중이 훨씬 커졌다. 그래서 <광화문연가2>가 표방한 것이 ‘보는 음악, 듣는 뮤지컬’.
“결핍된 캐릭터들이 모여서 그 관계에서 오는 더 큰 결핍과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을 명곡들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거죠. 아담이라는 젊은 아이돌은 편곡을 세련되게 바꾸고 싶어 하고 산하라는 한물 간 캐릭터인 저는 예전 정서를 살려서 하기를 바라죠. 재미있는 건 음악을 오래 한 사람들은 자기 안에 아담도 있고 산하도 있어요. 뭔가 새로운 걸 추구하고 싶은 욕심과 옛날 것을 지키면서 이어가고 싶은, 그런 내 안의 두 사람이 나와서 싸우는 걸 보니까 재미있었어요. 특히 마지막에는 콘서트를 시연하면서 끝내는데 관객들도 다 하나가 되어서 신나게 뛰어놀죠. 그 때 관객들 반응이 참 좋아요.”
“모차르트가 환생해서 광화문연가를 편곡한다고 더 좋아지진 않겠죠”
최근 수많은 노래 경연 프로그램에서 불리는 노래들은 대부분 수십 년 전 스테디 넘버들. 그런 명곡은 노래를 듣는 이들에게 과연 얼마나 멋지게 달라졌을까, 혹은 원곡의 느낌을 얼마나 잘 살렸을까 기대치를 높이게 한다. 그만큼의 부담은 고스란히 편곡자나 가수의 몫이 지만. 그리고 그 부담은 <광화문연가>도 <광화문연가2>도 피해갈 수 없었다.
“원곡을 살린 곡과 많이 달라진 곡들이 함께 나와요. 원곡을 살리는 걸 좋아하는 분들은 아담이 부르는 노래들이 많이 튄다고 생각할 수도 있죠. 그런데 저는 산하와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게 편곡을 아무리 잘해도 원곡을 뛰어넘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노래는 음악적인 면만이 아니라 시대적인 분위기, 지금까지 세월을 거치면서 수많은 정서와 사연, 이야기들이 쌓이는 거잖아요. 그걸 뛰어넘는다는 건 불가능하거든요. 모차르트가 환생해서 광화문연가를 편곡한다고 더 좋아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기자 역시 공감한다. 그만큼 작곡가 故 이영훈에 의해, 가수 이문세에 의해 저장된 유년 시절의 추억의 켜가 깊고도 굵기에. 그리고 <광화문연가2>는 또 하나 추억의 켜를 쌓게 한다.
“제 대사에서도 ‘요즘 애들한텐 낯설고 어색한 게 새롭고 세련된 거야?’ 이런 얘기가 있어요. 그런데 요즘 애들한텐 어른이 생각하기에 낯설지만 실제로 새롭고 세련되게 들릴 수 있거든요. 이영훈 작곡가의 곡들이 워낙 좋아서 새로운 시도도 많았고 반대로 워낙 좋은 곡들이라 새로운 표현의 한계도 갖고 있는 거죠.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얘기하는 그런 부분들이 관객들에게도 계속 회자되는 게 신기했어요.”
이세준이 꼽는 관람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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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관람 포인트 중 하나인데요.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나 보러 오는 분들이나 추억만 먹고 살 순 없잖아요. 미래를 위한 추억이어야죠. 그렇지만 위대한 옛 것들은 지키면서 미래를 향해 가야하는 게 아닌가 하는 메시지를 잘 이해하셨으면 좋겠고요. 대한민국의 좋은 노래를 만들었던 위대한 작곡가와 그 노래를 잘 소화해낸 이문세라는 위대한 가수를 자랑스럽게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말 잘하는 이세준에게 다짜고짜 ‘라디오스타’식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이세준에게 연기란? “처음 달아본 하이패스. 저는 하이패스를 최근에 달았어요. 처음 톨게이트를 지나가는데 떨리더라고요. 될까? 싶었어요. 그런데 되더라고요. 얼마나 멋지게 지나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상처리되었습니다’가 나왔을 때 짜릿하더라고요. 톨게이트를 지나기 전에는 겁도 나고 설레기도 했거든요. 연기도 그랬어요. 설레고 기대도 되고 걱정도 많이 됐는데 다행히 사고 없이 일단 시작은 됐어요. 물론 갈 길은 멀어요. 고속도로를 달려서 목적지에 도착해서 톨게이트를 다시 통과하려면 먼 길을 가야 하는데 시작은 잘 했으니까 안전운전해서 잘 도착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켜보고 싶어졌다. 7월까지 이어지는 <광화문연가2>의 장기 공연이 아니라 그 후 뮤지컬 배우로서의 행보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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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의 댓글
필자
이예진
일로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쏘다닌 지 벌써 15년.
취미는 일탈, 특기는 일탈을 일로 승화하기.
어떻게하면 인디밴드들과 친해질까 궁리하던 중 만난 < 이예진의 Stage Story >
그래서 오늘도 수다 떨러 간다. 꽃무늬 원피스 입고…
리라
2013.06.02
즌이
2013.05.31
gksmfm
201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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