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광기는 자연에 의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 한 평생 자연 속에서의 간소한 삶을 추구했던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로에게 자연이란 무엇인가. 자연 안의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김원중 성균관대 교수는 그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소로의 에세이에 주목했다. 자연 속의 삶, 삶 속의 자연을 이야기한 8편의 에세이를 번역하며 소로와 조우한 그는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를 통해 진짜 소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글ㆍ사진 임나리
201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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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와의 만남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의 저자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월든 호숫가에서 지낸 2년 2개월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문명사회가 아닌 자연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바로 그곳이 우리가 돌아가야 할 자리임을 힘주어 말했다. 그가 떠나고자 한 곳은 자연을 이용과 착취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인간의 가치를 물질에서 찾는 사회였고, 그가 머물기를 원했던 곳은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삶의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는 자연이었다. 삶의 진리를 찾기 위해 숲으로 들어간 소로. 그는 자연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삶의 진리가 그곳에 있다고 믿게 한 것일까. 그리고 자연 속에 살았던 그 시간들을 통해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것은 아마도 『월든』을 통해 소로에게 관심을 갖게 된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들에게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는 실마리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책에 실린 8편의 에세이를 통해 소로가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야기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를 통해 작가가 추구한 삶의 모습에 대해 짐작해볼 수 있음은 물론이다.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직접 쓴 8편의 에세이를 번역한 책이다. ‘메사추세츠의 자연사’부터 ‘허클베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에세이의 번역은 김원중 교수가 맡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의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김지하와 신경림 등 한국 시인들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과 함께, 생태와 환경에 관한 글쓰기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많은 독자들이 알고 있다시피 번역서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원작자만큼이나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이 ‘누가 번역 했는가’ 하는 것이다. 번역을 맡은 이는 해당 작품에 대한 이해는 물론, 그 작가의 세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밑바탕 되어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국내 독자들의 읽기를 고려한 작문의 기술까지 요구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김원중 교수의 번역을 통해 소로의 글과 만날 수 있음은 독자들에게는 행운이다. 그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 소로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까닭이다. ‘문학과 환경학회’의 창립멤버로 회장을 지낸 이력과 함께 『인디언의 복음』 『숲에 사는 즐거움』 등 김원중 교수가 번역한 책들만 보더라도, 그 역시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삶을 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는 만남이다. 책 속에 담겨있는 것은 소로와 자연의 만남이고, 소로와 김원중의 만남인 동시에 소로와 독자들의 만남이다. 그리고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는 또 하나의 만남을 이뤄냈다. 소로를 대신해 그의 이야기를 전해줄 김원중 교수와 독자들이 만난 것이다. ‘자연과 인간’을 연결고리로 이루어진 그날의 만남을 전한다.


소로의 관심은 ‘상생의 경제학’에 있었다


『월든』에서 소로의 모습은 사상가 혹은 철학자로서의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있습니다. 그것에 반해서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는 자연주의자로서의, 그리고 생태주의자로서의 소로의 면모가 잘 나타나 있는 책입니다. 저는 독자 분들께 소로가 자연에 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해서 자연주의자ㆍ생태주의자가 됐으며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김원중 교수는 소로의 유년 시절에 대한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소로가 살던 19세기는 자연사 탐구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그의 부모님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소로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과 함께 식물채집을 하고 사냥과 보트 타기를 즐기면서 자연 속에서 자라났다. 그것이 소로와 자연의 첫 만남이었고, 자연에 대한 소로의 사랑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그 애정은 소로가 어른이 된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측량기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던 그는 토지를 측량하고 나무와 돌을 다듬으며 시간제로 일했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자연에 대해 생각하고 쓰는 데 집중했다. 월든 호숫가에 집을 짓고 살 때 외에도 그는 하루 네 시간씩 자연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저널》에 기록했다. 이후 《저널》의 내용들은 소로의 강연회 원고와 잡지에 발표하는 글들의 밑바탕이 되었다.

소로의 자연사 저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살던 당시 자연과 과학에 관한 견해가 어떠했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자연에 관한 견해는 크게 양분되어 있었는데, 자연이 인간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고 인간은 그것을 마음대로 이용하고 쓸 수 있다는 실용주의적 견해가 한편에 자리했고, 그 반대편에는 자연을 “영혼의 그림자, 혹은 다른 나(other me)”로 간주하는 초절주의자적인 자연관이 퍼져 있었다. (p.325)
자연사 탐구에 심취했던 19세기의 사람들 모두가 소로처럼 자연주의자 혹은 생태주의자가 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로와 정 반대의 노선-자연을 이용 대상으로 인식하고 착취하는 길을 걸었다. 자연에 대한 그들의 관점은 산업화, 상업화와 맞물려 더욱 확산되었다. 산업화와 상업화의 속도도 가속화됐다. 그로 인해 숲이 없어지고, 크고 작은 생물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사라져갔다. 그 현장의 가운데에 소로도 서 있었다. 생태계의 위기를 직접 목격한 것이다. 소로가 자연을 담보로 물질과 자본을 쌓아가는 이들을 향해 비판을 멈추지 않았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문명에 미치는 자연의 중요성을 해석해내어 궁극적으로 인간의 의식 속에 자연을 중요하게 만드는 것이 소로의 목적이었고, 이를 통해 기존의 자연관 및 사회적ㆍ경제적 질서를 재편하려는 게 그의 궁극적인 의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연과 더불어서 살아가는 상생의 경제학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 소로의 관심이었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고요. 소로는 인간을 사회의 구성원이라기보다는, 자연의 거주자요 구성원의 일부로 되돌리려고 하는 기획을 가지고 자연사 에세이를 쓰고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소로가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은 실용주의와 초절주의의 중간쯤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자연이 우리를 신성과 연결시켜주는 고리이자, 어떠한 이론이나 기준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신비라고 이야기했다. 인간의 삶을 유지하고 문명을 건설하는 데 사용되는 물질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이러한 소로의 주장은 실용주의적 견해와 초절주의자들의 견해를 결합하고 있다. 그에게 자연은 인간이나 문명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것들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는 존재였다. 인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자연이 베푸는 혹은 부과한 여러 조건들에 의해 삶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과 자연은 거대한 하나의 사이클 안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렇기에 소로는 삶의 진리가 자연 속에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을 것이다. 아울러 그는 “모든 것을 이성과 논리, 금전적 가치로 판단하는 문명의 광기는 오직 자연이라는 영약(靈藥)에 의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자연은 생태계를 함께 공유하는 친구이자 동료


“소로는 관찰과 사색이라는 이중의 방법을 통해 자연사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관찰이라는 과학적 진리와 사색이라는 시적 진리를 결합한 것이죠. 그것이 소로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과학자들이 객관적인 묘사와 탐구를 할 수는 있겠지만, 소로처럼 시적인 상상력을 발휘해서 우리들의 마음을 울리는 글을 쓰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로는 객관적 묘사와 주관적 상상력을 결합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자연에 관한 글쓰기’ 형식을 개발해 냈고, 그를 통해서 자연을 조작될 수 있는 물질로만 취급하지 않으려고 하는 인문과학의 비전을 견지합니다. 항상 과학적인 것과 인문학적인 것을 결합하는 글을 써내고 있고요.”

‘관찰과 사색’ ‘객관적 묘사와 주관적 상상력’을 모두 아우르는 소로의 글쓰기 방식을 보여주는 예로, 김원중 교수는 ‘메사추세츠의 자연사’의 한 부분을 독자들에게 소개했다.

물고기의 이름과 서식지만 알게 되어도 물고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법이다. 나는 물고기들의 지느러미 줄이 몇 개인지, 측선(側線)의 비늘이 몇 개인지도 알고 있다. 시내에 피라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모든 지식 면에서 그만큼 더 현명해졌고 모든 행운을 누릴 자격도 그만큼 더 갖추게 된 것이다. 그래서 피라미와 더 교감해야 하고 어느 정도 그의 친구가 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p.29)
이렇듯 자연에 대한 소로의 사랑은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지식을 통해 생겨난 것이었다. 그것은 다른 이의 말이나 책 속의 글자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게 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오감을 이용해 만나고 느끼며 싹틔운 사랑이었다. 그 사랑으로 소로는 자연과 교감했고, 마침내 그들이 생태계 안에서 자신의 친구이자 동료임을 깨닫게 되었다.

“제가 보기에는 이런 부분이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 특징을 잘 설명해주고 있는데요. 이 구절은 자연이 생태계를 같이 공유하고 있는 친구이자 동료임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소로의 생태적 비전의 핵심이 이 글 속에 담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연회를 마무리하며 김원중 교수는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를 번역하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들을 소개했다. 그리고 독자들과 함께 읽어보고 싶다며 직접 낭독했다. 각 구절들을 낭독한 후에는 자신의 감상과 함께 그 안에서 엿볼 수 있는 소로의 진면목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 가운데 소로의 탁월한 묘사력과 상상력이 빛나는 한 구절을 소개한다.

어느 날 저녁 사과의 돌출해 나온 부분이나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에 붉은 저녁놀이 흩뿌려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여름이 사과의 둥근 몸체 어딘가에 줄무늬나 점무늬를 그려 넣지 않고 지나치는 경우는 드물다. 사과는 그가 지켜본 아침과 저녁을 기리는 붉은 얼룩을 간직한다. 까맣고 색이 바랜 큰 반점들은 그 사과 위로 지나간 구름과 흐릿하고 눅눅한 날들을 기념하는 것들이다. (p.253~254)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를 통해 독자들은 소로에게 한 발짝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이 책의 번역가인 김원중 교수가 “사실 번역가들에게 소로는 악몽입니다”라고 이야기했듯이, 만연체의 대가로 알려진 소로의 글들은 읽기 쉬운 편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소로의 의도가 감추어져 있다. 독자들이 자신의 글을 보다 꼼꼼하게, 하나하나 짚어가며 읽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 바람을 알기에 김원중 교수 역시 원문 그대로를 살려 싣는 데 충실했다. 그렇기에 번역을 맡은 김원중 교수의 입장에서는 곱절의 노력과 시간이 드는 힘든 작업이었을 테지만, 덕분에 독자들은 소로가 직접 쓴 원작과 가장 유사한 형태의 번역본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소로가 의도한 대로 찬찬히 사색하며 작가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가 보았던 순간과 그가 얻었던 깨달음이 독자들 앞에 펼쳐질 것이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소로라는 다리를 건너 자연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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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의 자연사 에세이 헨리 데이비드 소로 저/김원중 역 | 아카넷
『월든』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소로의 자연주의자로서 면모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책이다. 철학적 사상가?명상가로서의 모습이 『월든』에서 두드러진다면, 이 책에서는 자연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이를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치중하는 생태학자, 자연사 작가로서 소로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들을 일목요연하게 읽고 자연에 관한 소로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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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의 자연사 에세이 #김원중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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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d1318

2013.05.31

오, 이 책 읽어보고 싶군요. 자연은 정말 놀라운 치유자 인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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즌이

2013.05.31

자연주의가 소로... 저에겐 생소하지만 에세이라고 하니 그래도 부담없이 다가올 듯합니다. 그리고 번역도 참 중요한데 이 글 보고다니 이 책이 더 읽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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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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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중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영미시와 생태문학, 번역을 강의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동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 인문학연구원장, 문학과환경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2003년 Freeman Fellow로 선정되어 International Writing Program에 참가했다. 늠름한 느티나무와 가을 하늘을 밝히는 감나무를 사랑하며 이들이 남긴 괴목과 먹감나무를 어루만지는 목공예를 좋아하고 삼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뜨겁게 커피를 사랑하며 커피의 향과 시의 향기 사이를 오가며 살고 있다. 저서로는 『브라우닝의 사랑시 연구』, 『서양문화지식사전』(공저), East Asian Ecocriticisms: A Critical Reader (Palgrave Macmillan, 2013)(공저) 등이 있고 Interdisciplinary Studies of Literature and Environment, Comparative Studies, Foreign Literature Studies, CLC Web, 『영어영문학』등에 미국과 한국의 생태문학에 관한 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한국시를 꾸준히 영어로 번역하여 Heart’s Agony: Selected Poems of Chiha Kim, Cracking the Shell: Three Korean Ecopoets, Scale and Stairs: Selected Poems of Heeduk Ra (2010 Finalist for the Best Translated Book Award) 등 10여권의 시집을 영어로 번역하여 미국에서 출판하였으며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 존 뮤어의 『나의 첫 여름』, 『샤갈의 아라비안 나이트』 등 10여권의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출간하였다. 시집으로는『문인 줄 알았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