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살아남기 위한 극한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수도권 인근 도시인 화양시. 인구 29만의 이 도시에서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발발한다. 최초의 발병자는 개 번식사업을 하던 중년 남자. 신종플루에 걸렸던 이 남자는 병에 걸린 개에 물린 이후로 눈이 빨갛게 붓고 폐를 비롯한 온몸에서 피를 흘리는 증상을 보인다. 이 남자를 구하기 위해 출동한 119구조대원들을 중심으로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하고 삽시간에 응급실 의사와 간호사들까지 눈이 빨갛게 변하며 며칠 만에 돌연사 한다. 응급실의 간호사 수진과 소방대원 기준은 점차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하는데……
글ㆍ사진 이동진
201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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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나는 책

오늘 소리 나는 책에서는 2주간 <책, 임자를 만나다>시간에서 전해드린 『28』 을 읽어드릴까 합니다. 2주의 시간동안 정유정 작가님과 함께 전해드린 이야기가 책에서는 어떻게 남겨져 있는지 몇 구절 전해드리겠습니다.




야당과 진보진영은 대통령의 선제적 조처를 두고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초유의 사태이자 부활한 20세기의 독재망령이라고 규정했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합리적이고 인도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함에도 정치 편의주의적인 발상과 국민의 불안감을 등에 엎고 과다대응책을 써서 29만 명 화양시민을 고통과 궁지로 몰아넣었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발생 초기에 신속하게 격리하고 방역 대책을 썼다면 이렇듯 걷잡을 수 없이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보건 당국의 안일한 대응을 힐난했다.
화양에서 군대를 철수시키고 질병 관리본부 현장 요원과 전문가들을 투입해서 감염자와 비감염자를 각각 격리 수용함으로써, 내부의 감염을 차단하고, 헬기로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충분히 보급하라고 요구했다. 타당하고 옳은 요구였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실행방안을 내놓지 못했다는 게 문제지. 날씨는 매일같이 영하 15도를 밑돌았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의 일상을 완전히 중단시키고, 각자의 거처에서 끌어내 어딘가에 집단수용을 하려면 의식주에 대한 대책이 먼저 마련되어야 했다. 수용장소로 제시된 학교나 공공건물은 29만을 담아 넣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시민들이 완전히 격리 당하지 않을 경우, 그 혼란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감염자와 비감염자를 분리하고 관리할 수많은 현장 용원은 어찌 충원할 것인지에 대해서 분명한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28』 (정유정/은행나무) 中에서


에디터 통신

중국의 세계적인 대문호 루쉰을 모르시는 분은 아마 없을 겁니다. 저도 루쉰의 가장 유명한 단편소설 「아큐정전」 으로 처음 알게 됐는데요, 하지만 루쉰이 중국의 굵직한 현대사를 이끌었던 사상가이자 혁명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루쉰의 또 다른 모습, 사상가이자 혁명가 루쉰의 육성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 책 『루쉰의 말』 을 만든 편집자입니다.

루쉰은 본격적인 투쟁과 혁명의 길을 걷기 전에 의사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청나라 말기, 아버지가 어리석은 처방과 치료로 죽어가는 모습을 속수무책 지켜봐야 했거든요. 아버지처럼 억울하게 죽는 중국인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 루쉰은 일본에서 현대 서양 의학을 공부합니다. 그런데 동족이 일본군에게 처형당해도 무감각하게 구경만 하는 중국인들이 찍힌 사진을 보고, 루쉰은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정신이 죽었는데 육체만 치료해 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리고 중국인의 죽은 정신을 되살리는 소리는 문학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후 루쉰은 자신의 절실한 외침을 전하기 위해 지면을 차별하지 않고 방대한 글들을 남기는데요, 그중에서도 세상의 모든 허위와 부조리에 분노하고 저항하고 변화하라는 루쉰의 목소리가 좀더 직접적으로 배어 있는 문장들만 엄선해 『루쉰의 말』 로 엮었습니다.

자신을 매정하게 해부하고, 사회를 엄격하게 비판하며, 인간을 예리하게 성찰한 루쉰의 말은 당대 중국인의 무기력한 심장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현실을 날카롭게 직시하고 사회를 매섭게 다그치면서도, 분투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만큼은 따뜻하게 응원하고 그들의 희망을 뜨겁게 노래했기 때문일 겁니다.

지난 시대의 말이 더는 유효하지 않길 바라지만, 루쉰의 말은 시공을 초월하여 21세기 한국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들로 고민하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서늘한 문장들 이면에서 뜨겁게 올라오는, 사람에 대한 루쉰의 깊은 애정의 온도를 함께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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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정유정 #루쉰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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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어찌어찌 하다보니 ‘신문사 기자’ 생활을 십 수년간 했고, 또 어찌어찌 하다보니 ‘영화평론가’로 불리게 됐다. 영화를 너무나 좋아했지만 한 번도 꿈꾸진 않았던 ‘영화 전문가’가 됐고, 글쓰기에 대한 절망의 끝에서 ‘글쟁이’가 됐다. 꿈이 없었다기보다는 꿈을 지탱할 만한 의지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삶에서 꿈이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되물으며 변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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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소설가. 1966년 전남 함평 출생이다. 대학 시절에는 국문과 친구들의 소설 숙제를 대신 써 주면서 창작에 대한 갈증을 달랬고, 직장에 다닐 때는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홀로 무수히 쓰고 버리는 고독한 시절을 보내기도 하였다. 소설을 쓰는 동안 아이의 세계에 발을 딛고 어른의 창턱에 손을 뻗는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의 성장 모습과, 스스로 지나온 십대의 기억 속에서 그 또래 아이들의 에너지와 변덕스러움, 한순간의 영악함 같은 심리 상태가 생생하게 떠올랐으며 덕분에 유쾌하게 종횡무진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입심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았다. 2007년 삼 년에 걸친 구상과 집필 끝에 탄생한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5천만 원 고료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수상,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등단 이후 쏟아지는 원고 청탁을 거절하고 치밀한 자료조사와 취재를 바탕으로 『내 심장을 쏴라』 집필에만 몰두해 다시 1억 원 고료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고, 이 작품은 심사위원들로부터 강렬한 주제의식과 탁월한 구성, 스토리를 관통하는 유머와 반전이 빼어나다는 평을 들었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는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세상으로 뛰어든 열다섯 살 세 애송이들이 펼치는 ‘개판’ 여행. 청룡열차를 탄 것 같은 속도감 있는 문체, 유머 가득 담긴 입담 속에 펼쳐지는 십대들의 풋풋한 사랑과 그 비밀스러운 성장 이야기를 담았다. 또한 차기작‘내 심장을 쏴라’는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한다. 자신을 옥죄는 운명에 맞서 새로운 인생을 향해 탈출을 꿈꾸는 두 젊은이의 고군분투가 정신병원을 통해 형상화한다. 이것이 바로 작가가 말하는 운명과 생존의 이야기다. 누구보다 가깝게 삶과 죽음의 의미를 배운 작가는 간호사를 했던 경험이 죽음에 대한 특별한 시각을 가지게 했다는 점을 전달하였다. 심사위원들로부터 강렬한 주제의식과 탁월한 구성, 스토리를 관통하는 유머와 반전이 빼어나다는 평을 들었다. 2011년 발표한 장편소설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은 주요 언론과 서점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큰 화제를 모았고, 영미권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핀란드, 중국, 일본, 브라질 등 해외 20여 개국에서 번역 출판되면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에세이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가 있다. 『진이, 지니』, 『완전한 행복』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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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당시의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02년 졸업 후 일본에 유학,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의학을 단념, 국민정신의 개조를 위하여 문예 활동에 힘썼다. 1905~1907년 혁명당원의 활동에 참가하고, ‘마라시력설’, ‘문화편지론’ 등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무렵 유럽의 피압박민족 및 슬라브계 작품에 공감하여 1909년 동생 저우쭤런(周作人)과 ‘역외소설집’을 공역하는 한편, 망명중인 장빙린(章炳麟)에게 사사하였다. 1909년 귀국하여 고향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남경임시정부와 북경정부의 교육부원이 되어 일하면서 틈틈이 금석 탁본의 수집, 고서 연구 등에 심취하였다. 1918년 문학혁명을 계기로, 처음으로 ‘루쉰(魯迅)’이라는 필명을 사용, 중국현대문학사상 첫번째의 백화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신문학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5·4운동 전후 ‘신청년’ 잡지의 일에 참가하여 ‘5·4’ 신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1918년에서 1926년에 이르는 동안 창작을 계속하여 소설집 ‘눌함’, ‘방황’, 논문집 ‘분(墳)’, 산문시집 ‘야초’, 산문집 ‘조화석습’, 잡문집 ‘열풍’, ‘화개집(華蓋集)’, ‘화개집 속편’ 등을 출판하였다. 이 중에 ‘공을기(孔乙己)’, ‘고향’, ‘축복’ 등을 발표하여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하였는데, 1921년 12월에 발표된 중편소설 ‘아Q정전(阿Q正傳)’은 중국현대문학사상 불후의 대표작으로 세계적 수준의 작품이다. 많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였고, 1920년 이후에는 베이징대학,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4년 저우쭤런과 어사사를 조직하고, 1925년 청년문학사와 미명사(未名社)를 조직하였으나, 1926년 8월 베이양 군벌의 문화 탄압과 격돌한 베이징 학생애국운동 지지로 말미암아 베이징을 탈출, 아모이대학 중문과 주임으로 부임하고, 1927년 1월 당시의 혁명 중심 광저우(廣州)에 이르러 중산대학의 교무주임이 되었다. 1927년 가을 상하이의 조계에 숨어 쉬광핑(許廣平)과 동거하며 문필생활에 몰두하는 한편, 창조사, 태양사 등 혁명문학을 주창하는 급진적 그룹 및 신월사(新月社) 등 우익적 그룹에 대한 논전을 통하여 매우 전투적인 사회 단평(短評)의 문체를 확립하였다. 한편 소비에트 러시아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1930년 전후하여 중국자유운동대동맹, 중국좌익작가연맹과 중국민권보장동맹에 참가하여 국민당 정부의 독재 통치와 정치 박해에 항거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 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역사소설집 ‘고사신편’을 출판하였고, 대부분의 작품과 잡문은 ‘이이집’, ‘삼한집’, ‘이심집’, ‘남강북조집’, ‘위자유서’, ‘준풍월담’, ‘화변문학’, ‘차개정잡문’, ‘차개정잡문 이편’, ‘차개정잡문 말편’, ‘집외집’과 ‘집외집습유’ 등에 수록되었다. 또 1931년부터 판화 운동도 지도하여 중국 신판화의 기틀을 다졌다. 루쉰의 일생은 중국 문화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이룩하였다. ‘미명사(未名社)’, ‘조화사(朝花社)’ 등 문학 단체를 영도하고 지지하였으며, ‘국민신보부간’, ‘망원(莽原)’, ‘어사(語絲)’, ‘분류(奔流)’, ‘맹아(萌芽)’, ‘역문(譯文)’ 등 문예잡지를 주편하였고, 청년 작가를 열성적으로 적극 배양하였다. 외국의 진보된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데 힘쓰고, 국내외의 저명한 회화, 목각을 소개하였으며, 대량의 고전문학을 수집, 연구, 정리하고, ‘중국소설사략’, ‘한문학사강요’를 저술하였으며, ‘혜강집’을 정리하고 ‘회계군고서잡록’,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 ‘당송전기록’, ‘소설구문초’ 등등을 집록하였다. 죽기 직전에는 항일투쟁 전선을 둘러싸고 저우양(周揚) 등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에는 대체로 그의 주장에 따른 형태로 문학계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다.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1936년 10월 19일 폐결핵으로 말미암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나고 민중 만여 명이 자발적으로 공제(公祭)를 거행하여 훙자오만국공묘에 묻혔다. 1956년 루쉰의 유해는 훙커우공원에 이장되었다. 1938년 ‘루쉰전집’ 20권이 출판되었다. 그를 혁명의 모범이자 사상의 근원으로 여긴 마오쩌둥에 의해 20세기 내내 중국을 지배한 개혁과 혁명적 변화의 선동가로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까지 추앙받았다. 인민정부 성립 후, 루쉰의 저서는 분야별로 나뉘어 ‘루쉰전집’ 10권, ‘루쉰역문집’ 10권, ‘루쉰일기’ 2권, ‘루쉰서신집’이 간행되었고, 루쉰이 편교(編校)한 고적(古籍) 여러 종류도 다시 간행되었다. 1981에는 ‘루쉰전집’ 16권이 출판되었다. 베이징, 상하이, 사오싱, 아모이 등지에는 전후하여 루쉰 박물관, 기념관 등이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