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일상에 대한 작은 위로 <힐링캠프 - 신경숙 편>
<힐링캠프>에 신경숙이라는 작가가 나왔다. 방송에 좀처럼 얼굴이 비치지 않고 대중에게 말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작가라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 궁금했다. 분명히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 책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책을 쓸 건지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방송은 역시 책 이야기가 주를 이뤘지만 그녀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시청자의 생각과는 달랐다.
글ㆍ사진 최창순
201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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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은 권력이다. 하루아침에 일반인을 유명 스타로 만들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 방송이다. 채널이 다양해졌다고 해서 시청자가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양해진 것은 아니다. 더 이상 서민을 울고 웃기며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친구 같은 방송을 찾기 힘들어졌다. 어느 한 프로가 인기 있으면 그것을 베낀 프로그램을 타채널에서 만들고 원조국밥집도 아니면서 서로 경쟁하다가 싸우기까지 한다. 시청률에 따른 광고 수입으로 먹고 사는 방송에서 경쟁은 불가피하다지만 과연 그런 경쟁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다.


점점 야해지고 독해지고 세지는 프로그램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시청자의 눈을 뺏기지 않으려고 혈안이 돼 있는 것이 아니라 탁 트인 공간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 <힐링캠프>라고 생각한다. 지난주에 방송된 신경숙 편은 모처럼 가슴 따뜻해지는 예능이었다.

사실 토크쇼처럼 뻔한 프로그램이 없다. 매회마다 포맷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좇고 좇기는 긴장감을 주지도 않는다. 그저 게스트가 나와서 진행자와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이야기라는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이다. 우리는 매일 이야기를 하면서 살지만 좀처럼 지겨워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욕망하고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면서 살아간다. 이야기는 삶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때문에 토크쇼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방송 포맷이지만, 이마저도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착한 토크쇼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힐링캠프>에 신경숙이라는 작가가 나왔다. 방송에 좀처럼 얼굴이 비치지 않고 대중에게 말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작가라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 궁금했다. 분명히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 책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책을 쓸 건지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방송은 역시 책 이야기가 주를 이뤘지만 그녀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시청자의 생각과는 달랐다.

일단 우리나라 최고의 작가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그녀는 여공 출신이었다. 가난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교를 겨우 다니면서 작가가 됐고 책을 썼다. 맨 처음 자신의 책이 나왔을 때는 맨발로 뛰어가 그 책을 맞았다. 자식들 뒷바라지에 일생을 바친 어머니의 피곤에 찌든 얼굴을 보면서 언젠가는 엄마를 위한 책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것이 『엄마를 부탁해』 의 씨앗이 된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신경숙은 담담하게 풀어 놓았다. 이야기꾼의 말처럼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하나하나 소박하고 담백하게 풀어 놓는 그녀의 말은 소설을 닮아 있었다. 잔잔한 이야기 속에 울림이 있었고 그 울림이 지금의 그녀를 이해하게 만들었다. 200만 부의 판매 부수를 올린 그녀가 더 이상 배 아프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을 이루기까지 그녀가 감내해야 했던 것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하루아침에 벼락스타가 되는 요즘의 세태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누군가 좋은 글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내리라고 한다면 ‘살고 싶게 만드는 글’이라고 말하고 싶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어떤 장르의 프로그램이든 또 어떤 방식이든 살고 싶게 만드는 프로그램이 있다. 비루한 삶에 대한 위로를 통해서 그래도 다시 살고 싶어지게 만드는 의지를 북돋아 주는 것이다. 신경숙의 말들이 그랬다.

진행자는 때로 프로그램 속에서는 시청자가 되어야 한다. 성유리는 오빠만 편애하는 엄마가 어렸을 때는 미웠지만 『엄마를 부탁해』 를 읽고 이해를 할 수 있었단다. 엄마에게 첫 아이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 아이를 통해서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었다. 그랬기에 감히 편애라는 말로 비난할 수 없는 독보적인 관계가 된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금기에 도전한다. 방송에서 이런 말을 이렇게 꺼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수위 높은 발언을 하는 연예인들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허나 항상 강도 높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때로는 짜고 맵고 맛있는 것 보다는 싱거운 위로가 필요할 때가 있다. 시청자가 많이 본다는 지표가 시청률이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시청률의 논리에 밀려 폐지되거나 변심하지 말고 지금처럼 <힐링캠프>가 시청자들을 위로해줄 수 있는 착한 예능프로그램으로 남길 바란다.


[관련 기사]

-이소연 윤한 가세 <우리 결혼했어요>, 인기 회복할까
-먹방 권하는 사회 <맨발의 친구들 - 집밥 먹기 프로젝트>
-<화신>을 통해 본 토크쇼의 한계와 기대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 아버지
-여행 리얼 버라이어티의 정석 - tvN <꽃보다 할배>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힐링캠프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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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koko111

2013.11.19

예능 첫 출연 신경숙 작가님, 다소 긴장하신듯 보였지만 새로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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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순

이제 막 세상에 발을 내딛은 신입기자. 한 후배는 한 번도 먹어 보지 않은 젤리 같은 사람이라고 평했다. 공연과 영화, 전시회를 보고 누리꾼들과 소통하는 지식소매상. 내가 쓴 글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대신 그래도 세상은 움직이고 있다는 희망의 증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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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인간 내면을 향한 깊은 시선, 상징과 은유가 다채롭게 박혀 빛을 발하는 문체, 정교하고 감동적인 서사를 통해 평단과 독자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받아온 한국의 대표 작가다. 1963년 1월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야 겨우 전기가 들어올 정도의 시골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열다섯 살에 서울로 올라와 구로공단 근처에서 전기회사에 다니며 서른 일곱 가구가 다닥다닥 붙어 사는 '닭장집'에서 큰오빠, 작은오빠, 외사촌누이와 함께 한 방에서 살았다. 공장에 다니며 영등포여고 산업체 특별학급에 다니다 최홍이 선생님을 만나 문학 수업을 시작하게 된다. 컨베이어벨트 아래 소설을 펼쳐 놓고 보면서, 좋아하는 작품들을 첫 장부터 끝장까지 모조리 베껴 쓰는 것이 그 수업 방식이었다. 그 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뒤 1985년 『문예중앙』에 중편소설 「겨울우화」로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하였다. 스물두 살에 등단하였을 때는 그리 주목받는 작가는 아니었다. 1988년 『문예중앙』신인상에 당선된 뒤 창작집 『겨울우화』를 내었고, 방송국 음악프로그램 구성작가로 일하기도 하다가 1993년 소설 『풍금이 있던 자리』를 출간해 주목을 받았다. 『강물이 될 때까지』,『풍금이 있던 자리』,『오래 전 집을 떠날 때』,『딸기밭』, 장편소설 『깊은 슬픔』,『외딴방』,『기차는 7시에 떠나네』 『바이올렛』 등 일련의 작품을 통해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을 말하고자, 혹은 다가설 수 없는 것들에 다가서고자 하는 소망"을 더듬더듬 겨우 말해 나가는 특유의 문체로 슬프고도 아름답게 형상화하여 19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잡았다. 신경숙의 첫 장편소설 『깊은 슬픔』은 한 여자와, 그녀가 짧은 생애 동안 세상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그 여자 '은서', 그리고 '완'과 '세'라는 두 남자를 소설의 표면에 떠올려놓고 있다. 그들 세 사람을 맺어주고 환희에 빠뜨리며 절망케 하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의 올이 얽히고 풀림에 따라, 고향 '이슬어지'에서 함께 자라난 세 사람의 운명은 서로 겹치고 어긋난다. 그러나 『깊은 슬픔』이 정밀하게, 더없는 슬픔과 안타까움이 실린 시선으로, 그리하여 진하고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그려 보이는 것은, 그들의 사랑과 운명이 화해롭게 겹치는 국면이라기보다, 자꾸만 어긋나면서 서로의 기대와 희망을 배반하는 광경이다. 아니, 차라리 그들의 관계에선 겹침이 곧 어긋남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불행했던 과거를 너무 쉽게 잊는다. 신경숙의 『외딴방』은 어제가 있어서 오늘이 있고 내일이 존재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망각한 채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려웠던 그 시절을 되짚어 보게함으로써 현재를 돌아보는 자성(自肖)의 기회를 만들어준다. 또한 이 작품은 작가의 자폐적 기질, 아름다움에 대한 끝없는 동경, 삶의 속절없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고요히 수납하는 태도 등이 어디서 발원했는지를 알려주고 있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내성의 문학'이라 부를 수 있는 신경숙 문학의 정점이자 제목 그대로 외딴방에서 외롭게 죽어간 한 가여운 넋에 대한 진혼가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신경숙은 자신의 체험을 질료로 한 글쓰기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과 그럼에도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는 의지 사이의 위태로운 줄타기를 보여준다.『풍금이 있던 자리』는 유부남과 불륜의 관계에 있는 여자가 그 남자와 새로운 삶을 꾸리려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되짚어준다. 특히 화자의 기억 속에 있는 아버지의 새 여자와 어머니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삶에 찌들어 꾸밈이란 없이 소박하게 가정을 꾸려 나갔던 이 땅을 일구어낸 「어머니」와, 남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 땅의 「여성」과의 사이, 그 사이를 보여준다. 그 사이 속에는 무시 할 수 없는 사회 통념이 들어가 있다. 「어머니」를 긍정해야하면서 동시에 부정해야 하는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이중적 잣대는 있지도 않는 풍금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 내고 제 3의 새 여자, 또 다른 화자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을 작가는 이야기 한다. 2007년 겨울부터 2008년 여름까지 「창작과비평」에 연재되어 뜨거운 호응을 얻은 『엄마를 부탁해』는 섬세하고 깊은 성찰, 따뜻한 시선의 작가의 절정의 기량으로 풀어낸 엄마 이야기이자 엄마를 통해서 생각하는 가족 이야기이다. 늘 곁에서 보살펴주고 무한정한 사랑을 주기만 하던, 그래서 당연히 그렇게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 엄마가 어느날 실종됨으로써 시작하는 이 소설은, 가족들 각자가 간직한, 그러나 서로가 잘 모르거나 무심코 무시했던 엄마의 인생과 가족들의 내면을 절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은 2011년 'Please Look After Mom'라는 제목의 영문판이 제작되어 출간 전부터 호평을 받고 있으며, 미국 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22여 개국에 판권이 판매되었다. 일곱번째 장편소설인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사랑의 기쁨과 상실의 아픔을 통과하며 세상을 향해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청춘세대를 향한 신경숙 문학의 간절하고 절실한 소통의 발신음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쳀 시대와 시간을 뚫고 나가 어떻게 서로를 성장시키며 불멸의 풍경이 되는지를 여러 개의 종소리가 동시에 울려퍼지듯 보여준다. 팔 년 만에 출간되는 여섯번째 소설집 『모르는 여인들』은 세계로부터 단절된 인물들과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풍경들을 소통시키기 위한 일곱 편의 순례기로, 익명의 인간관계 사이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작가는 특유의 예민한 시선과 마음을 집중시키는 문체로, 소외된 존재들이 마지막으로 조우하는 삶의 신비와 절망의 극점에서 발견되는 구원의 빛들을 포착해내어 이 시대 진정한 사랑의 의미와 바닥 모를 생의 불가해성을 탐색한다. 2013년에 출간한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명랑하고 상큼한 유머로, 반짝이는 스물여섯 편의 짧은 소설들을 담은 소설집으로, 산다는 것과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에 대한 이야기, 일상의 순간들에 스며들어 그리움이 되고 사랑이 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달에게 우리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짧은 형식의 글이자, 달이 듣고 함빡 웃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엮었다. 이외의 작품으로 소설집 『강물이 될 때까지』, 『감자 먹는 사람들』, 『오래 전 집을 떠날 때』, 『딸기밭』, 『종소리』, 장편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바이올렛』, 짧은 소설집 『J이야기』,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 『자거라, 내 슬픔아』, 『산이 있는 집 우물이 있는 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