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보라 칼럼] 아기와 산모를 둘러싸고
갓 태어난 아기와 외출은 어떤 모습일까? 이길보라 감독이 아이와 함께 문밖을 나선 뒤 마주한 얼굴과 말들에 관해 들려준다.
글: 이길보라 (영화감독, 작가)
202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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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엄마가 되었다. 한 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단어들이 나의 일상을 채웠다. 젖, 오로, 젖몸살, 기저귀, 유두백반, 수면교육, 단유, 쪽쪽이, 유아차, 이유식, 분리불안, 재접근기, 워킹맘, 어린이집…. 제 몸은 물론이고 목도 가누지 못하는 아이와 함께 산다는 건 내가 살아왔던 세상을 다르고 새롭게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단하고 졸리고 목마르고 배고픔과 동시에 벅차고 기쁘고 아름답고 놀라운 엄마 됨(motherhood)과 나, 그리고 아이 사이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

 

출산 후 병원을 나섰을 때는 오월이었다. 금방이라도 여름 바람이 될 것 같은 바람이 불었다. 신생아 젖 먹이고 잠깐 눈 붙이고 일어나서 밥 챙겨 먹고 빨래 돌리고 장 봐오고 청소하고 세탁물을 정리하는 것만으로 하루가 가득 찼다. 누가 반찬이라도 해주거나 장이라도 봐주면 무척이나 고마운 날들이었다.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며 엄마 됨을 받아들였다.

 

3주차가 되니 슬슬 몸이 간지러웠다. 언제 외출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나와 같이 일본에서 출산을 한 친구는 대개 한 달 정도 집에 머문 후에 외출한다고 했다. 한국은 어떠냐고 묻기에 삼칠일 혹은 백일이라고 대답했다. 삼칠일(三七日)은 7일을 3번 거듭한다는 뜻으로, 21일간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여 산모와 아기의 질병 감염 등의 후유증을 최대한 막아온 기간을 뜻한다. 3주간은 절대 외출하지 않고 백일 정도는 산모도 몸을 회복하고 아이도 집에 있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나보다 두어 달 먼저 출산하여 독일에서 아이를 키우는 사촌 동생은 출산한 지 11일 되던 때에 외출했다고 했다. 그렇게나 일찍 나가도 되냐고 묻자, 산후도우미가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위해 매일 외출할 것을 권했다고 했다. 동생은 겨울의 습도와 온도가 아이에게 좋기 때문에 한겨울에 아기를 발코니에서 재우는 사람도 있다며 바깥 산책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소 놀랐지만 그곳의 겨울 날씨를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도 슬슬 외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젖을 충분히 먹였다. 아기의 목을 잡고 등을 쓰다듬어 소화를 도운 후 집을 나섰다. 다음 수유 시간까지 짧으면 30분, 길어야 한 시간 정도의 산책이 될 것이었다. 홀로 걷는 발걸음이 가볍고 기쁘면서도 어색하고 불안했다. 임신 기간 내내 아이와 함께였는데 이제는 혼자 걷는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주민들이 나를 보고 멈춰 섰다. 쑥 들어간 배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해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출산했다고, 잠깐 바람 쐬러 나왔고 아기는 집에 있다며 신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실 사람들은 그렇게 궁금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그땐 그게 나의 세상의 전부였다. 

 

집에 가고 싶었다. 엄마도 보고 싶었고 아빠도 보고 싶었다. 손주가 보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는 부모님께 아이를 보여주고 싶었고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싶었다. 어차피 하루 종일 아이 보는 거, 일본에서 보나 한국에서 보나 같지 않을까.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국제 커플의 경우에는 신생아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는 경우가 꽤 있었다. 두 달이 지났으니 얼추 컸으리라 생각하고 비행기 표를 샀다. 

 

공항에 도착하니 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울었다. 수유실로 향했다. 아기 울음소리가 시끄러운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 마음이 다급했다. 중년 여성 하나가 반갑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 애기 소리. 너무 오랜만에 듣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지으며 목례 인사를 했다. 

 

한국에서는 어딜 가나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봤다. 집 근처 음식점에 들어서자 식당 주인이 안내를 하기도 전에 출산한 지 얼마나 됐느냐고 물었다. 그는 외출해도 되냐면서 아기도 작고 산모도 몸이 다 풀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외국에 살고 있고 거기서는 다들 신생아 데리고 외출한다고 대답했다. 이 집 음식을 꼭 먹고 싶어서 나온 거라며 너스레도 떨었지만 사장은 계속해서 이르다는 말만 하며 불쌍한 표정으로 아이를 쳐다봤다. 꼭 혼나는 것만 같았다. 

 

출산 후 처음으로 한국에 온지라 해야 할 것이 많았다. 주민센터에 가서 외국에서 출생한 아기의 주민등록 절차를 밟아야 했다. 주차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아기띠로 아이를 안고 집을 나섰다. 여름의 초입이라 더웠다. 큰길에 들어서니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작네. 얼마나 됐을까? 백일도 안 된 것 같은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이를 두고 한마디씩 했다. 나는 두 달이 되었다고 답하며 한국어를 모르는 파트너에게 통역을 했다. 그때였다. 누가 말했다. 

 

“저렇게 작은 아기를 데리고 왜 나왔대.”

 

곧이어 이런 말도 들렸다.

 

“아기띠 하면 엄마는 편하겠지. 애는 불편할 텐데.”

 

걸음을 멈췄다. 우리를 보고 하는 소리였다. 아니, 내가 엄마로서의 의무를 버리고 일탈을 한 것도 아니고 아이를 버린 것도 아닌데. 심지어 아기는 푹 자고 있고 나는 꼭 수행해야 하는 주민등록의 의무를 다하러 집 앞 주민센터에 가는 것뿐인데.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는 파트너에게 상황을 설명하다 얼굴이 붉어졌다. 배우자가 없을 수도 있고, 나처럼 배우자가 외국인이어서 누군가가 대신 서류 업무를 해주지 못할 수도 있고, 배우자가 거동이 불편하여 엄마와 아이가 함께 외출할 수도 있을 텐데 왜 그렇게 말들이 많은가! 화가 남과 동시에 이 상황이 그리 낯설지 않음을 깨달았다. 농인 부모와 함께 다닐 때 겪었던 경험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저기 봐, 귀가 안 들리나 봐, 예쁘고 잘 생겼는데 안타깝다, 쟤는 딸인지 장애 부모 통역도 하고 훌륭하고 불쌍하네. 혼잣말 같지만 당사자에게는 똑똑히 보이고 들리는 말들, 타인에 대한 관심처럼 보이지만 배려 없고 값싼 동정들. 파트너는 진정하라며 다들 관심이 많은 것뿐이라고 다독였다. 

 

다음 날에는 꼭 필요한 육아용품을 사러 나가야 했다. 피곤했지만 한국 물정을 잘 모르는 파트너를 혼자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함께 나섰다. 차에서 아이를 내리고 유아차에 실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곧이어 문이 열렸다. 유아차를 밀어 넣기도 전에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탔다. 남은 자리에 도저히 유아차를 넣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당황하여 우물쭈물 서 있으니 눈앞에서 문이 닫혔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상황이 종료되었다. 화를 내기도 전에 헛웃음이 나왔다. 파트너는 놀란 표정이었다. 

 

어느 날은 이런 일도 있었다. 혼자 유아차를 밀고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다. 문이 닫히자마자 사람들의 시선이 아이에게 꽂혔다. 어머, 너무 귀여워. 이거 봐. 얼마나 됐을까? 정말 예쁘지. 사람들은 저마다 아이를 두고 한마디씩 했다. 나는 웃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가장 먼저 내렸다. 버튼을 눌러 유아차가 내릴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서둘러 닫히려는 문을 가까스로 열고 유아차를 밀었지만 문은 사정없이 닫혔다. 아기의 팔이 끼일 뻔했다. 아니, 예쁘고 귀여운데 왜 문은 안 잡아주는 거야? 아이는 사랑스럽지만 내가 챙겨야 할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기가 막혔다. 

 

파트너와 필요한 것을 사고는 집에 가자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였다. 한 노년 여성이 유아차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얼마나 되었느냐고 묻기에 두 달 되었다고 하니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정말로 과장하지 않고 ‘뭐 이런 갓난쟁이를 데리고 나온 미친 사람들이 있어?’라고 말하는 얼굴이었다. 그는 아이와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제야 파트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껏 쏟아지는 말들과 반응을 관심과 사랑의 과도한 표현이라고 해석했는데 아니라고. 이건 무례한 거라고. 

 

일련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 밖에 나가지 않기를 택했다. 산모의 몸을 추스르고 아이를 감염의 위험에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의 없고 날 선 말들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조금 슬퍼졌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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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보라 (영화감독, 작가)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고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를 오가며 자랐다.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며 서로 다른 세계들을 연결하면서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책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등이 있고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기억의 전쟁〉 등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