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은 최근 장편소설로는 5년 만에 『높고 푸른 사다리』를 썼다. 이날 북콘서트는 자연스레 『높고 푸른 사다리』를 화제로 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1부는 공지영 작가와 최재봉 작가의 대담이, 2부는 독자로부터 받은 질문에 그녀가 답하는 시간이었다.
믿는 종교와 상관 없이 누구나 뜻깊게 읽을 수 있는 소설
한 가톨릭 젊은 수사의 사랑과 방황을 그린 이 소설은 실재하는 공간과 실화에 바탕을 둔다. 소설은 크게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적으로 서술된다. W시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한 축이라면, 나머지 한 축은 한국전쟁이다. 각각 경북 왜관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과 마리너스 수사가 소설의 실제 모델이다.
공지영은 이 작품을 이미 7~8년 전에 구상했다고 한다. 마리너스 수사에 관한 자료를 우연히 발견하면서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2011년에 왜관 수도원을 찾았다. 그리고 한겨레에 6개월 연재를 한 뒤 마침내 책으로도 나왔다. 이틀 만에 11만 부를 판매하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처럼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배경에는 개성적인 인물이 있다.
소설에는 ‘미, 안, 요’라 불리는 젊은 수사 3명이 등장한다. 잘생긴 외모에 지적인 미카엘, 마음이 따뜻한 안젤로, 소설 속 화자로 모범생이었으나 소희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요한. 주인공을 젊은 수사로 설정한 이유를 묻자, 그녀는 “방황, 죽음, 고통, 이별, 사랑 등에 관한 근원적 질문에 답하려는 순수한 영혼이 겪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며 “좀 더 원형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마련한 장치라고 답했다. 덧붙여 세 사람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인물은 안젤로이며, 그 이유로 무슨 일을 해도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좋다고 말했다.
‘높고 푸른 사다리’라는 제목은 그리스도교와 밀접하다. 사다리는 기독교 문화권에는 익숙한 개념이다. 성서에 등장하는 야곱의 사다리는 지상에서 하늘에 이르는 통로다. 사다리 앞에 놓은 ‘높고 푸른’이라는 수식어는 ‘쉽게 도달할 수 없다’는 뜻을 담았다. 제목에서부터 기독교 영향이 강하게 베인 작품이나, 이 소설은 신자가 아닌 사람도 읽을 수 있다. 실제로 최근 그녀는 한 스님으로부터 “이 소설을 읽고 한 번 더 하늘을 보게 되었다”는 호평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소설가 공지영은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열렬히 신앙 활동을 하다 18년을 방황하고 다시 종교로 돌아갔다. 특히 사춘기에 신의 존재, 고통의 의미 등 종교적인 고민을 하며 ‘대체 왜?’라는 질문을 끝없이 던졌다고 한다. 『높고 푸른 사다리』를 쓰면서 그녀는 더는 ‘대체 왜?’라는 물음으로 고민하지는 않을 듯하다고 말했다. 소설을 쓰며 공지영은 스스로 치유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한다.
이렇듯 『높고 푸른 사다리』는 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 종교적인 소설이다. 비종교인이 절반인 대한민국에서 자칫 오해 살 만도 한 주제다. 이에 공지영은 타락한 종교가 문제라고 밝힌다. 그녀에 의하면, 타락한 교회는 천상만 이야기하고 진정한 교회는 지상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그녀의 종교관은 『의자 놀이』를 비롯하여 평소에 그녀가 민감한 사안에 관해 거침없이 밝힌 발언과 궤를 같이한다. 1부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차기작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공지영은 이처럼 답했다.
“(앞으로 낼) 소설거리가 20여 권 있다. 탐정 소설, 연작 동화, 우주에 관한 소설 등. 그런데 쌍용자동차 사태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작가가 상상력을 펼칠 수가 없다. 정치가 안정되면 작가가 유쾌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앞으로는 작가로서 더 쓰려고 한다.”
1부가 끝나고 초대손님인 이아립이 감성적인 목소리로 무대를 채웠다. 2부에서는 이날 참가자로부터 미리 받은 질문에 공지영 작가가 답했다.
초대손님 이아립
독자가 묻고 공지영이 답하다
청년기 고통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모든 고통에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며 견뎠다. 그냥 괴로워하는 것보다는 고통의 의미를 고민하며 겪는 게 도움이 되었다. 너무 많은 걸 잃었을 때가 있었다. 그때 오히려 감사가 쉬워지더라. 하루에 5가지씩 감사하고자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2가지도 벅찼다. 나중에는 전쟁이 안 나서 감사하다, 가스 보일러가 고장 나지 않아서 감사하다, 이런 식으로 감사할 일을 만들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니 어느 날, 가슴이 메면서 눈물이 나더라. 오늘만 해도 그렇다. 이렇게 추운 날, 여러분이 와 줘서 감사하다. 감사는 신앙과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
아름다운 피부 비결이 궁금하다.
정기적인 음주와 흡연. 담배를 끊어서 피부가 상하고 있다. (웃음)
안정되었으나 다소 지루한 일과 불안정하지만 도전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갈등 중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딸에게도 네 인생은 네가 살라고 말하고, 남의 인생에 감히 뭐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하다. 그럼에도 이야기하자면, 과연 이 시대 안정된 삶이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라. 어차피 안정된 삶이 없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물론 본인이 선택해야 일이다.
수능을 막 끝낸 고3이다. 뭘 해야 하나.
고3이 끝났을 때 참고서와 문제집을 다 버렸다. 그때 뭘 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책을 봤을 것이다. 고3 때도 책을 많이 읽었다. 제일 많이 남는 게 책이다. 남들이 말하는 양서만 읽을 필요는 없다. 재밌는 책 1권, 의미 있는 책 1권, 이런 식으로 읽어 나가라.
작가가 꿈이다. 딱 1권만 추천해 준다면.
작가가 되려면 책 1권으로 충분하지 않다. 웬만하면 남들이 좋다는 책은 모두 읽어라. 그래도 1권을 꼽으라면 공지영의 『높고 푸른 사다리』? (웃음)
글이 안 써질 때는 어떻게 하나?
마감 앞두고 글을 쓰는 편이라 쓸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안 써질 때는 책을 읽는다. 힘들겠지만, 왜 안 써지느냐에 관해서라도 써라. 블로그든 메모장이든 호흡이 긴 글을 쓰려고 노력해 보라. 머릿속에만 있으면 나이가 들면 들수록 다 날아가 버리니까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시대가 심상치 않다.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면?
최근에 『레미제라블』을 다시 읽었다. 혁명군은 당시에 얼마나 무서웠을까? 인류 역사에서 최초로 왕을 끌어내려 처단한 사람들이니까. 당시 혁명에 주변 나라가 우호적이지 않았고 혁명 뒤에 계급 사회를 다시 세우려 하지만 그럼에도 역사는 전진했다. 하루에 한 가지 작은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려 한다. (민주화에 관한) 기사를 읽고, 그에 반응하고, 때에 따라서 필요할 때 그곳에 있으려 한다.
아직도 가슴 떨릴 때가 있나?
소설 발간되기 전이다. 어떤 남자가 이런 설렘을 줄 수 있겠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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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
빛나는 열정
2013.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