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 ‘들국화’로 또다시 피어나다
한국 록 밴드의 전설이라 불리는 들국화가 무려 18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전설’이라는 칭호는 단지 시간의 축적만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죠. 밴드명과 동명인 이번 앨범에서는 그 동안 쌓아온 시간 속에서 형성된 ‘들국화다움’이 강렬하게 전해집니다. 이번 주에 소개해드릴 앨범, 들국화의 <들국화>입니다.
201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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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 <들국화>
대중의 쏠림현상이 유달리 심했던 2013년 한해였다. 일명 ‘까방권(까임 방지권)’이라는 인터넷 용어를 다시금 유행시킨 ‘조용필 센세이션’의 19집 와 싱글 트랙 「Bounce」 가 이 논란의 중심이었다. 단기적이었지만 앨범 품귀 현상도 있었고, 불법 복제까지 되고 있다는 소식은 음악 팬으로서 놀라운 사건이기도 했다. “오래 두고두고 들을 음반인가?”에 대한 갑론을박에 대해서 반대파의 의견도 만만치 않았으며, 이는 주관과 객관 사이에서 중심을 놓지 않아야 할 평단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수작과 범작의 판단에서 대중이 혼란을 거듭하는 사이, 앨범은 이미 ‘익숙함’이라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현재 는 각종 음악 전문 집단의 연말 결산에서도 무리 없이 ‘올해의 음반’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제는 들국화의 차례다. 대중은 물론 대다수의 평론가들은 이들의 새로운 작품을 향해 너나 할 것 없이 면류관을 바쳐 올리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신곡으로만 구성된 조용필의 앨범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점이 있다. 2장짜리 앨범이지만, 그중 한 장은 7곡만 채워져 있다. 5곡만이 새로운 작품이며 2곡은 리메이크다. 게다가 나머지 한 장은 기존 곡 재녹음이다. 보너스 트랙인 홀리스(The Hollies)의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와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의 「As tears go by」 는 CD를 산 사람들만 들을 수 있는 특권으로 제공되었다. 이는 요즘 음악 시장에 주를 이루는 미니 앨범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몇 집’도 아니다. 타이틀곡도, 그 흔한 앨범 이름도 없다. 그저 ‘들국화’라는 이름과 흑백의 들국화 사진만 걸려있을 뿐이다.
이 작품은 주찬권을 그리는 추모 앨범이자 재결성에 대한 기념 음반의 의미가 크다. 27년 만에 만나 발표한 작품이 스완송이라니 아이러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앨범의 감동이 더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전인권이 작사, 작곡한 머리 곡 「걷고, 걷고」 의 낭만은 모두를 마음으로 당긴다. 나이가 들어 이제는 숨을 고르는 듯 여유롭지만, 여전히 밝은 앞날을 향해 당당하게 ‘행진’하자는 한결같은 ‘들국화다움’을 전한다. 최성원 작곡과 전인권 작사의 「노래여 잠에서 깨라」 에서 전인권은 오로지 노래하며 세상과 소통하려 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일갈한다. 천둥과 같은 창법으로 1980년대 한국 록의 기지개를 떨치게 했던 전인권 특유의 날카로움과 무게감이 그대로 살아난 강렬한 록 넘버다.
조동진의 「겨울비」 와 김민기의 「친구」 에서 전달되는 절절한 감정은 故주찬권이 작곡하고 전인권이 작사한 「하나둘씩 떨어져」 와 겹쳐진다. 차디찬 ‘겨울비’가 내리는 날에 ‘친구’의 영전에 우리가 함께 만든 노래를 바친다. 먼저 떠나간 친구를 그리는 감정의 전이는 절묘하게 현재의 상황과 이어지기에 더욱 슬프게 들린다. 영원한 이별을 아쉬워하듯 먼저 떠난 벗이 수놓은 선율 위에 “어디에 있나 난 울고 있을 뿐”이라며 절규하는 전인권의 깊은 그리움은 그대로 우리의 가슴속에 새겨진다.
스토리텔러로서 전인권의 감각이 여전히 날이 서있음을 확인 시키는 작품은 「재채기」 다. 현재를 바라보는, 그리고 그와 동시대를 살아온 이들과 함께 기억을 공유하려는 회한의 기록이다. 이는 ‘언더그라운드’라는 태생적인 결연함으로 연결된다. 주류와 제도의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는 진정성으로 읽힌다. 정신적인 측면에서 당당함을 보여주는 이 이야기는 최성원 작사, 작곡의 「들국화로 必來」 로 이어진다. 다소곳하게 전하는 최성원의 이야기와 그와 함께 나지막하게 내뱉는 전인권의 이야기는 한 시대를 휘감았던 두 남자의 굳건한 다짐이자, 성찰이며 위로다.
두 번째 장에서는 새롭게 탄생한 들국화의 명곡들이 실렸다. <들국화 1집>(1985)의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사랑일 뿐이야」, 「매일 그대와」 가 선곡되었고, <들국화 2집>(1986)에 수록된 「또다시 크리스마스」, 「제발」 을 들을 수 있다. 두 멤버의 솔로 작품에서는 최성원의 <1집(이별이란 없는 거야)>(1988)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제주도의 푸른 밤」, 「이별이란 말은 없는거야」 와 전인권의 독집 <1집 파랑새>(1988)의 「사랑한 후에」 와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가 자리했다. <4집 전인권과 안싸우는 사람들>(2004)의 하이라이트 「걱정말아요 그대」 를 마지막 트랙으로 총 12트랙의 충실한 모음집을 꾸렸다.
발매 전 우려했던 내용은 다시 녹음한 결과물에 대한 것이었다. 이미 라이브 공연에서 수차례 선보였던 준수한 신곡과는 별개로 원곡의 재녹음은 실속 없는 작업이 될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기인지우(杞人之憂)였다. 2012년 재결성한 이후, 계속되어온 공연을 통해서 새로운 해석을 이뤘고 이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일류급 세션들의 합류 역시 완성도를 배가시킨 중요한 요소다. 기타리스트로 하찌, 함춘호, 한상원이 함께했고, 키보드에는 정원영, 김광민 등이 참여했다. 전체적으로 템포는 여유로워졌고, 소리는 풍성함을 더하며 명곡에 대한 새로운 감상을 전한다.
언론의 헌사에는 급작스러운 비보를 전한 故주찬권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당연히 신보이자 유작이 되었기에 이번 앨범이 가지는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비평이기 때문에 특정한 잣대를 운운하며 냉정한 평가를 해도 된다지만, 전설에 대한 맹목적인 예우 역시 비평이 가지는 순기능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기에 ‘전설의 귀한’을 향한 무한한 찬사는 비평가로서도, 더 나아가 팬으로서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는 “들국화이기에 무조건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늘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 작품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정립될 것이다. 이미 앨범 <들국화>는 우리의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순수한 감동’을 전하는 음악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동안의 작업들을 들춰내며 비교하는 작업들은 무의미하다. 故주찬권의 드러밍은 여전히 힘이 넘친다. 최성원은 멜로디 마에스트로의 면모를 재확인시켰다. 전인권의 절창은 더욱 깊고도 진한 향취를 갖췄다. 모두가 추억해왔고, 그리고 다시 듣고 싶었던 바로 그 모습 그대로다. 그들은 우리의 곁에서 늘 지금처럼 ‘국화’가 아닌 ‘들국화’로 피고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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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쏠림현상이 유달리 심했던 2013년 한해였다. 일명 ‘까방권(까임 방지권)’이라는 인터넷 용어를 다시금 유행시킨 ‘조용필 센세이션’의 19집
이 작품은 주찬권을 그리는 추모 앨범이자 재결성에 대한 기념 음반의 의미가 크다. 27년 만에 만나 발표한 작품이 스완송이라니 아이러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앨범의 감동이 더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전인권이 작사, 작곡한 머리 곡 「걷고, 걷고」 의 낭만은 모두를 마음으로 당긴다. 나이가 들어 이제는 숨을 고르는 듯 여유롭지만, 여전히 밝은 앞날을 향해 당당하게 ‘행진’하자는 한결같은 ‘들국화다움’을 전한다. 최성원 작곡과 전인권 작사의 「노래여 잠에서 깨라」 에서 전인권은 오로지 노래하며 세상과 소통하려 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일갈한다. 천둥과 같은 창법으로 1980년대 한국 록의 기지개를 떨치게 했던 전인권 특유의 날카로움과 무게감이 그대로 살아난 강렬한 록 넘버다.
조동진의 「겨울비」 와 김민기의 「친구」 에서 전달되는 절절한 감정은 故주찬권이 작곡하고 전인권이 작사한 「하나둘씩 떨어져」 와 겹쳐진다. 차디찬 ‘겨울비’가 내리는 날에 ‘친구’의 영전에 우리가 함께 만든 노래를 바친다. 먼저 떠나간 친구를 그리는 감정의 전이는 절묘하게 현재의 상황과 이어지기에 더욱 슬프게 들린다. 영원한 이별을 아쉬워하듯 먼저 떠난 벗이 수놓은 선율 위에 “어디에 있나 난 울고 있을 뿐”이라며 절규하는 전인권의 깊은 그리움은 그대로 우리의 가슴속에 새겨진다.
스토리텔러로서 전인권의 감각이 여전히 날이 서있음을 확인 시키는 작품은 「재채기」 다. 현재를 바라보는, 그리고 그와 동시대를 살아온 이들과 함께 기억을 공유하려는 회한의 기록이다. 이는 ‘언더그라운드’라는 태생적인 결연함으로 연결된다. 주류와 제도의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는 진정성으로 읽힌다. 정신적인 측면에서 당당함을 보여주는 이 이야기는 최성원 작사, 작곡의 「들국화로 必來」 로 이어진다. 다소곳하게 전하는 최성원의 이야기와 그와 함께 나지막하게 내뱉는 전인권의 이야기는 한 시대를 휘감았던 두 남자의 굳건한 다짐이자, 성찰이며 위로다.
두 번째 장에서는 새롭게 탄생한 들국화의 명곡들이 실렸다. <들국화 1집>(1985)의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사랑일 뿐이야」, 「매일 그대와」 가 선곡되었고, <들국화 2집>(1986)에 수록된 「또다시 크리스마스」, 「제발」 을 들을 수 있다. 두 멤버의 솔로 작품에서는 최성원의 <1집(이별이란 없는 거야)>(1988)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제주도의 푸른 밤」, 「이별이란 말은 없는거야」 와 전인권의 독집 <1집 파랑새>(1988)의 「사랑한 후에」 와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가 자리했다. <4집 전인권과 안싸우는 사람들>(2004)의 하이라이트 「걱정말아요 그대」 를 마지막 트랙으로 총 12트랙의 충실한 모음집을 꾸렸다.
발매 전 우려했던 내용은 다시 녹음한 결과물에 대한 것이었다. 이미 라이브 공연에서 수차례 선보였던 준수한 신곡과는 별개로 원곡의 재녹음은 실속 없는 작업이 될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기인지우(杞人之憂)였다. 2012년 재결성한 이후, 계속되어온 공연을 통해서 새로운 해석을 이뤘고 이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일류급 세션들의 합류 역시 완성도를 배가시킨 중요한 요소다. 기타리스트로 하찌, 함춘호, 한상원이 함께했고, 키보드에는 정원영, 김광민 등이 참여했다. 전체적으로 템포는 여유로워졌고, 소리는 풍성함을 더하며 명곡에 대한 새로운 감상을 전한다.
언론의 헌사에는 급작스러운 비보를 전한 故주찬권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당연히 신보이자 유작이 되었기에 이번 앨범이 가지는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비평이기 때문에 특정한 잣대를 운운하며 냉정한 평가를 해도 된다지만, 전설에 대한 맹목적인 예우 역시 비평이 가지는 순기능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기에 ‘전설의 귀한’을 향한 무한한 찬사는 비평가로서도, 더 나아가 팬으로서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는 “들국화이기에 무조건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늘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 작품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정립될 것이다. 이미 앨범 <들국화>는 우리의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순수한 감동’을 전하는 음악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동안의 작업들을 들춰내며 비교하는 작업들은 무의미하다. 故주찬권의 드러밍은 여전히 힘이 넘친다. 최성원은 멜로디 마에스트로의 면모를 재확인시켰다. 전인권의 절창은 더욱 깊고도 진한 향취를 갖췄다. 모두가 추억해왔고, 그리고 다시 듣고 싶었던 바로 그 모습 그대로다. 그들은 우리의 곁에서 늘 지금처럼 ‘국화’가 아닌 ‘들국화’로 피고 질 것이다.
글/ 신현태 (rocker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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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