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멀리서 봤을 땐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자면 비극에 가깝다.”
전설적인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이 남긴 말이다. 유명한 배우가 되기 이전의 그가, 지독한 가난과 불우한 환경 가운데서 혹독한 유년기와 무명시절을 거쳤다는 사실은 비교적 세간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에 속한다. 이러한 채플린의 개인적인 경험은 그가 출연하고 연출했던 초창기의 짤막한 코미디영화들에 중대한 모티브가 되기도 하였다. 채플린의 영화들이 큰 성공을 거두었던 것은 감독이자 배우로서 그가 지녔던 비범한 재능과 아이디어에 좌우된 바 크겠지만, 당시 유행하였던 슬랩스틱 코미디의 단순한 구조 가운데 자기 반영적인 비극의 요소를 곁들임으로써 당대 관객들과 공명하고자 한 채플린의 의도가 그 무엇보다 주효했다고 할 수 있다.
‘떠돌이’ 캐릭터로 상징되는 소시민과 그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유려하게 다루던 채플린은 경력의 중후기로 접어들게 되면서 점차 거시적 차원에서 시대와 세상을 바라보는 영화들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포드주의’로 대변되는 대량생산 방식으로 인한 개인의 소외를 다룬 <모던 타임즈>,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아데노이드 힝켈’의 독재를 풍자하며 당시 만연하던 전쟁의 광기를 노골적으로 비판한 <위대한 독재자>, 대공황이 터지고 나치즘이 태동하던 시기의 환멸적인 사회 분위기를 극한에 처한 인간의 심리와 결부시켜 그려낸 <살인광 시대> 등 현재까지도 걸작으로 칭송받는 이러한 영화들은 코미디가 지닌 사회 고발적 기능을 전면적으로 내세운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는 서두에서 언급했던 채플린의 전언처럼 코미디 장르가 지닌 양가적인 측면을 드러내는 훌륭한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현재까지도 전해지는 비극론과 지금은 소실되어 찾을 수 없는 희극에 관한 소고로 구성되어 있다. 희극 예찬론자로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를 보듯이 희극적 요소가 가미된 코미디 장르극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시간동안 사랑 받아온 예술의 한 형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채플린의 경우를 보듯이 빼어난 희극 작품은 그 저변에 비극의 파토스(Pathos)를 기반으로 삼는 경우가 흔한데, 이러한 정념은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한 극중 인물이 자아내는 정서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판소리, 탈춤, 풍물놀이 등 전통 연희나 마당극 등의 형태로 오랜 세월동안 희극을 향유해왔지만, 현대적 의미의 코미디가 대중들에게 친숙해진 것은 방송의 본격적인 보급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1967년 라디오 프로그램 <내 강산 좋을시고>를 통해 이름을 알린 장소팔-고춘자 콤비는 당시 일본에서 인기를 끌던 ‘라쿠고’를 차용한 만담 쇼로 본격적인 TV 시대 이전까지 많은 사랑을 받은 코미디언이었다. 그러나 방송사의 주력매체가 라디오에서 TV로 이행하게 되며 이러한 라디오 극은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1969년 당시 신생 방송사였던 MBC는 여의도에 둥지를 틀며 기존 거대 방송사인 TBC와의 경쟁구도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선보였는데 그 가운데 본격적인 홈코미디를 지향하며 제작된 <웃으면 복이 와요>는 60년대에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90년대 까지 많은 사랑을 받은 장수 프로그램에 속한다. 극단에서 활동하며 라디오 드라마와 영화 등에 출연하기도 하였던 희극배우 서영춘, 배삼룡, 구봉서 등은 TV로 활동영역을 옮긴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대표적인 스타였다.
“웃음 가운데 진실이 우러나오는 게 코미디입니다. 웃음을 끌어내는 희극과 눈물 흘리게 하는 비극은 종이 한 장 차이에요. 눈물을 알지 못하면 웃음 또한 알 수 없죠. 말초적으로만 웃기는 게 코미디가 아닙니다. 눈물 스민 웃음을 끌어내는 것이 진짜 코미디죠” -구봉서
‘막둥이 구봉서’로 널리 알려진 구봉서는 채플린 희극연기의 신봉론자였다. 가난한 구직자, 무능한 가장, 도시 빈민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그의 캐릭터는 60, 70년 대 한국사회를 드러내는 자화상에 가까웠고, 그의 연기를 보며 웃음 짓는 서민들은 한편으로 가슴 한 켠에 스며드는 스산한 감정과 마주하기도 하였다. 유신통치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부조리한 사회의 면면에 관해 제 목소리 하나 내기 힘들던 시대상을 두고 보자면 코미디란 일종의 자조 섞인 탄식이자 소급적 의미의 저항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저급하며 유치한 오락’이라는 꼬리표가 늘상 따라붙던 코미디 프로그램은 점차 드라마와 더불어 방송사의 대표적 컨텐츠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구봉서, 배삼룡, 서영춘으로 대표되는 1세대 코미디언 이후 방송계는 숱한 코미디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스타를 배출하게 된다. 70년대 이주일의 선풍적인 인기 이후 80년대 심형래, 김미화, 이경규, 김한국 등은 <일요일 밤의 대행진>, <청춘만세>, <유머 일번지>, <쇼 비디오 자키> 등 각 방송사의 인기 프로그램들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한국 코미디의 부흥을 이끌었다. 코미디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이 그 어느 때보다 거세게 제기된 것도 이 무렵이다. 과도한 몸짓이나 말장난에 가까운 반복적 어휘의 사용 등은 학부모를 위시한 시청자들의 불만을 자아내는 주된 요인이었고, 점차 말초적인 웃음을 자아내려는 당시 코미디 프로그램의 경향에 관해 내부적으로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던 형편이었다.
1987년 전두환 군부독재의 종식과 사회전반에 휘몰아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방송계의 코미디 프로그램에도 중대한 변화를 일으킨 계기가 되었다. 방송계 뿐만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어왔던 정치권과 기득세력에 대한 풍자. 한국의 TV 코미디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시사풍자 코미디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2부로 이어집니다.)
[관련 기사]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화, 문성근에서 김상중까지
-<1박 2일>,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실패한 슈스케 5, 그럼에도 박재정 박시환을 위한 변명
-<우리 동네 예체능> 21세기에 다시 등장한 농구
-왜 독서가 인간의 조건일까?
문성훈
평범한 독자 혹은 관객, 그리고 시청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