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어른에겐 추억을, 아이에겐 눈천사를
에즈라 잭 키츠의 그림책 『눈 오는 날』 은 아이들과 어른 모두에게 기쁨을 주는 책이다. 아이들에겐 눈오는 날 어떻게 즐겁게 놀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가이드북이며, 어른들에겐 내리는 눈에 그저 기뻐하고, 손을 호호 불면서도 눈을 뭉치며 즐거워하던 어린 시절로 데려다 주는 타임머신이다.
글ㆍ사진 최현미
201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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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진짜 깃털처럼 내리고 있었다. 가속도의 법칙을 깨고 공중에서 떨어지던 눈송이는 바람에 실려 위로 살짝 솟아올랐다가 다시 떨어졌다. 깃털 같은 눈이라는 표현을 쉽게 쓰고, 쉽게 듣곤 했지만 ‘깃털 같은 눈’이 진짜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믿을 수 없게) 나이 마흔 넘어 처음으로 확인했다. 주로 머리 위로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그것도 우산을 쓰고 발밑을 걱정하며 거리를 걷거나, 집이나 사무실에서 창밖으로 눈이 쏟아지는 광경을 보는 식의, 풀샷에만 익숙했진 탓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송이 하나 하나를, 한 동안 바라볼 여유가 없었던 모양이다. 절묘한 각도로 인해 정확하게 나를 향해 하늘거리며 떨어지는 깃털 같은 눈을 보면서, 바쁜 연말, 점심시간 그리고 예정된 시위로 막힌 도로 위, 꼼짝없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차 안에 있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시간과 생각들도 모두 순간 순간의 일들로 교통정체를 뚫고 사무실로 돌아와 예정된 일과 예상치 못한 일들을 처리하면서 고스란히 잊어버렸지만 퇴근 후 책꽂이 저 아래 꽂혀 있던 에즈라 잭 키츠의 그림책 『눈 오는 날』(1962) 이 눈에 들어온 것을 보면 깃털 같은 눈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예순 일곱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기 안의 아이를 불러내 따뜻하게 안아줬던 미국의 그림책 작가 에즈라 잭 키츠의 『눈 오는 날』 은 겨울이 되면 언제나 한 번씩 꺼내보는 책이다.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딸은 어렸을 때 눈오는 날이면 이 책을 펼쳐보고 주인공 꼬마 피터를 따라 눈 위에 난 자기 발자국을 확인하고, 나뭇가지에 쌓인 눈을 털고, 눈 위에 누워 눈 천사를 만들곤 했다. 이 그림책은 독학으로 그림공부를 한 뒤, 10여년정도 다른 사람의 책에 일러스트를 그리던 작가가 처음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키츠의 첫 그림책으로, 어린이책 분야의 최고 권위상인 칼데곳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온 세상이 눈을 덮힌 날, 아마도 4,5살쯤 돼 보이는 아이 피터는 문을 열고 눈 덮힌 세상으로 나간다. 막대기로 눈 위에 선을 길게 그어보고, 여러 모양의 발자국을 만들고, 나무 위에 쌓인 눈을 턴다. 눈사람을 만들고, 눈미끄럼도 타고, 눈 위에 누워 팔과 다리를 움직여 눈 천사도 만든다. 그리고 내일 또 갖고 놀기 위해 두 손 가득 눈을 뭉쳐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온다.

뉴욕 브룩클린 빈민가, 폴란드계 유태인 집안에서 태어난 키츠는 이 그림책에서 미국 그림책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아이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어느 날 ‘라이프’ 잡지에서 본 흑인 어린이 사진에서 가난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그림책에 어린 시절, 이웃에서 함께 살았던 흑인, 라틴계, 아시아계 어린이 등 당시 미국사회의 주변부 아이들을 등장시켜 그들이 친구를 만나 사귀고, 자연스럽게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담아냈다. 그 아이들에게 주는 위로이자, 그들과 함께 살았던 어린 자신에 대한 위안이었을 것이다.

『눈 오는 날』 역시 이 같은 작가의 따뜻한 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아직은 친구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꼬마 주인공 피터는 그림책 내내 혼자 눈을 갖고 논다. 하지만 다시 눈이 내린 다음날 아침을 담은 마지막 페이지에서 피터는 이제 친구 손을 잡고 눈 가득한 세상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별다른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이 책을 본 아이들은 눈 오는 날이면 피터를 따라 여러 눈 놀이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이런 재미있는 눈놀이를 넘어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나가야할 안정된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책이다. 자기 홀로 서고, 그 뒤에 친구를 만나, 함께 손을 잡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안정된 성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 그림책이 직접적으로는 아이들을 위한 책이지만 사실은 나이와 상관없이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 속 어린이, 자신도 모른 채 숨어있는 자기 안의 어린이를 불러온다는 점에서, 『눈 오는 날』 은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깊은 기쁨을 주는 책이다. 내리는 눈에 그저 기뻐하고, 손을 호호 불면서도 눈을 뭉치며 즐거워하던 자신의 어린 시절로 데려다 주기 때문이다.

눈이 오는 날, 이 그림책이라면 마음이 거칠어지고 심장에도 굳은 살이 박힌 우리들로 하여금 오랫동안 돌아보지 않았던 자기 안의 자신을, 자기안의 어린이를 불러내 마주보게 할 것이다. 눈 오는 날의 어린 나와 그 시간들을 다시 만나 안아주기를, 언제나 세상에 존재했지만 미처 알아보지 못한 ‘깃털 같은 눈’의 아름다움처럼, 바쁜 일상 속에서 알아보지 못한 삶의 보석을 꺼내 보기를.

한 줄 Tip
피터가 주인공인 에즈라 잭 키츠의 또 다른 그림책, 『피터의 의자』 『피터의 편지』 를 찾아 함께 읽으며 좋을 것이다.

함께 보면 좋은 책

와일드 웨더북

조 스코필드 & 피오나 댕크스 지음, 서남희 옮김 / 소년한길

부재가 ‘눈, 비, 바람과 함께 즐기는 재미있는 놀이 72가지’이다. 부재처럼 눈이 오고, 비 바람이 불 때, 밖으로 나가 자연을 재료삼아 놀 수 있는 다양한 놀이 방법을 자세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빗방물 맛보기, 진흙케이크 만들기, 나뭇잎 우산 만들기, 눈 천사, 얼음 촛불 만들기 등 쉽게 할 수 있는 다채로운 자연놀이들이 실려 있다. 학습지를 접고, 아이들을 집밖으로 자연으로!!!






[관련 기사]

-오랫동안 함께 한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이들을 위하여
-사랑한 사람과 이별한 뒤, 치유와 위로를 위한 그림책 『아모스와 보리스』
-이 눈이 그치면 나는 어떤 삶과 결별을 결심할 것인가
-간절히 쉬고 싶은 사람들에게 - 『마지막 휴양지』
-엄마, 언제 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에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에즈라 잭 키츠 #눈 오는 날 #칼데곳상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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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4.07.06

막대기로 눈 위에 선을 길게 그어보고, 여러 모양의 발자국을 만들고, 나무 위에 쌓인 눈을 턴다. 눈사람을 만들고, 눈미끄럼도 타고, 눈 위에 누워 팔과 다리를 움직여 눈 천사도 만든다라는 그림 사랑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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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미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1992년부터 일간지 기자로 일하고 있다. 딸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그림책 세계에 매료됐다. 그림책 『불할아버지』 어린이책 『알고 싶은 게 많은 꼬마 궁금이』 『1가지 이야기 100가지 상식』 등을 썼고,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 을 공저로 출간했다. 현재 문화일보 문화부에서 영화와 어린이ㆍ청소년책 담당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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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즈라 잭 키츠

그는 10년간 다른 작가의 책의 일러스트를 맡아왔다. 그러다가 1960년에 Pat Scherr와 함께 창작한 『My Dog is Lost』라는 그림책을 만들었고 , 이년 후 그는 처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눈 오는 날』(1962)로 미국에서 그 해 가장 뛰어난 그림 책에 주는 칼데콧 상을 받았다. 『눈 오는 날』은 흑인 꼬마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최초의 그림책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그림책에 주인공 피터의 생활을 소재로 피터가 성장하면서 겪는 내면과 생활의 이야기를 그리기 시작했다. 휘파람 불기를 연습하는 『휘파람을 불어요 (피터의 휘파람)』(1964), 새 여동생이 생긴 피터의 내면을 다룬 『피터의 의자』(1967), 여자친구 에이미와 피터의 이야기를 다룬 『피터의 편지』(1968), 칼데콧 아너상 수상작『피터의 안경』(1969) 이 그러하다. 그는 그 밖에도 『Hi, Cat!』(1970), 『Pet Show!』(1972), 『Skates!』(1973), 『Dreams』(1974), 『Louie』 (1975), 『The Trip』(1978), 『Maggie and the Pirate』(1979), 『Louie's Search』(1980), 『Regards to the Man in the Moon』(1981), 『Clementina's Cactus』(1982) 등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그가 흑인아이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을 인종 문제에 민감해서는 아니었다. 그는 1940년 5월 13일 Life 잡지에서 본 흑인 어린이의 사진을 계기로 자신의 가난했던 어린시절의 모습을 떠올리며, 혁신적인 화법으로 전형적인 서민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독자와의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그는 실제로 흑인 어린이의 사진을 자신의 작업실에 놓고, 두고두고 보며 옛 기억을 회상하며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그의 그림책은 흑인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것 뿐 아니라, 콜라주, 마블링 등 혁신적인 그림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어린이책 세계에 신세계를 열었다. 그의 작품은 그 동안의 일러스트레이션의 주재료였던 물감, 색연필에서 벗어나 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지, 포장지, 천 등을 재료로 사용하고, 『꿈꾸는 아이』에서는 물과 기름의 오묘한 조합을 사용하여, 주인공 로베르토의 경험과 상상에 다양함과 재미를 더한다. 그의 독특한 그림기법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주인공의 일상의 이야기에 색채효과를 더하면서 일상에 긴장감을 주고, 감동을 더하는 작용을 한다. 에즈라 잭 키츠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어린이책을 만드는 목적은 실제에서 환상까지 나의 모든 경험을 아이들과 나누기 위해서이다. 나는 그 아이가 누구든 자신을 중요한 존재로 느끼며,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그 아이가 누구든 자신을 중요한 존재로 느끼며,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1983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80여점의 일러스트와 24권의 이야기와 그림책 속에 가족의 삶과 아이들의 일상에서 오는 단순한 즐거움을 선사하며 아이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