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생학, 유전자 결정론 그리고 디스토피아
세상은 원래부터 평등하지 않다. 세상은 진보해서 평등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그런 세상은 없다. 유토피아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꿈을 꿀뿐이다.
글ㆍ사진 이동환 <친절한 과학책> 저자
201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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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를 통치하는 사람들은 절대적인 의미로 봤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미치광이도 아니다. 그들의 목표는 무정부상태가 아니라 사회적인 안정이다. 그들은 안정을 성취하기 위해서 과학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궁극적이고 인간적이며 참된 혁명적인 혁명을 수행한 것이다.”-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영화 <가타카> 주인공 제롬 머로우(에단 호크 분)는 토성 여행을 준비 중이다. 그가 우주 비행사가 된 것은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때문이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미래 사회는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제롬 머루우의 원래 이름은 빈센트 프리먼이었다. 사실 그는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은 그는 돈으로 유진 머로우의 우성 유전자를 ‘빌린다’. 여기서 ‘빌린다’는 의미는 유진 머로우의 소변, 머리카락, 피를 빌린다는 말이다. 소변이, 머리카락 그리고 피에서는 유전자를 채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그의 이름이 제롬 머로우가 되었으며, 꿈에 그리던 우주비행사가 된다. 좋은 유전자를 가진 유진 머로우의 이름을 한 번 들여다보자. ‘유진(Eugene)’은 ‘잘 태어난 Well-born’이란 뜻이다. 우생학의 어원은 Eugene에서 나온 Eugenics다. 유진이라는 이름에는 우생학의 그림자가 드려져 있다.



가운데는 주인공인 에단 호크, 오른쪽 주드 로, 왼쪽 우마 써먼.
에단 호크와 우머 써먼 사이에 DNA가 보인다. 이 DNA로 에단 호크는 우주 비행사가 될 수 있었다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는
유토피아(Utopia)인가 디스토피아(Dystopia)인가


다시 소설 『멋진 신세계』 로 돌아가 보자.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2540년이다. 1908년 헨리 포드가 자동차를 컨베어어를 이용해 자동 생산했던 때로부터 632년이 지난 시점이다. 1908년에는 자동차를 자동으로 생산했지만, 2540년에는 아이를 자동으로 생산한다.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만들어낸다. 요컨대 ‘과학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시험관에서 아이를 생산한다.

아이는 다섯 종류를 생산하는데, 가장 상위는 ‘알파’다. 알파는 최상의 지성을 갖추게 생산되는데, 미래에 지도층의 지위를 맡기 위해서다. 가장 아래에는 ‘엡실론’인데, 이들의 지성은 제거된다. 그렇게 해야만 나중에 그들이 3D에 해당하는 일을 할지라도 불만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어난 이후에도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자신의 일에 만족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지배자가 무엇을 요구하든 피지배계층은 불만 없이 복종하게 된다.

이런 사회는 어느 정도 안정화를 누릴 수 있다. 그리고 각각의 개인도 만족스럽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회를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을까? 멋진 신세계는 바로 디스토피아 세계였다. 이 책이 출간된 해는 1932년이다. 이 시대에 인공수정을 예견한 올더스 헉슬리는 천재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영화 <가타카 Gattaca, 1997>

영화가 시작되면 ‘가까운 미래의 어떤 날’이란 자막이 뜬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인공으로 유전자를 조작해 맞춤 아이를 생산하는 시대를 배경으로 그리고 있다. 주인공 빈센트 프리먼은 자연 임신으로 태어난다. 태어나자마자 받은 유전자 검사에 의하면 그는

-신경계질병에 걸릴 확률 60%
-우울증에 걸린 확률 42%
-집중력 장애에 걸릴 확률 89%
-심장질환에 걸릴 확률 99%

게다가 조기 사망이 가능하고, 예상수명은 30.2년에 불과하다.


유진 머로우(주드 로 분)는 자동차 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되었다.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에도 우주 비행사가 될 수 없었다.
그는 빈센트 프리맨(에단 호크 분)에게 유전자를 판다

이에 비해 빈센트 프리먼의 동생 안톤은 인공수정으로 태어난다. 나쁜 유전 인자를 제거한 상태에서 수정을 하고, 갈색 눈에 검은 머리, 좋은 피부를 가진 맞춤형 아이로 태어난다. 이러니 빈센트는 자라는 과정에서 동생보다 모든 면에서 뒤쳐진다. 하지만 그는 어릴 적부터 우주선 비행사를 꿈꾼다. 이런 빈센트에게 아버지는 “네가 우주선을 보는 것은 청소부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즉 우주비행사는 꿈도 꾸지 말고, 정말로 우주선이 보고 싶으면 우주선 회사에 청소부로 취직하는 게 적당하다고 말한다.

정말로 빈센트는 청소부로 열심히 일한다. 그러다 그는 우주선 발사회사인 ‘가타카’에 청소부 자리를 얻는다. 청소부로 일하던 중 유전자 블로커를 만나 유진 머로우의 유전자를 살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게 된다. 그는 더 이상 유전적으로 열등한 빈센트 프리먼이 아니라 우수한 제롬 머로우로 변신한다. 물론 운동도 열심히 해서 30.2세라던 예상 수명을 가볍게 뛰어 넘어 건강한 상태로 우주선비행사가 된다. 우주선 비행사가 된 그가 갈 곳은 토성의 위성 중 하나인 타이탄이었다.


영화 <가타카>의 포스터 중 하나.
우주선이 배출하는 불기둥이 DNA 모습이다

<가타카>가 말하는 세상은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였다. 요컨대 ‘유전자 결정론’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말이다. 그러나 빈센트는 유전자 결정론을 비웃듯이 유전자 보다는, 열심히 운동과 훈련을 통해 우주비행사가 된다. 이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자세한 내용을 궁금하면 영화를 보도록.



토성(Saturn)의 위성의 크기를 비교한 사진. 토성의 위성은 60개 정도로 알려졌다.
타이탄은 위성 중에 가장 크다. 타이탄의 지름은 5,150 ㎞에 달한다.
지구의 지름은 12,800 ㎞고 달은 3,476 ㎞로 타이탄은 달보다 크다.


우생학(Eugenics)

우생학이란 단어를 만든 사람은 찰스 다윈의 사촌 동생인 프랜시스 골턴이다. 골턴이 우생학에 빠진 이유는 과학의 이름으로 효율적이고 능률적인 사회를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다. 골턴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 세대에 걸쳐 거듭 현명한 결혼을 시키면 지능이 높은 인간 종을 충분히 말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골턴은 개나 소를 개량하듯이 인간을 개량하겠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좋은 인간을 만들어낸다면 다툼도, 전쟁도 없는 평화롭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골턴은 우생학을 통해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고 봤다.

우생학 신봉자들은 인간을 좋은 방향으로 개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능이 낮거나 정신적 질환이 있는 사람이나 범죄자는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들의 유전자가 살아남는다면 사회가 망가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우생학자들의 주장이 그냥 말로만으로 끝났다면 별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실제로 실행되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를 실행의 사례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다양한 환자와 법죄자를 강제로 불임시술을 법률로 제정한 최초의 국가는 미국이었다.

1907년 미국 인디애나 주에서 시작해 1950년까지 33개주에서 이런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는 미국뿐만이 아니었다. 스위스와 캐나다, 덴마크, 노르웨이와 독일, 핀란드와 스웨덴도 1920~1930년대에 유사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런 법률 제정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심리에는 유전적 결함과 질병의 확산을 막아줄 것이라는 기대가 숨어 있었다. 이 끔찍한 법률은 실제로 실행되었다.

미국에서는 1907년에서 1948년 사이에 매달 100여 명이 불임 시술을 받았다. 불임 시술을 받은 총 인원은 50,193명에 달했다. 불임 시술 대상자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결정되었다. 법원은 범죄자, 정신 질환자, 간질병 환자, 기형, 알코올 중독자, 당뇨병 환자, 일부 시각 장애자와 청각 장애자, 정신 지체자들에게 불임 시술 판결을 내렸다. 이런 법률의 최종 목적은 사회적으로 부적격한 사람들의 유전자가 유전되지 않도록 이들을 불임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지만 20세기 중반에도 이런 일이 전세계적으로 행해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와 같은 법률 제정에 앞장 선 사람들은 바로 우생학자였다. 이들의 목적은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요컨대 그들은 유토피아를 꿈꿨다. 유토피아는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다.


우생학의 짙은 그늘

말도 안 되는 법률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불임으로 만든 우생학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렇다면 지금은 우생학은 아주 사라졌을까?

‘아들, 키 185 센티미터, 아이큐 150, 건강하고 각종 유전적 질병 가능성 없음’

앞으로 신문에 이런 광고가 나올지도 모른다. 지금도 유전병에 대한 치료는 임신 시기에 검사할 수 있다. 그래서 유전병에 걸려 있으면 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유전자 치료를 넘어 인간의 능력을 향상시키려는 시술이 실행될 수 있다.

이런 시술에는 큰돈이 들어갈 터. 돈이 있다면 아이의 키와 지능, 외모까지도 바꿀 수 있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이렇게 우월한 지능과 외모를 가진 사람이 사는 세상이 유토피아일 수 있을까? 그런데 돈이 없다면 이런 맞춤 아이를 만들 수도 없다. 돈에 의해 불평등이 그대로 살아 남아있다. 그러나 세상에서 불평등을 없앨 수 있을까? 그런 세상에 유토피아일 것이다. 세상은 원래부터 평등하지 않다. 세상은 진보해서 평등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그런 세상은 없다. 유토피아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꿈을 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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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카 #Gattaca #우생학 #멋진 신세계 #에단 호크 #주드 로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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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ez321

2014.03.13

태어날 때 부터 나의 할 일과 운명이 정해져 있는 사회는 생각해보고 싶지 않네요...!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완벽한 사람들로만 이뤄진 사회가 과연 바람직할 모습일지도 궁금하구요. 우생학이라는 개념은 흥미롭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서운 개념인 것 같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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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롱

2014.03.11

항상 영화에서만 보던 태어날때부터 모든게 결정되는 그런세상을 먼 옛날부터 상상하고 그리고 있었네요. 우주선이 배출하는 불기둥 뿐만아니라 기사속 사진에 나선형으로 되어있는 계단도 왠지 DNA 모형을 보는 느낌입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연구되는 학문들이 기득권 층 뿐만 아니라 소외계층에게도 두루두루 적용되어 모두가 윤택하게 살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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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환 <친절한 과학책> 저자

북칼럼니스트. 1년에 100권 이상, 10년 넘게 읽었다. 새로운 사실을 알아나가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멈출 수가 없었다. 과학을 알면서 인문학과 문학을 바라보는 눈이 더욱 깊어졌다. 어느새 사람들은 그를 ‘과학 전문 북 칼럼니스트’라고 부르고 있었다. 2010년부터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예 책을 소개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 EBS, KBS, YTN 등의 책 관련 프로그램과 코너에 고정 출연하기 시작했다. 북 콘서트의 진행자로 무대에도 여러 번 섰다. 대학교와 도서관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했다. 그로서는 전혀 계획해 본 적 없는 새로운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