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한나 렌 저 | 엘리
한나 렌의 단편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은 이렇게 시작한다.
“찌는 듯한 더위에 잠이 깨, 커튼을 열고 창밖으로 눈 풍경을 보았다.” (9쪽)
이 소설은 동명의 단편집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의 첫 번째 수록작이다. 독자는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위 문장을 만난다. 어떤 독자는 바로 멈칫할지도 모른다. “찌는 듯한 더위”를 느끼는데 창밖에는 눈이 쌓여 있다니. 상식적으로 눈은 추울 때 내린다. 기온이 낮아야 수분이 응결하여 눈이 된다. 날이 더운데 눈이 쌓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한편 누구는 대수롭지 않게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지도 모른다. 바깥이 춥더라도 난방을 과하게 하면 실내는 더워진다. 더위 속에서 눈 구경하기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저 작가가 서술을 빠뜨렸을 뿐이라고 여기면 수긍하기가 쉽다. 하지만 소설을 제대로 읽는 길은 아니다.
SF 소설에 익숙하다면 한여름의 눈 풍경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한국 통계는 아니지만, SF 독자는 소설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경향을 보인다. ‘문자 그대로’는 SF 장르에서 빈번히 쓰이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그녀의 세계가 부서졌다”는 말은 보통 ‘충격을 받았다’는 관용적 표현으로 읽힌다. SF 소설에서는 문자 그대로 어떤 세계가 산산조각 났다는 표현일 수가 있다. 세계가 여럿 존재한다면 그중 하나쯤 파괴하거나 삭제하는 짓도 가능하지 않을까? 일반적인 은유, 농담, 관용적 표현은 SF에서 점유율이 낮다.
‘그녀’ 예시의 원조는 SF 작가이자 비평가인 새뮤얼 딜레이니다. 그의 말을 조금 변형하여 옮기자면, SF는 모든 가능한 우주에서 가능한 일을 다룬다. 리얼리즘처럼 우리 우주에서 가능한 일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리얼리즘을 SF의 하위 장르로 생각해 보는 관점을 제시한다. SF가 가정하는 현실은 대체로 독자의 현실을 초과한다. SF 소설은 우리가 아는 바와 다른 법칙이나 역사를 따르곤 한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현실에 흔히 있을 법한 내용은 SF라고 여기지 않는다.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도 SF답게 작중 세상을 현실과 착각하지 말라고 재빨리 못을 박는다. 주인공 ‘하즈키’는 정말로 한여름에 눈 구경을 한다. 하즈키는 일부러 “매일 아침 창밖에 눈이 쌓이게 한다.” (10쪽) 소설은 모두 허구지만, SF는 더욱 명백히 허구다. SF 소설은 비현실에 기반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비현실의 요소를 명확히 드러내려 한다. 간혹 ‘SF는 우주나 미래 이야기’라는 오해를 보는데, 우주나 미래는 SF에 등장하는 비현실 중 널리 알려진 형태에 불과하다.
덕분에 ‘SF는 작가가 마음대로 지어내도 된다’는 생각도 흔한 듯하다. 전형적이고 다소 유해한 오해다. 물론 SF 작가는 세상을 지어낸다. 물리법칙을 왜곡하고 역사를 다시 쓰며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를 만든다. SF에서는 현실을 재현할 필요가 없으므로 설정에 제약이 적다. 대신 SF에는 몇 가지 과제가 추가된다. 비현실을 사용하되 엉터리 마술로 보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마술은 언제나 속임수고, 관객도 마술사도 그 사실을 안다. 그러나 마술이 속임수에 기반한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관객은 속임수를 간파하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기보다 마술에 감탄하기를 바란다(언제나 예외는 있지만). 마술사는 관객이 마음 놓고 감탄하도록 연출에 공을 들인다. 속임수인 줄 알면서도 그럴듯하게 느끼도록 이끈다. 이를 위해 마술사는 최대한 관객의 주의를 흐트러뜨리고, 보조장치나 도구를 몰래 숨기고, 테마에 맞는 이야기를 곁들이기도 한다. 솜씨 좋은 마술사는 ‘마술처럼’ 놀라운 공연을 한다. 반면 속임수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마술은 기꺼이 감탄할 준비를 마친 관객조차 실망시킨다. 엉터리 마술이다.
다만 직관적으로 의미가 전달되는 마술과 달리, SF 소설의 과제는 훨씬 까다롭다. 소설이 현실 세계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으므로 독자는 작중의 세상을 잘 모른다. SF 소설은 시대가 서기 3천 년인지 근미래인지, 공간이 지구인지 알파 센타우리인지, 주인공이 인류인지 아닌지, 어떤 비현실이 뒤섞였는지 일일이 밝혀야 한다. 그렇다고 독자에게 소개하거나 설명하는 티를 내면 소설로서 재미가 없어진다. 덕분에 SF 장르에서는 소설의 내러티브를 전개하면서 넌지시 단서를 심는 기법이 발달했다. 두꺼운 책을 파내 권총을 숨기듯, 뇌물을 담을 때 서류가방보다 사과 상자를 사용하듯(너무 철 지난 표현일까?), 겉모습을 위장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는 맨 처음부터 독자에게 눈짓을 보낸다.
“침대 곁에 놓인 기분 조절 오르간의 자동 알람이 발산하는 경쾌하고 약한 전기 자극에 릭 데카드는 눈을 떴다. 깜짝 놀란 (이렇게 사전 통고도 없는 상태에서 곧바로 눈을 뜬다는 사실이 그는 매번 놀랍기만 했다) 그는 침대에서 나왔고, 색색의 잠옷 차림으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13쪽)
‘기분 조절 오르간’은 현실에 없다. 작중 세상에만 존재하는 물건이다. 당연히 독자는 이게 뭔지 미리 알지 못한다. 작가도 이를 사용해 봤을 리가 없다. 그런데 문장을 읽으면 ‘기분 조절 오르간’이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기분 조절’ ‘자동 알람’, ‘경쾌하고 약한 전기 자극’ 등이 단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단서는 뒤따르는 “매번 놀랍기만 했다”는 표현이다. 이 오르간은 주인공에게 일상적인 물건이다. 그는 오르간을 신통하게 여기기는 해도 그에 깜짝 놀라지는 않는다. ‘매번’ 놀랍다는 표현은 장면을 묘사하는 데 필수적이진 않다. 그러나 독자에게 정보를 준다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런 점에서 SF 소설은 퍼즐 게임과 유사한 과제를 공유한다. 소설을/게임을 시작한 사람은 작중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사전지식이 많을 수는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하나하나 직접 진행하며 이해해야 한다. 창작자는 독자/플레이어가 낯선 세상에 차근차근 적응하도록 주의 깊게 단서를 배치하고 각 부분의 난이도를 조절한다. 첫 부분은 대체로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작품이 무엇을 시도하는지, 어떻게 흐를지 슬쩍 맛보여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게임이 튜토리얼 혹은 연습 게임을 활용한다면, SF 소설은 처음부터 대뜸 괴상한 단어를 던지는 방법을 종종 사용한다. 이로써 SF 소설이라고 티를 내는 동시에 독자의 궁금증을 자극하고, 작품의 핵심 줄기를 선전한다. 다음은 몇몇 소설의 첫 문장으로, 내용이 수상쩍은 한편으로 제목과 어찌나 착 붙는지 살펴볼 만하다.
“75세 생일에 나는 두 가지 일을 했다. 아내의 무덤에 들렀고, 군에 입대했다.” (존 스칼지, 『노인의 전쟁』, 8쪽)
“도로는 자신의 종자(seed) 마을 한 곳을 수습(收拾)하러 떠난 여행길에서 우연히 그녀를 발견했다.” (옥타비아 버틀러, 『와일드 시드』, 16쪽)
“2005년 9월 8일이었어. 오후 3시 무렵, 가을이어야 마땅한 날이었지만 여전히 덥고 습했어. 고객과 나는 숙주가 사는 벽산아파트에서 중동 홈플러스까지 걸어왔기 때문에 둘 다 조금씩 땀을 흘리고 있었지.” (듀나, 『대리전』, 9쪽)
SF다운 문장이 소설로서 좋은 문장이라는 뜻은 아니다. 둘은 범주가 다르다. 앤디 위어가 쓴 『마션』은 “아무래도 좆됐다.”라는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마션』은 물론 SF 소설이지만, 이 문장은 SF가 아닌 자리에도 어울린다. 좋은 문장인지와 별개로 장르 특유의 면모를 보여준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좋은 문장, 좋은 소설이라도 SF 장르로서 탁월하거나 매력적이라는 보장은 없다. 두 범주는 거리가 멀지 않고 실질적으로는 상당 부분 겹치지만 결코 동일하지 않다. 좋은 SF 소설은 당연히 좋은 소설이어야 한다. 그러면서 좋은 SF여야 한다. ‘좋은 소설’이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 만큼 ‘좋은 SF’도 정의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여기에는 하나의 장르를 이룰 만큼의 매력이 있다. 초심자를 가로막는 진입장벽 같으면서도 애호가를 신나게 만드는, 형용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쾌감이다.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을 포함하여, 한나 렌의 단편집은 SF로서 눈길을 끈다.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은 첫 문턱부터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상황을 이해하려면 조금 시간이 걸린다. 작중에서는 시각이나 촉각 등에 더해 ‘승각’이 등장한다. 무한한 평행 세계의 자신을 느끼는 감각이다. 세계가 무한히 존재하므로 모든 가능성은 어디선가 반드시 실현된다. 사람들은 승각을 이용해 자유자재로 세계를 체험한다. 원하는 세계에 집중했다가 내키는 대로 떠난다. 하즈키는 교실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집에 틀어박혀 좋아하는 게임을 하면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각기 다른 세계에서, 한꺼번에.
하즈키의 아버지는 사망했지만, 다른 곳에서는 멀쩡히 살아 있다. 아버지의 죽음은 슬퍼할 일이 아니다. 승각을 지닌 사람은 어떤 위험이든 유유히 회피할 수 있다.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다른 세계에 집중하면 그만이다. 오히려 특이한 풍경을 구경하려고 일부러 재난 상황을 찾아가기도 한다. 이들의 삶은 굴곡 없이 매끄럽다. 독자는 소설에 준비된 단서를 하나하나 모으며 퍼즐을 맞춘다. 소설 속 ‘매끄러운 세계’의 일상생활과 사고방식에 익숙해진다. 그리하여 결말을 맞이할 준비를 갖춘다.
소설의 결말은, 말하자면 보스전이다. 퍼즐이 점점 복잡해지듯 좋은 SF 소설은 작중의 비현실을 독자가 예기치 못한 지점까지 심화시키곤 한다. 이것이 앞부분을 통과한 독자에게 선사하는 마지막 시험이고, 작품이 보유한 낯선 세상이 제일 매혹적으로 펼쳐지는 부분이다.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의 경우 하즈키의 달리기 장면에 그간 응축한 힘을 쏟아붓는다. 이쪽 세계에서 하즈키는 학교 운동장에서 평범하게 달리기 시합을 벌이는 중이다. 동시에 모든 가능한 세계를 어지러이 밟으며 가능성의 극한을 향해 달리는 중이다. 그리고 마침내 전혀 알지 못했던 영역에 도달한다. 승각이 없는 세상, 삶의 굴곡을 회피하지 못하고 모조리 견뎌야 하는, 매끄러운 세계의 주민으로서는 처음 겪는 위태로운 세상이다. 그래도 하즈키는 자신이 모르는 세상에 남기로 선택한다. 하즈키의 달리기는 작중에서 가장 아득하고 낯설고 아름답다. 정교한 마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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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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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완선(SF 평론가)
책과 글쓰기와 장르문학에 관한 글을 쓴다. SF의 재미와 함께, 인간의 존엄성 및 사회적 평등과 문학의 연결 고리에 관심이 있다. 지은 책으로 『SF와 함께라면 어디든: 키워드로 여행하는 SF 세계』 『우리는 SF를 좋아해: 오늘을 쓰는 한국의 SF 작가 인터뷰집』 『SF는 정말 끝내주는데』가 있고, 『취미가』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를 함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