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지배하는 자
축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바로, 골이다. 정확하게는 상대팀보다 많은 골을 넣고 적은 골을 먹히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피치 위에 11명의 선수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치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효과적인 공격과 수비를 할 지는 팀의 최우선 과제가 된다. 이것이 축구 전술과 포메이션의 시작이다.
201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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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열렬한 사랑을 독차지하는 스포츠가 등장했다. 축구? 야구? 농구? 모두 아니다. 그 주인공은 훗날 ‘e스포츠’라고 불리게 된 ‘스타크래프트’였다. 물론, 게임 자체의 재미도 있었지만, ‘스타 리그’의 탄생은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세상에 알렸고, 이들의 플레이는 TV의 전파를 타며 스타크래프트는 전국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두 명의 불세출의 게이머를 만나게 된다.
‘테란의 황제’ 임요환과 ‘폭풍 저그’ 홍진호. 경이로운 컨트롤과 상대의 허를 찌르는 임요환의 플레이, 별명대로 폭풍처럼 끊임없이 몰아치는 홍진호의 플레이는 우리들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 둘이 서로를 상대하는 날은 '임진록'이라 불리우며, 수없이 많은 명경기를 낳았다. 임요환 못지 않은 실력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홍진호는 그의 그림자에 가려 단 한 번도 우승해보지 못하고 영원히 2인자에 머문 것도 나름 드라마라면 드라마랄까. 이 두 사람의 플레이를 보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일꾼을 뽑아 자원을 캐고 병력을 생산하여 상대방을 공격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어떻게 해야 상대보다 더 빠르게 많은 병력을 모으고, 효율적으로 공격하며,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 수 있을 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게임은 어느새 단순한 마우스 클릭이 아니라 ‘전략’의 승부가 된다.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전략’을 수립하는 것은 어느 분야에서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물며 축구도 마찬가지. 축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바로, 골이다. 정확하게는 상대팀보다 많은 골을 넣고 적은 골을 먹히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피치 위에 11명의 선수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치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효과적인 공격과 수비를 할 지는 팀의 최우선 과제가 된다. 이것이 축구 전술과 포메이션의 시작이다. 140여년의 축구 역사가 이어져오는 동안 W-M 포메이션, 4-2-4/카테나치오, 네덜란드의 토탈 풋볼 등 여러 전술들이 각각 한 시대를 풍미한 후 다른 전술로 대체되었다. 이 긴 역사를 일일히 나열하기에는 여백이 충분하지 않아 옮기지는 않는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처럼) 다만, 이번 주에는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관심 가질법한 ‘현대 축구 전술의 기초’를 맛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하자.
수많은 축구 전술들이 있지만 그 지향점은 하나로 압축된다. ‘공간’. 100년이 넘는 전술의 역사라는 것도 결국 골을 넣기 위해 효율적으로 공간을 장악하려는 시도였고, 이후 등장하는 다음 전술은 이전의 시도에서 노출된 공간을 방어하고 대신 새로운 방식으로 상대의 공간을 장악하려는 도전이다. 물리적으로 설명하자면, 피치 위에서 어느 한 쪽의 공간이 사라지면 다른 쪽에 새로운 공간이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11명이 모든 공간을 커버하기에 축구 경기장은 너무 넓기 때문이다. 즉, 축구 전술의 변천사는 공간을 지배하기 위한 끝없는 진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재미있는 점은 몇 가지 전술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주기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를 반복해왔다.) 그리고 축구에서 공간의 지배에 관한 대표적인 두 가지의 철학이 있다. 아리고 사키의 압박(Pressing)과 요한 크루이프의 소유(Possession)이다.
1970년대에 전원 공격, 전원 수비로 대변되는 네덜란드의 ‘토탈 풋볼’이 등장하여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감독으로 있던 아리고 사키에게도 큰 감명을 주게 된다. 상대가 공을 잡으면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압박하는 ‘토탈 풋볼’은 사키가 원했던 공격 축구와도 일맥 상통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전원이 공격과 수비에 모두 가담하는지라 체력적인 소모가 많았고, 자칫 팀의 밸런스가 무너지기도 쉬웠다. 그래서 빠르고 효율적으로 압박하되 동시에 팀의 밸런스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그가 생각해낸 것은, 선수들을 피치 위에 고르게 분포시키고 각자에게 책임 구역을 할당하여 그 공간을 지배하도록 한 것이었다. 촘촘하게 선수들을 배치한 후 앞으로 전진시켜 수비라인을 형성함으로써, 상대의 공간을 줄이고 빠르고 강하게 압박하여 볼을 뺏어내는 것. 이러한 철학이 그대로 녹아들어있는 4-4-2 포메이션은 현대 축구 전술의 바탕이 되었고, 현재까지도 사키의 개념은 수많은 감독들에게 계승되고 발전되어 내려오고 있다.
현대 축구에서 아리고 사키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명의 인물은 요한 크루이프이다. 그는 아리고 사키가 감명을 받았던 ‘토탈 풋볼’을 선수로서 직접 뛰었던 인물이었다. 당연히 그의 철학도 ‘토탈 풋볼’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지만, 사키의 것과는 조금 달랐다. 크루이프의 한 마디 말은 자신의 철학을 간결하게 설명해준다. “볼을 소유하고 있다면, 수비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볼은 딱 하나이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볼을 뺏으러 가기보다는 애초에 뺏기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상대의 압박 속도보다 빠르게 짧은 패스를 주고 받는다면, 압박에서 벗어나 볼을 소유를 유지할 수 있고, 이는 상대에게 공격당하지 않고 오직 공격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장 기본이 되는 짧은 패스를 물흐르듯 주고 받기 위해 선수들의 삼각형 형태의 위치를 유지하는 것을 가장 중요시했다. 계속 삼각형을 유지하며 움직이고 패스를 주고받으며 점유율을 높이는 것. 이것은 현대 바르셀로나의 철학 그 자체가 되었다.
이후의 축구 감독들은 이 두 사람의 철학을 나름대로 받아들이고 각색하여 각자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물론, 감독의 스타일에 따라 똑같은 구성의 포메이션도 완전히 다른 색채를 띌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되겠다. 일반적으로 축구 전술을 이야기하면 선수들의 배치를 의미하는 숫자의 나열을 떠올리곤 하는데, 사실은 숫자는 그저 숫자일 뿐이다. 밑바탕이 되는 기본적인 형태일 뿐, 이 팀이 공격적인지 혹은 수비적인지, 실제로 각각의 포지션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강점과 약점이 어디인지 무엇도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주요 포메이션들의 기본 형태를 이해함으로써 본래 지니고 있는 강점과 약점을 감독들이 어떻게 보완하고 극대화하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 골키퍼를 제외하고 10명의 선수를 배치하는 방식에 따라 수많은 포메이션이 만들어질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현대 축구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는 세 가지 포메이션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하자.
아르센 벵거 “4-4-2 포메이션은 축구 피치의 크기에 가장 딱 적합한 포메이션이다. 그 이유는 2명의 중앙 수비수, 2명의 중앙 미드필더, 2명의 스트라이커가 자연스럽게 피치의 60%를 커버한다. 그리고 양쪽 측면의 2명의 선수는 각각 40%의 피치를 커버한다. 그러므로 논리적으로, 수학적으로 축구 피치를 지배하는데 최고의 포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4명의 수비수, 4명의 미드필더, 2명의 공격수로 이루어진 4-4-2 포메이션은, 피치 위에 고르게 선수들을 분포하여 책임 공간을 나눈 형태였기에 아리고 사키는 4-4-2를 두고 ‘가장 이상적인 공간 장악이 가능한 포메이션’이라고도 표현했다. 공격수부터 수비수의 사이의 간격을 25m로 유지한 상태에서 수비라인을 위로 끌어올려 뒷공간은 오프사이드 트랩으로 잡아내고, 상대방의 유효 공간을 좁혀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 있었다. 팀 전체가 하나의 유닛으로서 움직이며 빠르게 압박해서 볼을 되찾으면 바로 역습으로 이어진다. 팀이 공을 얼마나 오래 소유하고 있는 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한 명이 앞으로 전진하면 나머지 셋이 빈 공간을 향해 함께 전진하고 커버하며 끊임없이 간격을 유지하는 능동적인 공간 압박이 사키의 4-4-2 였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 2명의 중앙 미드필더는 수비시에 후방의 수비 라인을 보호하고, 공격시에 공격수들에게 볼을 배급하며 간격을 유지할 수 있는 공수 만능형의 BTB(박스-투-박스) 미드필더가 포진되어야 했고, 측면에는 직선적인 타입의 클래식 스타일 윙어가 위치하여 공격시에는 앞으로 전진해 중앙의 스트라이커들에게 집중된 수비를 분산시켜야 했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4-4-2의 경우이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스날식 패스 & 무브)
아주 가까운 예로, 아르센 벵거가 구사하는 아스날의 4-4-2는 일반적인 4-4-2와 달랐다. 일자의 미드필드 구성에 따른 단조로운 빌드업과 측면 돌파에 의존하는 공격 방식을 ‘패스 앤 무브’로 해소한 것이었다. 앞서 요한 크루이프는 짧은 패스를 연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가장 중요시한 것이 삼각형이라고 했는데 4-4-2는 선수들이 일렬로 나열된 형태라 삼각형이 나오기 어렵다. 아르센 벵거가 이를 풀어낸 방식은 다음과 같다. 선수 A가 옆에 있는 선수 B에게 패스한 후 앞으로 전진하고, 선수 B는 볼을 받아 앞으로 전진한 선수 A에게 패스하면서 자신도 전진. 이런 방식으로 임의로 삼각형 형태를 만들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즉, ‘패스를 한 후에 리턴 패스를 받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패스 앤 무브’의 핵심이었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존 4-4-2 포지션과는 다른 능력을 지닌 선수들을 필요로 했다.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했고, 패스의 질도 좋아야 했으며, 이는 측면에 위치한 선수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7-08 시즌, 아스날의 양 측면에 로시츠키, 흘렙과 같은 중앙 지향적인 공격형 미드필더들이 배치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2005년, 4-4-2 포메이션이 주류를 이루던 축구계의 패러다임에 큰 변화가 생기는 일이 발생한다. 바로, 오프사이드 룰의 완화였다. 작은 변화였지만 그 여파는 컸다. 기본적으로 높은 수비라인을 형성하던 기존의 4-4-2 포메이션은 뒷공간에 대한 부담으로 공수의 간격이 벌어지게 되었고 자연스레 개개인이 커버해야하는 공간도 늘어났다. 이는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의 3선 사이사이의 빈공간이 넓어지고 상대팀이 파고들기가 더욱 쉬워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하여 기존의 3선에서 4선 형태로의 포메이션 변화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또한, 기존 전술은 압박을 기초로 하고 있었기에 선수들의 볼 경합이 잦았고 피지컬이 중요시되고 있었다. 그러나 오프사이드 룰 개정 이후, 공간이 늘어나면서 선수간의 경합이 줄어들고 메시, 사비, 이니에스타와 같이 작고 테크닉이 뛰어난 선수들이 만개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하여 흐름에 맞게 기존 4-4-2의 약점을 보완하여 나타난 것이 4-2-3-1 포메이션이었다. 스페인에서는 2000년대부터 이미 많은 팀들이 사용하고 있었고, 특히 2010 월드컵을 기점으로 현대 축구팀의 전술적 주류가 4-4-2에서 4-2-3-1로 완전히 넘어갔다. (포메이션 상으로 큰 변화같지만 사실상 4-4-2의 투톱 중 한 명이 아래로 내려와서 세컨탑/플레이메이커가 되고 양 윙어가 앞으로 전진하면 4-2-3-1이 된다.)
4-2-3-1 포메이션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4-4-2 포메이션의 중앙에서 공격과 수비를 함께 도맡았던 BTB 미드필더가 사라지고 1명의 공격형 미드필더와 2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역할이 분담된 것이다. 특히 수비형 미드필더들은 미드필더와 포백 사이의 공간에 위치하면서 상대팀의 세컨탑/공격형 미드필더의 공격을 무마시켰다. 여기서도 한 단계 더 분화하여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은 오직 수비만을 전담하는 ‘마케렐레 롤’을 소화하고, 다른 한 명은 사비 알론소와 같이 후방 플레이메이커로서 팀에 패스를 배급하는 역할을 했다. 이렇게 피치의 중앙은 두터워지면서 안정되었지만, 그것은 그만큼 측면에 공간이 생긴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4-2-3-1은 4-4-2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상대 풀백의 전진을 측면 미드필더를 전면 배치함으로써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었지만, 그만큼 우리팀 풀백과의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고 그 공간을 메꾸기 위해 풀백의 전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정리하자면, 4-2-3-1 포메이션이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 상대 풀백과 경합하는 측면 미드필더의 수비력과 빈 공간으로 전진하는 풀백의 공격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둘러볼 전술은 4-3-3 포메이션이다. 언뜻 중앙의 3명의 미드필더가 정삼각형 형태가 아닌 역삼각형의 형태로 배치된 것을 제외하면 4-2-3-1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4-3-3 포메이션의 원형은 1960~70년대 4명의 공격수를 활용했던 4-2-4 포메이션에서 유래된 것으로 4-2-3-1과는 진화 과정이 다르다. 그러므로 4-3-3 포메이션 양측면의 윙포워드는 순수한 포워드에 가까운 선수들이 배치되었고, 윙어 타입의 선수와 섞여서 비대칭적인 형태를 하고 있었다.
현대에 들어 4-4-2가 기본 포메이션으로 자리 잡았고, 4-3-3은 3명의 공격수가 전진해있었기에 수비시에 미드필드에서의 수적 열세로 인해 잘 쓰이지 않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최전방 공격수들의 적극적인 압박이 수반되어 상대가 공격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해야했다. 포메이션의 구성상 삼각형의 형태가 쉽게 만들어지는 덕택에 패스 플레이를 하기에도 좋고 역으로 공격시에는 수적 우위를 점할 수도 있었지만, 구현하기가 어려운 전술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조세 무리뉴와 펩 과르디올라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단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극대화하여 새로운 4-3-3으로 재탄생되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각자 다른 포메이션을 진화시킨 형태가 둘다 4-3-3이었다고 보는 것이 더욱 옳다. 무리뉴는 4-4-2 다이아몬드 / 4-3-1-2의 포메이션을 4-3-3으로 발전시켰고, 과르디올라는 4-2-3-1에서 측면 미드필더를 앞으로 더 전진시키고 플레이메이커를 밑으로 내려서 4-3-3을 형성했다.)
(4-3-3 vs 4-4-2)
조세 무리뉴 “나에게 클로드 마케렐레가 밑에 있고 다른 두 명의 선수로 구성된 삼각형의 미드필드가 있다면, 나는 나란히 중앙 미드필더들이 배치된 순수한 4-4-2를 상대로 언제나 이점을 지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언제나 한 명의 선수가 더 많기 때문이다. 일단 미드필더와 공격수들 중간에 있는 마케렐레로부터 시작된다. 만약 아무도 그에게 접근하지 않는다면 그는 피치 전체를 볼 수 있고, 그럴 시간도 있다. 반대로, 누가 그에게 압박해들어오고 상대팀의 윙어가 이를 돕기 위해 안쪽으로 들어온다면, 그것은 우리의 윙어 혹은 풀백에게 측면 공간이 열린다는 의미이다. 4-4-2는 이러한 일들을 막을 수 없다.”
2003-04 시즌, 아스날은 리그에서 무패 우승을 달성했지만, 바로 다음 시즌에 조세 무리뉴의 첼시는 숨막힐 듯한 4-3-3을 앞세워 단 1패를 기록하며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현대 축구에서 미드필드는 가장 중요한 격전지였고 주변 선수들의 지원 없이는 기본적으로 중앙에 미드필더 2명을 두고 있는 4-4-2가 3명을 둔 4-3-3과 4-2-3-1에 상대적으로 열세였다. 하지만 4-3-3에도 수비적인 약점이 분명히 존재했고 4-4-2가 측면을 통해 공략할 여지가 있었으나 무리뉴는 이를 기막히게 극복해냈다. 그 비결은 공격시에는 4-3-3, 수비시에는 4-5-1로 포메이션을 변형하는 것이었다. 볼을 잃으면 양쪽 측면의 윙포워드를 수비라인까지 끌어내려 안정적인 수비에 집중하다가 공세가 전환되면 윙포워드의 빠른 역습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4-3-3은 공격력과 수비력, 중원 압박과 삼각형 형태를 두루 갖춘 약점없는 전술로 보였다. 문제는, 이러한 전술을 수행하기 위해 공격에 능하고, 미드필더도 되면서, 역습시에는 드리블을 하고, 공수 전환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는 체력까지 갖춘 윙포워드를 여러명 필요로 했다. 홀로 상대 센터백을 압박하며 필요할 때마다 원샷 원킬을 해주는 스트라이커도 필요했고, 중앙에서도 기동력과 공수 밸런스를 두루 갖춘 미드필더들도 필요했다. 과연 얼마나 많은 팀들이 이런 선수들을 다 구해서 무리뉴식 4-3-3을 쓸 수 있을까?
펩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는 무리뉴와 다른 방식으로 4-3-3 포메이션을 접근했다. 기본적으로 수비 라인을 매우 높은 곳까지 올린 상태에서 공격시에는 풀백이 적극적으로 전진하다가, 수비시에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밑으로 내려와 세 번째 센터백으로 활용되었다. 중앙의 미드필더들은 패스 능력을 바탕으로 점유율 축구를 하다가 볼을 빼앗기면 바로 압박하여 다시 볼을 되찾아오는 극단적으로 공격적인 4-3-3을 운용했다. 이 역시도 완벽한 수비 라인 컨트롤과 끊임없이 패스를 주고받을 수 있는 개개인의 테크닉과 기동력이 바탕에 깔려있어야 했다. 형태상으로는 똑같은 4-3-3 포메이션이었지만 바르셀로나는 첼시와 같은 선수비 후역습이 아니라 4-3-3과 3-4-3을 혼용하며 삼각형 형태를 끊임없이 만들고 점유율을 높이 가져가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
(높은 볼 점유율이 반드시 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축구 전술의 진화는 끊임없이 현재진행중이다. 위에서 말한 이야기들도 어느새 과거가 되고 벌써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만 같았던 4-4-2가 다시 리그에 등장하여 4-2-3-1을 쓰는 팀을 잡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3선의 넓어진 간격을 어떻게 대처했을까? 의외로 그 답은 간단했다. 요한 크루이프의 철학에 따르면, ‘두 팀의 모든 조건이 동등하다면 삼각형은 언제나 선을 이긴다’는 관념이 있었지만, 패스를 주고받는 삼각형 대형이 아무리 많이 만들어져봤자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결국 골을 넣어야 한다는 것. 4-4-2의 미드필더와 수비라인을 깊이 아래로 내려서 공간을 최소화 하고 있으면 그 밖에서 상대가 수백, 수천의 패스를 주고받아봤자 ‘의미없는 점유율’만 높아질 뿐이다. 오히려 그 과정 속에서 실수가 나오면, 번개처럼 역습을 하여 골을 넣고 오는 것이 최신 4-4-2의 트렌드였다. 아리고 사키가 주창한 4-4-2는 능동적인 압박이었고 그 의미가 조금 달라졌지만 대응적인 포메이션으로서 4-4-2의 새로운 가능성을 본 것이다. 그리고 4-4-2 본래의 모습과 비슷한 형태도 라 리가에서 발견되고 있다. 현재,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제치고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디에고 시메오네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이다. 이들은 4-2-3-1의 고향과도 같은 스페인에서 4-4-2 포메이션을 쓰고 있다. 4-4-2가 안고 있는 중앙 미드필드에서의 수적 열세를 디에고 코스타와 다비드 비야의 놀라운 활동량으로 보완했고, 두 명의 스트라이커는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함으로써 미드필드 싸움에 기여하고, 4-4-2 특유의 압박 축구가 여전히 통할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하고 있다.
4-2-3-1에도 새로운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기존에는 중앙에 위치한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한 명은 볼을 빼앗아오기만 하고, 다른 한 명은 볼을 패스하기만 했었는데, 요즘은 둘 모두 태클을 하여 볼을 뺏고, 볼배급을 하며, 그 중 한 명은 앞으로 전진하여 자칫 고립될 수 있는 공격형 미드필더를 돕는 역할까지 수행하기 시작했다. 아스날의 아론 람지가 좋은 예이다. 4-4-2에서 존재했던 BTB 미드필더는 4-2-3-1의 등장으로 사라지고 각 포지션에서 역할이 전문화되었는데, 전문적인 포지션에서 다시 만능의 선수를 찾고있는 모양새는 참 아이러니하면서 흥미롭다.
이쯤에서 한 번 결론을 내려보자. 그럼 축구에서 승리하기 위해 어떤 전술과 포메이션을 써야할까? 조금은 교과서적인 대답같지만, 현재 보유하고 있는 선수들 구성에 가장 적합한 전술을 써야한다. 예를 들어,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 두 명이 있는데 원톱을 쓰는 전술이 대세라는 이유로 좋은 선수를 벤치에 앉히는 것은 낭비일테니 말이다. 반대로, 월드클래스 윙어가 있지만 좋은 스트라이커가 없다면, 스트라이커라는 이유로 그를 골 넣는 역할로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상대 수비를 이끌어내고 윙어가 뒷공간으로 파고들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하는 것이 훌륭한 선택일 것이다. 축구 전술이 겉으로는 그저 공간을 잘 파고들어 골을 잘 넣기 위한 방법론같지만, 한 단계 깊이 생각해보면 11명의 선수들이 지니고 있는 특질들을 효율적으로 하나로 묶어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한 노력이다. 단순히 특정 포지션의 이론적, 구조적인 이점만으로 시스템에 선수를 끼워맞추는 것은 좋은 결과를 얻지도, 선수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최고의 전술은 보유하고 있는 선수들의 능력을 가장 극대화할 수 있는 전술일 것이다.
과거에는 일부 축구 전문가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졌던 축구 전술에 대해 일개 아스날 팬인 내가 어느새 조잘조잘 떠들 수 있다니 참 오래살고 볼 일이다. 나름대로 그동안 축구 전술에 대한 책도 읽고 칼럼도 많이 읽었지만, 아스날 경기를 보는 날에는 그런 지식은 전부 날아가고 누가누가 잘하나 못하나밖에 보이지 않게 된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연애’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가끔씩은 주변에 축구 전문가같은 사람들이 등장하여 아스날을 분석하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의아한 마음도 든다. 언제 아스날을 그렇게 분석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나 하면서 말이다. 나는 잘 못하겠다. 내게 연애학개론은 사랑하기 전까지 효용이 있을지는 몰라도 일단 사랑에 빠지면 감정 흘러가는대로 열심히 사랑할 뿐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니까. 아스날이 어떤 포메이션과 어떤 전술을 쓰는지 이해하지 못해도 좋으니까 오늘도 내일도 이기면 좋겠다. 내게는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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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온게임넷]
‘테란의 황제’ 임요환과 ‘폭풍 저그’ 홍진호. 경이로운 컨트롤과 상대의 허를 찌르는 임요환의 플레이, 별명대로 폭풍처럼 끊임없이 몰아치는 홍진호의 플레이는 우리들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 둘이 서로를 상대하는 날은 '임진록'이라 불리우며, 수없이 많은 명경기를 낳았다. 임요환 못지 않은 실력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홍진호는 그의 그림자에 가려 단 한 번도 우승해보지 못하고 영원히 2인자에 머문 것도 나름 드라마라면 드라마랄까. 이 두 사람의 플레이를 보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일꾼을 뽑아 자원을 캐고 병력을 생산하여 상대방을 공격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어떻게 해야 상대보다 더 빠르게 많은 병력을 모으고, 효율적으로 공격하며,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 수 있을 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게임은 어느새 단순한 마우스 클릭이 아니라 ‘전략’의 승부가 된다.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전략’을 수립하는 것은 어느 분야에서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물며 축구도 마찬가지. 축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바로, 골이다. 정확하게는 상대팀보다 많은 골을 넣고 적은 골을 먹히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피치 위에 11명의 선수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치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효과적인 공격과 수비를 할 지는 팀의 최우선 과제가 된다. 이것이 축구 전술과 포메이션의 시작이다. 140여년의 축구 역사가 이어져오는 동안 W-M 포메이션, 4-2-4/카테나치오, 네덜란드의 토탈 풋볼 등 여러 전술들이 각각 한 시대를 풍미한 후 다른 전술로 대체되었다. 이 긴 역사를 일일히 나열하기에는 여백이 충분하지 않아 옮기지는 않는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처럼) 다만, 이번 주에는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관심 가질법한 ‘현대 축구 전술의 기초’를 맛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하자.
[출처: SBS]
수많은 축구 전술들이 있지만 그 지향점은 하나로 압축된다. ‘공간’. 100년이 넘는 전술의 역사라는 것도 결국 골을 넣기 위해 효율적으로 공간을 장악하려는 시도였고, 이후 등장하는 다음 전술은 이전의 시도에서 노출된 공간을 방어하고 대신 새로운 방식으로 상대의 공간을 장악하려는 도전이다. 물리적으로 설명하자면, 피치 위에서 어느 한 쪽의 공간이 사라지면 다른 쪽에 새로운 공간이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11명이 모든 공간을 커버하기에 축구 경기장은 너무 넓기 때문이다. 즉, 축구 전술의 변천사는 공간을 지배하기 위한 끝없는 진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재미있는 점은 몇 가지 전술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주기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를 반복해왔다.) 그리고 축구에서 공간의 지배에 관한 대표적인 두 가지의 철학이 있다. 아리고 사키의 압박(Pressing)과 요한 크루이프의 소유(Possession)이다.
[출처: Sky Sports]
1970년대에 전원 공격, 전원 수비로 대변되는 네덜란드의 ‘토탈 풋볼’이 등장하여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감독으로 있던 아리고 사키에게도 큰 감명을 주게 된다. 상대가 공을 잡으면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압박하는 ‘토탈 풋볼’은 사키가 원했던 공격 축구와도 일맥 상통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전원이 공격과 수비에 모두 가담하는지라 체력적인 소모가 많았고, 자칫 팀의 밸런스가 무너지기도 쉬웠다. 그래서 빠르고 효율적으로 압박하되 동시에 팀의 밸런스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그가 생각해낸 것은, 선수들을 피치 위에 고르게 분포시키고 각자에게 책임 구역을 할당하여 그 공간을 지배하도록 한 것이었다. 촘촘하게 선수들을 배치한 후 앞으로 전진시켜 수비라인을 형성함으로써, 상대의 공간을 줄이고 빠르고 강하게 압박하여 볼을 뺏어내는 것. 이러한 철학이 그대로 녹아들어있는 4-4-2 포메이션은 현대 축구 전술의 바탕이 되었고, 현재까지도 사키의 개념은 수많은 감독들에게 계승되고 발전되어 내려오고 있다.
현대 축구에서 아리고 사키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명의 인물은 요한 크루이프이다. 그는 아리고 사키가 감명을 받았던 ‘토탈 풋볼’을 선수로서 직접 뛰었던 인물이었다. 당연히 그의 철학도 ‘토탈 풋볼’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지만, 사키의 것과는 조금 달랐다. 크루이프의 한 마디 말은 자신의 철학을 간결하게 설명해준다. “볼을 소유하고 있다면, 수비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볼은 딱 하나이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볼을 뺏으러 가기보다는 애초에 뺏기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상대의 압박 속도보다 빠르게 짧은 패스를 주고 받는다면, 압박에서 벗어나 볼을 소유를 유지할 수 있고, 이는 상대에게 공격당하지 않고 오직 공격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장 기본이 되는 짧은 패스를 물흐르듯 주고 받기 위해 선수들의 삼각형 형태의 위치를 유지하는 것을 가장 중요시했다. 계속 삼각형을 유지하며 움직이고 패스를 주고받으며 점유율을 높이는 것. 이것은 현대 바르셀로나의 철학 그 자체가 되었다.
이후의 축구 감독들은 이 두 사람의 철학을 나름대로 받아들이고 각색하여 각자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물론, 감독의 스타일에 따라 똑같은 구성의 포메이션도 완전히 다른 색채를 띌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되겠다. 일반적으로 축구 전술을 이야기하면 선수들의 배치를 의미하는 숫자의 나열을 떠올리곤 하는데, 사실은 숫자는 그저 숫자일 뿐이다. 밑바탕이 되는 기본적인 형태일 뿐, 이 팀이 공격적인지 혹은 수비적인지, 실제로 각각의 포지션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강점과 약점이 어디인지 무엇도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주요 포메이션들의 기본 형태를 이해함으로써 본래 지니고 있는 강점과 약점을 감독들이 어떻게 보완하고 극대화하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 골키퍼를 제외하고 10명의 선수를 배치하는 방식에 따라 수많은 포메이션이 만들어질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현대 축구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는 세 가지 포메이션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하자.
아르센 벵거 “4-4-2 포메이션은 축구 피치의 크기에 가장 딱 적합한 포메이션이다. 그 이유는 2명의 중앙 수비수, 2명의 중앙 미드필더, 2명의 스트라이커가 자연스럽게 피치의 60%를 커버한다. 그리고 양쪽 측면의 2명의 선수는 각각 40%의 피치를 커버한다. 그러므로 논리적으로, 수학적으로 축구 피치를 지배하는데 최고의 포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lineupbuilder]
4명의 수비수, 4명의 미드필더, 2명의 공격수로 이루어진 4-4-2 포메이션은, 피치 위에 고르게 선수들을 분포하여 책임 공간을 나눈 형태였기에 아리고 사키는 4-4-2를 두고 ‘가장 이상적인 공간 장악이 가능한 포메이션’이라고도 표현했다. 공격수부터 수비수의 사이의 간격을 25m로 유지한 상태에서 수비라인을 위로 끌어올려 뒷공간은 오프사이드 트랩으로 잡아내고, 상대방의 유효 공간을 좁혀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 있었다. 팀 전체가 하나의 유닛으로서 움직이며 빠르게 압박해서 볼을 되찾으면 바로 역습으로 이어진다. 팀이 공을 얼마나 오래 소유하고 있는 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한 명이 앞으로 전진하면 나머지 셋이 빈 공간을 향해 함께 전진하고 커버하며 끊임없이 간격을 유지하는 능동적인 공간 압박이 사키의 4-4-2 였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 2명의 중앙 미드필더는 수비시에 후방의 수비 라인을 보호하고, 공격시에 공격수들에게 볼을 배급하며 간격을 유지할 수 있는 공수 만능형의 BTB(박스-투-박스) 미드필더가 포진되어야 했고, 측면에는 직선적인 타입의 클래식 스타일 윙어가 위치하여 공격시에는 앞으로 전진해 중앙의 스트라이커들에게 집중된 수비를 분산시켜야 했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4-4-2의 경우이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스날식 패스 & 무브)
아주 가까운 예로, 아르센 벵거가 구사하는 아스날의 4-4-2는 일반적인 4-4-2와 달랐다. 일자의 미드필드 구성에 따른 단조로운 빌드업과 측면 돌파에 의존하는 공격 방식을 ‘패스 앤 무브’로 해소한 것이었다. 앞서 요한 크루이프는 짧은 패스를 연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가장 중요시한 것이 삼각형이라고 했는데 4-4-2는 선수들이 일렬로 나열된 형태라 삼각형이 나오기 어렵다. 아르센 벵거가 이를 풀어낸 방식은 다음과 같다. 선수 A가 옆에 있는 선수 B에게 패스한 후 앞으로 전진하고, 선수 B는 볼을 받아 앞으로 전진한 선수 A에게 패스하면서 자신도 전진. 이런 방식으로 임의로 삼각형 형태를 만들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즉, ‘패스를 한 후에 리턴 패스를 받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패스 앤 무브’의 핵심이었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존 4-4-2 포지션과는 다른 능력을 지닌 선수들을 필요로 했다.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했고, 패스의 질도 좋아야 했으며, 이는 측면에 위치한 선수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7-08 시즌, 아스날의 양 측면에 로시츠키, 흘렙과 같은 중앙 지향적인 공격형 미드필더들이 배치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출처: lineupbuilder]
2005년, 4-4-2 포메이션이 주류를 이루던 축구계의 패러다임에 큰 변화가 생기는 일이 발생한다. 바로, 오프사이드 룰의 완화였다. 작은 변화였지만 그 여파는 컸다. 기본적으로 높은 수비라인을 형성하던 기존의 4-4-2 포메이션은 뒷공간에 대한 부담으로 공수의 간격이 벌어지게 되었고 자연스레 개개인이 커버해야하는 공간도 늘어났다. 이는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의 3선 사이사이의 빈공간이 넓어지고 상대팀이 파고들기가 더욱 쉬워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하여 기존의 3선에서 4선 형태로의 포메이션 변화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또한, 기존 전술은 압박을 기초로 하고 있었기에 선수들의 볼 경합이 잦았고 피지컬이 중요시되고 있었다. 그러나 오프사이드 룰 개정 이후, 공간이 늘어나면서 선수간의 경합이 줄어들고 메시, 사비, 이니에스타와 같이 작고 테크닉이 뛰어난 선수들이 만개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하여 흐름에 맞게 기존 4-4-2의 약점을 보완하여 나타난 것이 4-2-3-1 포메이션이었다. 스페인에서는 2000년대부터 이미 많은 팀들이 사용하고 있었고, 특히 2010 월드컵을 기점으로 현대 축구팀의 전술적 주류가 4-4-2에서 4-2-3-1로 완전히 넘어갔다. (포메이션 상으로 큰 변화같지만 사실상 4-4-2의 투톱 중 한 명이 아래로 내려와서 세컨탑/플레이메이커가 되고 양 윙어가 앞으로 전진하면 4-2-3-1이 된다.)
4-2-3-1 포메이션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4-4-2 포메이션의 중앙에서 공격과 수비를 함께 도맡았던 BTB 미드필더가 사라지고 1명의 공격형 미드필더와 2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역할이 분담된 것이다. 특히 수비형 미드필더들은 미드필더와 포백 사이의 공간에 위치하면서 상대팀의 세컨탑/공격형 미드필더의 공격을 무마시켰다. 여기서도 한 단계 더 분화하여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은 오직 수비만을 전담하는 ‘마케렐레 롤’을 소화하고, 다른 한 명은 사비 알론소와 같이 후방 플레이메이커로서 팀에 패스를 배급하는 역할을 했다. 이렇게 피치의 중앙은 두터워지면서 안정되었지만, 그것은 그만큼 측면에 공간이 생긴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4-2-3-1은 4-4-2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상대 풀백의 전진을 측면 미드필더를 전면 배치함으로써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었지만, 그만큼 우리팀 풀백과의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고 그 공간을 메꾸기 위해 풀백의 전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정리하자면, 4-2-3-1 포메이션이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 상대 풀백과 경합하는 측면 미드필더의 수비력과 빈 공간으로 전진하는 풀백의 공격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출처: lineupbuilder]
마지막으로 둘러볼 전술은 4-3-3 포메이션이다. 언뜻 중앙의 3명의 미드필더가 정삼각형 형태가 아닌 역삼각형의 형태로 배치된 것을 제외하면 4-2-3-1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4-3-3 포메이션의 원형은 1960~70년대 4명의 공격수를 활용했던 4-2-4 포메이션에서 유래된 것으로 4-2-3-1과는 진화 과정이 다르다. 그러므로 4-3-3 포메이션 양측면의 윙포워드는 순수한 포워드에 가까운 선수들이 배치되었고, 윙어 타입의 선수와 섞여서 비대칭적인 형태를 하고 있었다.
현대에 들어 4-4-2가 기본 포메이션으로 자리 잡았고, 4-3-3은 3명의 공격수가 전진해있었기에 수비시에 미드필드에서의 수적 열세로 인해 잘 쓰이지 않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최전방 공격수들의 적극적인 압박이 수반되어 상대가 공격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해야했다. 포메이션의 구성상 삼각형의 형태가 쉽게 만들어지는 덕택에 패스 플레이를 하기에도 좋고 역으로 공격시에는 수적 우위를 점할 수도 있었지만, 구현하기가 어려운 전술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조세 무리뉴와 펩 과르디올라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단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극대화하여 새로운 4-3-3으로 재탄생되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각자 다른 포메이션을 진화시킨 형태가 둘다 4-3-3이었다고 보는 것이 더욱 옳다. 무리뉴는 4-4-2 다이아몬드 / 4-3-1-2의 포메이션을 4-3-3으로 발전시켰고, 과르디올라는 4-2-3-1에서 측면 미드필더를 앞으로 더 전진시키고 플레이메이커를 밑으로 내려서 4-3-3을 형성했다.)
(4-3-3 vs 4-4-2)
[출처: lineupbuilder]
조세 무리뉴 “나에게 클로드 마케렐레가 밑에 있고 다른 두 명의 선수로 구성된 삼각형의 미드필드가 있다면, 나는 나란히 중앙 미드필더들이 배치된 순수한 4-4-2를 상대로 언제나 이점을 지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언제나 한 명의 선수가 더 많기 때문이다. 일단 미드필더와 공격수들 중간에 있는 마케렐레로부터 시작된다. 만약 아무도 그에게 접근하지 않는다면 그는 피치 전체를 볼 수 있고, 그럴 시간도 있다. 반대로, 누가 그에게 압박해들어오고 상대팀의 윙어가 이를 돕기 위해 안쪽으로 들어온다면, 그것은 우리의 윙어 혹은 풀백에게 측면 공간이 열린다는 의미이다. 4-4-2는 이러한 일들을 막을 수 없다.”
2003-04 시즌, 아스날은 리그에서 무패 우승을 달성했지만, 바로 다음 시즌에 조세 무리뉴의 첼시는 숨막힐 듯한 4-3-3을 앞세워 단 1패를 기록하며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현대 축구에서 미드필드는 가장 중요한 격전지였고 주변 선수들의 지원 없이는 기본적으로 중앙에 미드필더 2명을 두고 있는 4-4-2가 3명을 둔 4-3-3과 4-2-3-1에 상대적으로 열세였다. 하지만 4-3-3에도 수비적인 약점이 분명히 존재했고 4-4-2가 측면을 통해 공략할 여지가 있었으나 무리뉴는 이를 기막히게 극복해냈다. 그 비결은 공격시에는 4-3-3, 수비시에는 4-5-1로 포메이션을 변형하는 것이었다. 볼을 잃으면 양쪽 측면의 윙포워드를 수비라인까지 끌어내려 안정적인 수비에 집중하다가 공세가 전환되면 윙포워드의 빠른 역습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4-3-3은 공격력과 수비력, 중원 압박과 삼각형 형태를 두루 갖춘 약점없는 전술로 보였다. 문제는, 이러한 전술을 수행하기 위해 공격에 능하고, 미드필더도 되면서, 역습시에는 드리블을 하고, 공수 전환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는 체력까지 갖춘 윙포워드를 여러명 필요로 했다. 홀로 상대 센터백을 압박하며 필요할 때마다 원샷 원킬을 해주는 스트라이커도 필요했고, 중앙에서도 기동력과 공수 밸런스를 두루 갖춘 미드필더들도 필요했다. 과연 얼마나 많은 팀들이 이런 선수들을 다 구해서 무리뉴식 4-3-3을 쓸 수 있을까?
펩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는 무리뉴와 다른 방식으로 4-3-3 포메이션을 접근했다. 기본적으로 수비 라인을 매우 높은 곳까지 올린 상태에서 공격시에는 풀백이 적극적으로 전진하다가, 수비시에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밑으로 내려와 세 번째 센터백으로 활용되었다. 중앙의 미드필더들은 패스 능력을 바탕으로 점유율 축구를 하다가 볼을 빼앗기면 바로 압박하여 다시 볼을 되찾아오는 극단적으로 공격적인 4-3-3을 운용했다. 이 역시도 완벽한 수비 라인 컨트롤과 끊임없이 패스를 주고받을 수 있는 개개인의 테크닉과 기동력이 바탕에 깔려있어야 했다. 형태상으로는 똑같은 4-3-3 포메이션이었지만 바르셀로나는 첼시와 같은 선수비 후역습이 아니라 4-3-3과 3-4-3을 혼용하며 삼각형 형태를 끊임없이 만들고 점유율을 높이 가져가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
(높은 볼 점유율이 반드시 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출처: SPOTV]
축구 전술의 진화는 끊임없이 현재진행중이다. 위에서 말한 이야기들도 어느새 과거가 되고 벌써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만 같았던 4-4-2가 다시 리그에 등장하여 4-2-3-1을 쓰는 팀을 잡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3선의 넓어진 간격을 어떻게 대처했을까? 의외로 그 답은 간단했다. 요한 크루이프의 철학에 따르면, ‘두 팀의 모든 조건이 동등하다면 삼각형은 언제나 선을 이긴다’는 관념이 있었지만, 패스를 주고받는 삼각형 대형이 아무리 많이 만들어져봤자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결국 골을 넣어야 한다는 것. 4-4-2의 미드필더와 수비라인을 깊이 아래로 내려서 공간을 최소화 하고 있으면 그 밖에서 상대가 수백, 수천의 패스를 주고받아봤자 ‘의미없는 점유율’만 높아질 뿐이다. 오히려 그 과정 속에서 실수가 나오면, 번개처럼 역습을 하여 골을 넣고 오는 것이 최신 4-4-2의 트렌드였다. 아리고 사키가 주창한 4-4-2는 능동적인 압박이었고 그 의미가 조금 달라졌지만 대응적인 포메이션으로서 4-4-2의 새로운 가능성을 본 것이다. 그리고 4-4-2 본래의 모습과 비슷한 형태도 라 리가에서 발견되고 있다. 현재,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제치고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디에고 시메오네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이다. 이들은 4-2-3-1의 고향과도 같은 스페인에서 4-4-2 포메이션을 쓰고 있다. 4-4-2가 안고 있는 중앙 미드필드에서의 수적 열세를 디에고 코스타와 다비드 비야의 놀라운 활동량으로 보완했고, 두 명의 스트라이커는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함으로써 미드필드 싸움에 기여하고, 4-4-2 특유의 압박 축구가 여전히 통할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하고 있다.
4-2-3-1에도 새로운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기존에는 중앙에 위치한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한 명은 볼을 빼앗아오기만 하고, 다른 한 명은 볼을 패스하기만 했었는데, 요즘은 둘 모두 태클을 하여 볼을 뺏고, 볼배급을 하며, 그 중 한 명은 앞으로 전진하여 자칫 고립될 수 있는 공격형 미드필더를 돕는 역할까지 수행하기 시작했다. 아스날의 아론 람지가 좋은 예이다. 4-4-2에서 존재했던 BTB 미드필더는 4-2-3-1의 등장으로 사라지고 각 포지션에서 역할이 전문화되었는데, 전문적인 포지션에서 다시 만능의 선수를 찾고있는 모양새는 참 아이러니하면서 흥미롭다.
[출처: Sky Sports]
이쯤에서 한 번 결론을 내려보자. 그럼 축구에서 승리하기 위해 어떤 전술과 포메이션을 써야할까? 조금은 교과서적인 대답같지만, 현재 보유하고 있는 선수들 구성에 가장 적합한 전술을 써야한다. 예를 들어,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 두 명이 있는데 원톱을 쓰는 전술이 대세라는 이유로 좋은 선수를 벤치에 앉히는 것은 낭비일테니 말이다. 반대로, 월드클래스 윙어가 있지만 좋은 스트라이커가 없다면, 스트라이커라는 이유로 그를 골 넣는 역할로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상대 수비를 이끌어내고 윙어가 뒷공간으로 파고들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하는 것이 훌륭한 선택일 것이다. 축구 전술이 겉으로는 그저 공간을 잘 파고들어 골을 잘 넣기 위한 방법론같지만, 한 단계 깊이 생각해보면 11명의 선수들이 지니고 있는 특질들을 효율적으로 하나로 묶어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한 노력이다. 단순히 특정 포지션의 이론적, 구조적인 이점만으로 시스템에 선수를 끼워맞추는 것은 좋은 결과를 얻지도, 선수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최고의 전술은 보유하고 있는 선수들의 능력을 가장 극대화할 수 있는 전술일 것이다.
과거에는 일부 축구 전문가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졌던 축구 전술에 대해 일개 아스날 팬인 내가 어느새 조잘조잘 떠들 수 있다니 참 오래살고 볼 일이다. 나름대로 그동안 축구 전술에 대한 책도 읽고 칼럼도 많이 읽었지만, 아스날 경기를 보는 날에는 그런 지식은 전부 날아가고 누가누가 잘하나 못하나밖에 보이지 않게 된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연애’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가끔씩은 주변에 축구 전문가같은 사람들이 등장하여 아스날을 분석하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의아한 마음도 든다. 언제 아스날을 그렇게 분석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나 하면서 말이다. 나는 잘 못하겠다. 내게 연애학개론은 사랑하기 전까지 효용이 있을지는 몰라도 일단 사랑에 빠지면 감정 흘러가는대로 열심히 사랑할 뿐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니까. 아스날이 어떤 포메이션과 어떤 전술을 쓰는지 이해하지 못해도 좋으니까 오늘도 내일도 이기면 좋겠다. 내게는 그것이면 충분하다.
교정 : @yesdo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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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hungarida
음악과 미술을 사랑하는, 주변에 흔한 보통의 서울 남자. 아스날과 12년째 연애중. 트위터 아스날 가십(@AFC_Gossip)에서 아스날 소식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