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진의 노래 「행복한 사람」이 흘렀다. 그리고 최근 건강 문제로 한국 공연이 취소된 폴 매카트니가 만든 비틀즈의 노래 「When I’m Sixty-Four」가 뒤를 이었다. 요즘 들어 이 노래들이 부쩍 와 닿는다며, 예병일 저자는 이것이 『책 읽어주는 남자, 10년의 노트』를 펴낸 이유가 됐다고 말했다. 김소월의 「산유화」와 그리스 시인 콘스탄티노스 카바피의 「이타카(Ithaca)」라는 詩도 공유했다. 이타카는 오디세우스(율리시즈)의 고향이다.
열쇠말로 만나는 10년
저자 예병일은 ‘10년’이라는 숫자를 가장 먼저 꺼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10년 후 무엇을 할 것인지 ‘노트’에 써볼 것을 권했다. 10년 전 예병일의 경제노트를 쓴 출발점에는 폴 고갱의 작품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가 있었다. 삶과 존재에 대한 근원을 묻는 중요한 질문이 그에게도 박혔다. 이 작품은 고갱이 가장 힘들었던, 건강 악화와 빈곤, 딸의 죽음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시도를 했던 시기에 나왔다. 습작 데생을 않고 캔버스에 바로 작업한 결과물로, 고갱은 자신의 다른 작품 모두를 능가하는 역작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10년 동안 써왔던 글을 훑어보니 다음과 같은 열쇠말이 나왔다. 꿈, 고난, 오늘, 이별, 습관, 지속, 좋은 삶, 행복, 고전, 진정한 나, 길 위에서. 그는 이 열쇠말들에 대해 언급하겠다며 꿈부터 꺼냈다. 지난해 겨울, 미국에 갔던 그는 한 광고에 나온 ‘When was the last time you dreamed...’라는 카피를 접하고 마음이 짠했다.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꿈을 가진다면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잘게 쪼개, 완벽보다는 실행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전했다.
고난. 그는 대나무 중에 ‘쌍골죽’이라는 것을 아는지 물었다. 대나무는 대개 골이 하나인데, 골이 2개가 있는 것이 쌍골죽이란다. 대금을 만들 때 가장 좋은 재료로 쓰인다. 말하자면 병든 대나무이나 대신 속이 단단해서 대금의 소리가 아주 좋게 나온다는 것. 오동나무에도 ‘석상오동’이 있다. 바위틈에서 자란 오동나무가 거문고나 가야금의 가장 좋은 재료라는 것. 바위틈에서 자라기가 쉽지 않은데, 거기서 자란 오동나무는 최고의 소리를 낸다. 고난이 좋은 것으로 이어진 경우다.
“철학자 세네카는 “나무는 괴롭힘을 당함으로써 튼튼해지고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고 말했다. 고난, 즉 적당한 좌절이 필요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적당한 좌절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실패와 고난이 성공의 싹이 된다. 지금 불안하지도 힘들지도 않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너무 안전하게 가고 있는 것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다. 자발적으로 위기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오늘. 그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을 보여줬다.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키팅 선생(로빈 윌리엄스 분)이 학생들에게 ‘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의미를 설명하는 장면이다.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이야기해준 것 같다. 카르페 디엠, 이 말은 호라티우스의 「송시」에 나왔다. “인생은 짧다. 희망을 크게 가지지 말라.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순간에도 시샘하는 시간은 지나가나니. 오늘을 붙잡으라, 내일은 최소한만 믿으라.” 인생이 짧아 허망하니 그때그때 즐기라는 말은 아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나무를 심어야 할 가장 좋은 시기는 20년 전이었다. 그 다음으로 좋은 시기는 바로 지금이다’가 있다. 오늘을 이렇게 잡아야 한다. 작은 것부터, 지금 해야 한다. 지금 당장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리고 목표를 만들려면 꿈을 구조화하고 규칙화해야 한다.”
자발적인 고립이 필요한 이유
이별. 저자는 지금 일상이 너무 익숙하고 편안하다면 위험하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군중이나 무리와도 이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발적인 고립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는 것. 이어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이야기를 꺼냈다. 소로는 자발적인 고립을 선택하며 월든 호숫가에서 2년 2개월을 지내며 『월든』을 썼다. 당시 소로에겐 ‘3개의 의자’가 있었다. 고독을 위한 의자, 우정을 위한 의자, 세상을 위한 의자.
“무리 속에 있어선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고독을 위한 의자’가 아닌가 싶다. 그런 의자를 자발적으로 만들어서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고독하기만 하라는 것은 아니다. 또 완벽에의 강박을 버려야 한다. 계획만 다듬다가 시간만 보낸다. 실행과 행동이 중요하다.”
습관. 그는 지금 우리에겐 ‘사소한 중독’이 만연해 있다고 운을 떼고는 규칙적인 산책으로 유명한 칸트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칸트는 늘 같은 시간에 산책을 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의 산책으로 시간을 알았을 정도였다. 저자가 강조한 것은 따라서 지속이다. 힘들어도 일단 계속하라는 것. 이는 또한 지속이라는 열쇠말과도 통한다고 덧붙였다. 습관과 지속은 통하는 측면이 있다. 좋은 습관을 오래 지속하는 것이 필요하다.
좋은 삶. 피터 드러커는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하십니까?” 좋은 삶을 위해서는 소명의식(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해 부름을 받는 것)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했다. 에이미 브레즈니브스키는 일을 인식하는 방식으로 ‘생업’ ‘출세’ ‘소명’을 들었는데, 이 가운데 소명을 가지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
“내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국의 철학자 펑유는 죽기 전 딸에게 “무서워 말거라. 나는 살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냈다”라는 말을 했다.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행복. 저자는 와인을 좋아한다. 저렴한 것에서 점점 비싼 와인으로 옮아갔다. 비싼 만큼 좋았으나, 돈 씀씀이가 너무 과해지면서 비싼 와인을 그만 마시고 저렴한 가격의 와인으로 돌아갔다. 충분히 좋았다. 익숙해지기 나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장교로 군대에 입대했을 때, 2층 철제침대가 불편했다. 그러다 야간행군을 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좋은 잠자리인지 깨달았다. 즐긴다는 말은 자신을 즐기는 것이다. 가령, ‘그는 파리를 즐긴다’가 아니라 ‘그는 파리에서 자기 자신을 즐긴다’라고 쓴다. 즐긴다는 것은 대상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즐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복은 자신에게 있다. 그래서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선택이다. 지금 갖고 있는 것이 없다고 전략적으로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그는 니체의 말을 인용했다.
“작은 뜰에 무화과나무 몇 그루가 서 있고, 약간의 치즈, 그리고 서너 명의 친구들만 있으면 행복하다. 이것이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사치였다.”
고전. 그는 나이에 따라 고전을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달랐다. 독자들에게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 등을 권했다. 진정한 나. 과거 저자의 단골 카페가 있었다. 대학로의 샘터파랑새 극장건물에 있던 카페였다. (지금 그곳은 거대 프랜차이즈 매장으로 바뀌었다.) 1980년대 초반에 그 카페를 자주 다녔다. 당시 대학로는 지금에 비해 한적하고 조용한 동네였고 그 카페에 머물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가다듬었다. 나만의 생각장소였다. 워낙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이지만,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가지면서 진정한 나를 찾으라는 메시지였다.
길 위에서 이미 행복해지는 법
길 위에서. 저자는 곧 60주기(1954년 5월 25일)를 맞는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가 스페인 내전 때 찍은 사진을 공유했다. 인도차이나 내전 때 찍은 사진이었다. 카파는 전쟁터를 누비는 종군사진기자였다. 그러다 결국 지뢰를 밟고 죽었다. 불꽃 같이 살았다. 길 위에서 그는 사진을 찍었다. 저자는 카파가 남긴 말을 들려줬다. “만약 당신이 찍은 사진이 충분하게 만족스럽지 않다면 당신은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지 않은 것이다.” 지금 하는 일이, 삶이, 세상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우리는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지 않은 것은 아닐까.
“우리는 길 위에서 벗어나 안주하고 싶다. 대부분 게을러서다. 그리고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이 두려워서다. ‘길 위에서’라는 열쇠말과 가장 어울리는 두 사람이 있다. 19세기 일본의 목판화가인 가츠시카 호쿠사이다. 60대에 은퇴했다가 손자가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해 다시 그림을 그렸고, 「가나가와의 파도」라는 걸작을 남겼다. 그는 70세 이전 자신의 작품들은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80세에 사물의 본질을 알았고, 90세에 5년만 더 주어지면 진정한 미술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죽었다. 또 한 명은 피터 드러커다. 90대까지도 왕성한 저작활동을 했다. 나도 안주하지 않고 길 위에서 무언가에 마음을 빼앗겨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목표와 꿈을 갖는 것과 오늘을 사는 것, 중용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목표를 마음에 두되, 서두르지 않는 게 좋겠다고 덧붙였다. 꿈을 향해 가는 길 위에서 우리는 이미 풍요로워질 것이므로. 경험도 하고, 기쁨과 행복도 얻을 수 있으므로. 그것은 저자가 서두에 꺼낸 「이타카」라는 詩와 통하는 것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건넨 말은 이랬다. “목표에 도달해야 풍요로워 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라. 왜냐하면 목표가 아름다운 여행을 시작하게 해줬으니까.”
그는 詩 「이타카」의 일부를 읊으면서 강연을 마쳤다.
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
네 목표는 그곳에 이르는 것이니
그러나 서두르지는 마라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 졌으니
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해주길 기대하지 마라
이타카는 너에게 아름다운 여행을 선사했고
이타카가 없었더라면 네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았으니
이제 이타카는 너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구나
설령 그 땅이 볼모지라고 해도 이타카는
너를 속인 적이 없고 길 위에서 너는 현자가 되었으니
마침내 이타카의 가르침을 이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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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10년의 노트 예병일 저 | 21세기북스
살아온 날들이 아쉽고 살아갈 날들이 막막한 인생의 한가운데에서 그래도 우리의 미련과 불안을 다독여주는 건 책 속에 있는 한 줄의 글, 한 순간의 통찰이었다. 이 책은 2004년 1월 6일 처음 ‘예병일의 경제노트’를 이메일로 보내기 시작해 10주년을 맞은 현재까지 ‘하루 5분, 경제를 읽는 시간’이라는 취지에 공감해 회원으로 가입한 40만 명의 경제노트 가족들과 공유해온 2000여 편의 글 중에서, 인생과 나를 돌아보게끔 해주는 112편의 글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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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