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의 18가지 질문, 『나무』
책의 목적을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는 이러한 목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글ㆍ사진 노지은
201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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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예스24 대학생 리포터들이 ‘10년 전 베스트셀러’라는 제목으로
2004년 큰 인기를 모았던 책들을 소개합니다. (이번 회로 막을 내립니다)

 

흔히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는 프랑스 작가’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작가 스스로 2013년 방한 당시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프랑스보다 한국에 더 많다”는 말까지 했을 정도이니, 그는 단연 ‘한국인이 사랑하는 외국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책 『제 3인류』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그의 이러한 인기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10년 만에 다시 읽는 그의 2004년 베스트셀러 『나무』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다른 아이들은 나에게 이야기를 지어 달라고 부탁하기가 일쑤였다. 그러면 나는 대개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었다가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어…….>

세월이 흐르면서 그 이야기들은 갈수록 환상적인 것으로 변했다. 그러다가 그것들은 하나의 게임이 되었다. 사람들에게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뜻밖의 해법을 찾아내게 하는 게임 말이다.
(『나무』 7쪽)

 

『나무』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현대 사회 혹은 인간 본연의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을 그 특유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이전 작품에서부터 꾸준히 보여주었던 그의 ‘환상’은 책 『나무』에서 정점을 찍고 있다. 일견 황당해 보이고 끔찍하게까지 느껴지는 환상 속에서 현실과의 접점을 찾게 될 때, 독자들은 책 『나무』가 이야기이기에 앞서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독자에게 던지는 열여덟 가지 질문’임을 깨닫게 된다. 결국, 책 『나무』를 읽는 즐거움은 ‘우리가 학문이라 부르는 것이 사실은 인간을 한계 짓고 있지 않은가’, ‘고령화 사회의 문제점을 극단으로 몰고 갔을 때, 우리는 어떤 결론에 목도하게 될 것인가‘ 와 같은 질문에 끊임없이 대답하는 데 있다.

 

 

나무

 

 

한계 없는 상상력의 바탕은 인간과 현실에 대한 성찰


「투명 피부」는 생체를 투명하게 만드는 실험을 하던 주인공이 마지막 실험 대상을 자기 자신을 투명하게 만들면서 생기는 일종의 소동을 담았다. 사실상 더욱 ‘진실한’ 몸을 갖게 되었을 뿐이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고 서커스의 구경거리로 살아가게 된다. 이 이야기에서 던지는 ‘투명한 몸을 바라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궁극적으로 ‘인간은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싶어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환원된다.

 

“말하자면 나는 살가죽을 한두 꺼풀 벗기고 보면 우리 인간의 모습이 진정 어떠한지를 그들에게 일깨워 준 셈이다. 내 모습은 하나의 진실이지만, 아무도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나무』 57쪽)

 

「황혼의 반란」은 고령화 시대의 여러 문제점이 심화되자 노인 배척 운동이 시작되고, 이로 인해 노인들이 CDPD(휴식.평화.안락 센터)에 강제로 끌려가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프레드와 뤼세트를 시작으로 힘을 모으게 된 노인들은 <흰여우들>을 조직한다.

 

이들은 “우리를 존중해 주십시오. 우리를 사랑해 주십시오. (……) 만일 인간이 가장 약한 자들을 죽인다면, 인간의 모듬살이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노인을 배척하는 법률들을 철폐합시다. 우리를 제거하기보다 활용할 생각을 하십시오.” (『나무』 92쪽)와 같은 전단으로 선전 활동을 전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황혼의 반란은, 강경하고 잔인한 정부의 대응으로 결국 실패한다. ‘고령화’라는 자명한 현실을 극단까지 끌고 간 「황혼의 반란」은, 그저 상상력이 빚어낸 환상이라고 치부하기 어려울 정도로 구석구석 현실과의 접점을 보여주고 있다. 프레드의 마지막 말(“너도 언젠가는 늙은이가 될 게다.”)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이 과연 있을까?

 

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독자에게 묻다


이 책의 프랑스 어판 제목이기도 한 「가능성의 나무」는 이 책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질문’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그는 역사에는 순환이 있고, 때문에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깊이 사고한다면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을 예측할 수 있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가능성의 나무’를 상상한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지식과 직관을 결합하여 만든 나무 모양의 도표. 이 나무는 “미래에 지구와 인류와 인류의 의식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표시한 수형도”라고 할 수 있다.

 

“몇 수 앞을 내다보며 최선의 응수를 찾아내는 체스 프로그램의 원리를 이용하면 인류가 나아갈 최선의 길을 보여 주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 133쪽)

 

「수의 신비」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조카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탄생했다. 10까지 셀 줄 아는 아이들과 그보다 큰 수를 셀 줄 아는 아이들 사이에 서열이 존재한다는 조카의 말에서 시작된 이 작품은, 숫자가 모든 것의 바탕이 되는 사회를 통해 ‘진리’의 의미를 파헤친다. ‘수는 한계가 없다’는 진리를 알게 된 뱅상은, 진리로 통하는 길인 줄 알았던 학문이 한낱 감옥이었음을 깨달으며 학문과 진리에 대한 우리의 고찰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제 정신의 천장이 높아지고 보니, 그 모든 지식이 한낱 감옥일 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줄을 조금씩 늘여 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를 여전히 매어 두고 있는 한 그것은 어디까지나 속박일 뿐이었다. 우리는 줄에 매이지 않고도 살 수 있다. 지식을 탐구하기 위해 공인된 과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그저 자유롭다는 것만으로 자격은 충분하다. 무릇 학문이란 자유의 행위여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미리 짜놓은 틀이나 숭배의 대상이나 지배자나 선입견에 속박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는 자유, 그런 자유가 보장될 때 학문은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나무』 158쪽)

 

진리를 탐구하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배척당하는 뱅상을 통해 독자들은 과연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을 정말 ‘알고 있는 것’인지, 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알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이 밖에도 “사물은 우리가 그것에 이름을 붙일 때 비로소 존재한다”는 흔한 명제를 기묘하게 그려낸 「허깨비의 세계」, 자기중심적 사고를 극단으로 끌고 가 반전으로 완성한 「암흑」, 주객전도된 이해관계로 굴러가는 사회를 비판한 「그 주인에 그 사자」, 베르나르 베르베르 특유의 ‘인간과 다른 존재들의 시선을 빌어 인간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른바 ‘인류에 대한 외래적 시선’의 기법이 잘 나타나 있는 「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 등 상상력의 끝을 보여주는 다양한 작품들이 이 책 『나무』에 수록되어 있다. 책의 목적을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는 이러한 목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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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뫼비우스 그림/이세욱 역 | 열린책들
『개미』『뇌』등 국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 온 베르베르의 소설집. 이 책은 9쪽에 불과한 '사람을 찾습니다' 등 10~20쪽 분량의 짧은 단편들을 모아 두었다. 다른 행성 과학자 눈에 비친 '야생인간'의 관습을 다룬 '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 유전자 조작을 거쳐 애완용으로 거듭난 사자들을 줄에 매어 끌고 다니는 상황을 설정한 '그 주인에 그 사자' 등 다채로운 빛깔의 단편소설들이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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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은

사람을 지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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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

프랑스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로도 알려져 있기도 하며, 톨스토이, 셰익스피어, 헤르만 헤세 등과 함께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 작가로 선정된 바 있는 소설가이다. 일곱 살 때부터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한 타고난 글쟁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1961년 프랑스 툴루즈에서 태어났다. 「별들의 전쟁」세대에 속하기도 하는 그는 고등학교 때는 만화와 시나리오에 탐닉하면서 『만화 신문』을 발행하였고, 이후 올더스 헉슬리와 H.G. 웰즈를 사숙하면서 소설과 과학을 익혔다. 1979년 툴루주 제1대학에 입학하여 법학을 전공하고 국립 언론 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과학 잡지에 개미에 관한 평론을 발표해 오다 드디어 1991년 1백 20번에 가까운 개작을 거친 『개미(Les Fourmis)』를 발표, 전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으며 단숨에 주목받는 프랑스의 천재 작가로 떠올랐다. 『개미』는 베르베르가 개미를 관찰하기 시작한 열두 살 무렵부터 시작된 소설로 무려 20여 년의 연구와 관찰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작가는 개미에 관한 소설을 쓰기 위해 12년 동안 컴퓨터와 씨름하면서 수없이 고쳐썼다. 그는 직접 집안에 개미집을 들여다 놓고 개미를 기르며 그들의 생태를 관찰한 것은 물론이고, 아프리카 마냥개미를 탐구하러 갔다가 개미떼의 공격을 받고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베르나르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눈높이, 예를 들면 개미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세상을 바라보도록 함으로써 현실을 새로운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게 한다. 300만 년 밖에 되지 않는 인간의 오만함을 1억만년이 넘는 시간동안 살아남아온 개미들의 눈에 빗대 경고하고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열네 살 때부터 쓰기 시작한 거대한 잡동사니의 창고이면서 그의 보물 상자이기도 한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는 책은 개미들의 문명에서 영감을 받고 만들어진 것으로, 박물학과 형이상학, 공학과 마술, 수학과 신비 신학, 현대의 서사시와 고대의 의례가 어우러진 독특한 작품 형식을 선보인다. 『여행의 책』은 타고난 이야기꾼 베르베르가 선보인 철학적 잠언의 성격을 띤 책으로, 도교 사상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던 그의 또다른 일면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뇌』에서는 연인의 품 안에서 황홀경을 경험한 표정으로 죽은 신경정신 의학자 '핀처' 박사의 사인을 추적하던 아름다운 여기자 '뤼크레스'와 전직 경찰 '이지도르'는 마약이나 섹스를 넘어서는 인간 쾌락의 절정, 그 비밀의 문을 향해 한발한발 접근해 들어간다. 『인간』은 프랑스에서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면서 이미 30만 부 이상 팔린 작품으로, 베르베르가 처음 시도한 희곡 스타일의 소설이다. 우주의 어느 행성의 유리 감옥에 갇힌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경이와 서스펜스에 가득 찬 2인극으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나 관습들을 유머러스하게 성찰하고 있다. 베르베르는 죽음과 삶을 넘나드는 영계 탐사단을 소재로 한 『타나토노트』와 같은 전작들을 통해 끊임없이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기」를 제시하며 인간의 삶과 사회, 체계 등에 관한 포괄적인 인간 탐구를 시도한다. 이외에도 천사들의 관점을 통해 무한히 높은 곳에서 인간을 관찰하고 있는 『천사들의 제국』,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우리의 상식을 깨는 『나무』, 희망을 찾아 거대한 우주 범선을 타고 우주로 떠나는 14만 4천 명의 이야기 『파피용』, 웃음의 의미를 미스터리 형식으로 풀어낸 『웃음』, 새로운 시각과 기발한 상상력이 빛나는 단편집 『나무』, 사고를 전복시키는 놀라운 지식의 향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등 등으로 짧은 기간 내에 프랑스에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자리를 굳혔다. 그의 작품들은 이미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1천 5백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다. 2008년 11월에 출간된 독특한 개성으로 세계를 빚어내는 신들의 이야기 『신』은 집필 기간 9년에 달하는 베르베르 생애 최고의 대작으로, 베르베르가 작품 활동 초기부터 끊임없이 천착해 온 '영혼의 진화'라는 주제가 마침내 그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승자의 편에서 기록된 승리자의 역사이며, 진정한 역사의 증인이 있다면 그 답은 단 하나 '신'일 것이란 가정에서 출발한다. 한국에서는 『우리는 신』,『신들의 숨결』,『신들의 신비』를 묶어서 6권으로 출간하고 있다. 베르베르는 현재 파리에서 살며 왕성한 창작력으로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2008년 10월 프랑스에서 출간된 소설집 『파라다이스 Paradis sur mesure』와『카산드라의 거울』등의 작품으로 꾸준히 한국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